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니까 발광을 시작하는 신체 기관들의 아우성 참관기
자전거를 타니까 발광을 시작하는 신체 기관들의 아우성 참관기
신체 기관(器官)들의 대화, 들어보니 가관(可觀)이네!
자전거를 타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신체 기관들이 모여 저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없으면 우리 몸은 기능을 상실하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치는 회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 모인 신체 기관은 얼굴에 붙어 있는 눈, 코, 입, 귀, 머리, 턱과 얼굴 안쪽에서 살아가는 혀, 그리고 목구멍이 모여서 먼저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어서 목구멍 밑으로 연결되어 있는 간과 폐 또는 허파, 창자와 쓸개, 그리고 배가 이어서 회의를 하였다. 마지막 회의는 손, 팔, 발, 배, 무릎, 등, 허리, 그리고 이런 신체 기관이 유지할 수 있도록 몸의 균형을 잡는 뼈가 뼈 있는 한 마디를 주고받으며 회의를 계속했다. 유독 우리말에는 신체 기관과 관련된 말이 많다.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신체 기관과 관련된 말을 한꺼번에 다 수집해서 그것이 지니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의 의미를 자전거를 사서 타는 과정에서 되새겨보는 소중한 계기를 가졌다.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눈’과 귀에 거슬린다는 ‘귀’의 대화
눈치 보지 않고 자기주장을 ‘눈 깜짝할 사이’에 펼치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색다른 이야기로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눈은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자전거를 타면서 통학했던 시절, ‘눈물이 앞을 가렸던’ 아픔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눈앞에 두었던 자전거에 ‘한눈에 반해서’ 또는 자전거와 ‘눈이 맞아서’ 자전거를 살 수밖에 없었던 추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서 ‘눈앞이 캄캄했던’ 아픔을 이야기하는 순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 귀가 있었다. 눈의 이야기를 듣던 등은 등을 돌렸거나 ’ 등지고 악연이 된‘ 사연은 없냐고 눈에게 물어보았다. 눈은 자전거와 사랑에 빠져서 ’눈이 멀었거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했던 자전거도 있었지만 ’눈에 가시가‘ 되거나 ’눈에 거슬렸던 자전거‘, 자전거를 타면서 비매너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눈꼴이 사나워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거나 ’눈살을 찌푸리고‘ ’눈 밖에 난‘ 사람도 참 많았다고 고백하였다. 역시 사람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눈은 잊지 않았다. ‘귓전을 때리거나’ 울리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귀는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나 ’귀가 솔깃하여‘ 자신도 모르게 귀가 쏠리는 이야기를 듣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 귀는 가끔 자신이 듣고 있는 ’귀에 익은‘ 이야기가 사실인지의 여부를 확인하려는 듯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빛을 흐리기도 하고 ’눈총을 쏘기도‘ 하면서 눈은 너무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눈꼴이 사납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낯을 가리던 귀가 예상치 못하게 강공을 퍼부으면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에 질세라 눈은 ‘코웃음’을 지으면서 귀의 콧대를 꺾어버릴 기세로 다음 주장을 눈썹도 까딱하지 않고 입만 살아서 말로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귀에게 입이 너무 가볍다는 비난의 화살을 날려버렸다. 얼굴도 내밀지 않았던 입이 갑자기 나타나 눈과 귀의 대화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너희들의 주장을 듣자 하니 ‘귀가 너무 따갑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과 귀의 이야기는 입만 살아서 하는 이야기이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무례한 말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입은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이야기임에도 ‘입이 근질근질하다’고 무조건 말하는 ‘입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여러 말해도 ‘입만 아프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버릇없이 입을 함부로 놀리면 ‘큰 코 다친다’고 입은 눈과 귀에게 쓴소리를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질세라 눈은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 입을 떼었다. 입이야말로 입이 너무 싸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 않으냐’고 눈은 입의 입을 막아버렸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코가 ‘콧대를 세우고’ 갑자기 나타났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코를 박듯’ 절을 하면서 어깨를 낮췄다. 코는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혼자서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코를 맞대고 앞으로 추진할 계획을 긴밀하게 상의하자고 했다. 자전거를 ‘눈치 없’이 샀던 사람의 콧대는 높을 대로 높아져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리고 진짜 자전거는 입으로 타는 게 아니라고 귀를 기울이며 입의 이야기를 듣던 귀가 코와 장단을 맞추는 듯 이야기했다
눈 뜨고 코 베었던 ‘코’와 목숨 걸고 살아온 ‘목’
‘코가 꿰여서’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사는 사람도 있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코가 찡하도록’ 감동적인 이야기, 그래서 콧노래를 부르며 상대방의 콧대를 꺾었던 경험담, 잠시 본분을 망각하고 경거망동하다 ‘큰 코 다친’ 경우, 몹시 고되게 일하여 코에서 단내가 났던 힘든 시절, 입에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행실을 보고 ‘콧방귀’를 꿨던 추억을 떠올리며 얼굴값을 하느냐고 ‘눈치코치’ 보지 않고 자신의 추억을 사정없이 이야기하던 코는 스스로 코가 세면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코야 말로 콧대를 낮추고 코가 땅에 닿도록 자세를 낮추고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면서 콧대를 꺾기 위해 일격을 가하는 귀가 등장했다. 귀하게 대접받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귀는 코야 말로 입이 걸고 입이 험해서 차마 들어주기 어렵다고 했다. 일격을 맞은 코는 결국 기가 죽고 활기가 없어지면서 ‘코가 빠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던 눈은 ‘눈뜨고 코를 베였던’ 아픈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코의 입장을 두둔하고 다시 나섰다. 코가 아무리 높아도 자세를 낮추고 초보자의 자세로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나중에 얼굴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다시 얼굴을 내민 눈은 귀에게도 코의 입장을 설득하고 싶었다. 눈은 남의 눈에 눈물 내면 내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면 자신에게는 그것보다 더한 벌이 오게 되는 삶의 소중한 교훈을 귀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눈은 한 마디를 더 거들었다. 눈이 아무리 밝아도 제 코는 안 보인다. 제 아무리 똑똑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고 한 눈 팔고 있는 입에게도 경청을 요구했다.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목이 그 순간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전거를 너무 오랫동안 타서 목이 말랐던지 목을 축이고 나타난 목은 그동안 당신들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는 것이다. 목은 자전거를 타면서 겪은 사연이 너무 많아서 자신도 ‘목이 메어서’ 아픈 사연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라는 것이다. 목은 사실 낯을 가리는 편이다. 목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지은 죄를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던 적도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낯가죽이 두껍거나’ ‘낯이 두껍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먹고사는 일에 목을 걸고 일해 온지라 틈을 내서 자전거를 마음 놓고 탈 수 없었던 그간의 힘든 일을 용기를 내서 지금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평소에 ‘눈독을 들였던’ ‘눈에 선한’ 자전거가 있어서 ‘눈을 맞춘 적도’ 있다고 자전거와의 진한 연애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눈이 멀었던’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 순간 눈과 귀와 코는 ‘입을 맞추고’ 그들의 입장을 한 가지 방향으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오랜 회의 끝에 한 가지 방향으로 입을 모으기로 했다.
‘눈’과 ‘코’와 ‘입’, 드디어 입을 맞추다
나에게 닥친 문제가 너무나 시급해서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자신들을 한탄하면서 더 이상 그들은 “내 코가 석자”라는 한탄조의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아무리 본인이 노력해도 누구 한 사람의 순간적인 실수로 ‘다 된 죽에 코 빠뜨리기’가 될 수 있음을 지난 시절의 시행착오를 통해 교훈을 배웠다는 말도 그들은 잊지 않았다. 그동안 언쟁을 일삼았던 지난 시절의 대화를 잘 생각해보면 참으로 ‘콧잔등이 간지러울’ 정도로 남을 놀리거나 속이고 나서 그렇게 하지 않은 척하려니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던 경험도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무례한 말투에 서로 간에 ‘낯을 붉혔던’ 적도 없지 않아 있었다. 농담 삼아서 한 이야기를 놓고 상대는 ‘얼굴을 붉히거나’ 낯을 붉히며 기분이 좋지 않음을 내비쳤던 적도 많았다. 그동안 자전거를 타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다고 자랑이나 자기주장을 과시한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도 ‘제 눈에 안경’인 것이다. 그동안 서로 간에 담판을 벌였던 눈과 코, 입과 귀는 대화 중에 해를 입은 만큼 앙갚음하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얼굴에 붙어 있는 한 족속임을 깨닫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고 앞으로는 서로의 단점을 이야기하기보다 장점을 찾아 칭찬해주기로 합의했다.
‘입이 더러운 사람’은 함부로 사귀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서로 알게 된 눈과 코, 입과 귀는 남들의 ‘입이 무서워’ 자신이 잘한 일인데도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해주기로 합의한 눈과 코, 입과 귀는 너무 즐거운 나머지 입이 벌어져서 다물 줄을 몰랐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그들은 시간 날 때마다 자전거 라이딩을 하면서 등지고 살기보다 등 대고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그들은 적어도 다른 사람의 힘에 기대어 자기 이익을 달성하는 전략, 즉 등에 업는 이기주의적 생존전략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한 마디로 ‘등 쳐 먹고 살기’보다 등 대고 정을 나누면서 살기로 한 것이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어도 “등치고 간 내먹는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놓고 그 와중에 자기 잇속을 채우거나 겉으로는 도와주는 척하면서 실속을 차리는 삶은 모두에게 피해가 될 수 있음을 통렬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인지를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눈과 코, 입과 귀는 “입이 여럿이면 금도 녹인다”는 말처럼 여러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 사람의 삶을 녹여버릴 수 있을 정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전거를 타면서 고조된 기분이 희석되기 전에, 그리고 눈을 속이고 눈총을 쏘기 이전에 나와 함께 라이딩하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따뜻한 눈빛만 나누어도 행복한 라이딩을 보장할 수 있다.
귀 기울여 듣다 목 놓아 울다
귀 기울여 듣던 귀가 갑자기 얼굴을 내밀면서 한 마디 더 했다. “귀 소문 말고 눈 소문 하라”는 속담을 떠올리면서 실지로 직접 보고 확인한 것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눈의 의중을 존경한다고 했다. 귀는 ‘귀가 따갑도록’ 같은 말을 반복하여 괴로울 지경이라고 해도 직접 발로 뛰어 눈으로 확인해보는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누가 내 말을 하나 ‘귀가 가렵다’고 해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빈틈없이 확인하지 않고서 함부로 말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자전거는 이렇게 타야 된다는 누군가의 노하우를 귀로만 들었던 것을 사실처럼 이야기했다가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도 있다. 자전거는 입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타봐야 비로소 온몸으로 그 쾌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자전거를 타보지 않고 입으로 타는 사람들의 허장성세는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진다. 그 순간 ‘귓불만 만지며’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눈에 대한 귀의 과찬을 듣고 있던 눈은 눈앞에 두고 그렇게 과찬의 말씀을 하니 얼굴이 간지러워 더 이상 앉아있기가 송구하다는 말을 전했다. 눈도 이에 질세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위인은 남들이 모르는 것을 잘 아는 ‘귀 밝은 사람’이자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청의 달인이라고 귀를 치켜세워줬다. 저마다의 자전거 타는 노하우를 입이 달도록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노하우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힘들게 탄생했는지를 귀담아 드는 경청의 달인은 드물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입도 이에 질세라 눈과 귀를 목숨 걸고 칭찬하기 시작했다. 입은 어제 마신 술기운이 아직 안 가신 듯 혀 꼬부라지는 모습도 보였지만 이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눈과 귀의 평소 행실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혀는 머리가 아프고 괴로울 때도 머리를 모아서 지혜를 짜냈던 눈과 귀의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너무 감동받았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며 머리 숙여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머리를 식히며 눈과 코, 입과 귀, 그리고 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이 나타나 갑자기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자전거 타다가 사고 난 과거의 아픈 추억이 생각나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입이 포도청’ 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지금까지 밥 먹고 사는 데만 목숨 걸고 노력해오다 어쩌다 구입한 자전거는 사치품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서 날로 악화되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사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과 입은 물론이고 귀와 코 역시 자기만의 존재 이유와 특별한 기능으로 사람에게 유익한 혜택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칭찬한 것이다. ‘이가 갈리는’ 설움과 ‘입맛이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자전거를 타면서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목은 자평하기도 했다. 목은 ‘입에 쓴 약이 병에도 좋지만’ 목을 넘어가지 않고서는 약이 ‘간에 기별이 안 갈 수도’ 있다고 은근히 자신의 존재 이유도 피력하고 있다. 목은 사실 그동안 이도 안 난 것이 겁도 없이 목숨을 걸고 무모한 도전만 한다고 다 되는 줄 아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많이 받아왔다. 목숨 걸고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해왔지만 머리를 식히면서 ‘간담이 서늘했거나’ ‘등골이 오싹한’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잘 견뎌왔음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목은 때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목을 내놓고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왔음을 얼굴이 익은 눈과 코, 입과 귀, 그리고 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사실 이들은 ‘허파에 바람 들어간’ 사람처럼 허풍이 심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저마다의 방법과 노력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건강을 지켜온 독특한 스토리를 감동적으로 나누는 소중한 대화와 토론이었음을 인정했다.
간담이 서늘한 비판을 받은 ‘목’, 간이 콩알만 해지다
목을 타고 내려온 음식이 드디어 위에 도착하자 간과 쓸개, 그리고 위와 창자를 보호하고 있는 배가 드디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사람은 목처럼 자신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목을 칭찬해주면서 때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발생해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간이 드디어 입맛이 도는지 입맛을 다시며 등장했다. 목 이말로 ‘간 큰 남’이자 ‘간덩이가 부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목은 너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 다는 것이다. 줏대 없이 남을 칭찬해주는 듯하지만 결국 자기 자랑만 일삼아서 ‘낯이 간지럽다’는 것이다. 목숨 걸고 도전한 자전거 라이딩에서 목은 자기만의 비법을 터득했다고 목소리 높여가면 주장하는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매우 뻔뻔스러운 행동을 하는 목에게 “돼지도 낯을 붉히겠다”는 속담으로 자신의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한 마디로 목은 ‘쓸개가 빠진’ 덜 떨어진 인간이라고 혹평을 했다. ‘간이 콩알만 해진’ 목은 간의 얼굴만 쳐다보다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간, 너야말로 ‘벼룩의 간을 빼먹고’ 사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간은 머리가 돌아서 정신이 온전히 않아 스스로 얼굴에 먹칠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의 화살을 간에게 날려버렸다. 목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을 상기시키며 자신은 간이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간의 ‘간담이 서늘한’ 말을 보고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한 마디로 간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목은 ‘목메어 울어도’ 한이 풀리지 않을 지경이라고 가슴에 박힌 못을 몸씨 아파해했다. 간에게 딱 맞는 속담은 바로 “못 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말이라면서 그동안 간에게 당했던 아픔을 목은 거침없이 토로하고 쏘아붙였다.
입이 닳도록 이야기해도 못 알아듣던 간은 목의 속 보이는 말을 듣고 속이 뒤집히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배가 아프고 속이 상하지만 간은 대오각성하고 목의 따가운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목이 없으면 자신에게 음식을 소화시키고 해독하는 효소도 발휘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비록 간은 목과 배가 다른 자식이지만 자세와 태도만 바꾸면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흉금을 털어놓고’ 그동안 쌓였던 앙금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생각했다. 간은 사실 그동안 속없이 남의 주장에 끌려 다닌 사람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목의 간에 대한 비판을 들으면서 속이 타들어간 건 간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자전거 타면서 불안에 떨고 ‘간이 콩알만 해졌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생각하면 할 말은 많지만 입이 굳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은 그동안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모두 아래로 내려 보내기 위해서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을까. 뼈가 빠지게 일했지만 남은 것은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언젠가 목이 하소연하던 말이 생각났다. 목도 뼈대가 있는 집안이라서 그의 ‘말에도 뼈가 있음’을 알아차린 간은 ‘뼈에 사무치는’ 깨달음은 왜 이렇게 뒤늦게 오느냐고 한탄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간담이 서늘한 경험을 무수히 많이 했던 간은 어깨를 낮추고 정식으로 사과하면서 어깨가 처지고 뼈가 휜 목의 노고를 치하하기에 인색하지 않았다. 목과 간의 위치는 비록 다르지만 언젠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더 나누기로 의기투합했다.
‘간’과 ‘쓸개’, ‘위’와 ‘창자’, 애간장을 태우다
누워서 목과 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배가 엉덩이가 근질근질한지 일어나서 그동안 배 아팠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배포(排布)가 통하면 과감한 도전을 감행한다. 자신의 보호막으로 간과 쓸개, 위와 창자가 편안히 먹고살 수 있음을 몰라준다는 사실에 배는 실망하는 눈초리다. 그들은 떳떳하지 않은 일에도 ‘배가 맞다’는 이유로 의기투합해서 배은망덕한 행동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배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간과 쓸개, 위와 창자는 너무 배가 불러서 배가 남산만 해도 덕분에 존재하는 자신들의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다고 배는 거침없이 항변하고 있다. ‘웃는 낯에 침 뱉지’는 않지만 자신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원동력은 다 배가 밖에서 자신들을 보호하는 장막을 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제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배의 입장이다. 그들은 입이 쓴 지 배의 명연설읃 듣고도 얼굴만 쳐다보면서 한참 동안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결국 간과 쓸개, 위와 창자는 ‘애간장을 태우다’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굴복하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무릎을 마주하고 앞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긴밀하게 상의하는 멋진 친구가 되었다. 사실 자기 자랑과 자기도취에 물든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사소한 일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아들을 턱이 없다. 허리를 굽히고 반성하지 않는 이상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한 턱 내고 싶은 마음은 더욱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타자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한 턱 쏠 수도 있다. 팔짱을 끼고 관망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발 벗고 나설 것이다.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보고 발 벗고 나서서 팔을 걷어붙이고 도움을 주는 데 앞장서는 사람의 언행을 보면 그 자체가 감동적이다. ‘폐부를 찌르는’ 큰 감동이나 자극은 거창한 일보다 사소한 일상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엉덩이가 무거운 건지 배의 이야기를 들은 지 세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간과 쓸개, 위와 창자도 지금까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다 배 덕분이라는 사실을 늦게나마 인정하게 되었다. 잘 지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망해서 손가락을 빨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그들은 배에게 손가락질을 받기 전에 자기들 스스로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입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도와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삶을 살기로 했다. 색다른 삶을 살기로 작정한 간과 쓸개, 위와 창자는 색다른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자니 오금이 쑤셔서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손아귀에 넣거나 손에 넣으려는 사심보다 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먼저 나가서 손잡고 손발이 되어 손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이런 선한 행동을 보고 자기 잇속을 차린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피눈물 흘리는 노력을 진정성 있게 전개해나간다면 발등을 찍었던 사람이나 발을 뺐던 사람도 발 벗고 나서서 발을 들여놓고 적극적인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발을 맞추다 보면 발을 붙이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기반이 구축될 것이다. 허리를 펴고 잠시 우리가 추진하는 일의 방향을 점검도 해보면서 정성을 기울이고 애정 어린 손이 가다 보면 부족했던 손도 서서히 채워질 것이다. 손이 닿는 데까지 노력해보겠다는 말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다. 이들은 모두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우리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힘차게 재출발하기로 다짐했다. 벌써부터 심장이 뛴다.
‘손’을 보는 사람보다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자
모두가 피와 살이 되는 말이다. 피를 말리며 바라보던 손은 부족한 손을 총동원해서 바쁜 일정을 마치고 자전거 라이딩을 시작했다. 피땀 흘리며 오르막도 오르고 언덕과 구릉을 지나 먼길을 달려왔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보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멀다. 가보지 못한 길 앞에서 걱정과 두려움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보다 지나온 길을 반추하면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로 했다. 손놀림이 바쁜 과정을 지켜보던 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발도 발길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낯선 자극을 온몸으로 받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손발이 맞아서 만들어진 작품은 어린 시절 발목 잡혔던 아픈 체험, 발등에 불이 떨어져 혼비백산했던 사건, 자기도 모르게 주식에 손대서 패가망신했던 괴로운 추억, 손이 거친 사람을 만나 사기당한 사건, 마침내 원하던 물건을 손에 쥐었지만 도둑맞았던 아픈 기억, 마음에 들어서 손댔다가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져 손을 끊거나 손 빼고 손을 씻었던 일, 노름판에 끼어들었다가 손 털고 재기한 아찔했던 순간이 모두 손때가 묻은 메모지에 고스란히 메모한 덕분에 탄생한 것이다. 손이 만든 희로애락의 역사를 몸에 아로새긴 지난 시절의 추억을 자전거에 몸을 싣고 다가오는 자연 삼라만상의 풍경에 뒤섞어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기려고 한다. 뭐든지 손 놓고 쉬면 녹이 슬어서 필요할 때 손을 맘대로 쓸 수가 없다. 손에 잡힐 듯 아이디어가 가까운 곳에 있지만 나에게 영감을 주는 그런 곳에 가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의 ‘발로(發露)’는 ‘발로’부터 나온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의외로 손이 큰 사람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한다. 또 어떤 곳에서는 무리한 상술을 발휘하면서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요구할 때가 있을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그 사람과는 발을 끊기로 했던 경우도 많다. 작가는 사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떤 제안을 해도 거절하고 나면 손톱만큼도 미련이 없다. 거절하고 돌아가는 길이 가끔은 발길이 무겁다. 가끔은 피를 나눌 정도로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과 만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 주변에는 손 좀 봐야 될 사람이 참 많다. 뭔가 잘 못된 것을 고칠 때. 항상 부탁만 하는 예의 없는 친구는 가끔 손을 좀 봐야 한다. 필요할 때만 나타나서 필요한 것을 부탁하는 사람에게는 매운 손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손 좀 봐주어야 할 사람보다 손을 써서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 조금만 일 해봐도 손이 맞는 사람이 더 많다. 이런 사람을 만나러 갈 때면 급하게 가느냐고 아무런 선물도 준비하지 못해서 손이 부끄러운 느낌을 갖는다. 세상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잔머리 굴리는 머리 아픈 사람보다 애간장을 녹이며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며 머리 쓰는 사람이 바꾸어 간다. 세상에는 벼룩의 간을 빼먹거나 등치고 간 내 먹는 사람도 있지만 눈뜨고 볼 수 없는 험악한 상황에서도 팔을 걷어 부치고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더 많다. 자전거 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지역의 정기를 받고 자란 덕분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박하고 소소한 삶 속에서도 무한한 행복을 구가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위기에 처하면 평소에 얼굴을 내밀다가도 코빼기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숨을 걸고 얼굴값을 하며 피를 나눌 만큼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도 있다. 매사에 입만 산 사람도 있지만 어깨를 낮추고 힘든 사람을 위해 손 내미는 따뜻한 사람이 더 많다.
지금까지 머리 밑의 얼굴에서 살아가는 눈과 코, 입과 귀, 혀와 턱이 의기투합하고, 목으로 내려가는 음식을 소화시키고 영양소를 만들어 유지하는 간과 쓸개, 위와 창자, 허파, 배와 뼈도 뼈 있는 한 마디를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동반자적 관계를 맺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모두가 손길을 주고받으면서 상부상조해야 할 아름다운 파트너들이다. 그리고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던 엉덩이도 잠시 궁둥이로 변신해 견디기 어려운 안장 통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다. 등지고 살지 않고 등 대고 살기 위해 오늘도 세상의 곳곳에서 저마다의 본분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자전거 여행길이 언제나 빠듯하기보다 뿌듯한 이유다. 허리를 펴고 살 수 있도록 팔을 걷어 부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손 내밀어 주는 아름다운 미덕을 주고받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자. 발길 닿는 곳은 어디든지 자전거는 찾아 나설 수 있다. 대중교통이 갈 수 없는 곳에도 자전거는 마음만 먹으면 기꺼이 찾아가 손 내밀어줄 수 있다. 자전거는 이런 점에서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준 수호천사나 다름없다. 찾아다니는 발과 손잡고 온몸으로 겪으며 깨달은 삶의 얼룩과 무늬가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자연의 삼라만상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지만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관계있다는 말 없는 발이 천리 길을 갈 때 자전거에 실은 내 몸도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