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상의 역설
우리 세상의 역설/지식생태학자 유영만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성복의 ‘그날’)
앞만 보고 달리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매 순간 느끼는 행복의 ‘밀도’는 부실해졌다.
목표를 달성하는 효율적인 ‘기술’은 발달했지만
목표를 왜 달성해야 되는지를 생각하는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은 ‘속성’ 재배 능력은 향상되었지만
기본기를 닦으며 나만의 필살기를 단련하는 ‘숙성’ 시간은 없어졌다.
더 많은 ‘목표’를 달성하고 삶이 풍부해졌지만
왜 목표를 달성했는지 목적의식은 사라졌다.
필요해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은 많아졌지만
정말 평생을 같이할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은 끊어졌다.
저마다 바쁘게 살면서 느끼는 ‘빠듯함’은 넘쳐나지만
저마다 여유롭게 살면서 느끼는 ‘뿌듯함’은 실종되었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은 치솟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보내려는 ‘열망’은 사라졌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의 소유욕은 치솟고 있지만
책을 사려는 사람의 간절함은 줄어들었다.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책은 많아졌지만
그 책을 읽는 사람은 점차 없어졌다.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은 날마다 늘어나지만
책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정보를 ‘검색’하는 시간은 많아졌지만
고독을 벗 삼아 ‘사색’하는 시간은 없어졌다.
부표하는 정보와 ‘접속’하는 시간은 많아졌지만
깊은 호흡으로 ‘접촉’하는 시간은 없어졌다.
남의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지만
나의 ‘지혜’와 통찰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책상 전문가의 앎과 기술은 풍부해졌지만
현장 전문가의 결연한 판단과 과감한 실천은 없어졌다.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토해내는 거짓말은 난무하지만
‘자세’를 낮추고 자격을 갖추려는 사람은 없어졌다.
허공에 메아리치는 일방적 자기주장은 난무하지만
난국을 돌파하는 식견과 폭넓은 안목은 없어졌다.
자기주장만이 옳다고 발설하는 ‘입’은 많아졌지만
다른 사람의 다른 주장을 듣는 ‘귀’는 닫혀버렸다.
옳고 그름을 자기 기준에 비추어 판단하는 냉철한 ‘머리’는 발달했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는 따뜻한 ‘가슴’은 차갑게 식었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