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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기를 사랑하면 생기는
5가지 놀라운 비밀 무기

‘사랑’은 뭔가에 휘말려 들어가는 매혹적인 ‘사건’이다!

책 쓰기를 사랑하면 생기는 5가지 놀라운 비밀 무기:

사랑은 뭔가에 휘말려 들어가는 매혹적인 사건이다!


https://youtu.be/ql-EgtAJwQM


책은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window)이다.

책은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다

책은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책은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책은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도끼

   

  

사물이나 사람과 뜨겁게 사랑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기고 싶어서 책을 쓰는 것이다. 나의 삶을 책으로 남기는 작업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삶을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삶을 불멸의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 책 쓰기가 바로 나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내 삶은 이미 그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작품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기는 작업은 언제나 만족스러운 경우가 거의 없다. 늘 어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미완성(未完成) 작품이다. 그 미완성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영원한 미(美)완성이다. “인간은 항상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데 실패한다.” 롤랑 바르트가 스탕달을 연구하면서 완성하지 못하고 타자기에 남긴 유언 중의 한 마디다. 비록 실패작이고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삶을 불멸의 작품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불같은 의지와 열정이 살아있는 한 책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책과 사랑에 빠져서 휘말렸던 다섯 번의 사건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 알랭 바우디가 《조건들》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사랑하면 둘이 서로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내가 사랑했던 5가지 사건 속에서 우리를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사건의 추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책 쓰기다.



책은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window)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창을 이전과 다른 곳에 설치해야 이전과 다른 세상을 내다보는 통로가 열린다. 내가 만약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도 평택과 송탄 유흥가에서 놀고 있을 것이다. 운명적인 책과의 만남,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을 만나고 나서 공고생도 사법 고시에 합격하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방황하던 나에게 한 줄기 빛을 준 은인이 바로 책이었다. 책이 나에게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창을 선물해주었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지금과 다른 창을 선물함으로써 이전과 다른 길을 걸어가도록 만들어주는 데 있다. 독서는 세상을 이전과 다르게 내다보는 관점이자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가장 먼저 걸어가게 만든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읽은 책만큼 세상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이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보다 더 많은 미지의 세계가 있음을 책을 통해서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던 창을 사랑하고 그 창이 안내해준 미지의 길을 사랑한다.



책은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다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열심히 속도만 높이면 달리다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엉뚱한 방향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주어진 현실을 대상으로 불평과 불만만 토로하며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을 것이다. 비록 초기에는 잘 못된 기차를 탔지만 그 기차가 나를 지금의 여기로 데려다준 운명적인 사건은 모두 책과의 만남 덕분에 일어났다. 운명적인 책과의 만남, 이홍우 교수님의 《교육의 목적과 난점》은 나를 교육학의 세계로 인도해주면서 앞으로 내가 추구해야 될 교육관을 심어준 사건의 책이다. 그래서 독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변화다(오이가 피클로 변하듯).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는 것도 한 가지 방향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나침반은 누군가 만들었지만 그 나침반이 나에게 의미와 가치를 지니려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가리킬 때다.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속에 내가 찾아 헤맸던 나침반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나에게 인생의 방향 전환을 도와준 나침반을 사랑한다.



책은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책을 읽으면 꿈의 목적지가 갑자기 선명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거기까지 이르는 여정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100% 다 맞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 몸이 움직여 내가 꿈꾸는 목적지로 향하는 비장한 각오와 결연한 의지로 행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만약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징검다리라는 책을 발판 삼아 꿈의 목적지를 꿈만 꾸고 있지 실제로 몸을 움직여 행동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고민만 거듭했을 것이다. 운명적인 책과의 만남, 박이문 교수님의 《하나만의 선택》이라는 책은 더 큰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 공부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책에 나에게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앎의 결과보다 앎의 추구하는 열정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여정에서 깨닫는 즐거움의 바다에 빠져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징검다리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이 존재하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책 속으로 빠져들지 않으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숫자만큼이나 지금 여기서 저기로 건너는 징검다리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나는 꿈으로 가는 여정에서 나를 미지의 세계로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 징검다리를 사랑한다.



책은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만약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생각이 이렇게 미천한지 모르고 천방지축 살았을 것이다. 책은 나와 다른 세계에서 다른 경험을 하면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 접속하게 만드는 매개체다. 그런 책을 읽어봐야 내 생각이 얼마나 좌정관천의 어리석음에 갇혀 사는지 반성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책은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나의 존재는 존재 자체의 발버둥 치며 변신하려는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다행히 무너지는 사건을 경험했다. 운명적인 책과의 만남,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감옥이라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한겨울 서릿발 같은 냉철한 사색의 명증함을 추구하며 세계의 움직임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닐 수 있는지 경이로운 사유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는 관계없는 존재는 없다. 모든 존재는 관계가 결정한다는 위대한 깨달음은 그 후 나의 사상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지금 우리 생각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만들어준 결론이다. 내 생각을 바꾸려면 다르게 살아가는 삶과 접속해봐야 지금 나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나는 나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 위해 책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부단히 성찰하는 삶을 사랑한다.  



책은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도끼


만약 내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막혀있는 생각의 고치를 깨부수고 내 생각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기 위해서는 책과 자주 접속해야 한다. “책이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가 되어야만 한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말이다. 도끼처럼 굳은 생각을 깨부숴서 색다른 생각을 자주 잉태시키는 매개체가 바로 책이다. 운명적인 책과의 만남, 이성복 시인의 아포리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를 보면서 촌철살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늪으로, 사막으로 내보내 죽음의 거머리와 하이에나에게 물어 뜯기게 하는 것이다”(40쪽). 놀라운 생각의 정수들이 정수리를 내리치는 죽비 같은 깨달음을 품은 인두 같은 문장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점차 굳어져 가는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도끼로 깨부숨으로써 새로운 위기의식을 심어주는 데 있다. 고정관념이 고장관념으로 더 굳어지기 전에,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살아가려는 관성이 생기기 전에 낯선 자극을 주어 생각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도끼 같은 책을 사랑한다.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를 비정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43쪽). 이성복 시인의 아포리즘,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 나오는 말이다. 정상으로 자리 잡으려는 생각에 죽비 같은 깨달음의 회초리로 내려치면서 비정상적 사유를 즐기는 여정에서 쓰기는 자리를 잡아간다. 조정래 작가의 《황홀한 글 감옥》처럼 비록 글 쓰는 감옥에서 사투를 벌이며 애간장을 녹여내지만 고통이 주는 성취감의 희열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오늘도 글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책으로 써내고 있다. “물체는 제 중심에 따라서 제 자리로 기웁니다. 중심이란 꼭 밑으로만 아니고 제 자리로 기웁니다”(524쪽).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삶의 중심을 잡고 내가 서야 할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 자리를 찾아 나서는 탐구 여정이 바로 책 쓰기다. “신발은 그 자체가 더러운 것이 아니고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가 더러운 건 아니라 침실에 식사용기를 놓은 것이 더럽거나 옷 위에 흘린 음식이 더럽다. 마찬가지로 응접실의 화장실 도구나 의자 위에 놓인 옷, 실내에 있는 실외 도구, 아래층에 놓인 위층 물건, 겉옷 위에 드러난 속옷 등등, 요컨대 우리들의 오염에 관한 행동은 일반적으로 존중되어온 분류를 혼란시키는 관념이나, 이것과 모순되는 일체의 대상에 대한 관념을 그른 것이라고 하는 반응이다”(69쪽). 메리 더글러스의 《순수와 위험》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남의 자리를 탓하거나 그 자리에 가 있으면 더러운 인간으로 전락한다. 책 쓰기는 더러운 인간에서 벗어나 내가 서면 어울리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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