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소음도 소리로 번역하는 늦은 밤의 시인입니다
언제 소식이 올지 몰라도
시름에 겨워 서 있기조차 힘들어도
그리운 소식을 뜬눈으로 밤새 기다리는
붉은 옷 입고 기다리는 뜨거운 우체통처럼
당신은 안간힘을 쓰다가 어쩔 수 없이 떨어져서
주소 없이 흩날리는 안타까운 낙엽입니다
언제 질지 모르는 꽃잎을 어루만지며
피고 지는 세상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가르치다
한 눈 팔고 사랑에 빠진 햇빛처럼
당신은 꽃 찾아 삼만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10리 밖에서도 향기를 찾아 날아오는
한 마리의 나비가 전해주는 힘겨운 날개 짓입니다
이미 끝을 향해서 달려가는 1월에게
지난 중순경에 만난 우연은 무엇인지,
다가오는 2월은 어떻게 살지 계획을 말해달라고 해도
말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간의 흐름처럼
당신은 어떤 구름이 비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끌림으로
자기 존재를 10년째 침묵으로 말하는
겨울밤의 지치지 않는 자석입니다.
고민을 거듭하다 고뇌의 길로 들어선 만큼
떠오르는 단상이 시구절로 연결되지 않을 때
지나가다 흔적을 남기려는 바람결의 소식처럼
당신은 찬바람에 이불도 덮지 못하고
고개 숙여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안부 한 마디 묻지 않고
낮은 자세로 주저앉아 있는 서글픈 잔디입니다
골목 귀퉁이 어두운 밤 밝히며
홀로 서서 지나가는 나그네 가는 길
배웅하고 서글픈 심정까지 위로해 주는 전봇대처럼
당신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길목을 지키며
발목 잡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마저도
어루만져주며 길목을 밝혀주는 버팀목입니다
문득 책장을 여는 순간
지난가을부터 숨죽이며
책갈피로 꽂혀 있던
단풍잎 한 장의 희미한 추억처럼
당신은 그리움에 사무치고도 파묻히지 않고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영감을 기다리는
늦은 밤의 시인입니다
5일장 열릴 때마다
시장 한 모퉁이에 터를 잡고
해가 서산을 넘어가려고 해도
여전히 시장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처럼
당신은 힘들어도 소리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따듯한 손길입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눈보라가 찬 이슬보다 찬 공기를 몰고 와도
흔들릴지언정 결코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창문처럼
당신은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고뇌를 거듭하는 고목입니다
장미꽃이 아름다워 보일지라도
화려한 장미꽃에 주목하지 않고
장미꽃을 더 장미 꽃답게 아름다움이 드러날 수 있도록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안개꽃처럼
당신은 전경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드는 듬직한 배경입니다
누군가 아무렇게 문자를 뽑아서
아픈 곳만 찔러도 침묵을 유지한 채
세상의 아픈 사연과 슬픈 스토리를 다 들어주는 하얀 백지처럼
당신은 어떤 고통의 목소리도 다 받아주고
곱씹어 선율 고운 한 곡조 음악으로
돌변시키는 파도소리 작곡가입니다
먹구름만 먹다가 해맑은 날이 새는 동안
밤사이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하다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가 전하는 기쁜 기별처럼
당신은 흐린 날에도 숲 속의 나무가 꿈꾸는
낙화에도 변함없이 온몸을 떠는 붉은 입술입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도 따듯한 가슴으로 품고
사과가 바람에 떨어져도 상처가 생겨도
자기 살 도려내서 보듬어주는 겸손한 땅처럼
당신은 세상의 아픔에 손 내밀어주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건네주는
알 수 없지만 믿음을 먹고 자란 눈길입니다
늦가을 된서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새들의 공격에도 기꺼이 자기 몸을 내주며
나뭇가지 꼭대기에 위태롭게 매달린 마지막 씨과실처럼
당신은 절망적인 밤이 대책 없이 깊어가도
좌절하지 않고 새벽의 희망을 노래하는
밤하늘의 종달새입니다
만개한 꽃봉오리를 지지하다
하염없이 식은 열기로 어쩔 도리 없이
순식간에 바람결에 흩어지는 처절한 꽃잎처럼
당신은 설익은 열매가 땅에 떨어져도
놀라지 않고 눈시울 밝히며 함께 울어주는
이른 아침의 채송화입니다
저마다의 방향으로 뻗어나가다
장애물을 만나면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자기 갈 길로 찾아가지 치는 나뭇가지처럼
당신은 급류에 휘말려도 흐름을 타다
나무뿌리 부여잡고 살 길을 모색하는
불안하지만 느긋한 방랑자입니다
우연히 펼쳐 읽다가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전두엽에 불이 켜지다
숨이 막힐 정도로 전율하는 감동이 와도
참고 다음 구절을 아껴서 읽는 시 한 줄처럼
당신은 시련이 몰려와도 넘어질지언정
무너지지 않고 뛰는 가슴으로 다시 시작하는
절치부심의 디딤돌입니다
바람이 먹구름을 날릴 정도로 지축을 흔들어도
눈발이 지붕을 무겁게 짓누를 정도로 쌓여도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게
바람이 가장 세차게 부는 날 짓는 까치집처럼
당신은 영원히 머무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이 흔들어도 오히려 세상을 뒤흔드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온기품은 배움의 안식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