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에 물음표를 던져야
당대를 뒤흔드는 혁신이 시작

당연함에 시비를 거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까?

당연한 세계에 물음표를 던져야 당대를 뒤흔드는 혁신이 창조된다

당연함에 마침표를 찍고 원래 그렇다고 시인하고 있습니까,

당연함에 시비를 거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까?



침묵과 함께 연주되는 소음도 음악이다


MBC에 방영되었던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남자 주인공 강마에는 '베토벤 바이러스' 16회 방송 때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지휘를 한다.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시장의 취임식에서 축하 공연을 하게 된 강마에는 공연에 '4분 33초'라는 특이한 곡을 연주한다. '4분 33초'라는 악보에는 1악장 침묵, 2악장 침묵, 3악장 침묵이라고 쓰여있을 뿐, 그 어떤 음표도 없는 이상한 악보였다. 1악장을 33초, 2악장을 2분 40초, 3악장을 1분 20초 총 연주시간 4분 33초 동안 그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고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을 들어보라는 '무음의 음악'이다. 강마에는 4분 33초라는 악보를 펼쳐 들고 지휘를 시작한다. 하지만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고 지휘봉을 들고 한 참을 서 있다가 1악장이 끝났다고 하면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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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우연성의 음악이론에 기초한 현대음악입니다. 4분 33초 동안에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 공연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들이 나에게 어떤 음악으로 다가오는가, 느껴보자는 거죠. (관객들 향해)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기침? 그냥 하세요. 종이가 떨어지면 줍고 핸드폰이 울리면 받으세요. 음악은 여러분 주변에 있습니다. 즐기세요!”


사실 강마에가 패러디한 연주의 음악적 기원은 1952년 8월 29일, 미국 뉴욕의 우드스톡(Woodstock) 야외 공연장에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모방한 것이다. 튜더가 초연한 작품은 존 케이지의 〈4분 33초〉. 피아노에 앉아 뚜껑을 연 튜더는 작품의 연주를 시작할 것으로 생각했던 관중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저 시계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기대를 저버리고 뚜껑을 닫고 일어나서 인사만 하고 들어갔다. 청중들은 평소처럼 기대했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소리 대신 침묵과 함께 들려오는 공연장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자신들이 무의식 중에 내뱉은 헛기침소리, 그리고 기대했던 음악 연주가 시작되지 않자 술렁이는 소리와 걱정스러움, 그리고 거부감이나 황당함과 허탈한 한숨 등 음악적 소리 대신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을 들었다. 사실 존 케이지가 노린 의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소리(聲)보다 소리 뒤에 울려 퍼지는 여운(餘韻)을 노린 것이다. 겉으로 들리는 소리, ‘성(聲)’에 익숙한 청중은 그날 소리가 끝난 뒤에 울려 퍼지는 ‘운(韻)’이나 그동안 무의식 중에 흘러 다녔던 일상의 소리를 음악으로 처음으로 들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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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그날 그곳에 모였던 청중들은 연주되는 음악 대신 자연스럽게 들리는 소음을 들은 것이다. 소음이 음악으로 변주된 세계 최초의 사건이다. 그 후 기존의 음악과 소음은 동일한 음악의 영역에 놓이게 된 것이다. 존 케이지가 노린 것도 연주 소리 대신이 일상에 접하는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음악적 고정관념의 파괴였다. “우리가 어디를 가던 우리의 귀에 들리는 것은 대부분 소음이다. 우리가 소음을 귀찮아한다면 소음은 오히려 우리를 괴롭힌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주의 깊게 들으려 한다면 소음이 얼마나 환상적인 것인가를 드디어 알게 된다. 소음이야말로 경이로운 음악인 것이다. 가장 자연적인.” 누구나 소음을 듣고 살아왔지만 아무도 소음을 음악으로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예술적 혁신도 전대미문의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석하는 가운데 잉태되고 탄생되는 것이다. 소음을 음악으로 해석한 존 케이지의 혁신적 발상을 생각하면 《논어》에 나오는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라는 말이 연상된다. “간절하게 묻되, 가까운 것부터 생각한다”는 말이다. 멀리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가까운 곳을 이전과 다른 관심으로 질문을 던지고 관찰하면 놀라운 생각이 떠오른다. 문제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익숙한 현상이나 사물은 늘 보았던 방식대로 보면서 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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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기존 개념의 재정의에서 시작된다


〈4분 33초〉라는 음악은 전위예술 음악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으며 백남준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존 케이지가 작곡한 독특한 악보다. 이 작품은 미술에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인 남자 소변기를 ‘샘’이라는 작품으로 출시했던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음악작품이다. 뒤샹이 기성품인 남성용 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출품한 것처럼 존 케이지의 4분 33초도 아무것도 없는 악보에 의미를 부여해서 작곡하지 않고도 위대한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미술 역사상 창작 행위를 하지 않고 기성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예술품이라고 재해석한 혁명적인 미술작품을 창시한 뒤샹처럼 실험적인 음악가 케이지 역시 연주를 통해 나오는 소리를 소거하는 대신 자연과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모든 혁신은 원래 그런 세계, 당연하고 생각한 일상, 원래 그렇다고 치부해버린 세상에 문제를 던져 시비를 걸고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정의를 바꾸지 않으면 남이 정의한 세계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정의(定義)를 바꾸면 정의(正義)로운 세상이 내가 정의한 세계관대로 풀리기 시작한다. 혁명을 일으키고 혁신을 주도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만의 정의로 세상을 다시 본 사람들이다. 정의를 바꿔야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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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 33초〉 악보는 악보지만 악보에 아무것도 없다. I. Tacet, II. Tacet, III. Tacet라고만 쓰여 있다. Tacet는 침묵을 의미한다.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순 것이다. 음악은 연주자는 연주하고 청중은 그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음악이라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혁신은 개념의 재정의에서 시작된다. 물론 그것도 음악이냐는 심한 비판과 조롱도 없지 않았다. 존 케이지는 이런 음악적 반란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저지른 기존 음악계에 대한 도전이자 반항이었다. 전통적으로 악기가 내는 소리만 음악이 된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고 소음을 포함해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다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음악적 관념을 새로운 개념으로 재정의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케이지의 이런 발상의 이면에는 평소에 동양문화와 선불교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바가 숨어 있다. 실제로 존 케이지는 1940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일본 선불교 학자 다이세츠 스즈키라는 학자에게 2년간 선불교 수업을 들으며 “지금 이 순간 속에 전 우주가 들어있다”는 가르침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아마 〈4분 33초〉라는 음악도 이런 사상적 영향력이 보이지 않게 축적되어 나타난 혁신적인 음악이었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아이디어의 80%는 경영의 테두리 밖에서 나온다.” 게리 하멜(Gary Hamel) 시카고대학 교수의 말처럼 케이지도 혁신적인 음악적 아이디어를 음악 밖에서 잉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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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함을 ‘부정’할 때 혁신은 ‘인정’된다!


혁신적 발상의 이면에는 가정(assumption)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이 숨어 있다. 예를 들면 “음식점에는 메뉴가 있다”는 가정을 "음식점에는 메뉴가 없다"고 생각할 경우 메뉴 없는 음식점이 탄생한다. 메뉴 없는 음식점은 이제 메뉴가 있는 음식점과 경쟁하지 않고 메뉴 없이도 고객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제공할 수 있는 자신과 경쟁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갈 것이다. 모든 선풍기에는 날개가 있다고 가정하는 선풍기 회사가 경영혁신을 거듭해도 기존 선풍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저 그런 선풍기만 나온다. 예를 들면 선풍기 모양을 바꾼다든지, 선풍기 모터를 더 강력한 것으로 채택한다든지 또는 선풍기 날개 모양이나 바람의 방향을 바꾸는 다양한 선풍기를 선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선풍기에 익숙한 경쟁업체나 고객은 색다른 선풍기를 선보여도 기존 선풍과 차별화되지 않는 기시감(旣視感, 프랑스어: Déjà Vu 데자뷔) 때문에 색달라 보이지 않는다. 기시감은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을 말한다. 그런데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Dyson)사는 선풍기에 날개가 있다는 기존 가정을 없애고 날개 없는 선풍기, ‘다이슨 쿨(Dyson cool)’을 개발했다. 이 선풍기는 왜 선풍기에 꼭 날개가 있어야 될까라는 선풍기에 대한 기존 가정에 의문을 품고 당연함을 부정한 결과 탄생한 혁신적인 선풍기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종이 서류를 고정시키는 데 사용하는 스테이플러도 꼭 침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침이 없는 스테이플러(stapleless staplers)가 탄생했다. “~에는 ~가 있다”를 “~에는 ~가 없다”로 바꿔서 생각하는 순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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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음악도 마찬가지 발상에서 시작한 것이다. 모든 음악은 음표를 활용하여 작곡한 다음 작곡한 악보대로 악기가 연주하고 성우가 노래해야 한다는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은 것이다. “음악에는 음표가 있다”는 가정을 없애고 음표가 없는 악보를 작곡한 것이다. 예술이든 경영이든 혁신적 발상의 근저에는 언제나 생각의 물구나무서기를 통해 세상을 거꾸로 보려는 역발상이 잠자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 세계도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과 일탈의 예술성이 판을 친다. 백남준의 이런 작품성에 지대한 영감을 준 사람도 바로 존 케이지였다. 존 케이지 사후,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내 삶은 1958년 8월 저녁 다름슈타트에서 존 케이지 공연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내게는 1957년이 ‘기원전’ 1년이었고, 존 케이지가 죽은 이듬해인 1993년을 ‘기원후’ 1년”이라고 정의하며 스승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주었다. '새장 속 케이지(Cage in the Cage)' 작품을 통해 스승인 존 케이지를 '케이지'란 새장에 가둬놓는 장난기 어린 발상을 통해 진정한 예술적 창작은 기존의 틀과 벽을 깨부수는 가운데 일어난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새장 바닥에 배설물처럼 피아노 현을 쌓아놓은 의도는 스승인 존 케이지가 기존의 음악적 틀에 갇혀 있어도 자기 방식으로 작곡을 시도하는 혁신적인 음악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지 않았을까. 백남준과 그의 스승 존 케이지는 모든 혁신은 혁신적인 시도 이전에 고정관념과 타성에 젖은 가정을 혁신적으로 부정하는 가운데 일어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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