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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 사이에 있다

읽으면서 적지 않으면 글쓰기에 적신호가 온다

이 글은 우발적 마주침의 흔적이 글감으로 축적된다: 내 삶의 역사는 다른 생명체와 마주치면서 맞장구친 얼룩과 무늬다라는 글을 바탕으로 읽기와 연관시켜 쓴 글이다  https://brunch.co.kr/@kecologist/189


나는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 사이에 있다:

읽으면서 적지 않으면 글쓰기에 적신호가 온다     


삶이 글이 되려면 살아온 삶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찾아야 한다. 언어가 부실하면 생각도 미천해지고 삶도 부실해진다. 책 쓰기는 나의 삶을 기록하고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따져보며 쓴 수많은 글을 일정한 논리체계와 구조에 따라 엮어내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책에 나의 삶만 녹여내기 어렵다. 내 삶과 동조를 이루어가 공감이 가는 다른 사람의 주장에 비추어 내 삶을 반성하고 성찰해보기도 하고 내가 겪은 경험의 의미를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어떻게 그걸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를 비교하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10%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나머지 90%는 그걸 받아들이는 나의 방식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목사, 찰스 스윈돌(Charles R. Swindoll)이 남긴 명언이다. 똑같은 경험을 했어도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서 어떤 교훈과 시사점을 뽑아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살기가 몸으로 겪는 직접 체험이라면 읽기는 앉아서 머리로 상상하며 겪는 간접 경험이다. "책들이 바로 경험이다. 그것은 사랑이 주는 위안, 가족의 성취, 전쟁의 고통, 기억의 지혜를 입증하는 저자들의 말이다. 기쁨과 눈물, 즐거움과 고통, 모든 것이 보랏빛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내게 왔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그토록 많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179쪽).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에 나오는 말이다. 경험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책을 읽지 않으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살기’가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분투노력하는 행동이라면 ‘읽기’는 어제와 다르게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몸부림치는 사유다. ‘살기’와 ‘읽기’는 언제나 같이 맞물려 돌아가는 쌍두마차다. 읽기를 통해 살기는 사색이 넘치고 사유가 깊어지는 삶이 될 수 있고 살기를 통해 읽기는 나의 관점에서 경험을 재해석하는 체험적 틀이 만들어진다. 읽지 않고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다 근본부터 무너지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수 있으며, 살아내려는 애쓰기 없이 앉아서 책만 읽으면 관념적 사유로 채색된 무책임한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읽기와 쓰기와 고독이 지닌 깊이가 나를 반대편에서,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이어지게 했다.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거야”(85쪽). 리베카 솔릿의 《멀고도 가까운》에 나오는 말이다. 단순히 내가 살아가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읽었던 책의 특정 부분과 연결시켜 그 의미를 쓰기로 드러냈을 뿐인데 누군가는 내가 쓴 글에 공감하고 나와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경험을 드러내고 그것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 열심히 읽고 써야 되는 이유다. “우리가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들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287쪽).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 시》에 나오는 명문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많이 보유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부자다. 부자는 부유한 사람이라기보다 자신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문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살기’가 ‘읽기’와 만나 나중에 짓기로 탄생하려면 근면함과 끈기가 필요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을 어제와 다르게 바라보며 만나는 낯선 마주침이 있을 때마다 적어야 한다.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은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예를 들면 늘 만나는 신호등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빨간 불로 사람에게 멈무라고 하고 파란불로 계속 가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준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노란불은 사실 멈출 준비를 하라는 신호임에도 사람들은 노란불을 보는 순간 더 빨리 신호등을 지나쳐 버리려는 무의식적인 충동이 든다. 나는 그동안 노란 신호등의 말을 얼마나 듣지 않고 가속을 해왔는지 반성해본다. 오늘은 멈추지 않고 달려가려는 나의 삶에 경고장을 날려봐야겠다. 내 몸이 멈추라는 신호를 무시하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 거리의 노란 신호등이 엘로 카드를 보여주며 나를 야단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처럼 늘 만나는 노란 신호등을 내 삶에 던지는 황색 경고등으로 해석, 멈추지 않고 가속하려는 속도 본능을 나무라며 잠시라도 반성하고 성찰하는 삶을 살아간다. 거리의 노란 신호등은 달리는 차를 지금 멈출 준비를 하라고 신호를 보내듯, 지금 내 몸이 보내는 황색 경고등을 무시하면 돌이킬 수 없는 빨간불이 켜진다. 이런 성찰을 속도와 효율, 성과와 목표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멀리 내다보고 천천히 가라”는 메시지로 무장한 《곡선으로 승부하라》는 책이 탄생한 배경이다. 일상에서 시작한 상상이 비상하는 상상력으로 연결된 사례다.    

  


1막에서 보여주는 내 인생의 10대 각성 사건으로 이어진 열 가지 성장 체험을 어떻게 하면 더 소중한 삶의 교훈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를 고민해본다. 우선 10가지 성장 체험에서 강조하려는 핵심 메시지나 키워드를 뽑아 성장 체험별로 정리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10가지 성장 체험과 관련해서 인용할만한 문장이나 명언 또는 격언,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재미난 표현이나 에피소드 등이 연상되어 떠오르는 경우는 순서나 글의 논리적 흐름에 관계없이 우선 해당 성장 체험에 직접 타이핑해놓는다. 예를 들면 “성장 체험 6: 체험 없는 개념은 관념이다: 생각만 해본 사람은 당해본 사람을 못 당한다”는 꼭지에는 신영복의 《강의》라는 책에 나오는 “책상에서는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 일해 보면 열 가지도 넘는다……머리는 하나지만 손가락은 열 개나 되잖아요”(184쪽)라는 문장을 적어 놓는다. 신영복의 책상과 일상, 머리와 손의 비교를 통해 손발을 움직여 실천하는 길이 얼마나 실천적 지혜를 축적하는 길인지를 간단하지만 심오한 의미로 뒷받침해준다.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과거의 경험에 묻히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새로운 체험을 어제와 다르게 반복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할 일은 상흔의 화투판을 뒤집어엎어 날마다 나가리로  만드는 것이다. 내 자유를 보전하면서, 주변에 덜 유해한 존재로 나이 드는 방법은 아직 그것밖에 찾지 못했다(199쪽).” 이윤주의 《나를 견디는 시간》에 나오는 말이다. 과거의 경험이 내 몸에 남긴 흔적에서 색다른 깨우침을 얻지 못하고 그걸 어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회상할수록 나는 미래로 가지 않고 과거로 퇴보하는 것이다.     

     


읽기는 이처럼 내가 살아온 삶에서 깨달은 체험적 지혜 조차 잘 못된 신념에 근거할 수도 있음을 깨우쳐주는 경종이다. 나의 경험만이 지혜를 전해주는 유일한 원천이라는 좌정관천식 주장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나와 다른 사람의 지혜를 담고 있는 다른 책과 부지런히 접속해보는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깨달은 비슷한 체험적 지혜를 전해주거나 아니면 비슷한 경험이지만 전혀 다른 시선을 바라보는 관점을 부지런히 읽으며 배워나가야 틀에 박힌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경험만이 최고라고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적 통찰력에 비추어 바라볼 때 독자의 공감대는 물론 더 넓은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보편적인 타당성을 입증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글의 문맥을 고려하거나 순서 또는 흐름을 생각하지 말고 성장 체험을 뒷받침해주거나 더 깊은 공감대를 얻어내는데 도움이 될만한 글은 우선 무조건 적어 놓은 다음 해당 부분의 내용을 어떻게 전개할지는 나중에 결정해도 된다는 점이다. 


https://youtu.be/YYrbe8fRYLc


여기서는 ‘살기’가 ‘읽기’와 연결되어 각각의 성장 체험이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를 특정 책의 주장과 연결시켜 읽는 한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성장 체험 1: 야성은 야생에서 자라는 길들여지지 않는 마음이다

야성 없는 지성은 지루하고 지성 없는 야성은 야만이다

생태학적 구조 접속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다     


성장 체험 1의 핵심 주제는 야성과 지성의 관계 또는 야성 없는 지성의 극단적인 폐해와 역기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린 시절부터 놀지도 못하고 머리만 쓰는 학교 공부에 빠져들어  나중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지성으로 날개를 달지 못하는 이유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건강한 몸보다 똑똑한 머리를 개발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는 현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탐색 끝에 찾은 대안이 성장 체험 1에서 강조하려는 각성 메시지다. 성장 체험 1에서 경험한 내용을 공감 가는 글로 옮겨 쓰기 위해서는 나의 경험을 사례나 에피소드 중심으로 리스트업 한 다음 각각의 경험을 뒷받침해주는 다른 사람의 주장이 담긴 문장이나 명언, 사자성어나 속담 관련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나 관련 내용은 너무 많다. 캐스린 코너리, 베라 존-스타이너, 애나 마랴노비치-셰인의 《비고츠키와 창의성》은 발달단계별 아이들의 창의성을 촉발시키는 다양한 전략을 학문적 연구로 개발하고 있다. 칼 융의 명언도 놀이를 통한 창의성 개발을 뒷받침해준다. “창의성은 지성에서 비롯되지 않고 놀이 충동에서 나온다.” 미첼 레스닉의 《미첼 레스닉의 평생 유치원》은 놀이를 통한 창의성 개발이 지니는 핵심과 정수를 담고 있다.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놀이(Play)’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동료들(Peers)’과 협력하여 ‘프로젝트(Project)’에 ‘열정(Passion)’을 가지고 빠져들도록 지원하는 활동, 즉 4P 모델을 통한 창의성 개발 방법이다. 이처럼 창의성은 난동(亂動)을 일으키는 동심(童心)과 ‘장난’ 치고 싶은 충동(衝動)이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천부적인 자질이다. 이런 주제와 관련된 필독서 중의 하나가 바로 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길들여지는 아이들》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점차 자연의 언어, 길들여 지지 않는 야생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기성 세계가 사용하는 언어의 그물이 걸려 틀에 박힌 사유를 시작한다.



성장 체험 2: 상상력은 체험적 상상력이다

체험하지 않는 상상은 공상이 환상몽상이나 망상이다

이질적 구조 접속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다     


성장 체험 2의 핵심 내용은 상상력의 본질과 핵심은 체험적 상상력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데 있다. 상상력 하면 밑도 끝도 없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문명을 창조하고 기업이 대박 히트 상품을 만드는 뒤안길에는 타자의 아픔을 사랑하는 측은지심이 깔려 있다. 윤석철의 《삶의 정도》를 보면 감수성-상상력-실험정신, 즉 감상실(感想實)을 통해 상상력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문장이 여러 군데 나온다. 상상력은 감수성으로 포착된 고객의 아픔을 사랑하는 순간,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밤잠을 안 자고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재료를 연결해서 연상하는 이연연상(二連聯想)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상력 개념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는 관점을 다양한 학자를 통해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질베르 뒤랑의 대작,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을 번역한 진형준 교수는 이성 지배적인 서구 철학의 역사에 반론을 제기하고 이성보다 우위인 상상력의 위용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는 학자다. 그의 저작물은 상상력의 본질에 접근하는 소중한 참고도서다. 상상력은 책상에 앉아서 공상이나 허상, 망상이나 몽상으로 허공을 맴도는 생각이 아니다. 진짜 상상력은 해리 포터 작가, 조앤 롤링스가 하버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던 언급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짜 상상력은 비록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놓고 그 사람의 아픔을 가슴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실패한 사람, 지금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아픔을 상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입장이 되어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생기기 어려운 능력이다. "다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경험, 이미 살아본 삶이다. 한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종으로서 인간의 생존은 기억하는 이 능력에 달려 있다……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예리한 후각을 가졌겠는가? 나는 상록수의 냄새를 맡으면 기뻐 어쩔 줄 모른다. 크리스마스트리 발치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 때문이다. 팝콘의 냄새가 유혹적인 것도 그걸 먹으면서 본 영화 때문이다.”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에 나오는 말이다. 나의 경험과 타자의 경험이 만날 때 상상력은 시공간을 넘어 공명하기 시작한다. 



성장 체험 3: 책을 잘 못 읽으면 위험한 사람으로 바뀐다

방황을 해봐야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우발적 구조 접속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하다     


성장 체험 3이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는 우연히 읽은 책이 주는 비가역적 변화다. 책을 읽으면서 책이 가져다준 인생의 변화에 관련된 모든 문장은 이 부분에 인용하면서 나의 체험적 변화를 주장하면 금상첨화다. “인생 최고의 감독은 우연”이라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대사는 독서에도 통한다. “인생 최고의 감독은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이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9쪽).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에 나오는 말은 독서 전후를 비교하는 명문장이다. 책과 눈이 맞는 순간, 심장이 멎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명언은 독서의 위력을 한층 드높여 준다. “인간에게는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읽기는 무의미하지 않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책에 빠져 읽다가 새벽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책은 사람을 위험한 생각에 빠트리는 장본인인 셈이다. “독서는 몸이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19쪽).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라는 책은 독서 리뷰지만 독서에 관한 수많은 명문장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책과의 만남은 운명을 바꾸는 만남이다.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사람(책)이 세상을 바꿔놓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어느 서점 카피다. 이쯤 되면 “사람이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고르는 것”이라는 영화 《허리케인 카터》에 나오는 대사를 믿어도 되지 않을까. “저는 그동안 착각해 왔던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의 정신을 훔쳐오고 있다고 착각했지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니체가, 마르크스가, 푸코가, 그들의 정신이 관절을 타고 들어와 내 정신을 훔쳐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40쪽). 강민혁의 《자기 배려의 책 읽기》에 나오는 말이다. 책을 읽는 행위의 역전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저자의 세계로 잠입하는 게 아니라 저자의 책이 내 몸속을 파고들어 정신적 영역 곳곳에 그들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이 책 역시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들면 저자가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난해한 책을 독해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성장 체험 4: 한 순간의 선택이 한 평생을 좌우한다

포기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

정신적 구조 접속이 새로운 정신을 잉태한다.     


성장 체험 4가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는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지 말고 내가 하면 재미있는 공부를 하자는 말이다. 내가 하면 기쁨을 주는 재능이나 적성은 책상 공부를 통해서 알 수 없다는 각성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다. 진정한 공부는 《논어》에서 말하는 위인지학( 爲人之學)의 공부가 아니라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임을 확인시켜준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하는 노동으로서의 공부, 위인지학을 하루빨리 집어던지고 내가 하면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로서의 공부, 위기지학으로 빠져드는 길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공부다. 미셸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은 한 번에 읽기는 어렵지만 끝내 읽어내면 진정한 자기 발견의 과정이 무엇인지, 시중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자기 계발이 왜 자기 파괴의 길을 가는지를 알려주는 자기 배려의 지침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배려는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자기가 되기 위해 기존의 자기를 파괴하고 새로운 자기로 거듭나는 변신이다. 엄기호의 《공부 공부》는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에서 배운 자기 배려 개념을 활용하여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를 돌보는 자기 배려의 공부가 진정한 기쁨을 주는 공부라고 강조한다. 또 다른 차원에서 깊은 공부를 강조하는 책이 있다. 바로 지바 마사야의 《공부의 철학》이다. 그가 말하는 깊은 공부는 "기존의 방법대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자신을 상실"하고, "새로운 의미의 동조를 손에 넣는" 과정이다. 한 마디로 익숙한 환경에 적응해서 익숙한 언어만 반복해서 사용하는 동조가 된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낯선 세계로 진입시켜 당황하게 만드는 공부다. 그때서야 비로소 기존 세계에 서툴러진 자신을 돌보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려는 공부가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성장 체험 5: 뇌력은 체력에서 나온다

목적의식을 갖고 공부하는 흔적을 축적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언어적 구조 접속이 문화적 이해로 가는 가교가 되었다  

   

성장 체험 5의 핵심 메시지는 흔적이 축적되면 기적을 일으키는 데 거기에 느 무엇보다도 흔적을 반복해서 축적할 체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뇌력도 체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유학시절에 깨달은 것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신체 찬송으로 문장이 넘치는 책이다. “형제들이여, 차라리 강건한 신체에서 울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라. 보다 정직하며 보다 순결한 음성은 그것이다. 건강한 신체, 완전하며 반듯한 신체가 더욱더 정직하며 순수하게 말을 하니, 이 대지의 뜻을 말해주는 것도 그런 신체다”(50쪽). 이어서 니체는 신체를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이성보다 신체를 커다란 이성으로 칭송한다.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 가축의 무리이자 목자이다“(51쪽). 문요한의 《이제 몸을 챙깁니다》에서 몸 챙김은 몸 존중(body-esteem), 몸 자각(body-awareness), 몸 돌봄(body-care)의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하면서 “뇌와 마음은 몸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몸의 일부라고 믿습니다. 몸은 단지 뇌와 마음의 하부기관이 아니라 그 뿌리입니다”(10쪽). 몸이 맘을 지배하는데 우린 몸이 품고 있는 육체적 욕망을 변덕스러운 불길한 욕망으로 폄하해왔다. 그래서 몸은 합리적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되는 부속품으로 이해되어 왔다. “‘몸’이 스승이고 ‘마음’이 제자다. 몸을 보고 마음이 배운다. 그러나 마음이 어느 때고 몸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못된 제자는 제 삶이 안달이 날 때에만 스승에게 손을 내민다”(363쪽). 신형철이 《느낌의 공동체》에서 했던 몸에 관한 통찰이다. 스승인 몸이 제자인 마음의 지배를 거꾸로 받아왔던 지금까지의 철학적 신념과는 다른 반론을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모아놓으면 몸은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고 오히려 몸이 머리와 마음을 통제하고 지배한다는 체험적 깨달음을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몸에 기쁨이 찾아오는 경우에 우리는 정신에서도 반드시 기쁨을 느끼지만, 반대로 정신의 기쁨이 필연적으로 몸의 기쁨을 초래하지는 않는다……우리의 몸은 항상 옳지만, 정신은 그릇 될 수 있다(p.478).”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마주친 문장이다. 몸은 정직하지만 머리는 거짓말을 한다. 몸이 느낀 육감을 머리로 희석하거나 탈색해서 오리지널 깨달음이 왜곡되어 머릿속에 저장되기도 한다. 이런 모든 몸의 깨달음은 언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무수히 많은 언어 관련 책을 보면서도 여전히 언어는 비트겐슈타인의 두 권의 철학서적, 즉 《논리 - 철학 논고》와 《철학적 탐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가르침과 스승의 길에 대한 다양한 책을 내 삶의 체험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읽으면서 꾸준히 메모하고 인용하고 싶은 문장은 바로 지금 쓰는 글의 해당되는 부분에 우선 워드로 써놓으면 쓸 데가 생기고 쓸 때가 온다.     



성장 체험 6: 체험 없는 개념은 관념이다

생각만 해본 사람은 당해본 사람을 못 당한다

실천적 구조 접속이 체험적 지혜를 낳는다     


성장 체험 6은 유학을 마치고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겪은 각성 사건의 기록이다. 관념적 지식의 무력함으로 몸소 깨달은 깨우침의 시간에 관한 성찰 체험이다. 생각보다 생동, 관념보다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장은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이라는 시에서 엘렌 코트는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라고 조언한다. 나에게 실천의 중요성을 깨우친 수많은 책중에 신영복 교수의 책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징역살이에서 느끼는 불행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한 발걸음이라는 외로운 보행입니다. 실천과 인식이라는 두 개의 다리 중에서 '실천의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천 활동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를 다시 실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진실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실천은 인식의 원천인 동시에 그 진리성의 규준이라 합니다. 이처럼 '실천→인식→재실천→재인식'의 과정이 반복되어 실천의 발전과 더불어 인식도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갑니다. 그러므로 이 실천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결정적인 의미를 띱니다. 그것은 곧 인식의 좌절, 사고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이 썩고, 발전하지 못하는 생각이 녹슬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277쪽).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통렬한 깨달음이다. “책상에서는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 일해 보면 열 가지도 넘는다……머리는 하나지만 손가락은 열 개나 되잖아요”(184쪽). 신영복의 《강의》라는 책을 읽다가 메모했던 문장이다. “우리 섬의 어른들은, 비록 오늬 죽의 맛에 날카롭지는  못 했어도, 소금 그 자체의 맛에는 너나없이 귀신들이었다. 소금 한 알갱이를 입에 넣으면, 섬의 동쪽 염전 소금인지 서쪽 염전 소금인지, 초여름 소금인지 늦가을 소금인지, 어김없이 알아맞혔다(251쪽).”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에 나오는 언어로 전할 수 없는 체험적 지혜의 본질을 꼬집는 실증적 명언이다. 경험의 중요성과 더불어 경험의 위험한 측면도 알려주는 문장을 같이 알아두면 과거의 경험에 갇혀 사는 사람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경험이 인간의 시야를 넓혀준다고들 하지만 인간은 경험에 쉽게 갇히기도 한다. 시야 자체가 경험자의 한계에서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재구성을 하는 중에 신념의 아군을 모집하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197-198쪽).” 이윤주의 《나를 견디는 시간》에 나오는 통찰이다. “경험이 새겨진다는 면에서 모든 경험은 일종의 상흔이다.  

    


성장 체험 7: 적막해지면 글짓기의 서막이 열린다

쓰지 않으면 쓰러지고 쓰면 쓰임이 달라진다

학문적 구조 접속이 앎의 지평을 확대시켜준다     


성장 체험 7은 글쓰기의 효용과 가치에 관한 각성 사건의 기록이다. 체험이 다양하고 생각이 풍부해도 쓰기를 통해 겉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정리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쓰기를 배우는 기술과 기법의 문제이기 이전에 삶을 글감으로 녹여내는 사유하기다. 자신을 따라 하면 단 며칠 만에 책 쓰기가 가능하다는 과장 마케팅 광고부터 글쓰기를 기법으로 전락시키는 호언장담이 많다. 이런 주장보다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나 장석주의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고미숙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글쓰기가 내 삶에서 왜 중요하고 존재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제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가 왜 며칠 만에 배울 수 있는 기술이나 기법이 아닌지는 이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글쓰기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노동이다. 또한 글쓰기는 삶의 거친 바다에 뛰어드는 모험이요, 육체의 수고가 동반되는 가차 없는 노동이다. 생의 핵심을 꿰뚫으며 진격 하는 노동에의 헌신과 용기 없이는 작가로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115쪽). 장석주의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기법과 기교 중심의 글쓰기 교육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글쓰기의 본질을 알리는 책과 접속하지 않으면 글쓰기 역시 글이 없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돈 버는 수단으로써의 상업적 글쓰기 광풍에 휘말릴 수 있다. “좋은 글을 쓰려면, 대단한 삶은 아니더라도 기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자기기만 없는 글쓰기의 비결은 어쩌면 내 삶 안에서 떠올릴 수 있는 얼굴들, 내 삶을 비교적 잘 아는 얼굴들을 향해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249쪽). 제주현의 《일하는 마음》에서 만난 문장이다. 쓰기를 배우기 전에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노력과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부실한 삶, 정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삶의 충일한 행복감이 담겨 있는 정직한 글을 쓴다고 해도 그런 글은 곧 독자가 알아볼 것이다.     



성장 체험 8: 최고의 가르침은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가 한우물 파다 매몰되는 전문가를 구해준다

융합적 구조 접속이 새로운 지식창조의 원동력이다     


성장 체험 8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모교로 돌아와 본격적인 교수생활을 시작하면서 가르침과 배움의 본질을 고민하면서 생긴 각성 사건의 기록이다. 가장 먼저 고민되는 일은 진정한 교수의 길,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의 《스승은 있다》를 통해 세상의 오해가 깃들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인과 같은 스승을 찾아 나서는 방법을 배운다. 가르치는 스승의 설득적 열정과 배우는 사람의 발견적 열정은 마이클 폴라니의 《개인적 지식》을 통해서 배웠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켜 교육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사건은 장상호 교수의 《학문과 교육 - 중1 - 교육이란 무엇인가》만나면서부터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제자의 상구(上求)와 답답하기 그지없는 제자를 향해 길을 안내하려는 하화(下化)의 극적인 만남을 감동적으로 논의하는 책이다. 같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이홍우 교수의 《교육의 목적과 난점(제7판)》은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 진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육임을 역설한 탁월한 역작이다. 이런 책에 비해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은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묘한 교수법의 본질을 만나게 해 준 책이다. 진정한 가르침은 배우려는 사람의 의지를 북돋워 빠져나갈 수 없는 코너에 몰아붙여 스스로 길을 찾나 나서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에서 색다른 깨우침을 얻었다. 이런 모든 가르침과 배움은 언어를 매개로 일어난다. 《건반 위의 철학자》를 쓴 프랑수아 누델만은 사르트르와 니체, 그리고 롤랑 바르트를 불러다 건반 위에 올려놓고 그들의 철학적 성향이 피아노 연주와 음악적 취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철학적 사색을 통해 사색의 향연을 미친다. 음악고 철학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저마다의 선율로 청중에게 다가간다.

      


성장 체험 9: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니다

한계는 한 게 없는 사람의 핑계다

한계와의 극한적 구조 접속은 경계를 뛰어넘은 원동력이다     


성장 체험 9는 능력의 한계를 몸으로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머리로 알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각성 사건이다. 한계는 책상에서 머리로 알 수 없고 오로지 몸으로 한계에 도전해본 사람만이 한계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메시지다. 여기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의 메시지 중의 하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마라”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관심 있게 바라볼 내용은 명언이나 격언, 속담이나 잠언이 여전히 지금 여기서도 통용되는지 의문을 제기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도 의심의 대상이다. 생물학자에 따르면 갈매기는 근시(近視)라고 한다. 아무리 높이 날아도 근시라서 멀리 못 본다는 이야기다. 경험의 한계는 사고의 한계를 불러온다.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지금 살아가는 행동반경을 넓혀야 한다. 동물행동학자 야곱 폰 웩스쿨이 창안한 ’움벨트(Umwelt)’ 개념에 주목해야 되는 이유다. 예를 들면 내가 평생 성남 분당에서 살아가면 나의 움벨트는 분당으로 한정된다. 다른 세상이 알려주는 다른 세계와 다른 시각을 만날 수 없다. 이런 점을 발 보여주는 책이 바로 《관찰의 인문학》이다. 이 책에는 동일한 거리를 직업이 다양한 사람이 산책하면서 저마다 눈에 보이는 감각적 경험 세계의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경험세계는 언제나 내가 지니고 있는 지금의 안경으로만 보인다. 자주 안경을 벗어던지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다른 세계가 있는 것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의 덫에 걸리는 이유는 이전과 다른 경험을 해보지 않고 기존 경험적 틀에 비추어 새로운 경험을 해석하려는 관성 때문이다. 정상을 정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최고의 경지에 올라간 사람들의 다양한 특성을 밝혀내는 수많은 저작은 분야별로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다. 매슈 사이드의 《베스트 플레이어》가 밝히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공통점은 견뎌내기 힘든 시련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튀어 오르는 탄력’이나 ‘반동력’, ‘활기’나 ‘에너지’를 의미하는 바운스(bounce)가 기반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화복 탄력성, 즉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을 보여주는 《그릿》도 주목할만한 참고문헌이다. 성공한 리더의 비밀을 밝혀낸 리즈 와이즈먼의 《멀티플라이어》 역시 정상에 도달한 리더는 정상적인 리더와 다른 점을 다양한 실증적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성장 체험 10: 독창성이란 들키지 않은 표절이다

모든 책은 체험과 편집의 합작품이다.

개념적 구조 접속이 색다른 사유를 잉태하는 원동력이다    


성장 체험 열 번째에서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창조는 이전 작품의 표절이라는 주장이다. “독창성이란 들키지 않은 표절이다.” 윌리엄 랠프 잉의 명언이다. “한 작가의 것을 훔치면 ‘표절’이지만 많은 작가의 것을 훔치면 ‘연구’다.” 미국 극작가, 윌슨 미즈너의 명언이다. 여기서 표절은 남의 글을 무조건 베끼거나 훔치는 것이 아니라 원작과 다르게 원리를 훔쳐와서 나의 방식으로 재창작하는 것이다. “어설픈 시인은 흉내 내고 노련한 시인은 훔친다. 형편없는 시인은 훔쳐온 것들을 훼손하지만 훌륭한 시인은 그것들로 훨씬 더 멋진 작품을 적어도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낸다. 훌륭한 시인은 훔쳐온 것들을 결합해서 완전히 독창적인 느낌을 창조해내고 애초에 그가 어떤 것을 훔쳐왔는지도 모르게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T.S 엘리엇 시인의 말이다. 이 분야의 고전은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이다. 여기 나오는 “세상에 오리지널은 없다(Nothing is original). 모든 창작은 뒤섞은 것이다(Everything is remix)”라는 두 문장은 모든 창작자가 명심해야 될 경구다. "창의성은 새로운 것들의 옛날식 조합과 옛날 것들의 새로운 조합(new things in old combinations and old things in new combinations)을 통해 생겨난다. “ 미국의 조직이론가 칼 웨이크(Karl Weick)의 말이다. “창의성이란 흔한 구성요소들의 흔치 않은 결합이다.” 역시 창의성에 관한 비슷한 주장이다. MIT 대학 미디어 랩의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의 정의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명언도 잘 모아두면 쓸만한 가치를 적기에 발휘한다. 이런 창의성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라는 솔깃한 주장을 보고 싶으면 김경일의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를 참고하면 색다른 시사점을 얻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창의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자동적으로 깨진다. 창의성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전대미문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다양한 사람의 깨달음을 연결하면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창의성에 관한 메시지를 전할 때 공감대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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