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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루한 삶의 이야기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곤경도 지나고 나면 풍경이 됩니다

남루한 삶의 이야기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나무생각, 한 순 대표님 페북 글을 보고 바로 주문을 걸었던 책, “삶이 구차하고 남루할수록 농담은 힘이 세다”는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김현진 작가의 책,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를 단숨에 읽었다.


아니 단숨에 읽다가 깊은 한 숨을 몰아쉬며 목숨 걸고 살아온 저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중간중간에 저자의 삶에 내 삶을 이입시켜 잠시 과거의 추억을 소환해서 몸을 떨기도 했다. 살갗을 파고드는 진솔한 고백과 그 이면에 담긴 저자의 감정 절제가 더 가슴을 울리게 만든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밑바닥 삶에서 심한 우울증을 견뎌내며 살아내려는 안간힘 속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아픔과 슬픔의 이중주가 오히려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지지만 그 감동은 다시 독자도 의식하지 못하게 조용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남루한 삶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진한 교훈이지만 힘든 삶을 살아가는 독자의 짐을 내려놓게 무장 해제시키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며 작가의 삶에 인생의 시기마다 결정타를 날리는 사람은 아버지다. 부모님 덕분에 고생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목사님 아버지는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부모교육 신념을 철저하게 믿었다. 너무 자주 많이 맞으면서 큰 저자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사랑했다. 사랑했지만 용서할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지만 사랑했다”(189쪽). 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한 세상으로 다가오지만, 딸에게 아버지는 한(恨) 많은 세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살아온, 살아가는 삶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손으로 정직하게 돈 버는 노동의 맛을 아버지의 생이 이제야 안쓰럽다. 노동의 맛을 모르면 겁쟁이가 되고, 겁이 많으면 자연스레 나약해지기 마련이니까”(196쪽). 자기 몸을 던져 힘든 노동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험난한 인생의 파고를 넘어서기 어렵다. 남루한 삶 속에서 비루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저자의 삶의 단면을 마주할 때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기억을 오늘로 소환시켜 더듬어 보면 곤경이었지만 풍경으로 채색되어 다가온다. 저자에 따르면 그 순간 간신히 미소 지으며 어른이 되어간다고 한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오는 대사, “당신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살아왔어요”라는 대사를 인용하면서 저자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손길의 힘으로 힘든 삶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고시원 원룸이 몰려 있는 어느 골목을 지나가다 누군가 버린 세간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는 순간, 또다시 나의 고등학교 시절 추억에 담긴 깊은 주름이 잠시 펼쳐진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세간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술 먹지 않기

돈 아껴 쓰기

저금 꼬박꼬박

이뻐지기

엄마랑 빨리 같이 살기


이 문구를 보는 순간 기숙형 수도 전기 공고를 다니면서 마음속에 담고 다녔던 추억의 문구가 떠올랐다.


오늘은 담 넘지 않고 옥상에서 술 마시기

용접하다가 쉬는 시간에 한자 공부하기

어떻게든 오늘 하루 잘 버텨내기

술 조금만 마시고 일찍 자기

성문 종합 영어 조금 더 공부하기

선배에게 맞아도 울지 않기

괴로워도 담배 많이 피지 말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군대처럼 일석-일조점호를 취하고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단체 생활 속에서 후배 구타로 맞은 무기정학과 나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일찍 드린 덕분에 일찍 술과 담배를 친구로 삼아 힘들었던 한 때의 난국(?)을 돌파하려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일석점호가 끝나면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담을 넘어 개포동 일대 포장마차에 소주를 마시던 추억,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낮에 몰래 사다 숨겨놓은 술을 들고 옥상 물탱크에 올라가 동지들과 전의를 불태운 시절이 아련하다. 매일 일석점호를 할 때마다 선배들에게 이유 없이 맞아야 했던 괴로움에 술에 이어서 담배연기에 시름을 실어 날려 보냈던 시절, 지금은 금연하고 운동하는 습관으로 일상으로 돌아오긴 했다.


그 당시의 꿈은 오늘 하루 잘 버텨내기다. 오늘 하루를 아무 일없이 보낸다는 게 쉽지 않은 시절, 괴로운 과거였지만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과 보이지 않는 따듯한 손길 덕분에 오늘의 내가 되어 보잘것없는 스토리를 창작하고 있다. 남루한 삶이었지만 남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글을 써보기 위해 오늘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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