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종주는
완주가 아니라 온주(穩走)다(2부)

국토 ‘종주(縱走)’는 ‘완주(完走)’가 아니라 ‘온주(穩走)’다(2부):

목표를 달성하는 ‘완주’보다 온전한 나로 거듭나는 ‘온주’가 소중하다


장기전에는 체력과 더불어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주 상품교-상주보-낙단보-구미보-칠곡보-강정고령보-달성보)


상주 상품교 인증센터 주변에서 2박을 하고 상주보를 향해 이른 아침 출발 준비를 했다. 가방 거치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어깨 끈으로 어깨를 가로질러 등에 매 보았다. 가방 짐받이가 부러진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은 가방을 둘러메는 끈으로 양쪽 극단의 끈 걸이에 연결시켜 대각선 방향으로 가방을 어깨에 메고 라이딩을 계속하는 것이다. 느낌은 나쁘지 않았지만 과연 이상태로 낙동강 하굿둑까지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온도 급강하해서 가을을 지나 갑자기 겨울이 칼베듯 다가온 느낌이다. 찬 공기 사이로 자전거가 협곡을 지나듯 힘겹게 빠져나가지만 초반부터 길을 찾다가 몇 번을 헤맨 끝에 자전거 도로를 만났다. 매협재를 지나 국토종주길의 여섯 번째 업힐을 만난다. 바로 600m 정도밖에 안 되지만 경사도가 8% 정도 되는 경천대 고갯길이다. 경천대는 진입 부분에 순간 경사도가 32%까지 올라가는 소위 "경천대 절벽"을 만나는 순간 절망이 순식간에 몸을 엄습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페달을 밝으면서 우중에 힘겨운 사투 끝에 언덕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언덕이 400m에 걸쳐 경사도 6-7%를 넘나들다 10%대에 이르는 시련의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고 설상가상으로 힘겨운 싸움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형국이다.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업힐을 하는 것도 힘든데 대각선으로 어깨에 짊어진 짐이 자꾸 앞으로 쏠리니까 온 신경이 그 가방에 쏠린다. 집중해서 언덕을 올라가는 와중에 미끄러지듯 가방이 앞으로 쏠리면서 자전거 핸들쪽으로 반복해서 나타난다. 비는 오락가락하지만 그치지 않고 갈길이 먼 우리들 앞을 가로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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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색깔을 완성하지 못한 단풍이 온몸을 떨면서 10월이 가고 11월이 성급히 다가온다. 떨어지기 전에라도 안간힘을 쓰면서 봄부터 틔워온 나뭇잎에 맺힌 사연을 가장 온전한 자기 색으로 물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한기를 느낄 정도로 뚝 떨어진 기온에 하늘은 먹구름을 수를 놓고 적막한 새벽의 땅은 비를 부른다. 갈길은 먼데 비는 앞길을 막는다. 하지만 우중이라도 길은 열려 있다. 그 길에서 비를 맞는 라이더에게 어떤 행운을 가져다줄지 누가 알리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비는 그쳤지만 또 다른 불운이 기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불행의 맛을 알지만/불안의 냄새는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현승 시인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시구절의 일부다. 불행은 추상적으로 다가와 머리가 인식하지만 불운은 구체적으로 다가와 몸이 감지한다.


기어 변속을 하지 않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뒷바퀴 기어가 2-3단을 가끔씩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라이딩을 방해했다.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과정에서 변속을 하면 더 자주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 내려서 앞 뒤 기어 수평방향을 점검하고 몇 가지 응급조치를 취해봤지만 상황은 진전되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구미보 근처 펜션까지 도착, 펜션 주인님의 차에 자전거를 싣고 구미 시내 자전거 수리점에서 뒤쪽 기어 변속 장치를 점검받고 체인을 바꾸었다. 역시 전문가의 손길은 달랐다. 앞뒤 기어 변속 장치 균형과 수평 상태를 조정하고 다시 기어 변속 상태를 점검하다 체인이 뒤틀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아마 몇 번에 걸쳐 체인이 빠지면서 체인 기어 사이로 끼면서 이상이 생긴 듯하다. 어찌 되었든 사소한 불운이었지만 여러 사람들 덕분에 다시 행운을 온몸에 뿌리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사소한 불운이 비범한 깨달음을 선물로 가져다준다. 불운은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가끔은 행운으로 뒤바뀌어 다가온다. 당시에는 불운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불운을 겪으며 절치부심했던 삶의 고뇌가 인생의 깊은 지혜를 낳은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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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질문한다

(달성보-합천 창령보-창녕 함안보)


달성보 인증센터 근처에서 3박을 하고 합천 창령보까지 가는 길에 국토종주 과정에서 만나는 여섯 번째 업힐, 다람재 고개를 만난다. 평균 경사도 11%로 1.1Km나 이어지는 힘겨운 업힐이다. 300m 지점부터 경사가 제대로 시작되고 800m 지점에서 한 번 인간의 한계와 인내력을 요구하는 업힐이 이어진다. 짧고 강하게 다가오는 업힐이어서 조금만 견뎌내면 끌바를 하지 않고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만만할 정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린이에게는 모든 고개나 언덕을 넘기에는 힘이 든다. 국토종주 길에 넘는 최대의 장애물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괴로운 노선이 바로 무심사(無心寺)를 넘어가는 여정이다. 국토종주 과정에서 만나는 일곱 번째 업힐, 무심사로 가는 길은 글자 그대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깊게 만드는 질문이 자전거길 옆에서 라이더의 앞길을 막는다. “그대 지금 어디로 가는가? 왜!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라는 질문은 국토종주 길 내내 내가 끌어안고 달려온 질문의 정곡을 찌른다. 왜 힘들고 고통스러운 국토종주 길에 나섰는지, 그 길을 통해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성찰적 질문이었다. 앞선 질문에 머릿속이 혼란에 빠져 아직 미궁을 헤매고 있을 즈음 또 다른 질문이 급습한다. “그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찌하면 참된 행복 이런고?”라는 질문이 다시 가던 길을 멈추고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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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에 털린 신상정보와 유튜브 검색 알고리즘에 걸린 나의 영상 시청 흔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찾아다닌 포털 사이트의 흔적도 아니고 유튜브로 찾아본 영상도 아니다. 그런 방문 흔적은 나의 지극히 일부를 반영할 뿐, 나는 나도 모르는 내가 내 몸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 알 뿐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주 만나는 길에서 던지는 질문이 끊임없이 나를 내면으로 파고드는 여행을 이어가게 만든다. 오늘도 어제와 다르게 내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는 미지의 내가 미지의 문을 향해 발버둥 치고 있을 것이다. 그 친구를 만나러 오늘도 라이딩 와중에 질문을 반복해서 던질 뿐이다. 무심사 오르는 길은 국토종주 전구간을 통틀어서 가장 급경사이자 난도가 높은 업힐이다. 초반 500m까지 경사도가 평균 12%인데 순간 26%까지 올라가는 급경사로 이어진다. 여기까지 사력을 다해 올라온 다음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 타고 오르려다 무심사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풍광에 매료되어 국토 종주 처음으로 끌바를 하기로 결심했다.


1km 정도를 가면 잠깐 쉬는 구간이 나오지만, 여기서 안심은 금물이다. 다시 만만치 않은 8~10%의 경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초반 최선을 다해서 힘든 구간을 통과했다고 생각해서 잠시 고통의 몸부림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다시 넘어야 할 업힐이 눈앞에 나타날 때 좌절과 절망은 급속도로 내 몸속을 파고들어 맥을 못 추게 만든다. 힘들게 끌바를 하며 올라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산길을 얼마 동안 올라오면 비포장 도로 정상에서 급경사가 시작되지만 다시 급회전을 해서 오른쪽으로 기어 올라가는 길을 만난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작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다시 급경사를 타고 낙동강 줄기를 타고 지나가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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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지 않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


중간에 공사 중인 자전거 진흙길을 힘겹게 타고 오다 신발도 자전거도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길이 끊어진 곳을 간신히 옆길로 통과하면서 합천 창녕보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인증수첩 모퉁이가 약간 비에 젖어 있었다. 인증 도장을 찍고 합천 창녕보 인증센터에서 직원을 우연히 만나 창녕 함안보로 가는 도로를 안내받았다. 여기서부터 낙동강 자전거 길 중에서 가장 긴 55Km를 가야 창녕 함안보를 만난다. 창녕 함안보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국토종주 길에 만나는 아홉 번째 업힐인 박진재를 넘어야 한다. 박진재는 총길이 1.3km이 평균 경사도는 10%를 넘나 든다. 400m까지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지다 갑자기 언덕이 급해지면서 900m 정도를 계속 12%의 경사도로 올라가는 업힐이다. 박진재라는 이름답게 박진감마저 태워 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빡진 고개일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박진재 도로 시멘트 벽에 사투를 벌이며 올라온 분노를 욕설로 낙서를 해놓았을까. 이곳 지명도 의령군 낙서면이다. ‘낙서면’ 답게 박진재 길 옆 옹벽에는 라이더들의 힘겨운 사투를 엿볼 수 있는 수많은 낙서가 그나마 언덕을 오르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혼신의 힘을 다해 박진재 정상에 오르고 나서 잠시 숨을 고르며 쉬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이야기하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처럼, 쉬어가는 자전거가 멀리 간다. 올라오며 쏟아부은 힘을 내려가기 전에 짧은 시간이지만 회복하지 않으면 내려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하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특히 핸들을 잡는 힘이 팔목 통증으로 순간적으로 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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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재를 넘어서 약 9Km 정도 내려오면 국토종주 길에 만나는 10번째 업힐이 대기 중이다. 바로 영아지 고개다. 영아지고개는 1.7km의 거리에 평균 경사도 7%라고 하지만 초반 경사도가 20%를 넘는다. 어떤 구간은 순간 경사도가 42%가 넘을 정도로 라이더에게는 넘사벽이다. 1.2km 지점까지 온 힘을 다해 기어오르면 나머지 업힐 구간은 힘을 살짝 빼고도 500m 정도는 오를 수 있다. 이로써 낙동강 자전거길에 있는 이른바 ‘4대 업힐’인 다람재, 무심사, 박진재, 영아지고개를 모두 넘었다. 다람재를 넘으면서 무너져내리는 멘탈을 다스리려고 노력했고, 무심사를 넘으며 높이만 올라가려는 헛된 욕망을 비웠다.


박진재를 넘어서면서 심장박동이 강력해지는 감동을 맛보았고, 영아지고개를 넘으며 경지에 이르는 삶의 지혜를 반추해보았다. 여러 가지 길에서 잠시 헤매기도 하고 우중에 미끄러운 길에서 어려운 라이딩도 겪어봤지만 예상보다 일찍 창녕 함안보 인증 센터에 도착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3시쯤 되었다. 이제 다음 인증센터인 양산 물문화관까지 다시 55Km의 긴 구간을 통과하면 물문화관 인증센터에서 낙동강 하굿둑 마지막 인증센터까지 35Km만 더 가면 대망의 국토종주 대미를 장식하는 꿈같은 시간을 맞이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로 먼길을 달려온 내 몸을 위로하면서 잠시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중간에 보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걱정을 불러왔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여기까지 달려온 나 자신의 모습이 당당해 보이기 시작했다.


뻐근한 몸을 수습해서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싣고 줄기차게 양산 물문화관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시속 20Km의 속도로 간다면 3시간이 안 걸려 6시 즈음에 도착할 것 같다는 오판을 했다. 하지만 갈수록 평속은 떨어지고 생각보다 일찍 어둠이 앞길을 어둠의 장막으로 치기 시작했다. 어둠 속의 고요가 가는 길마다 소복이 누워 밤잠을 준비하고 가을밤의 낭만이 나뭇가지마다 매달려 있다. 하지만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더 어둡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기 위해 남은 힘을 쏟아부으며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전력 질주했지만 결과적으로 길을 잃고 헤매다 여러 번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다. 삼랑진에 정한 숙소로 들어가다 시내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갈 곳을 잃어봐야 갈 곳을 다시 찾는다. 길을 잃어봐야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지만 어두운 밤에는 그럴 가능성도 높지 않다.


어둠의 정적이 나를 중심으로 주변을 집어삼키면서 피곤함이 설상가상으로 엄습했다. 어둠이 급습하고 체온도 급강하면서 헤매다가 숙소를 수소문 끝에 간신히 찾아냈다. 그때 시간이 7.30분쯤 가까운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오늘의 힘겨운 여정에 스스로 박수를 보낸다. 어젯밤 편의점에서 구한 1865 와인 375ml 작은 병을 마시면서 오늘 벌인 사투를 위로해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오늘의 깨달음이 휘발되기 전에 기억을 되살려 붙잡아 메모했다. 이현승 시인의 시를 몇 편 읽으면서 오늘 자전거 길에서 배운 깨달음의 흔적으로 시적 언어로 번역해보았다. 진부한 언어를 버리고 사물이나 현상이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목소리를 시심으로 녹여 나만의 언어로 담아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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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시인, 문장 부호에게 말을 걸어보다

(양산 물문화관-낙동강 하굿둑)


삼랑진 모텔에서 다시 양산 물문화관까지도 아직 1시간 남짓 더 타야 도달할 수 있었다. 모텔에서 새벽에 출발할 때 처음으로 손이 시려울 정도로 겨울이 갑자기 다가오고 있음을 한기로 느꼈다. 이른 새벽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출발했지만 자전거 길을 찾아 들어가는 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힘겹게 찾아냈다. 자전거 내비게이션은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을 지키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그때서야 경로를 이탈했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때로는 올바른 길로 잘 가고 있는데 경로를 이탈했다는 메시지를 한 참 동안이나 들려준다. 길 안내가 아니라 소음으로 들리고 말문을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엉뚱한 궤변으로 들릴 때가 많다. 자전거 내비게이션인 오픈 라이더는 아직 수정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고 갈 길이 멀어서 부적격이다. 급변하는 자전거 길에서는 더욱 맥을 못 춘다. 아무 말이 없다가 내가 수소문 끝에 똑바로 가고 있으면 그때 서야 길 안내를 시작하기도 한다.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서도 배터리는 너무 빨리 방전시킨다. 한 나절을 버티지 못하고 방전된다. 1시간 좀 넘게 라이딩을 하다가 양산 물문화관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 인증센터인 낙동강 하굿둑 인증센터만 남았다. 낙동강의 고요한 흐름이 새벽 산세와 어울려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여운을 가득 담고 있는 듯하다. 이제 긴 세월 흐르며 세상의 아픔을 어루만져준 노고를 조금만 더 참으면 바다가 다 받아주리라.


인천의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서 낙동강 하굿둑 인증센터까지 줄기차게 내려오면서 내 인생의 수많은 문장부호들을 만났다. 이들이 10월 어느 멋진 날 낙동강 하굿둑에 모여 그동안의 노고와 내일의 설렘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깊어가는 10월 어느 날 마침표( . )와 쉼표( , ), 물음표( ? )와 느낌표( ! ), 말없음표( …… )와 빗금( / ), 쌍점( : )과 쌍반점( ; ), 큰따옴표( “ ” )와 작은따옴표( ‘ ’ )가 한 자리에 모여 국토종주를 하면서 염두에 두고 고민했던 주제나 저마다의 속 깊은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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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 마침표( . ) 하나를 찍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왔지만, 마침표 뒤에는 늘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물들어 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어제와 다른 마침표( . ) 를 찍기 위해 어제와 다른 호기심의 물음표( ? )를 던져 놓고 감동적인 물음표( ? )가 질문의 그물에 걸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처음 느껴보는 감동의 느낌표( ! )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지고 싶은 호기심의 물음표( ? )에서 얻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낙동강 하굿둑이 국토종주의 끝이지만 그 끝은 또 다른 라이딩의 출발점이다.


“쉬지 않으면 쉬게 된다”고 경고하는 쉼표( , )를 찍으면서 쉬엄쉬엄 앞으로 가다가도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숱한 세상사가 앞을 가로막을 때 말없음표( …… ) 뒤에서 침묵으로 답을 구한다. 말이 없다는 의미는 진짜 할 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할 말은 많지만 앞뒤가 안 맞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의 행렬이 폭주해서 할 말을 오히려 참고 있다는 뜻이다. 침묵은 할 말 없음으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배웠다. 오히려 침묵은 너무 많은 할 말 중에서 어떤 말이 꼭 해야 되는 말인지를 선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는 걸 배웠다.


세상의 수많은 짝이 존재하지만 오로지 나와 코드가 맞는 단짝을 찾기는 쉽지 않다. 만나면 만날수록 힘이 되는 사람과 만나 핵심 화두나 함께 나누고 싶은 개념을 제시한 다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속내를 드러내고 싶을 때 쌍점( : )을 찍고 싶다. 쌍점( : ) 뒤에 이어지는 설명이 앞단의 개념이 품고 있는 신념의 구체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고 싶다. 행복, 사랑, 열정, 도전, 겸손, 신뢰, 그리고 희망처럼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추상명사가 내 삶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되뇌고 질문을 던지며 행복한 라이딩을 했다.


마침표( . ) 하나로 안 되는 세상, 더 강력한 주장을 펼치고 싶을 때 쌍점( : )을 찍는다. 하지만, 그렇게 야속하게 단정하기 부담스러울 때, 마침표 하나로 잠깐 정지했다가 쉼표( , )를 써서 '그리고'라는 뜻을 덧붙이고 싶을 때 쌍반점( ; )으로 내 주장을 부드럽게 이어나가지만 과연 나의 의도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쌍점( : ) 뒤에 따라오는 나의 의도와 쌍반점( ; ) 뒤에 내 주장을 덧붙여 설명하고 설득하지만 세상은 내 맘 같지 않다는 것도 국토종주 라이딩을 통해 배웠다.


남자/여자처럼 대비되는 개념을 비교해서 보여주고 싶을 때 비스듬히 선을 그으면 빗금( / )이 탄생한다. 물론 빗금도 똑바로 서 있고 싶지만 사는 게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잠시라도 비스듬히 기대고 싶은 것이다. 비스듬히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다름과 차이를 다소곳하게 드러내면서 어울리는 조화를 추구한다. 오늘과 내일의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하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로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이런 저련 대비를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비전을 품어본다.


내 주장이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주장에 의지해서 내 생각의 정당함을 인정받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여러 번 떠오른다. 큰맘 먹고 다른 사람 생각을 따오는 큰따옴표( “ ” )에게 흔들리는 내 마음을 맡긴다. 국토종주 내내 이현승 시인의 『대답이고 부탁인 말』에 나오는 시 구절을 음미하고 반추하며 내 생각과 느낌을 시심에 담아 자전거 타는 시인이 되려고 노력해보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입 밖으로 발설하고 싶지 않은 말을 마음속으로 속삭이고 싶을 때 작은따옴표( ‘ ’ )에 의지한다. 또는 다른 사람을 인용하는 말 안에 다시 누군가가 주장한 말을 넣고 싶을 때 다시 한번 작은따옴표( ‘ ’ )를 부른다. 생각은 따오지만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의 말속에 숨죽이고 있는 내 생각이다. 생각은 들지만 아직 겉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수많은 작은따옴표( ‘ ’ )안에 잉태된 생각의 자손들을 다시 꺼내서 혼자만 생각해본다. 언젠가 이들도 멋진 생각의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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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은 의심을 먹고 자라지만 질문은 호기심을 먹고 자란다


낙동강 하굿둑이 가까워지면서 그냥 지나가기 쉽지 않은 갈대밭을 만났다. 갈대숲에서 갈 데를 잃고 방황하는 가을 남자는 어디로 가는 게 옳은 길인지 물음표를 바람에 실려 날려 보낸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를 물으며 간다. 그 물음의 시간이 헛된 시간일지라도 물음의 끝에 다시 물음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지라도 물음은 세상을 향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자맥질이다. 존재는 있어서 보이는 게 아니라 있어도 어제와 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다르게 바라볼 때 비로소 부각되는 살아있는 모습이다.


갈 데를 잃고 흔들리는

갈대의 몸부림도

나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갈대를 뒤흔드는 바람도

자신의 존재 근원이 어디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따금씩 길바닥에 누워

밤잠을 뒤척이며 설친 낙엽도

다음은 어디로 향할지 바람에게 물어본다.


질문하는 존재는

존재 이유가 있고

자기의 존재 이유를 아는 순간

자유로운 삶을 만난다.


쉬어가는 자전거가 가장 멀리 간다

자람도 모자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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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은 자신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면서 심문하지만 질문은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탐구심을 자극한다. 나는 과연 국토종주 633Km를 완주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던져 놓고 해답을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걱정과 근심이 앞을 가릴 뿐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하면 국토종주 633Km를 온전하게 달려 꿈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처럼 질문을 던져 놓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보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보인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자기 삶을 다스릴 수 있듯, 바람을 거슬러 자기 몸을 돌리는 바람개비가 되어 맞바람을 타는 자전거는 나의 안간힘으로 힘겹게 구름을 벗 삼아 앞으로 굴러나간다. 얼마나 페달을 더 밟아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기에 가능한 한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낸다. 불온한 욕심보다 온전한 욕망이 앞설 때, 지금 여기를 주시하면서도 내가 가 있어야 할 내일의 저기를 무시하지 않고 더 간절히 염원한다. 그럴 때마다 페달을 밟기위해 바쁜 건 두 바퀴를 돌리는 두 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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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오르는 물에도 나름의 사연과 진실이 있다. 외부로 드러내 보이지 않고 안으로 숨기고 있었을 뿐, 뜨거운 내면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었다. 완주(完走)나 종주(縱走) 보다 더 소중한 의미와 가치는 두 발로 밟은 페달의 힘으로 평소 만나지 못했던 우리 땅의 숨은 비경을 만나면서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보는 온주(穩走)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목표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여정에서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배움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출발 전에 가졌던 막연한 부산의 낙동강 하굿둑이 세찬 바람을 뚫고 다리를 건너온 나를 깊은 포옹으로 맞이해주었다. 김지영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마지막 대사, “이룰 수 없어서 눈물이 난다”가 나에게는 지금 이 순간 “이룰 수 있어서 눈물이 난다”로 바뀌어서 내 심장을 파고든다.


“암술에 도착한 꽃가루가 기적이듯이” 두 바퀴를 구른 두 발의 힘으로 633Km를 달려온 지난 4박 4일간의 여정도 기적이다. 부산까지 오는 데 몇 번의 페달을 밟았으며, 그 사이 자전거 두 바퀴는 서로를 응원하며 몇 바퀴를 돌았을까. 두 바퀴가 품은 산과 강, 하늘과 바람의 합작품이 아름다운 길의 추억으로 번역되어 내 몸에 문신처럼 새겨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흐르는 강물, 굳건한 다리, 매몰찬 바람, 해맑은 하늘, 흔들리는 갈대, 정처를 잃은 낙엽, 중천에 뜬 해를 벗 삼아 자전거 두 바퀴와 나의 두 발로 마침내 이룩한 또 다른 도전, 온몸을 휘감는 깊은 감동의 선율이 귓가에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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