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찌할 수 없이 ‘흔들리는 물속에 떠 있는 달’(1)이다
저는 없는 게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은 ‘없음’은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하릴없이’나 ‘어찌할 수 없이’,
‘어처구니없이’ 세상을 살다
‘느닷없이’ 맞이하는 ‘속절없는’ 없음의 인생이다
나비가 날개 손짓하며
철없이 파란 하늘을 뒤흔드는 힘은
어찌할 수 없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 덕분이다
당신은 밤낮없이 뜬눈으로 밤의 찬가를 부르며
견디다 못해 떨어지는 낙엽의 슬픔을
몰려오는 삭풍에 남김없이 떠나보내는
종이의 마음이다
폭설이 일없이 내리는 한 낮 오후
먹구름이 유례없이 몰려오더니
느닷없이 비를 몰고 와
아낌없이 세상을 하얀 그리움으로 물들인다
당신은 두서없이 말을 걸어오는 책 속에서
하품이 남기고 간 하얀 고백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지나며
가없이 해독하는 천 가지 마음이다
추위가 살짝 기운을 잃고
넋 놓고 졸고 있을 때
길가의 개나리는
느닷없이 기지개를 켜더니
외로운 봄의 찬가를
하릴없이 지나가는 차에게 들려준다
당신은 절망이 솟구치는 겨울날에도
맥없이 고개 숙인 채로 희망을 잉태하며
변함없이 새봄을 맞이하려는 안간힘이다
바람에 사정없이 날리던 민들레 씨앗이
고대하던 땅의 끌림에 가던 길을 멈추고
정처 없이 방황하던 불안감으로
아낌없이 허공에 서명을 한다
당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버릇없이 하늘만 쳐다보다
기다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쓴웃음으로 바람에게 하소연한다
뜬금없이 문맥 속에서 떠오른
인두 같은 한 문장에 대책 없이 빠져들다
색다른 생각의 향연이
서슴없이 독자의 식은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어찌할 나위가 없을 만큼
가차 없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당신은 밤길을 걸어가다
여지없이 심금을 울리며
속절없이 사무치는 뜨거운 한 문장이다
아무리 노력한들 내 생각으로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을 끌어올 수 없고
비 온 뒤 영락없이 나타나는 무지개를
꾸밈없이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내게는 없다
당신은 삶의 텃밭을 경작하는 쟁기질을 하다
땅속 어둠을 뚫고 어쩔 수없이 밖으로 나와
당황하는 지렁이처럼 낯선 세상과의
느닷없는 만남을 경작하는 시인이다
눈 위에 찍힌 새들의 발자국이
무슨 사연을 품고 있는지
빠짐없이 그 느낌을 받아 적으려고 해도
여지없이 무너지는 언어 절벽 앞에
오늘도 꼼짝없이 주저앉아
삭풍을 견디는 돌멩이 가슴의 서글픔만 되새긴다
당신은 문고리에 걸린 노동의 흔적이
깊어가는 겨울밤의 외로움에 관계없이
변함없이 새벽을 잉태하는 부지런한 몸부림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알리 없는 소낙비들과
빈틈없이 짜인 계획도 맥없이 무너질 때
주책없이 세상의 지혜를 탓하는
늦가을 나뭇가지의 고백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당신은 말없이 집을 나서며
발소리에 남기는 애잔한 서글픔이며
정신없이 몸을 던져 춤을 추다
멈춤으로 자세를 낮추고
순간의 적막을 맞이하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침묵의 언어다
쓸데없이 나오는 재치기도 할 말이 있고
난데없이 등장하는 파리도 살아갈 이유가 있으며
어김없이 찾아오는 배고픔도 사연이 있는 법
실없이 웃다가 턱없이 이치에 닿지 않아도
어처구니없는 세상을 오늘도 온몸으로 살아간다
당신은 눈보라에도 서슴없이 하늘을 보고
시린 발걸음으로 빙하 위를 걸으며
보잘것없어 보이는 미미한 열기도
새끼를 살리려는 아낌없는 애정으로 승화시키는
가슴 따듯한 발 벗이다
염치없이 햇빛을 독차지하며
바람에게 몸을 맡기는 버드나무 가지의 의도와
땅속에서 끊임없이 봄날을 갈구하는
씨앗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채신없이 경솔하게 지나는
풍뎅이의 노고에만 너나없이 눈길을 준다
당신은 터무니없이 정답만을 요구하는 수학을 거부하고
막힘없이 머릿속 지식을 쏟아내는 평범함을 부정하며
숨김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습관의 수저질’(2)에 질색하다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물이다
어이도 없는 일이 느닷없이 발생해도
더할 나위 없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뜬금없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안타까움,
당장 다가오지 않는 행복에도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게 부질없어 보여도
살아있다는 기적에 그지없이 경이로움에 젖어든다
1《벽암록》 15칙에 나오는 “진리는 흔들리는 물속에 떠 있는 달이다”(129쪽)에서 차용한 문장이다
2 이기철 시인의 ‘삶의 양식’이라는 시에 나오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