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형식보다 땀에 젖은 얼굴입니다
현란한 수사보다 진심을 통과한 어눌한 한 마디,
화려한 형식보다 땀에 젖은 얼굴,
얄팍한 의심보다 녹슨 세월의 흔적,
스쳐 지나간 당구공의 만남보다
서성이며 떠나지 못하는 웅덩이의 물처럼
당신의 목소리는 삶의 애환을 담은 중저음입니다.
물음표의 곡선을 심장에 묻어두고
발길이 안내하는 표지판 삼아
무수한 족적을 남기며 살아온 당신의 삶은
밀물이 순식간에 지워버린 모래사장의 발자국입니다.
방 안에 갇힌 붉게 멍든 상상력이
맨주먹을 쥐고 세상일에 불만을 표시하지만
초라하게 남은 겨울날의 초저녁처럼
언 가슴으로 새기는 믿음의 등불은
여전히 불안한 채 바람에 떨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를 더듬다 만난 애틋한 추억의 그림자,
밤하늘의 어둠이 당신을 향한 그리움을 덮을 때
이별하는 젖은 낙엽처럼
그리움도 단념할 때 사랑의 씨앗이 자란다는
당신의 주장은 통증을 호소하는 양심입니다.
눈보라를 등지고 다가오던 시간은
주름 쌓이는 줄 모르고 늙어가지만
당신을 향한 그리움의 깊이는
산 메아리처럼 흩어져 감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헤아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도 목적지를 알리지 않고
떠돌다가 갈대에 부딪친 바람을 만난 당신은
사연의 뒤안길에서 탕진했던 기다림의 노을을 생각하며
우수에 젖어 산중턱에 걸려 있는 비구름입니다.
책 속에 파묻혀 퍼올린 진리의 샘물은
참을 수 없이 얄팍한 의심만 머금고
체중이 실리지 않은 채
사방으로 퍼지는 관념의 파편으로 이미 종적을 감추었지만
여전히 진리라고 우기는 영혼들의 마지막 열정이
시들어버린 채 새벽이슬에 젖어
구사회생을 엿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창백한 허공을 만지다 마주친 상상력과 싸우며
긴 밤을 지새우며 버둥거린 탓인지
알 수 없는 이미지 천국에서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당신은
느닷없이 나타나 허공을 여행하는 신기루입니다.
당신의 생각과 느낌을 목메어 기다리다
새벽 물안개에 떠밀려 나타난 굶주린 당신의 언어들은
산비탈이 들려주는 비보에도 당황조차 하지 않고
강물을 따라 묵언 수행을 하며
우렁찬 침묵의 향연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계를 넘어서려는 당신에게
장벽은 질문을 머금고 문으로 바뀌지만
벽 앞에 좌절하며 장례식장으로 출근한
당신의 질문들은 비바람을 견디며
짓밟히는 민들레의 소리 없는 항변입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기다리던 겨울밤이
고독과 적막에 떠는 사이
흑심을 품은 무뎌진 펜촉의
아픈 흔적을 받아주는 당신의 종이는
어색한 분위기를 이겨내고 한눈팔며
세월의 힘에 짓눌려 점차 구겨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라져 가는 살가운 추억의 한 페이지,
간신히 붙잡고 자투리 시간마다 하소연하던
우여곡절의 여정과 눈물로 얼룩진 당신의 열정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들끓는 세상사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가 빠져도 아랑곳하지 않는 소용돌이입니다.
눈 깜빡이며 맞이하는
내일의 불확실한 허영의 침묵을 벗 삼아
남루한 생각의 저편에서
상처받은 하루를 어루만져주는 당신의 위로가
겨우내 추위에 떨다
새봄의 기운을 간신히 이어받아
살아갈 비밀의 열쇠를
겨울눈에 감춰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희극보다는 비극,
희망보다는 절망,
성공보다는 좌절
양지보다는 음지,
정상보다는 밑바닥에서
불행과 결핍에 의미를 부여하고
제목을 생각해 내는 당신의 안간힘은
목덜미가 잡혔어도 사라지지 않으려는
격렬한 몸부림입니다.
#삶을질문하라 #질문을바꿔야관문도바뀐다 #당신은질문앞에전율해본적이있는가 #질문은관문이다 #언어를디자인하라 #브리꼴레르 #질문은관문을여는용기다 #질문은사랑이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교수 #질문없는독서는독소다 #질문은사건이다 #시인이될수없음을시인하다 #시쓰고싶은지식생태학자 #삼행시전문시인 #시작(始作)해야시작(詩作)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