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버거울 때 생각나는 것들
부모님을 일찍 여읜 덕분에
혼자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연습을
일찍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와
회색빛 청춘을 보내다
고2 때 돌아가신 어머니,
나에게 부모님은 버거운 삶을 버티며 살아갈 때
의지할 수 없었던 마음속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삶의 중심이었던
어머니마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을 때
마음속의 등불마저 꺼지면서
한 동안 삶의 중심을 잃고
꽤나 오랜 기간 방황을 거듭했습니다.
다행히 남에게 의지(依支) 하지 않고
혼자 버티며 살아가는 의지(意志)를
몸소 배울 수 있었던 어둔 과거 덕분에
조금은 삶이 버거워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긴 듯합니다.
참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중심이 흔들리고
근본이 뒤틀릴 정도로 회의가 밀려올 때
조용히 찾는 곳,
당신들의 천국에 찾아가 만나봅니다.
“엄마는 아기를 낳자마자
몸 한가운데에다
표시를 해놓았다.
-너는 내 중심
평생 안 지워지는 도장을
콕 찍어 놓았다.“
백우선 시인의 ‘배꼽’이라는 시입니다.
중심을 잃었지만 그동안 살아낸 지혜로
스스로 중심을 잡아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날의 삶의 터전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는 세월의 덧없음을 말해주고
한가운데로 뚫려 지나가는 도로는
세월의 빠름을 넌지시 던져줍니다.
“비극은 남의 것을 대신 체험할 수 없고
단지 자기 것밖에 체험할 수 없는
고독한 1인칭의 서술이라는 특질을 가지며
바로 이러한 특질이 그 극적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종내에는 새로운 '앎' - '아름다움'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283쪽).”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삶에서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체험적 아픔과 슬픔은
그 어떤 언어로도 일반화시키거나
객관화시켜 타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없는
고유함이 담겨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어둠 속의 불빛들이
내 몸에 각인되어 숨 쉬는
지나간 추억의 장면으로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몸은 흔들리지만
상념의 파편으로 떠도는 생각들을 붙잡아
현재 글을 쓰며 미래를 내다봅니다.
하얀 백 지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춤을 추며 아름다운 무늬로 수를 놓습니다.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27쪽).”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나오는 말입니다.
내가 겪은 슬픔을 타자의 슬픔을 재단하지 않고
내가 당한 아픔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부로 헤아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합니다.
그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가슴으로 헤아릴 뿐입니다.
오늘도 그런 슬픔과 아픔을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가슴으로 공감하는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쉼 없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합니다.
답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내일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