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자전거길은 역사와 문화가 자연과 생태가 만나는 시간 여행길이다
금강 자전거길은 역사와 문화가 자연과 생태가 만나는 시간 여행길이다
금강 자전거길(대청댐에서 금강 하굿둑, 146Km)을 완주(2021년 9월 20일)하고
조치원에서 하룻밤의 피로를 달래고 새벽에 일어나 아침 6시부터 아침 라이딩을 시작했다. 어제 도착하지 못한 오천 자전거길 마지막 인증센터인 합강공원 인증센터에 도착, 인증샷을 찍은 다음 오늘의 자전거길인 금강 자전거길의 출발지인 대청댐 인증센터로 향했다. 합강공원 인증센터에서 대청댐 인증센터까지 약 27Km 거리를 자전거 종주와 관계없이 도착해야 오늘의 금강 자전거길의 출발지점을 만난다. 합강공원 인증센터에서 대청댐으로 이르는 새벽 자전거길은 밤새 흘러내려온 강물이 물안개로 변신해서 공중 부양하는 듯, 먼동이 트기 전에 금강이 준비한 대자연의 향연 같았다. 밤새 흘러온 강물이 계곡을 타고 다리를 가로지른다. 물 위를 건너는 사람에게 다리를 제공해준 다리는 다가오는 강물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는 사람 옆구리를 관통한다. 먼동이 트기 전 금강은 물안개로 대축제를 준비하고 새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를 부른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듯 강가의 풀들이 수척하게 눈 비비며 일어나고, 어둠을 머금은 나뭇가지는 아침을 맞이하려 기지개를 켠다. 직선으로 흐르다 잠시 사색에 잠긴 듯 멈추는 강물은 오늘을 버리고 내일을 맞이한다. 물안개처럼 사라질 오늘의 추억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보내는 시간은 내가 맞이했던 마지막 찰나의 경험이다. 한순간의 경험이 한평생의 추억으로 올곧게 아로새겨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시선을 바꾸고 시각을 달리하면 관점도 달라진다
대청댐 인증센터 도착하기 바로 전에 만나는 언덕은 자전거로 오르기에는 초보자에게 넘사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모래재를 넘던 기억을 되살려 사투 끝에 기어오르니 대청댐이 넓은 품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대청댐의 위용은 귀로도 들어보고 가슴으로도 느껴보며 대청댐이 품은 희로애락의 의미를 머리로 반추해보았다. 대청 다목적댐(大淸多目的 dam)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사이의 금강 본류를 가로지르는 댐이다(참고 위키백과사전). 대청댐의 명칭은 과거 댐이 만들어질 때 행정구역이었던 대덕군(現 대전광역시)과 청원군(現 청주시)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덕의 큰 덕(德)과 청원지역의 갈급한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대청댐은 그 무엇이든 다 품어주고받아주며 깊은 수심(愁心)에 잠긴 듯 말없이 수심(水深)에 잠긴 깊은 뜻을 헤아리고 있다. 대청댐의 깊은 물속에서도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흔들며 살 곳을 찾고 있을 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지만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지만 지금 내가 바라보는 대청댐의 수심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물의 지하세계를 나의 육안으로는 알아낼 길이 없다. 대청댐이 품은 깊은 뜻을 알량한 인간의 머리로 알 수 있겠느냐는 조소와 조송이 들리는 듯했다. 사람 속이 과학적 측정과 탐구 대상이라기보다 헤아림의 대상이듯, 자연이 품은 수심의 깊은 의미 역시 끊임없는 호기심과 보살핌으로 헤아려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대청댐 인증센터를 금강 자전거길 출발지로 정하고 다음 목적지인 세종보로 가는 길은 절반은 대청댐으로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길이다. 금강(錦江)은 한강, 낙동강에 이은 대한민국 3대 강이고 영산강을 포함해서 4대 강에 포함되기도 한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의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무주, 진안, 금산, 영동, 옥천, 보은, 청주, 대전, 세종, 공주, 청양, 논산, 부여, 서천, 익산을 지나 군산만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강이다. 금강은 이름이 상징하는 의미처럼 비단을 풀어놓은 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천리 비단 물길이라는 이름의 금강에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얼룩과 아픔을 아름다운 무늬로 바꾸는 노력을 변함없이 보여준 대표적인 강이다. 특히 금강은 충청권역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유산을 상징하는 창조적 원류(源流)이자 보고(寶庫)다. 대청댐 인증센터에서 대장정을 떠나기 전에 잠깐 동안이지만 휴식을 취한 다음 오르면서 땀 흘렸던 대청댐으로 향하는 언덕을 내려가면서 세종보로 향하는 자전거 종주를 시작했다. 왔던 길을 방향을 바꿔 다시 가는 느낌은 색다르다. 오면서 바라봤던 풍경이 반대 방향에서 볼 때의 느낌은 시각과 시선의 차이가 빚어내는 관점의 색다름을 보여준다.
보(洑)는 자연스러운 강물의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금강은 산맥과 지류, 그리고 하천과 풍경을 자기 방식으로 끌어들여 세력을 키우며 흐르는 합강(合江)이다. 우선 금강은 동쪽의 백두대간, 남쪽의 호남정맥, 북쪽의 한남정맥의 품에 안기고 충청도의 기맥(氣脈)인 금남정맥과 금북정맥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금강의 발원지는 전북 장수군 장수읍에 위치한 신무산(897m)의 ‘뜬봉샘’이다. 여기서 발원한 금강은 진안군에서 구량천과 진안천을 만나 세력을 키운 다음 다시 북쪽 방향의 무주와 영동군을 향해 흐른다. 금강은 다시 금산과 옥천 등을 거치며 초강천, 송천천, 보청천 등의 지류를 끌어들여 더욱 도도해진 강줄기는 감입곡류(嵌入曲流, 산지나 구릉지에서 구불구불한 골짜기 안을 따라 흐르는 하천)하며 무주 구천동과 양산팔경(영동) 등의 절경을 빚어낸다. 곡류하며 축적한 물줄기의 아름다움은 직선으로 흐르는 기류를 능가한다. 굽이굽이 흐르며 안으로 축적한 기류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장애물을 만나 이전과 다른 힘이 필요할 때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드러내며 발휘한다. 금강은 다시 대전 신탄진에서 갑천을 받아들이고 연기군에서 미호천과 합류한 뒤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흐른다. 옛 백제시대의 전설과 낙화암의 한을 품은 채 공주와 부여를 지나며 정안천, 석성천 등의 지류를 다시 받아들이며 금강의 위용을 더욱 드높아진다. 논산과 강경에서 부터 하구까지는 익곡(溺谷, 지반의 침강이나 해면의 상승으로 육지에 바닷물이 침입해 해안에 생긴 골짜기)을 이르며 강경 포구와 군산항의 발달을 촉진한다. 금강은 군산만에서 비로소 서해로 투항하면서 395.9㎞의 긴 여정을 바다에게 선물하며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이상의 글은 금강의 역사, 대전일보 기사를 참고로 작성).
4대 강 사업으로 건설된 16개 보 중 가장 빠르게 공사가 시작된 세종보를 시작으로 공주보와 백제보를 거쳐 익산 성당포구와 금강 하굿둑 인증센터에 이르는 146Km의 여정이 금강 자전거 길이다. 금강 자전거길은 청주시와 대전광역시의 경계점인 대청댐에서 시작하여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공주시, 부여군, 논산시 강경읍, 익산시 등을 지나 전라북도 군산시 금강하구둑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4대 강 자전거길 중의 하나다. 대청댐에서 세종보로 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길이었지만 거리가 37Km나 되어서 많이 지치기도 했던 구간이다. 보( 洑)는 수위를 높이고 필요한 수량(水量)을 확보하기 위해 하천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로막아 만드는 장치다. 인간의 의도적인 목적을 갖고 만든 인위적 장치인 보가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물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생명체들에게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흐름을 차단하는 위협적인 장애물이다.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치한 인위적 장치인 보는 생태학적으로 판단할 때 환경파괴 물이나 다름없다. 자연 스럽게 흐르는 물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겠다는 의도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에게는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장치인 셈이다. 세종보 인증센터에 도착하기 전에 세종시 편의점에 들려서 물과 당을 보충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렸다. 자유시간과 스닉커로 당을 보충하고 허기진 배도 채울 겸 생수와 함께 간단히 에너지를 보충한 다음 세종보 인증센터에서 인증숏을 찍을 즈음 이미 햇볕은 한여름의 폭염을 방불하듯 머리가 따가울 정도로 강렬했다.
금강은 천년의 아픔을 머금은 채 변함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다
금강 자전거길은 과거의 화려했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오늘의 산업발전을 이룩한 현대가 공존하는 시간 여행이다. 역사는 과거 속에서 사라졌지만 역사가 남긴 옛 문화적 숨결은 금강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종시를 흐르는 강을 “금강”이라는 통칭으로 상류부터 하류까지 동일하게 부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지역과 장소에 따라 금강을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고 한다. 예를 들면 금강 상류 금산에서는 적벽강, 옥천에서는 회인진강, 공주에서는 웅진강, 공주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금강 하구에서는 진강 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참고: 세종의 소리). 위로는 하늘을 배경으로 아래로는 땅을 기반으로 수평선을 만들며 수천 년을 흘러오는 금강은 당대의 역사적 아픔과 가슴 저린 한을 안으로 새기며 변함없이 오늘도 바다로 향하고 있다. 바다가 금강의 아픔과 설움을 다 받아준 덕분에 오늘의 금강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몸을 던지고 있다. 겉은 잔잔하게 무표정하지만 강물의 속은 한 많은 세상을 삭히느라 시퍼렇게 멍이 들고 가슴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한낮의 햇볕이 표면을 반사시켜 영롱한 빛깔을 만들지만 물속에는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아픔에 질린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깊은 침묵으로 다가온다. 끝없이 절망하면서도 끝없이 희망하는 금강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기 위해 거친 욕망의 숨결도 도도히 흐르는 물결 속으로 감춰버린다.
세종보에서 공주보로 가늘 길에 어김없이 울리는 배꼽시계 경보는 마음(心)에 점(點)을 찍으며 한 끼의 즐거움을 만끽하라는 점심(點心) 각성제였다. 공주시에서 야채 불고기 정식과 맥주 한 잔으로 원기를 회복하며 방전돼가는 휴대포 배터리도 충전하였다. 금강 자전거길을 가다 보면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펼쳐온 역사적 향기가 짙은 잔향으로 남아 있다. 공주시 장기면의 석장리 유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시대의 역사적 흔적을 보여주는 증거물일 뿐만 아니라 청동기 유물이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있는 역사적 중심지임을 알려주는 증표다. 금강이 역사적 중심지로 떠오르는 결정적 계기는 백제가 두 번에 걸쳐 수도를 옮기는 천도(遷都)를 통해서 일어났다. 첫 번째 천도는 백제 문주왕이 고구려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는 위기에 처하자 한성을 버리고 웅진(熊津), 오늘의 공주로 수도를 옮기겠다는 결단을 내린 사건이다. 백제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긴 이후 각종 외세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다양한 성을 쌓고 금강을 중심으로 대중국 무역로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호서 평야와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기도 했다. 두 번째 천도는 성왕 16년, 뻗어나가는 왕국 건설의 웅장한 꿈을 품고 사비(泗沘), 오늘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국명도 백제에서 남부여로 바꾸면서부터 중흥기를 구가하는 역사적 결단을 했던 때다.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던 사비는 중국과 일본을 유리한 입지조건 속에서 상대할 수 있는 기지였다. 이처럼 금강은 백제시대의 역사적 결단과 사건을 문화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산역사를 품고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산증인이다.
금강은 백제와 운명을 같이 하며 백마강의 달밤에 설움을 녹여낸다
공주보까지 가는 길에는 몇 번에 걸쳐 길을 잃었다. 오픈 라이더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한 참 후에는 경로를 벗어났다는 경고 메시지만 반복해서 날릴 뿐이다. 이곳저곳을 헤맬 때는 잠심 멈춰 서서 동서남북 방향감을 회복하고 내비게이션이 지향하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설혹 잘 못 들어선 길이라도 조금 더 앞으로 가다 보면 직감적으로 맞는 방향인지 아닌지를 체감할 수 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만난 공주시 송산리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위용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탈한 채 한동안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달렸다. 시내를 달리다가 다리를 넘고 아래쪽으로 돌아서 가던 길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간신히 금강 하굿둑으로 향하는 간판을 발견했다. 방황 끝에 찾은 이정표는 이제 길을 찾았으니 안심하라고 속삭이는 보험과 같았다. 너만 믿고 앞으로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금강 하굿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주보에서 인증샷을 찍을 즈음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거리를 점차 좁히고 있었다. 하늘의 정중앙에서 수직으로 내리쬐던 햇볕이 이제 측면으로 내 몸을 내리쬐면서 전신은 뜨거운 태양에 통닭구이처럼 익어가는 듯했다.
공주보 인증센터에서 백제보 인증센터까지의 거리는 24Km다. 오늘 출발한 대청댐에서 백제보까지는 89km다. 평속 20km로 달린다고 해도 1시간 이상 거리다. 하지만 평속 20km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속도다. 더구나 무한정 평지로만 연결되어 있지 않고 크고 작은 언덕이 늘 새로운 다짐과 결의를 하게 만든다. 공주보에서 백제보로 가는 길에는 다른 자전거길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쉼터가 있었다. 열 받은 자전거도 잠시 그 열기를 식힐 겸 그늘진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지친 내 몸도 잠시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시 백제보를 향하여 뜨거운 태양 열기를 자전거 페달을 밟는 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쉼 없이 달렸다. 금강은 하류 지역에 위치한 부여에서는 백마강(白馬江)이라고 부른다. 백마강을 내다보며 우뚝 솟은 부소산 정상을 바라보노라면 백제 성왕이 도읍을 사비로 옮기던 순간의 영광을 찬란한 추억으로 간직하듯 그 위용과 웅비한 기상은 라이더의 넋을 잠시 잃게 만든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낙화암 그늘에서 울어나 보자/고란사 종소리 하무 치면은/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더라/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나.” ‘꿈꾸는 백마강’ 노래의 가사처럼 한 시대의 아픔을 백마강이 삭이면서 부소산을 뒤덮은 구름을 위로한다. 백제의 미래를 예견하듯 저물어가는 한 나라의 운명조차 거부하지 않고 백마강은 오늘도 하구로 흘러간다.
자전거가 받은 충격은 통증으로 전환되어 온몸을 휘감는다
백제보에 이르는 길은 한적한 강 둑방길의 억새가 뭉게구름과 어울리며 가을날의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거의 도착할 즈음 쉽기 오르기 힘든 업힐이 피곤함에 쩐 라이더들에게 한계를 테스트하는 실험 무대로 돌변한다. 사력을 다해 기어오를 때는 오로지 자전거 앞바퀴가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굴러가는 모습만 바라본다. 바퀴가 사투를 벌이다 힘겹게 정상에 오를 즈음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가는 시점을 만났을 때가 바로 업힐이 끝나고 평지나 내리막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힘겹게 올라와보니 반갑게 맞이해주는 편의점이 만나기도 전에 CU(See You), “잘 있어”라고 이별 인사를 한다. 갈증에 시달린 몸에게 우선 냉수를 공급하고 떨어진 당을 위해 초콜릿을 먹는다. 급경사를 타고올라온 탓에 내가 원하는 물보다 물이 나를 위해 급습하며 몸안으로 뛰어든다. 물오른 몸은 순간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주는 듯했다. 백제보의 모습은 말을 타고 백마강을 바라보는 계백장군의 갑옷과 말안장을 기품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백제보에서 울려 퍼지는 계백장군의 함성이 저 멀리서 여기까지 들리듯 했다. 공주와 부여를 통과한 금강 자전거길은 논산과 강경을 거쳐 익산을 통과한 다음 군산에 이르러야 한다. 이제 다시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다시 출발 신호를 몸에게 보냈다.
한 번 늘어진 몸은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려울 정도 한 없이 쉬고 싶다고 머리가 몸에게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몸은 여가서 더 이상 쉬면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때 시간이 벌써 4시를 넘었다. 백제보 인증센터에서 익산 포구 인증센터까지는 39Km로 지루한 레이스가 예상된다. 부지런히 라이딩을 해도 2시간 안에 도착하기 어렵다. 다시 심기일전해서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백제보 인증센터에서 익산 성당포구 인증센터까지 가는 거리는 금강의 흐름을 벗 삼아 묵묵히 버티며 자전거를 안내해주는 둑길의 연속이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던 둑길은 작은 내리막을 통해 변화를 주는가 싶다가도 약한 언덕을 오르는 순간 다시 둑길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저물어가는 햇빛의 강도를 머금은 채 열기를 반사시켜 내 몸으로 던져주는 듯했다. 하지만 달려온 거리의 고통을 고스란히 흡수하면 생긴 통증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안장통만 있는 줄 알았더니 자전거에 실려 울퉁불퉁한 거리를 버텨온 온몸에서 통증이 아우성을 친다. 우선 허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공기 저항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굽히고 가야 하기에 똑바로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아프다. 코어 근육과 기립 근육 정도에 따라 허리 통증이 달라진다. 핸들을 잡고 가는 손목 통증도 만만치 않다. 자전거 속도와 달리는 와중에서 자전거가 받는 충격을 손으로 잡고 손목으로 완화시키기 위해서 시종일관 힘을 주어 강하게 잡으려고 한다. 그 와중에 손목은 자전거 라이딩을 방해하며 발목을 잡는다. 허벅지는 엄청난 에너지를 불태우면서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강력한 엔진이 아닐 수 없다. 그 엔진도 힘에 벅찬 듯 근육통을 호소하며 더 많은 휴식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신기한 점은 라이딩을 계속하는 동안 그 통증은 바람에 실려 날아간 듯, 앉아서 쉴 때보다 한결 부드럽게 움직이는 허벅지의 반복운동에 기겁을 하고 놀라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금강 자전거길은 강물과 강둑길이 갈대와 바람을 만나 춤추는 꿈길이다
금강에 떠도는 돛단배는 돛을 달고 검푸른 강줄기를 타고 진군해야 되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강가의 닻에 걸려 꼼짝달싹을 못하고 있다. 백마강 달밤에 무너지는 백화암의 암울한 백제의 어둔 종말을 암시하듯 부여를 지나는 곳곳의 백마강에는 한적한 돛단배가 주인을 잃고 방황하는 듯 보였다. 금강 하굿둑을 향해 줄기차게 달려온 강둑길에는 힘든 몸을 부둥켜안고 바람에 휘둘리는 갈대의 순정이 강물을 타고 함께 흐른다. 갈대도 살아가는 지금의 땅이 비좁은 듯 강둑길로 난입하며 가을과 함께 사라지는 푸른빛에 열기를 담아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하다. 때로는 칡넝쿨이 자전거 도로를 절반쯤 차지하고 영역 분쟁을 벌이기도 하고 여세를 몰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듯 줄기차게 무성한 잎을 치켜세우고 바람을 맞이한다. 백제보에서 1시간 남짓 달려오면 젓갈로 유명한 강경읍이 고단한 라이더들을 넓은 품으로 반겨준다. 강경을 지나 익산 성당포구 인증센터까지 달리다 보면 용안 바람개비 길이 무려 4.8km가 이어진다. 강둑길 양 옆으로 늘어선 바람개비는 힘겹게 달려온 라이더들의 마지막 완주를 기리며 기립박수를 치는 듯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행렬로 도열해서 맞바람을 안고 달리는 자전거에게도 힘내라는 응원의 함성을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익산 성당포구까지 이어지는 39Km 길은 강둑길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길이었지만 중간에 산 절벽의 균열로 길을 막아 바로 옆 언덕으로 힘겹게 오르려다 체인이 엉키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다행히 같이 정태성 비전택시 대학 총장의 임기응변적 기술로 위기를 쉽게 모면하고 우회도로를 찾아보았지만 전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는 산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심 끝에 다시 원상 복귀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본래의 자전거길로 진입해서 조금 달려갔더니 반대쪽 출입구도 통제하고 있었다. 달리던 자전거에서 내린 다음 위험지대를 벗어나 다시 익산 성당포구를 향해 어둠이 깔리는 저녁노을을 벗 삼아 달려갔다. 힘겨운 사투 끝에 도착한 익산 성당포구 인증센터는 생각보다 초라하게 석양의 어둠이 깔리는 다리 건너 둑에 홀로 서서 먼 거리를 달려온 우리들을 말없이 반겨주었다. 그때 시계는 오후 6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익산 성당포구 인증센터에서 금강 하굿둑 인증센터까지 가는 길은 난관을 거듭하는 설상가상의 길이었다. 익산 성당포구에 도착한 시간이 대량 6.30분, 이미 해는 넘어가고 얕은 어둠이 엄습해오고 있을 시점에서 포기와 끈기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안간힘을 쏟아붓고 오늘의 목적지인 금강 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 조촐하지만 의미심장한 금강 자전거길 완주를 자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심각한 난관의 오르막길이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체력이 바닥을 기어가고 있을 즈음 만난 경사도가 높은 언덕길을 안간힘을 다해 오르고 나니 다시 어두운 밤의 적막을 뚫고 산길로 향하는 또 하나의 오르막이 나를 부르고 있다.
너무 힘을 주어 페달을 밟은 나머지 체인이 살짝 엉키었지만 곧바로 기어 변속에 무리가 없도록 조정을 하고 다시 언덕으로 향하는 힘을 쏟아붓고 산속으로 파고드는 밤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적막함이 막막함과 만나면서 목적지로 향하는 자전거길은 갈수록 미궁에 빠지는 듯했지만 이내 금강 하굿둑으로 향하는 평탄한 길과 만났다. 그때부터 불빛을 향해 몸을 던지는 벌레들의 군무(群舞)와 다가오는 맞바람을 등지로 어둠 속으로 파고드는 질주를 30분 정도 했을까. 어둠 속의 질주를 뒤로한 채 잠시 물 한 모금 마시는 휴식을 위해 길바닥에 널브러져 누워버렸다. 까만 밤의 배경이 뜨문뜨문 보이는 별빛을 희미하게 빛나게 해 주었다.
금강은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성공이고 행복인지?
동행하는 정태성 비전 택시대학 총장과 주거니 받거니 힘과 용기를 나누면서 밤길을 달리는 자전거 여정을 즐겼다. 마지막 남은 안간힘을 쏟아부으면서 평속 21Km 내외를 유지한 끝에 마침매 금강 자전거길의 종착역인 금강 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그때 시간이 예상대로 저녁 8시 10분이었다. 서둘러 택시를 불러 앞바퀴를 뺀 다음 뒷좌석에 싣고 군산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9시 서울행 고속버스를 예약했다가 10시로 바꾸고 근처 소머리 국밥집에 들러 늦었지만 금강 자전거길을 완주한 성취감에 잠시 젖어보기로 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나와 돌아오는 내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같이 돌아오는 동행(同行)이기도 하지만 같이 떠난 동료와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면서 튼실한 신뢰와 미더운 우정을 쌓아나가며 동심 어린 호기심으로 익숙함을 낯설게 바라보는 동행(童行)이기도 하다. 정 총장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 이번 여행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고, 나를 위해 곳곳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와 헌신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나이 들어서도 떠나고 싶을 때 부담 없이 같은 방향에 몸을 싣도 낯선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살아가는 삶의 이면을 드러내고 오늘을 내일에 비추어 그 의미를 반추하고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배움의 도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이번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친구이자 도반은 보이지 않는 배경이다. 앞서 달리는 나를 뒷받침해주는 믿음직한 후원자이고 먼저 달려가 나를 빛나 보이게 언덕을 오르고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인생 샷으로 찍어주는 추억의 재생자다. 방향감을 잃고 잠시 방황할 때는 혼자의 힘으로 길을 찾아보도록 방목해주는 로드 매니저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면 함께 감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풍경 감상자다.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오늘을 기점으로 내일까지도 미리 생각하는 선견력과 예지력으로 예단하는 상황판단자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 대안보다 아이디어나 의견을 제시하고 딜레마 상황에서 스스로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하게 만드는 선택 설계자(choice architecture)다. 심각한 위기가 감지되면 사전에 조짐과 징후를 파악하고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체험적 기지(奇智)를 발휘하고 힘든 상황이 지속될수록 힘을 빼는 고수의 내공을 보여주는 경험의 스승이다. 해본 것만이 진짜 진리라고 주장하며,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상황일수록 핵심을 정예화시켜 극도의 단순미를 추구한다. 책상 지식보다 현장에서 땀으로 녹여낸 체험적 지혜만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안목과 식견임을 몸으로 보여주는 실천 지향적 행동파이며, 무엇을 사랑하고 즐기며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지 가까이서 교감하고 공감하는 측은지심의 전형이다. 이런 친구이자 도반과 같이 함께 즐기는 자전거 여행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의미다.
나는 나를 묻는다/이영유
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풍성하고 화려했던 언어들은 먼바다를
찾아가는 시냇물에게 주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나뭇잎들에게는
못다 한 사랑을 이름으로 주고,
산기슭 훑는 바람이 사나워질 때쯤,
녹색을 꿈꾸는 나무들에게
소리의 아름다움과
소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거친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
온 누리에 푸르름의 이름으로 덮일 때쯤
한 곳에 숨죽이고 웅크려
나는 나를 묻는다
봄이 언 땅을 녹이며 땅으로부터
올라온다
가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을 즈음 우리는 자전거에 몸을 싣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과 생태가 뒤섞여 흐르는 금강 자전거길에서 못다 한 사랑과 살아냈던 힘겨운 삶, 그리고 앞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불확실한 삶의 화두를 붙잡고 146Km를 달렸다. 이영유 시인이 온몸으로 살아낸 삶을 시로 번역하듯이 금강 자전거길을 달리면서 ‘나를 묻는다’는 시구를 붙잡고 금강에 흐르는 피와 눈물과 땀의 의미에 비추어 내 삶을 번역하려고 자전거 길 곳곳에서 사투를 벌여보았다. 글쓰기는 내 육신으로 겪은 피땀 어린 사투의 얼룩을 언어를 매개로 문장에 삶의 무늬로 번역하려는 안간힘이다. “글을 쓰는 것은 시간이 우리 속에 새겨 놓은 무늬를 글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장르에 관계없이 글 쓰는 모든 행위는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10쪽). 김기석의 《일상 순례자》에 나오는 말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흐르는 금강 물줄기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적 사연과 문화적 전통을 되새기는 무한 반복의 흔적이 담겨 있다. 때로는 적과의 투쟁이 필요했고, 때로는 뜻을 달리하는 다른 세력과의 항쟁도 요구되었다. 그때마다 피눈물과 피땀으로 얼룩진 금강에는 아름다운 선율과 무늬만 남긴 채 강하구로 괴로웠던 과거의 역사를 바다에 안겨줬으리라. 오늘도 금강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게 행복이고 불행인지를. 그 답을 숨긴 채 금강은 오늘을 버리고 내일을 향해 쉬지 않고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