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배신’ 사이에
‘배움’이 갈등하고 있다

‘배려’와 ‘배신’ 사이에 ‘배움’이 갈등하고 있다

만나자던 사람이 약속 날짜가 다가왔어도

연락두절이고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이런저런 약속을 조정해서

약속 날짜를 기다렸는데

약속 당일이 되어도 깜깜무소식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야속해진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 입장이 되어 나를 염려(念慮)하고

그 사람을 심려(心慮)하고 배려(配慮)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성이 부족하고 관심과 애정이 와 닿지 않은 모양입니다.


기대와 관심을 갖고 한 사람을 만났지만

초심과는 다르게 사심(邪心)이 끼어들기 시작합니다.

관계는 이제 물질적 이해타산으로 오염되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도

처음과는 확연히 다르게 변모되어 갑니다.


조건 없이 만났던 아름다운 인간관계 사이에

서로의 정치적 역학관계가 개입되면서

관계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생기고

벽이 만들어집니다.

소통이 소원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마 내가 갖고 있는 소신과 신념이

잘 못 전달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뜻이 잘 통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 사람의 이해가

나의 심각한 오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너는 나를 이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를 잘 오해해준다는 뜻이며,

“너는 나를 오해하는구나”라는 말은

내가 보여주지 않고자 했던 내 속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았느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182쪽).“

김소연의 《마음사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배려했다고 이해했는데

배신으로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날씨 좋은 주말 오후

마음씨는 맑은 하늘 구름 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생각을 잉태합니다.


오늘은 배려와 배신 사이에서

배움의 촉수를 열어놓고

긴장의 바다를 건너볼까 합니다.


“어느 ‘구름’ 속에

‘비’가 들어 있는지 누가 알아.”

가수 홍진영의 ‘산다는 건‘이라는

노랫말의 일부입니다.


누구의 마음속에 내 생각과 공감하는 마음이

들어 있을지 알 길이 없습니다.

수심가측(水深可測) 인심난측(人心難測)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겨난 말인가 봅니다.

물의 깊이는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지만

사람 속마음의 깊이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죠.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

발터 벤야민의 말입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나에게 도움이 된 사람은

가족과 스승님을 비롯,

말없이 응원의 함성과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준 지인들입니다.


그들은 나의 어둔 과거를 밝게 비춰준

희망의 등불이었으며,

밤하늘에 빛나는 북두칠성처럼

갈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가게 만든 이정표였습니다.


상처받은 마음 위에 새싹을 자라게 만든

또 다른 원동력은 인두 같은 문장으로

내 마음을 다독여준 수많은 책입니다.

“누군가의 ‘구름’ 속에 ‘무지개’가 되어라!”

미국의 흑인 시인, 마야 안젤루(Maya Angelo)의 말입니다.


이 말을 바꿔서 영화 번역가 이미도 선생님은

“누군가의 ‘암흑’ 속에 ‘등대’가 되어라!”라고 번안합니다.

책 속에서 만난 한 문장은

구름 속의 무지개였으며 암흑 속이 등대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밑바닥을 기어가는 사람,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

걸림돌에 좌초되어 버거운 삶을 견디는 사람에게

나 역시 긴장감 속에서 떨리지만

그럼에도 마침내 정북을 가리키는 지남철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 관계에서 느끼는 아픔과 슬픔 역시

다시 사람 관계를 통해서 회복되고 치유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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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학문으로 세상의 모든 학문을

포섭해서 통합하려다 통증만 남긴 통섭(統攝)보다

서로의 학문적 관점의 차이를 존중해주며

소통하며 교류하고 공감하는 통섭(通涉)이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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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만을 고수하고 주장하기보다

내가 먼저 타자의 입장에서 경청하고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앓음다운 주말을 맞이합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람만이 희망일 수 있다는 신념을

다시 다독이는 한 주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책과 강연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벤야민의 말대로 절망적인 밤중에도 들리는

친구의 발자국 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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