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자전거나 타야겠다

오천 자전거길완주(2021.9.19일에서20일 오전까지)하고 나서

바람이 분다. 자전거나 타야겠다

오천 자전거길 완주(2021.9.19일에서 20일 오전까지)하고 나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를 18일 아라뱃길에서 출발, 경기도 능내역까지 완주하고 10월 어느 멋진 날 국토 종주를 이어가기로 했다. 오늘(2021년 9월 19일)은 강변역 고속터미널에서 충북 괴산까지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괴강교 인증센터에서 합강 공원 인증센터까지 오천 자전거길을 탔다. 처음으로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는 데 핸들을 먼저 집어넣고 고속버스 짐 넣는 곳에 시도하다 자전거 뒷바퀴를 먼저 집어넣고 핸들을 앞으로 약간 접어서 나중에 집어넣었더니 큰 무리 없이 자전거를 버스에 실을 수 있었다. 괴산 시외버스 터미널은 나에게 어린 시절 추억을 부르는 곳이다. 충북 괴산군 증평읍에 있는 증평중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괴산군 증평읍은 이제 괴산군과 분리되어 증평군이 되었다. 증평중학교를 다니면서 3년간 자전거로 통학했던 추억이 회상되는 이유는 내가 괴산으로 자전거를 타러 왔기 때문일까. 과거와 자전거, 그리고 지금 자전거를 타는 나 사이에 자전거라는 연결고리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졌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자전거는 과거의 그 자전거가 아니다. 당시의 자전거는 통학하기 위한 하나의 이동수단이었지만 지금의 자전거는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 내 몸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고 하고 자전거가 나를 불러내 전국 방방곡곡으로 데리고 다니며 색다른 여행을 선물로 가져다주는 반가운 친구다.


도랑에서 출발한 물이 바다에 이르기까지


오천 자전거길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토 종주할 때 지나가는 행촌 교차로에서 합강공원까지 이어지는 내륙 자전거길로 다섯 개의 하천(河川)(쌍천,달천,성황천,보강천,미호천)을 통과하는 길이다. 다섯 개의 하천을 오천(五川)이라고 부른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도랑에서 바다로 가는 아름다운 곡선의 궤적에 붙여진 아름다운 우리말을 생각해보았다. 천(川)은 ‘내’의 이름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사용되기에 오천은 다섯 가지 천(川)을 말한다. 보통 하천(河川)은 강과 시내를 이르는 말이고 개천은 시내보다는 크지만 강보다는 작은 물줄기를 말한다. 그렇다면 개천이 되기까지 물은 어디서 흘러내려온 것일까. 가파른 뫼에 내린 비가 골짜기로 모여 내려오면 그것을 ‘도랑’이라고 한다. ‘도랑’이 흘러서 저들끼리 여럿이 모여 부쩍 자라면 그것을 ‘개울’이라고 한다. ‘개울’은 제법 물줄기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거기서 걸레 같은 자잘한 빨래를 하기도 한다. ‘개울’이 부지런히 흘러 여럿이 모이면 “개천에서 용 났다!”는 ‘개천’이 된다. 그러나 개울은 한 걸음에 바로 개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개천’ 곧 실처럼 가는 개천이 되었다가 거기서 몸을 키워서야 되는 것이다. 개천이 탄생하기까지 물줄기는 처음에 도랑에서 시작, 개울로 몸집을 키우고 개울은 실개천에서 개천으로 가는 꿈을 키운 끝에 또 다른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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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은 이제 늠름하게 흘러서 ‘내’가 된다. 그러나 ‘내’ 또한 ‘개천’이 한 걸음으로 바로 건널 수는 없기 때문에, ‘시내’ 곧 실같이 가는 ‘내’가 되었다가 거기서 몸을 더 키워야 되는 것이다. 마치 실개천이 개천으로 변화되는 여정을 밟는 것처럼 ‘시내’가 되었다가 다시 ‘내’로 바뀌는 과정을 겪는다. 시내와 내에 이르면 이제 사람들이 사는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들판으로 나와, 비가 내리지 않은 겨울철이라도 물이 마르지 않을 만큼 커진다. 그리고 다시 더 흘러서 다른 고을과 고장을 거쳐서 모여든 여러 벗들과 오랜만에 다시 만나면 ‘가람’을 이룬다. ‘가람’은 크고 작은 배들도 떠다니며 사람과 문물을 실어 나르기도 하면서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다. 이렇게 비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물이 흘러가는 길에 붙이는 이름은 도랑에서 개울, 개울에서 실개천, 실개천에서 개천, 개천에서 시내, 시내에서 내, 내에서 가람, 가람에서 바다로 이르게 된다. 그러나 바다에 이르는 수많은 우리말이 중국말 ‘강’(江)에 거의 잡혀 먹힌 듯하다. 도랑과 개울만이 근근이 생명을 유지한 상태이고 내와 시내, 개천과 실개천은 점점 강의 먹이가 되어버렸고, 가람은 강에게 잡혀 먹힌 지 아주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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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길에서 갑자기 만난 자기의 존재이유, 자유를 상상하다


도랑에서 개울, 개울에서 실개천, 실개천에서 개천, 개천에서 시내, 시내에서 내, 내에서 가람, 가람에서 바다로 이르는 길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곡선의 길이다. 물은 바로 도랑에서 직선으로 바다로 달려가지 않는다. 도랑은 개울로, 개울은 실개천을 거쳐 다시 개천으로 태어난다. 큰 물줄기를 만들어 힘을 키우고, 힘을 키우기 위해 돌부리를 만나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아래로 흘러간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려면 우선 바닥을 기어야 되고, 기다 보면 걸을 수 있고, 걸을 수 있어야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개천은 개과천선하면서 다시 ‘시내’로 흘러가면서 ‘내’가 되어 ‘바다’에 이를 수 있는 힘을 축적한다. ‘내’는 ‘바다’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한번 ‘가람’이라는 큰 물줄기를 준비한다. ‘가람’으로 모인 물줄기는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바다’로 모인다. ‘바다’는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 주기 때문에 ‘바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물의 고향은 바다지만 물은 고향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물은 다시 태양열로 가열되어 김으로 변신,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 김은 하늘에 머무르지 않고 방울이 되어 땅 위로 내려오는데 이것을 비라고 한다. 땅 위로 내려오는 물방울이 여름에는 비가 되고 겨울에는 눈이 된다. 추운 겨울날, 눈과 비가 섞여 땅 위로 내려오면 우박이 되기도 한다. 땅 위로 내려온 비는 다시 도랑에서 시작,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면서 마침내 다시 고향인 바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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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늘과 땅, 땅과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곡선의 궤적을 그려나간다. 돌고 도는 선순환적 흐름, 영원히 끝나지 않는 비선형적 흐름 속에서 자연은 자연스럽게 유지되고, 자연과 함께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해나간다. 생명체의 삶은 이렇게 끝없이 흐르는 가운데 유지된다. 흐름은 곡선이고 곡선은 흐름이다. 흐름이 삶이고 삶은 흐름이다. 결국 삶은 곡선이다. 곡선에 삶의 본질이 담겨있다. 시내가 가람 되고 가람이 바다로 가기 전 수많은 실개천과 개천에서 오늘도 용틀임을 하며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다. 오천 자전거길에서 만난 다섯 가지 개천은 행촌 교차로에서 괴강교 인증센터까지는 쌍천을 따라가다가 달천을 만나는 길이고, 괴강교 인증센터에서 백로 공원 인증센터까지는 성황천을 거슬러 올라가 모래재를 넘은 후 보강천이 흐르는 백로 공원까지 가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백로 공원에서 무심천교 인증센터까지 보강천과 미호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이른 다음 무심천교 인증센터에서 합강공원 인증센터까지 자연이 만들어준 천혜의 자전거길을 하천을 따라 만끽하는 행복한 길의 연속이다. 비록 빼어난 자연 풍광과 눈에 띌 만큼 주목할 만한 경치는 아니지만 하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만나는 갖가지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은 무념무상하게 만들었다가 갑자기 어느 한 가지 생각에 빠져 자전거를 타게 만드는 사색의 자전거길임에는 틀림없다. 자전거 길에서 갑자기 만난 자기의 존재 이유, 자유는 나를 지금 여기서 미래의 어딘가로 옮겨주는 상상으로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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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을 다해 올라가는 정상에서 내리막의 즐거움을 상상하다


괴강교까지는 괴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머지않아 곧 도착했지만 처음에는 인증센터를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서 자전거 종주 수첩에 인증 도장을 찍었다. 지나치게 빠르게 달리다 보면 원하는 목적지도 지나치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던 오천 자전거길의 첫 번째 교훈이었다. 괴강교 인증센터를 지나면서 만나는 오천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오늘도 여전히 자연을 품고 바람이 되는 꿈을 꾼다. 행촌 교차로에서 어제도 오늘처럼 흐르는 달천은 성황천과 만나면서 하늘로 비상하는 환상적인 비경을 숨겨 두었다가 라이더에게 가을날의 낭만을 가미해서 고즈넉하게 보여준다. 남한강 상류와 연결된 달천을 따라 흐르는 자전거길이 성황천으로 뻗어 나가는 길목에 괴강교라는 다리와 인증센터가 있다. 괴강교에서 백로 공원까지 가늘 길목에 가로수가 늘어선 채 아직도 푸르름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벌이다 떨어드린 낙엽에 날아가지 않으려고 밑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있었다. 나무에 붙어 있을 때는 몰랐지만 어디로 날려갈지 모르는 땅바닥에서는 순간순간이 위기다. 그 위로 자전거 바퀴가 지나가면서 들리는 소리는 나뭇잎이 전해주는 삶의 마지막 진혼곡이었다. 더 낮게 엎드려야 조금이라도 이 땅에서 살아갈 짧은 시간이나마 확보할 수 있다는 결연한 의지가 자전거 바퀴를 타고 온몸으로 파고든다. 그 순간에 발맞춰 괴강교 밑을 흐르는 달천(達川)은 낙엽의 마지막 인생을 위해 장송곡을 연주해주는 듯했다.



자전거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어두운 밤길도 있고 밝은 대낮의 길도 있다. 밝은 대낮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사실상 모든 게 좌표가 될 수 있지만 밤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달과 별이 방향감을 알려주는 좌표다. 오천 자전거 길을 가다 보면 논길을 옆에 두고 아스팔트 길도 있고 우레탄으로 깔아놓은 편안한 길도 있다. 다 같은 하천길이지만 가로수가 만든 그늘 길도 있고, 땡볕을 그대로 받으면서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스러운 포장도로도 있고 비포장도로도 있다. 때로는 잠깐이지만 자갈밭길을 통과해야 되고, 직선주로를 따라 직진만 하면 되는 길이 있는가 하면 굽이 굽이 돌아가며 곡선주로를 지나는 사색의 오솔길도 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나뭇잎을 밟고 지나가는 길도 있고 양옆으로 이름 모를 풀들이 정다운 행렬을 유지하며 반겨주는 길도 있다. 노을이 넘어가는 길도 있고 달밤에 별빛이 노래하며 반겨주는 길도 있다. 잠시 멈춰 서서 쉬고 싶은 길도 있고 힘들지만 버티고 견디면서 조금 더 가야 되는 길이 있다. 무엇보다도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인생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길이다. 평지를 편안하게 달리다 어김없이 오르막을 선물로 주는 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오르기 전에 기어 변속을 준비하며 마음도 다잡는다. 기필코 마지막까지 중간에 내리지 않고 올라가 보리라고. 중간쯤을 사투하면 올라가다 당장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고 싶다가도 마지막 남은 힘이 강하게 명령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꿈에 그리던 정상이 코 앞이라고. 100도에서 끓는 물이 99도까지 노력하다 변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포기하는 것처럼 서막에서 시작한 오르막은 오르고 올라도 막막하기만 한 인생의 시험무대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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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에 들인 고통의 강도는 내리막에서 느끼는 희열의 정도를 높여준다


오천 자전거 길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모래재를 넘어야 한다. 해발 228m 밖에 안 되지만 정상에 오르면 약 2Km의 다운힐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처음으로 가장 높은 언덕을 쉬지 않고 올라왔다. 앞단의 기어를 가장 낮게 잡으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기어 변속이 되지 않아서 중간쯤에 놓고 뒷단의 기어를 가장 높은 쪽으로 설정해놓고 온 힘을 다해 기어올랐다. 오르막에 오르는 동안 흘린 땀의 양과 고통의 강도가 셀수록 내리막에서 느끼는 희열과 쾌감의 강도도 그만큼 높아진다. 처음으로 느끼는 내리막 속도감은 그동안 올라오면서 느낀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자전거는 나에게 나는 자전거에게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힘들지만 힘들어도 힘을 써야 힘이 생긴다고. 언덕 위를 바라보지 않고 바로 앞만 보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자전거 바퀴는 힘겹게 굴러 올라간다. 저 앞의 모래재 정상을 보지 않고 바로 앞만 보고 페달을 밟는 이유는 정상이 멀리 보일수록 좌절감만 높아지기 때문이다. 눈앞의 앞바퀴가 뒷바퀴의 힘으로 조금씩 앞으로 굴러가는 순간만이 지금 내가 생각해야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모래재 언덕 위에 올라서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내리막을 준비한다. 무서운 속도로 내려가는 자전거는 나와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상태에서 그동안 흘린 뜨거운 땀을 맞바람에 실려 날려 보낸다. 깜빡 잊고 오픈 라디어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고 내려오는 바람에 시속을 측정하지 못했다. 시속 7-80Km는 족히 될 정도로 무서운 속도감이었다. 느림의 고통이 빠름의 희열로 뒤바뀌는 잠깐 동안의 쾌감이지만 그걸 버릴 수 없기에 오늘도 내일도 오르고 또 오를 것이다.



충북 증평에 있는 백로 공원 인증센터는 남다른 추억을 부르는 지역이다. 증평중학교를 다니며 보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 덕분이다. 예전의 자취를 완전히 감추고 있지만 그럼에도 배고픔을 견디다 짜장면을 두 그릇이나 먹고도 허기진 배를 움켜쥔 그 중국집은 안녕한지 안부를 묻고 싶었다. 백로 공원을 지나면서 무심천교에 이르는 미호천 자전거길은 이름 그대로 백로와 청둥오리, 두루미와 다른 새들의 천국이나 다름없는 듯, 한가롭게 하천 위를 유유자적하며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하천 길 옆에는 한여름을 힘겹게 견디며 비바람과 천둥번개도 견뎌낸 갈대가 맞이하면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미호천(美湖川)은 이름 그대로 세상의 아픔을 품고 삭이며 흘러가다 ‘앓음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승격시킨 후 금강으로 투항하는 하천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을 그리는 꿈을 꾸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려면 우리는 아직도 많은 아픔을 견디며 꿈꾸는 미래를 그리워해야 한다. 꿈과 미래가 주는 달콤한 상상보다 오늘의 서러움과 서글픔을 견뎌내며 예고 없이 찾아드는 절망을 또 얼마나 이겨내야 할까. 미호천이 되기까지 도랑에서 시작한 개울은 실개천을 거쳐 개천에 이르는 꿈을 꾸었다. 도랑에서 출발해서 개천에서 용이 나기까지 무수한 장애물을 만나 절망을 만났지만 그 절망이 깊어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개천에 이르렀다. 수많은 개천 중에 미호천은 강물이 노래를 하려면 무수한 돌부리를 만나 넘어져야 한다는 엄중한 사실을 소리 없이 산천초목에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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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뒤안길에는 수많은 포기가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다


하천을 따라 달리다 보면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이 갈대다. 갈대를 만나면 저것이 갈대인지 아니면 억새인지 늘 혼동된다. 갈대는 갈 데가 없어서 물가에서 주로 자라고 억새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억세게 자라서 붙여진 이름일까. 갈대와 억새는 우선 사는 곳이 다르다. 갈대는 주로 물가에서 자라고 억새는 주로 산속 높은 곳에서 자란다. 순천만 습지와 같은 곳에 자라는 것은 갈대이고, 제주도 오름 언덕에서 장관을 이루는 것은 억새다. 산에 가서 갈대를 만날 수 없고, 물가에서는 억새를 만날 수 없는 이유다. 둘째 갈대와 억새는 색깔이 다르다. 갈대는 갈색이고, 억새는 은색이나 흰색깔을 띤다. 셋째 갈대와 억새는 상징적인 의미도 다르다. 억새는 이름처럼 억센 줄기를 갖고 바람에 흔들리지만 굽히지 않는다. 갈대는 흔들리며 자라는 가을 들판의 대명사처럼 여리고 연약하지만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넷째, 갈대와 억새는 이삭의 모습이 다르다. 갈대의 이삭은 사방으로 흩어져 풍성한 모습을 보이지만, 억새의 이삭은 한쪽 방향을 향하는 모습을 띤다. 갈대의 이삭이 사방으로 퍼져 있는 까닭은 바람에 흔들리며 자신의 종족을 사방에 퍼뜨리기 위한 생존 차원의 전략처럼 보인다. 억새는 이름 그대로 초지일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한 방향으로 이삭을 만든다. 오천길을 자전거로 타고 가면서 만나는 모든 갈대는 잎은 푸르지만 이삭은 깊어가는 가을 기운을 품고 사방으로 이삭을 만들고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갈대는 오늘도 가을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긴 채 흐르는 하천에게 다가오는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개를 숙이고 수심에 가득 찬 채 속삭이듯 말하고 있었다.



무심천교 인증센터를 지나 오천 자전거길의 마지막 인증센터인 합강공원 인증센터로 가는 길목에서 오후 늦게 오천 자전거길을 시작한 덕분에 해가 넘어가기 전에 조치원에서 오늘 하루 여정을 마감하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해가 넘어가자 순식간에 주변은 어둠이 깔리면서 묵을 숙소를 검색, 우여곡절 끝에 모텔을 찾아 자전거를 방에 두고 줄기차게 달려온 오늘 하루 피로를 오겹살과 맥주 한 잔으로 풀기에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하늘과 땅이 만 나는 지평선이 초대하는 방향으로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하루를 달려봤다.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갈수록 강산은 내 몸을 통과하고 내 몸은 자연의 품으로 안긴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자전거 타기 좋은 날, 국토종주를 넘어 자전거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그날까지의 여정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행복을 행동으로 느끼고 싶다. 완주와 종주에 목표를 두지 않고 우주의 섭리를 자전거를 매개로 자연과 마주하면서 깨닫는다. 질주보다 일상을 일탈해서 깨달음을 얻는 탈주를 통해 자주 세상과 만나는 감동을 살아가는 소중한 목적으로 삼을 때 우리가 보내는 매 순간은 삶의 기적이고 경이로운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저녁 마지막 목적지까지 가기를 보류하고 오늘 여기서 하루를 쉬기로 결정한 선택의 뒤안길에는 언제나 수많은 포기가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다. 선택은 포기해도 괜찮다는 달콤한 유혹이 손을 들어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결정이다. 내일 벌어질 일은 내일에게 맡기고 수고한 자신에게 깊은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넨다. 위태로운 삶도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는 삶도 있었지만 아쉬운 포기가 뜨거운 출발을 다짐하는 다부진 결정이기를 기도한다. 내일은 합강 공원 인증센터에 일찍 도착하고 이어서 금강 자전거길로 이어서 달리는 일정이 이어질 것이다. 내일은 내 일을 하면 다가오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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