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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는 의미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육체노동이다

책 읽기는 의미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육체 노동이다.

“책은 눈의 약이다”(37쪽). 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책은 눈의 독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책을 읽는 눈은 온데간데 없고 스크린에 한 눈 팔려 있다. 이제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시간이 있어도 책을 읽은 눈이 없어서 못 읽는다. 바빠서 못 읽는 게 아니라 읽지 않아도 바쁜 눈은 늘 언제나 한 눈에 반하는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다.

《텍스트의 포도밭》으로 들어가면 정말 따 먹고 싶은 문장들이 곳곳에서 내 눈을 빛나게 해준다. “페이지를 밝히는 지혜의 빛을 받을 때 읽는 사람의 자아에 불이 붙을 것이며, 그 빛 속에서 읽는 사람은 자신을 인식할 것이다”(38쪽). 텍스트의 포도밭에 매달린 한 줄 한 줄을 만날 때마다 거기서 섬광으로 다가오는 지혜의 빛은 내가 그 동안 지니고 있던 통념을 통렬하게 깨부순다. 텍스트의 포도밭이 아니라 지혜의 포도밭으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늘 책을 읽거나 뭔가를 배울 때 자세를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 이 책에서 만난 지혜의 불빛이 다시 텍스트에서 틈새를 트고 나와 내 몸에 각인된다. “겸손이 읽는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특히 중요한 교훈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떤 지식이나 글로 경멸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어떤 사람에게 배우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스스로 배움을 얻었을 때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32쪽). 모든 글은 저마다의 사연을 먹고 태어난 저자 특유의 문제의식이다. 배우려는 사람에게 세상은 이미 배움의 천국이다. 텍스트 역시 그런 배움의 보고다. 파고들면 배울만한 메시지가 포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약함에서 나오지만, 앎에 대한 경멸은 사악한 의지에서 나온다”(118쪽). 그 어떤 앎도 고달픈 노고 속에서 잉태된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배우는 과정은 부끄러운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배울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움을 거부하는 행동이 부끄러운 것이다. 배움을 통해 얻은 앎은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일깨워주는 각성제다. 더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인정할 때 배움은 다시 겸손을 가르쳐주는 선순환의 과정을 반복한다. 실력있는 사람은 겸손하다. 겸손 역시 실력이다. 겸손하지 않는 실력은 없다. 진짜 실력은 모두 겸손이 낳은 자식이다.



이렇게 읽기를 통해 지혜의 불빛을 만나는 순간은 그냥 앉아서 남의 책을 읽는 관념적 사고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읽기는 저자의 고뇌의 눈빛을 읽는 것이고 그래서 내 삶에 바추어 다짐과 결의를 읽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독서는 논으로 읽고 끝나지 않고 몸으로 실천하는 독행(獨行)으로 이어진다. “읽기는 추상화의 행동이기는커녕 오히려 육화의 행동이다. 읽기는 출산을 거드는 육체적인 행동, 몸의 활동으로, 순례자는 페이지들을 거치며 만나는 만물이 의미를 낳는 것을 목격한다”(190쪽). 책을 읽는 행위는 의미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육체적 활동이다. 책 읽기가 삶과 구분되지 않는 이유다. 읽기는 곧 삶 읽기다. 읽지 않는 삶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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