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사고(事故) 덕분에
낯선 사고(思考)가 잉태된다

섬진강 자전거 길을 종주하고 나서

색다른 사고(事故) 덕분에 낯선 사고(思考)가 잉태된다:

섬진강 자전거 길을 종주하고 나서(2021년 10.9일-10.10일)


전국 자전거길 가운데 자연미를 가장 잘 살린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는 시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자전거길이 아니었다. 출발부터 어긋나는 사건과 사고의 연속으로 기억되는 문제풀이의 자전거 길이었다.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에 있는 강진 공용버스터미널로 가야 섬진강 생활체육공원 인증 부스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동료가 예매한 고속버스표대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 있는 강진 버스여객터미널로 출발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3시간쯤 타고 내려갔을 때쯤 갑자기 같이 간 동료가 버스를 잘 못 탄 것 같다고 했다. 섬진강 근처의 전북 강진이 아니라 바닷가 근처의 전남 강진으로 가는 버스를 잘 못 탔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미 벌어진 일을 성찰해보고 지금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숙고한 다음 결단을 내렸다. 전남 강진으로 가는 도중에 전북 정읍에 있는 태인 요금소에서 고속버스 기사님께 말씀드리고 중도 하차했다. 다행스럽게 고속버스 기사님은 우리들의 간절하고 갈급한 요청을 들어주셨다. 갑자기 고속도로 요금소 입구 전에 정차한 고속버스에서 자전거를 짐칸에서 꺼낸 다음 요금소를 빠져나와 태인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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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운 일이 마음을 다잡게 만들어주는 희망이 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두 가지 대응방식이 있다. 하나는 문책형 질문을 통해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으며 누구 잘 못으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를 따져 묻는 방식이다. 문책형 질문과 전혀 다른 대응방식을 택하는 사람이 있다. 난국을 돌파할 최선의 대안을 모색하면서 주어진 문제나 위기 상황을 탈출하는 학습형 질문 방식을 채택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누가 잘 못을 범했고, 무슨 일 때문에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를 추적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이상적인 대응방식을 찾아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주어진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구사한다. 문책형 질문을 던지면 상대는 심리적으로 불안감과 걱정에 휩싸이고 상황은 설상가상의 악순환으로 이어지지만 학습형 질문을 던지면 상대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고 동일한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다짐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배운다. 우리는 상황 탓을 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가급적 빨리 탈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덕분에 고속도로 요금소 입구에 버스를 세워놓고 자전거로 다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초유의 경험을 했다. 낯선 사고(事故)가 나에게 색다른 사고(思考)를 잉태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 삶에서 사고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불가능하다. 사고와 실패, 좌절과 불안, 실망과 절망의 얼룩과 흔적이 삶을 아름다운 무늬와 깨달음의 향연으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보통 잘 아는 것을 선택하지 낯선 것은 선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우리는 충격을 받거나 실망하거나 단순히 다루기 곤란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실망과 경악을 안겨주는 그 모든 미지의 것들이 바로 우리를 가장 살찌우는 것들이다.”(139쪽). 앤 머로 린드버그의 『바다의 선물』에 나오는 말이다. 목적지로부터 멀어지고 있고 실망스러운 일이 발생했지만 뒷수습을 어떤 자세와 태도로 해내는지에 따라서 걸림돌은 얼마든지 인생의 소중한 디딤돌로 바뀔 수 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조경회사 트럭에 붙어 있는 사장님 전화번호를 발견하는 순간 대책이 떠올랐다. 무조건 전화를 해서 섬진강댐 인증센터까지 가자고 부탁을 드렸다. 바로 앞 건물에서 식사 중이시던 사장님은 직원에게 부탁해서 우리를 섬진강 자전거길 인증센터 앞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셨다.


물론 약간의 교통비를 준다는 조건으로 순간적인 협상을 끝낸 다음 무사히 섬진강 자전거 종주길 출발선상에서 서게 되었다. 우여곡절이라는 절이라도 들려야 색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체험적 깨달음의 연속이다. 본격적인 자전거 여정을 떠나기 전에 섬진강 근처의 임실에서 나오는 치즈와 주인님의 사랑 가득한 도라지차를 곁들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쉼터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감성과 시심의 고향, 섬진강 자전거길을 향해 그리움과 설렘의 이중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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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구름, 그리고 산을 벗 삼아 섬진강은 오늘도 방랑하는 예술가가 된다


섬진강댐 인증센터에서 장군목 인증센터까지 가는 자전거길은 하늘과 산이 맞닿아 형형색색의 컬러와 천차만별의 모습을 띠는 하늘과 산의 이중주곡을 듣는 기분이었다. 하늘이 산을 전경으로 띄워주었다가 다시 하늘의 빼어난 자태를 산이 반쯤 가려주는 형상이었다.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지만 나와 친구의 다정한 라이딩을 시심이라도 하듯, 하늘은 늘 산 뒤에서 우리를 흘겨보고 있다. 하늘이 산 뒤에서 우리들의 라이딩을 훔쳐보는 사이, 산은 하늘 앞에서 그런 하늘의 음흉한 자태를 일부라도 가려주려는 듯, 어둔 그림자를 지닌 채 변함없이 우리들 곁에서 시종일관 지키고 서 있다. 눈길이 벗어나면 하늘은 산 뒤에서 구름과 짝사랑을 나누는지 잠시 얼굴색을 바꾸다가도 방향을 바꿔서 쳐다보면 구름에 하늘을 싣고 어디론가 유유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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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을 횡단하던 구름이 산 중턱에 걸려 넘어질 때, 산은 구름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다시 하늘로 떠나보낸다. 그 사이 섬진강은 하늘과 구름, 그리고 산이 나누는 한나절의 노변 방담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흐르는 방랑하는 예술가 같다. 자신이 어디서 발원해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괘념치 않고 그저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자세를 낮추고 세상 만물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워 나간다. 자신의 운명을 흐르는 물길에 맡겨놓고 돌멩이를 만나면 구성진 선율로 밑바닥으로 잠기는 음악을 선물하고, 바람을 만나면 꿈과 희망의 전주곡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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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만나면 갈증이 해소될 때까지 물을 먹여주고, 강가에 갈대에게는 남몰래 조용히 땅 속으로 물길을 내어 흔들려도 뒤흔들려 뿌리가 뽑히지 않게 뿌리에게 힘을 건네준다. 갑자기 방향이 바뀌면 준비된 몸으로 S자 곡선미를 선보이며 유려한 자태를 보여주다 앞길을 막는 보 앞에서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주변을 맴돌다 때가 되면 높이에 관계없이 뛰어내린다. 뛰어내린 강물은 먼저 아래로 떨어진 동료 강물들의 도움에 힘입어 몸을 던져 내려 뛰지만 모두가 안전하게 착지하고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다시 흐르던 힘을 모아 앞으로 향한다. 이따금 강물에 뛰어들어 낚시하는 사람에게도 안부를 전하고 어린 물고기는 잡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한다. 다 잡아가면 마음을 다잡을 수 없다고 강물은 낚시하는 사람에게도 지금까지 흐르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를 조용히 전해준다.


새들이 먹이를 구하러 강물 어귀에 기다릴 때는 물고기를 몰아다 새에게 신호를 준다. 기회를 엿보던 새들은 때가 왔음을 감지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먹이를 구한다. 그 광경을 목격한 강물은 저만큼 뒤에서 무언의 박수소리로 화답한다. 물가에서 서서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는 나무에게는 멀리 가지 못하고 늘 자신들의 곁에서 지켜주는 한결같음에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겨울이 와도 춥지 않게 햇빛으로 몸을 따습게 만들어주는 하늘의 중심, 태양에게도 활짝 웃는 미소로 고마움을 전한다. 한 순간도 헛되지 보내지 않는 섬진강 물은 사물이나 현상의 물리법칙을 몸으로 익힌 듯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유유자적 흐르며 족적을 남긴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 예술적 상상력을 키워준다


장군목 인증센터에서 인증숏을 찍은 다음 방랑하는 예술가, 섬진강의 자태와 매력에 빠진 나는 다음 목적지, 향가 유원지 인증센터로 가면서 변함없이 흐르며 우리들을 변화시키는 강물의 위대한 정신과 맑은 영혼에 샤워를 한 듯 몸도 맘도 한결 가볍게 라이딩을 계속했다. 얼마쯤을 갔을까. 갑자기 뒷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범상치 않고 몸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펑크가 나서 바람이 빠지지 땅 위를 구르며 굴러가던 바퀴가 더 이상의 동력을 잃고 주저앉은 것이다. 라이딩 중에 만난 첫 번째 펑크였다. 난감했지만 다음 목적지인 향가 유원지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1.5Km를 걸어서 향가 유원지 센터에 도착, 우선 저녁노을이 되기 전 마지막 열기를 내뿜는 햇빛을 뒤로하고 인증 도장을 찍고 인증숏을 남긴 다음 허기진 배를 채우며 대책을 찾았다. 향가 유원지 센터 매점 사장님이 나름 많은 라이더들의 다양한 고충을 겪어보셔서 난국을 타개하는 좋은 방법이 없는지를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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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망 가득한 답변이 허공의 메아리로 날아갔다. 고민 끝에 택시를 불러 가까운 시내 자전거 수리점으로 가기로 했다. 2-30분 후에 범상치 않은 택시 한 대가 도착했다. 차 지붕 위에 자전거를 두 대 매달고 자신이 잘 아는 자전거 수리점으로 데려다주었다. “자전거 가게 사장님과 요가 선생님은 무조건 좋은 사람이다. 이것은 내가 가진 오래된 선입견 중 하나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이 선입견은 더욱 강화되는 중이다. 자전거 가게 사장님들은 바람을 넣어주거나 안장 높이를 아무렇지 않게 조절해준다. 돈을 내려고 하면 훠이훠이 쫓아낸다. 요가 선생님들은 흔들리는 코어 속에서 어떻게든 자세를 잡아보려는 수강생들을 너그러이 안내한다. 안 되는 건 무리하게 하지 말라고 재차 알려준다. 살면서 불친절한 자전거 가게 사장님이나 강압적인 요가 선생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아직 잘 모르는 네게 이 정도는 해주는 게 먼저 배운 나의 도리다” 같은 관대함이 느껴진다“(270쪽). 강소희, 이아리의 《내일은 체력왕 - 땀 흘리는 여자들의 근력 연대기》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일을 워낙 많이 겪어보신 내공이 몸에서 묻어나는 듯, 택시 기사님은 걱정하지 말고 펑크를 때운 다음 오늘은 일찍 자신이 소개해주는 모텔에 묵은 다음 편안히 저녁을 먹고 내일을 기약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펑크를 때운 다음 택시 기사님은 내 자전거 핸들이 약간 뒤틀렸다고 하시면서 즉석에 능숙한 솜씨로 바로 잡아 주셨다. 택시를 타고 모텔로 가는 중에도 쉬지 않고 핸드폰이 울렸다. 주변의 라이더들이 자전거를 옮겨달라는 요청이 폭주하는 것이다. 이 분은 주변의 자전거 수리점, 모텔, 음식점과 종합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놓고 자전거 돌발사고에 대비하는 종합적인 식견과 안목을 지니고 있다. 그냥 택시 운전수가 아니라 자전거길 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해결하고 자신의 차로 원하는 장소까지 이동시켜 주면서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사람에게 적기에 제공해주는 종합적인 해결책 제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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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텔에 자전거를 남겨놓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삼겹살 집에서 낮동안 방출한 지방을 흡입해서 원상 복귀시켜 놓았다. 거기다 소주와 맥주와 융합되어 높이는 칼로리는 우리가 힘들게 태양빛에 태워 날려 보낸 체지방을 순식간에 채워주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다. “굴욕과 식욕을 구분하면서 똥개는 비로소 개가 된다”는 이현승 시인의 똥개라는 시구절은 왜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것일까. 삼겹살이 담고 있는 겹겹의 인생의 사연을 나누면서 즐거운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알코올 기운이 간에 기별을 전해주지 않은 듯 근처 편의점에서 와인을 공수해다 마시는 것은 어떨까라는 기발한 발상이 떠올랐다. 택시 기사님이 공수해오신 와인은 그저 포도주스를 상회하는 달콤한 화이트 와인 주스였다. 다음날을 기약하면서 하루를 오늘 있었던 사고를 정리하면서 배운 교훈 덕분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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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하는 순간 얼룩진 과거는 미래의 상상에 묻히기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 종주를 다시 준비하면서 주섬주섬 가방도 챙기고 옷가지도 입어보면서 방을 나서려는 순간 헬맷이 없어졌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여러 가지 추정상 어제 펑크를 때우기 위해 택시를 불러 자전거를 싣고 간 향가 유원지 센터에 헬맷을 두고 택시를 탔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펑크난 자전거를 어떻게 하면 빨리 때울 곳으로 갈 것인지가 머릿속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머리에 썼던 헬맷은 잠시 머릿속에서 떠나 내 머리를 벗어난 것이다. 두 가지 선택지에서 잠깐 고민을 했다. 새벽 6시니까 다시 한 시간 남짓 자전거를 타고 어제의 사고의 현장으로 추정되는 향가 유원지로 인증센터로 가서 헬맷이 있는지 확인하는 길과 그냥 헬멧 없이 나머지 자전거길을 종주하는 길이다. 순간 다시 난감한 기분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까지 온 길보다 앞으로 갈 길이 많은데 과연 헬멧 없이 갈 수 있을지가 고민이기 때문이다. 잠깐 고민하다 헬멧 없이 나머지 섬진강 자전거길을 종주하는 방향을 택했다. 먼동이 트기 전에 새벽길을 달리는 자전거 길은 참을 수 없는 실수의 무거움과 달리는 자전거로 달려드는 새벽 공기의 참을 수 없는 서늘함 사이에서 앞날을 걱정하는 기분이 페달을 무겁게 밟아나가며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스펙트럼의 연속 길이었다. 과거는 흘러가면 그만이지만 흘러간 과거는 앞길을 가로막으며 앞으로 다가오는 얄미운 추억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전거로 섬진강길을 따라 오늘의 종착역까지 가는 여정을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지금 당장 결연하게 결정하고 행동하면 어제의 뼈아픈 실수와 아픔도 목적에서 불어오는 희망의 무늬로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를 달 것이다.



자전거 종주길에 나선 모든 라이더 중에서 헬맷을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뿐인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헬멧 없이 라이딩을 하는 행동은 그 자체가 위험하지만 헬멧을 핑계로 라이딩을 포기하는 일은 나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타협이었다. 그래서 허전한 머리를 뒤로 한 채 이마라도 태양빛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보았다. 궁즉통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실마리이자 가능성의 텃밭이다. 궁여지책으로 마스크로 이마를 가리고 선글라스로 눈을, 그리고 목토시로 얼굴 전반과 목을 가려보았다. 코와 입을 막아야 하는 마스크는 이제 목적의식을 상실하고 용도변경을 수용했다. 마스크는 자외선으로부터 이마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도구의 기능을 바꾼 상태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상상해보라. 헬맷은 없는데 이마에는 하얀 마스크가 둘러져 양 쪽 귀에 걸려 있고 까만 목토시로 얼굴을 가린 채 까만 썬 글라스로 무장한 라이더가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장면을 연상해보라.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맥가이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금 당장 가용한 지식과 도구를 변형 적용해서 목적을 달성하듯 지금 나에게도 필요한 것은 오늘의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바람이 허전한 머리를 시원하게 날려주면서 머릿속에 들어앉아 고민을 거듭하며 걱정의 끈을 놓지 않는 생각의 주인에게 그래도 괜찮다는 안심과 위로의 메시지를 계속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럼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는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두 바퀴 힘으로 구르는 자전거로 섬진강의 방랑하는 예술가적 기운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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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에는 한 시대의 역사적 흔적이 담겨 있다


향기 유원지에서 횡탄정 인증센터로 가는 길도 섬진강이 시인의 강이자 하늘의 강이며, 소리의 강이자 노을의 강을 연상케 하는 듯,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의 시심을 그대로 전수받아 동심으로 섬진강 주변을 녹여내는 듯하다. 하지만 섬진강 범람으로 자전거길이 유실된 곳에서 길을 헤매기도 했다. 지도대로 갈 길을 찾지 못하면 주변의 정황과 산세, 길의 방향감각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서 지형을 감지하는 수밖에 없다. 지도를 버리고 지형을 파악하지 않으면 없어진 길에서 새로운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섬진강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는 곳’이라고 노래했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데미샘’이 발원지다. 이 작은 옹달샘은 진안 산골에서 실개천을 이루고, 임실군에 와서는 비로소 샛강으로 변하여 하늘 호수인 옥정호(玉井湖)를 만들어 남도 600백 리 섬진강을 이루었다(출처: 굿모닝충청(http://www.goodmorningcc.com). 횡탄정은 동쪽으로 흐르던 섬진강이 요천과 합류하면서 갑자기 흐름을 바꿔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물굽이가 내려다 보이는 뇌죽마을 나지막한 언덕에 있다. 횡탄정 뒤쪽에는 섬진강변이면 흔히 볼 수 있는 대숲이 바람을 타고 나지막이 노래하고 있다. 횡탄정(橫灘亭)은 시심을 품고 흐르는 아름다운 섬진강변 바로 곁에 자리 잡은 단층 팔짝 지붕의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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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흐르면서 노곤한 강물도 잠시 머물러 한숨이라고 쉬라는 듯 횡탄정은 흐르는 강물과 같은 방향으로 누워서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앞만 흐르던 섬진강의 허리가 휘어지면서 횡탄정 앞에서 잠시 여유와 여백을 그리고 휘어져 흐르기 때문에 횡탄정이라는 정자 이름이 탄생했던 것 같다. 이달(李達)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이요 유식한 방랑시인이었던 옥봉(玉峯) 배광훈(白光勳)이 읊은 한시는 횡탄정이 품고 있는 처량함과 한탄을 읽는 이로 하여금 경탄으로 번역해서 읽게 만드는 놀라운 감동을 만들어준다.


난간 너머 순자강에

노을빛은 쓸쓸히 일렁이고

대숲 사이 숨어 있는

오두막엔 사람 기척이 없네.


여울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사이로 스며드는

교교한 달빛이 미치도록 아름다워도

다 부질없어라.

기다리는 그 사람은 어디쯤 오시는지.


江上斷橋空夕照 竹間茅屋半蒼苔

滄浪雲破有明月 彼美一人來不來


앞모습은 꾸밀 수 있지만 뒷모습은 꾸밀 수 없다


횡탄정에서 잠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정자에서 숨을 돌린 섬진강은 한 많은 서글픔을 안으로 숨긴 채, 곡성을 중심으로 한 바퀴 휘돌면서 뒤편의 동악산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그 사이 강가에 서 있는 나무들이 무심하게 한낮의 지루함을 건너며 어제와 다른 강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횡탄정 인증센터에서 사성암에 이르는 길은 섬진강변의 고즈넉함을 만끽할 정도로 라이더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했다. 사성암으로 가는 자전거길은 구례의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멋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음으로 입을 다물게 할 정도로 낮은 산세가 지친 여객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했다. 사성암은 CNN에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 중의 하나로 선정된 구례에 위치한 암자다. 원효를 비롯해 의상,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했던 사찰이기도 한 사성암은 절벽에 법당을 만들어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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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에서 남도대교고 가는 길은 저 멀리서 지리산의 영기가 느껴지는 듯, 바삐 페달을 밟는 라이더들에게 먼산이라도 바라보며 피로를 식히라는 눈길을 보낸다. 섬진강변을 따라가는 섬진강 자전거 길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섬진강변에 노니는 백로와 왜가리가 추임새를 넣고 지나가는 바람에 지리산 줄기에 막혀 통곡하는 곡성에서 가을의 낭만을 품고 익어가는 구례 마을의 감이 합주하는 대자연의 음악을 타고 흐르는 시인의 길이다. 침묵으로 흐르지만 시를 읊고 노래하며 화개장터에 이르면 자연의 기운이 일제히 춤을 추듯 신명 나는 기운이 온천하를 수놓는듯하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을 어루만지듯 섬진강은 지리산에서 시작한 화개천과 만나 극적 상봉의 기쁨을 누리는 곳, 바로 화개장터에서 우리는 모두 지난 시절 살아오며 떠나보내지 못한 원한과 회한을 이곳에서 버무려 섬진강으로 흘려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같이 라이딩을 즐기면서 인생 중반전을 넘어서 아름다운 삶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를 함께 고뇌하는 친구가 앞으로 나가면서 질주를 시작한다. 자전거 타는 뒷모습에서 그 친구의 살아내려는 비장한 모습을 본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또 하나의 표정/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나태주 시인의 뒷모습이라는 시의 일부다. 자전거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다 보면 앞사람의 자전거 타는 뒷모습을 본다.



앞모습은 꾸밀 수 있지만 뒷모습은 꾸밀 수 없다. 앞모습은 위장이 가능하지만 뒷모습은 위장이 불가능하다. 앞모습은 꾸밈의 대상이지만 뒷모습은 가꿈의 대상이다. 꾸밈은 없는 걸 있어 보이게 위장하고 치장하는 소모적 행위라고 한다면 가꿈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성장을 위한 솔직 담백한 생산적 자기표현이다. 한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이 심장이 올라와 있듯, 한 사람의 뒷모습에는 삶을 대하는 그 사람의 입장이 조용히 드러나 있다. 힘든 상황에서도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안간힘이 보는 사람에게는 비장한 각오로 보인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또 다른 안간힘이 바람과 함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의 심장에 꽂힌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지금 버티고 견디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뒷모습에 아로새겨져 있다. 바람을 갈라 앞으로 나가려는 힘겨운 뒷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결연하지만 아련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 머리에서 돌아가는 복잡한 현실, 그리고 가슴에 품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막막한 심정을 3중주로 연주하며 두 바퀴가 돌아가는 회전 곡선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인다.



핸들을 굳게 잡은 두 손에는 어떤 시련과 난관도 극복해내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핏줄을 타고 흐른다. 그 사이 양팔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전류가 온몸을 휘감으며 주변의 풍광을 몸으로 받아들여 녹여낸다. 힘들지만 어쩌겠나. 언덕을 오르며 땀 흘리고 내려가며 힘든 삶을 잠시 내려놓는 고통과 환희 사이 어딘가에서 어제와 다른 삶을 변함없이 시작하는 앓음다운 친구의 뒷모습이 묻어나 보여서 믿음직하다. 비스듬히 구부린 등 뒤로 짊어진 무게가 잠시 미끄러져 내린다. 올곧게 세우려는 허리에 세상의 진리가 수시로 바람을 타고 날아든다. 아랫배에 품은 배짱이 코어 근육과 기립근 사이에서 굳게 자리 잡은 사이, 장딴지를 타고 내려가는 힘은 성장과 전진을 넘어 성숙과 정진을 약속한다.


오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뒷모습을 보고 힘을 얻고 있을지 모른다. 등에 담긴 암묵적 메시지를 읽고 등 대고 싶은 인연으로 비칠지, 등지고 악연을 이어갈 사람이 될지는 내 뒤를 얼마간이라도 따라온 사람은 알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가 영원히 반복될지라도 들뢰즈의 어제와 다른 차이를 반복하며 의미를 찾으면 되지 않겠나. 오늘과 다른 내일의 라이딩이 어제와 다른 낯선 마주침을 선물로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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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주택에 입주해서 사료를 먹는 직장인인가,

집에 거주하면서 음식을 먹는 장인인가


사성암에서 남도대교 인증센터로 가는 섬진강은 여전히 시를 쓰고 하늘의 구름은 시 쓰는 강물에게 하늘에 펼쳐진 그림으로 화답한다. 백로와 왜가리는 노래하고 지나가는 바람은 강가의 나무와 풀들에게 춤을 추게 만든다.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섬진강은 나도 모르게 시인의 입장이 되어 자연을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의 뒤안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사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어제’는 ‘어? 제일’ 좋았던 날이고, ‘오늘’은 ‘오! 늘!’이고 ‘내일’은 ‘내 일’을 하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꿈의 미래다.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일탈의 즐거움 속에서 내가 늘 추구해왔던 삶의 지향점을 돌이켜보고 내다본다. 일전에 <문화방송(MBC)>의 '나 혼자 산다'에는 철학박사 강신주가 출연해서 발터 벤야민을 참고하여 '사료와 식사'를 구분해 설명할 때 깊은 통찰을 얻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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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는 먹고살기 위해 '의무감으로 먹는 것'을 의미하고, 식사는 '스스로를 위하고, 서로 간의 보살핌 속에서 먹는 것'이라고 했다. 동물에게 먹이는 사료의 목적은 인간이 원하는 동물을 살 찌우기 위해서 먹이는 것처럼 사람이 먹는 음식이 사료로 둔갑하면 마지못해서 억지로 때우는 한 끼의 음식 먹는 노동에 불과하다. 반면에 식사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가장 즐거운 순간일 뿐만 아니라 먹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만끽하는 가운데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는 최고의 행복한 시간이다. 식구(食口)라는 말도 밥(食)을 같이 나눠 먹는 입(口)이라는 뜻이다. 식구가 화목(和睦)해지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은 주기적으로 밥을 함께 나눠 먹는 식사를 할 때다. 사료는 생존을 몸부림으로 밥 먹을 시간 조차 없을 때 그럼에도 노동을 이어가기 위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강제로 몸에 집어넣는 음식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의 아침 식사는 이제 하루를 버티기 위해서 빠른 시간에 몸에 집어넣는 사료가 되었다. 심지어는 그런 사료 조차 몸에 집어넣을 수 없는 시간이 없어서 운전하면서 짜 먹는 죽을 사료로 대용하는 직장인도 있다. 사료를 먹는 사람은 집(home)에 거주하기보다 주택(house)에 세 들어 살아간다. 발터 벤야민의 '사료와 식사'의 차이는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의 '주택과 집'의 차이에 상응한다. 그는 주택이 사람이 짐과 가구를 보관하는 물리적인 장소라면, 집은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하면서 내면의 힘을 키워줄 수 있는 창의적인 터전이라고 했다. 이반 일리치는 시멘트와 벽돌로 건물을 짓고 그 속에 가구나 기타 편의시설을 물리적으로 배치한 상자"를 주택이라고 했고, 집은 거주자의 따뜻한 온기가 흐르고 더불어 살아가는 희망의 연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기억의 장소라고 했다. 일리치는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에서 집에서 거주하는 정주(定住)를 강조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대지에 뿌리박고 정주하던 거주자였지만, 지금은 대량 생산된 주택이나 건물에서 다양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법적 문제가 없을 때 비로소 공동주택 소비자로 정식 등록된 입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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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인은 주택(house)에 살고 있을까, 집(home)에 살고 있을까. 삶의 자존감을 상실할 정도로 급하게 사료를 먹듯 끼니를 해결하는 것처럼, 현대 도시인은 집을 가꾸는 능력 또한 잃어버렸다. 주택에 가전제품과 전자기기를 채워 넣기에만 급급하다. 경제적 가치를 먼저 생각하다 보니 끊임없이 이사를 다녀야 하고, 온전한 의미의 집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이반 일리치는 집의 조건은 정주(定住)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정주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흔적 속에 깃들여 산다는 뜻이었고, 그날그날 살아가며 자신의 일대기를 한 올 한 올 풍경 속에 적어 넣는다는 뜻"(『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75쪽)이라고 했다. 정주하지 못하면, 자신의 숨결을 집에 불어넣지 못한다. 오히려 주택에서 사육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 “내가 지나온 길/나를 지나간 길”이라는 함민복의 시인의 《우울 씨의 일일》에서 한 시인의 말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해봤다. 내가 지나온 길을 나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지나온 길이지만 나를 지나간 길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나온 길이 지나갈 길을 알려주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길에게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물어보고 싶다. 왜냐하면 과거는 오래된 미래니까. 동시에 “나는 얼마나 더 나를 틀려야 내가 될 수 있을까/우리는 얼마나 더 우리를 맞춰야 우리가 될 수 있을까/질문의 장대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를 생각해보았다. 함민복 시인이 같은 시집에 나오는 ‘방점 찍기’라는 시의 일부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감성의 길이기도 하지만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을 질문의 장대비에 흠뻑 젖게 만드는 사색과 질문의 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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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事故) 덕분에 내 사고(思考)가 바뀌었다


마지막 매화마을 인증센터에서 배알도 수변공원 인증센터까지 가는 길이 섬진강과 하늘과 산이 합작한 풍광의 유혹에 못 이겨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놓으려고 자전거를 멈추다 넘어지고 말았다. 팔꿈치에 영광의 상처가 붉게 물든 무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하늘의 자태를 부끄러워하는 듯, 하늘 중턱까지 솟은 산이 내가 넘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는지,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고 탈 수 없는 인생 묘약이라고 일러준다. 그 밑으로 강물은 넘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넘어지고 일어서지 않는 게 문제라고 속삭인다. 오늘의 목적지 배알도 수변공원에 상경버스 출발시간, 오후 4시 50분보다 일찍 도착했다. 사도(蛇島), 즉 뱀 섬으로도 불리어 오던 배알도는 태인동 가장 북쪽이자 섬진강 하구에 있는 0.8ha 면적에 높이 25m에 불과한 조그만 바위섬이다. 배알도는 맞은편에 있는 망덕산을 향해 절을 한다는 의미에서 배알도라는 명칭이 유래됐다고 한다(출처 : 광양시대신문(http://www.gytimes.kr).


‘배알’은 속마음이나 창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지위가 높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가 뵌다는 의미 외에도 ‘자기만의 생각이 자리 잡은 가상의 처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시작하여 전라남도를 거쳐 경상남도 하동을 지나면서 자신을 기다렸던 바다에게 그동안의 희로애락을 송두리째 던지고 섬진강은 배알도에서 그간의 여정을 돌이켜 본다. 강물은 낮은 곳으로 임하면서 자신과 만나는 모든 삼라만상을 배알 하며 스승으로 대하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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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알도 수변공원 인증센터에서 사연 많은 자전거를 높이 치켜들고 인증숏을 찍은 다음 유인인증센터에 가서 그동안 국토 종주하면 탔던 자전거 라이딩 기록을 확인하고 도장을 받았다. 광양 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불러 자전거를 싣고 도착한 우리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파란만장했던 오늘 하루를 소회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밤 10시는 넘어야 서울에 도착할 수 있어서 일찍 저녁을 먹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해보니 우리가 원하는 버스는 이미 출발했다고 한다. 출발시간이 4시 50분이 아니라 4시 30분이란다. 친구가 출발 시간을 잘 못 본 것이다. 올 때 버스와 갈 때 버스가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 된 셈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섬진강 자전거 여정은 사고에서 시작해서 사고로 막을 내리는 사연 많은 자전거 여정이 될 것이다. 급히 버스 노선을 다시 알아보니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는 성남행 버스가 있다. 조금 기다렸다가 성남행 버스에 몸을 싣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감성의 강, 섬진강 자전거 길에서 사건과 사고도 많았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기고도 남을 만큼의 값진 교훈을 몸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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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事故) 덕분에 내 사고(思考)가 바뀌었고 사건(事件) 덕분에 색다른 사유(思惟)를 잉태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이제 곧 진정한 삶이 시작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 앞에는 온갖 방해물과 급하게 해치워야 할 사소한 일들이 있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일과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끝내고 나면 진정한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런 방해물들과 사소한 일들이 바로 내 삶이었다는 것을.” ‘사랑하라 한 번도 사랑받지 않은 것처럼’의 저자 알프레드 디 수자가 남긴 명언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숱하게 경험한 사건과 사고가 끝나는 지점에서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그런 사건과 사고를 겪는 과정 자체가 나의 삶이고 배움의 터전이다. 삶은 모든 순간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계기로 다가온다. 나는 섬진강 자전거 길 위에서 다시 한번 나는 자전거는 움직이는 인생학교임을 배웠다.


매화마을에서 배알도 수변공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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