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하는 반올림입니다
쟁반 하나가 달이 된 밤엔 나무의 숨소리를 찍어 손바닥에 시를 쓴다
- 이기철의 ‘열치매 낟호얀 달’ 중에서 -
당신은 수많은 소수점 사이에서
위로 상승할지
아래로 추락할지 절체절명의
절벽 난간에서 몸을 떨고 기다리다
간신히 구사회생하는 반올림입니다
누군가는 반올림하는 사이에서
반항조차 못하고 하염없이 고개 숙이며
간신히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낯가림입니다
당신은 비좁은 서가에 꽂혀
지쳐 쓰러져 있다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힘겨운 책입니다.
누군가는 그 숨소리를 심장으로 듣고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대책을 세웁니다
당신은 늦은 밤 새벽으로 가는 길목에서
긴 한숨을 쉬다가 추위에 떨며
적막을 흔들어 깨우는 우렁찬 침묵입니다.
누군가는 그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하며
심장을 파고드는 한 곡조의 노래를 작곡합니다.
당신은 밤새 내린 눈 무게를 견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허공에 메아리치다
부러지는 잔가지의 처절한 신음소리입니다.
누군가는 그 신음에서 소음을 걸러내
소리로 번역하는 처량한 시인입니다.
당신은 펄펄 끓는 뜨거운 국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전신 화상을 입을 정도로
견딜 수 없는 열기가 온몸을 휘감아도
주인을 위해 묵묵히 퍼올리는
한 숟가락의 뜨끈한 국물입니다
누군가는 그 국물 속에서
국물도 없다는 말의 진의를
파악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애쓰기의 화신입니다
당신은 흙 묻은 신발로 짓밟혀도
그리움에 떨며 한마디 말도 못 하면서
천둥 번개도 맞고 비바람에 휩쓸리는
철없는 신발자국이 남긴 슬픈 과거입니다
누군가는 사람의 신발자국에서
결국 삶의 얼룩과 무늬로 직조하는 시인입니다
당신은 세월의 무게가 삶을 짓눌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험의 침묵이
전해주는 삶의 지혜가 씨줄과 날줄로
엮인 한 권의 책입니다
누군가는 그 책 속에서
지은이의 숨결에 잠 못 이루고
파묻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흐느낌입니다
당신은 비에 젖은 땅거미가
밀려오는 어둠의 문을 두드리며
앞산에 호소해도 아무런 댓구없이
아픈 경험을 토해내는 산울림입니다
누군가는 그 산울림에게도 따돌림을 당해
바람에 몸을 싣고 소리소문 없이
당신 주변을 맴도는 쓰라림입니다
당신은 힘없이 두드리는 손놀림에도
아픈 기색 없이 가슴앓이로 쌓인
서글픈 사연을 허공에 내던지며
세월의 이면을 전해주는
장구의 갈급한 굶주림입니다
누군가는 잔소리에도 귀담아 들어주며
떨리는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가슴 시린 맞장구입니다
당신은 무척 오랫동안 밤하늘을 밝히며
밤새 지나가는 새들의 길을 안내해 주다
떨쳐버릴 수 없는 갸륵함에 생긴
오갈 데 없는 주름입니다
누군가는 그 주름 속에서도
아픈 흔적을 더듬으며
이름값의 가치를 찾아내
스토리로 다듬어내는 소설가입니다
당신은 긴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눈이 오지 않아서 절치부심하던 바람만
얼게 만들어 움직일 수 없게 만들더니
종국에는 세상을 하얗게 질린 가슴으로 만들어버리는
야속한 속수무책입니다
누군가는 그 속수무책 속에서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안타까운 앞가림입니다
당신은 호기심의 물음표를 구부려 가슴에 품고
방황을 거듭하며 직선의 느낌표를 찾아다녔지만
세상 어느 곳에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하염없는 말없음표입니다
누군가는 아무 말하지 않아도
검정 넥타이 속에 담긴 사연 속에서
아픈 사유를 읽어내는 한 겨울의 눈발입니다
당신은 곤경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으려
바람조차 거부하며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의 안간힘이 보여주는
땀에 젖은 절경입니다
누군가는 절경 속에서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밤 깊은 줄 모르고 백지위에
생각의 흔적을 갈무리하는 뜨거운 체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