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를 읽고 나서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당신의 마지막 어휘는?
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를 읽고 나서
철학자는 저마다의 문제의식을 갖고 집요하게 탐구하는 과정에서 기존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특정한 현상과 맞닥뜨린다. 그때 철학자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담아낼 독특한 개념을 창조한다. 일반인이 철학책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철학자마다 고유한 문제의식을 이전 철학적 개념체계로 더 이상 새로운 사유를 계속할 수 없는 한계 지점에 다다를 때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때 철학자는 전대미문의 색다른 개념을 창조해서 자신의 철학적 고뇌를 담아낸다. 존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을 계승 발전하면서도 언어와 언어를 사용하는 자아는 물론 자아들이 구축한 공동체나 문명조차도 철저하게 우연성의 산물이라고 보는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사용 이론과 니체의 위버멘쉬와 관점주의를 차용, 독창적인 네오 프래그머티즘(Neo-pragmatism)이다.
로티의 철학적 저작물 가운데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를 통독하면서 몇 가지 독창적인 개념에 꽂혔다. 12월 중에 다시 녹화할 ebs 마스터 클래스 10강의 한 강좌로 정리할 생각을 염두에 두고 눈먼 각인(Blind Impress),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 아이러니스트(ironist)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해해보려고 애쓰면서 몇 장의 그림으로 이들 간의 논리적 관계도 도해해보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 특히 철학 책을 읽는 일은 난해한 텍스트를 해독하는 일이며, 저자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에 관한 저자의 의도와 의중을 읽어내는 일이다. 개념 속에 담긴 저자의 치열한 고뇌와 열정, 갈급한 위기의식과 반드시 딜레마 상황을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다.
‘아우라’는 반복할 수 없는 ‘아우성’이다
‘눈먼 각인’은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부적 자극이 내 몸으로 들어와 강렬한 인상과 지각을 남겼지만 정확하게 그것을 언어를 사용하여 재현하기에는 불가능한 흔적이나 얼룩이다. 눈먼 각인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서 언급했던 산딸기 오믈렛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옛날 한 시대를 풍비했던 왕이 전쟁 중에 쫓기며 산골짜기의 한 노파에게서 얻어먹은 산딸기 오믈렛의 맛을 궁정 요리사에게 재현해달라고 요구한다. “내가 전쟁에서 참패하고 길을 잃어 기진맥진한 채 한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였네. 한 노파가 뛰쳐나와 반기며 산딸기 오믈렛을 먹여주었지. 오믈렛을 먹자마자 난 기적처럼 기력을 회복했고 희망이 샘솟았지. 자네가 그 오믈렛을 만든다면 짐의 사위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음뿐이네.” 그러자 궁정 요리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산딸기 오믈렛 요리법과 하찮은 냉이에서 시작해서 고상한 티미안 향료에까지 이르는 모든 양념을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믈렛을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마지막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 저는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오믈렛은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폐하께서 그 당시 드셨던 모든 養料를 제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 이 모든 분위기는 제가 도저히 마련하지 못하겠습니다."
전쟁에 쫓기는 위험한 분위기와 당시의 절박한 긴장감, 산딸기 오믈렛을 만들 당시의 부엌의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와 온기,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관심, 산딸기가 품고 있는 태생적 향기와 맛과 식감, 반갑게 맞이해주었던 노파의 긴장된 듯한 표정, 적막한 밤을 뚫고 들리는 요리하는 소리와 풍기는 음식 냄새 등은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라고 할지라도 과거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산딸기 오믈렛의 맛은 해당 음식이 내는 맛뿐만 아니라 그 음식 맛을 본 주체의 맥락적 경험이 결부되어 있다. 산딸기 오믈렛의 맛이 내는 아우라는 산딸기 오믈렛 자체의 음식 맛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과 상황의 고유한 특성, 그리고 그 상황적 맥락에서 맛을 본 사람의 주관적 감정이 함께 만든 사회적 합작품이다.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는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오직 그 존재만이 지닌 독특한 칼라이자 스타일이 뿜어내는 카리스마다. 아우라는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는 당사자의 독특한 칼라이자 스타일이다. 당시의 상황에 관여된 사람과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지금 상황에서는 그대로 재현해낼 수 없는 불가능한 추억이다.
아이러니스트는 마지막 어휘로 색다른 자아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리처드 로티가 말하는 ‘눈먼 각인’은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산딸기 오믈렛이 풍기는 아우라다. 어느 특정 시점과 특정한 상황에서 우연히 마주쳤지만 전율하는 경험적 흔적으로 내 몸에 남아있는 특이하고 고유한 과거의 추억이자 체험적 느낌이다. 리처드 로티는 이런 눈먼 각인의 흔적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언어적 문법이나 사용 방식에서 탈피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표현하려는 안간힘이 한 사람의 삶을 그 누구의 삶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몸으로 관통한, 내 몸속에 남아있는 전율했던 과거의 추억의 한 점은 오로지 나만이 반추해보고 회상해서 지금 여기서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참신한 메타포를 활용하여 당시의 경험적 각성을 다시 표현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나만의 고유한 언어 사용 방식이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탄생하는 단어가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다. 마지막 어휘는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신념어다. 어떤 신념이 ‘눈먼 각인’으로 우연히 생겼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 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단어가 바로 마지막 어휘다.
마지막 어휘는 평상시에는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다가 결정적인 딜레마 상황에 빠져있을 때 결단과 결행 일보 직전에 눈앞에 나타난다. 저마다 ‘눈먼 각인’으로 생긴 앎의 얼룩과 무늬가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생성되는 각성과 통찰의 언어는 다르다. 예를 들면 간디가 아프리카 한 지역에서 1등석 기차를 탔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면서 부유한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비폭력 저항운동을 하기로 인생의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결정적인 사건 후에 생긴 결연한 방향 전환은 간디에게 새로운 신념 어를 잉태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어휘는 가장 나다운 색깔을 담고 있는 내 삶의 등대이자 나침반이기도 하다. 가던 길을 잃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고 어디로 왜 가야 하는지를 고심하게 만들어주는 내 삶의 가치판단 기준이자 행동규범이기도하다. 나의 마지막 어휘는 도전이다. 도전은 내 능력의 한계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능력의 심화와 확장 가능성을 알려주는 성장 발판이기도 하다. 도전은 나에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어제와 다르게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의 반대는 상식이다. 리처드 로티에 따르면 마지막 어휘로 틀에 박힌 상투적인 말투를 버리고 자신만의 메타포로 자아를 끊임없이 창조하는 시인을 아이러니스트라고 한다. 우연히 어떤 사건이 내 몸을 파고들며 눈먼 각인을 만들었지만, 그 당시의 전율하는 감동적인 느낌을 색다른 언어를 동원해서 작품화시키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전대미문의 색다른 작품을 만들어가는 예술가가 바로 아이러니스트다. 아이러니스트는 기존 언어적 사용 문법이나 전승되어 내려오는 언어 사용 방식에서 탈피하여 기존 사고를 전복할 참신한 메타포를 자주 사용하는 시인이다. 아이러니스트는 무엇보다도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적 관성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언어 사용 방식을 새롭게 개척하면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해나가는 소설가다. 무엇보다도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어쩔 수 없는 과거라고 할지라도 주체적으로 재서술을 통해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역사를 재창조하는 역사 주의자다. 역사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로 재 서술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특수한 사건과 사고의 합작품이다. 한 마디로 아이러니스트는 상식과 통념을 통렬히 깨부수고 어제와 다른 의미의 세계로 자신을 부단히 변신시키면서 자아를 창조하는 혁명가다.
개별적 개념 간 관계 속에는 관념을 넘어 신념을 잉태하고 있다
‘눈먼 각인’으로 몸에 파인 흔적은 어느 누구의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연적 특이성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인 언어 사용 방식으로는 우연적 특이성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고유한 감각적 체험의 기억을 마지막 어휘로 정리해서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결연한 각오로 담아내려는 안간힘이 이전과 다른 나를 새롭게 창조하게 만든다. 아이러니스트는 통념에 갇힌 기존 자아를 버리고 어제와 다른 언어적 문법으로 나의 깨달음을 부단히 다르게 표현하면서 새로운 나로 거듭 변신하는 니체의 위버멘쉬이기도 하다. 오늘 여기서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색다른 나로 거듭 변신을 반복하는 혁명가적 자기가 바로 아이러니스트다. 비록 현실적 장벽이 높고 불가능한 그림자가 주변을 감싸고돈다고 할지라도 진부함을 거부하고 색다른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는 시인의 삶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앓음다운 본보기의 대상이다.
한 사람이 남긴 철학적 텍스트는 다양한 해독과 오독을 오고 가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며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문을 열어주는 지적 자극제다. 저자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는 살아있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평범한 관심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읽기를 그만두지 못하고 책 속에 숨어 있는 저자의 숨은 숨결에 빠져들면서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문장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깊이 빠져들며 무수한 멈춤과 시작을 반복하다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색다른 가능성을 잉태하기도 한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훑고 지나가다 다시 돌아와 그 의미를 문맥 속에서 다시 한번 파악해보고 책을 쓴 저자의 문제의식에 비추어 부분적 의미를 되짚어 본다. 핵심 개념 간 논리적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맺어보면서 개별 개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논리적 지향점을 생각해본다. 개별적 개념이 또 다른 개념과 만나 생성하는 관념은 단순한 상념이 아니라 저자 특유의 신념이 녹아들어 있는 경우를 목격한다. 틀에 박힌 언어 사용 방식의 점성(粘性)과 관성(慣性)에서 벗어나 참신한 연결관계로 낯선 사유를 촉진하는 메타포의 세계로 몸을 던져본다. 아이러니컬한 현실 속에서 진실의 의미를 파헤치는 탐구 여정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