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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끊지 못하는
안타까운 그리움 한 페이지입니다

당신은 끊지 못하는 안타까운 그리움 한 페이지입니다


저자가 흘리고 간 거친 숨결에

한눈에 반한 인두 같은 한 문장,

한 많은 세월의 얼룩이 숨죽이고 있다가

앓음다운 무늬로 변신한 그곳에서

아직도 눈길을 끊지 못하고

끈기로 버티는 당신의 까닭 모를 

서성거림은 무슨 의미일까요?


침묵을 덮어쓰고 

며칠 째 속삭이는 종이의 항변에 

낡은 개념들이 별빛에 몸을 씻으며

노숙생활을 끊지 못하고 이어가고 있지만

기억의 저편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 당신의 몸부림은 

언제나 새봄의 너그러움을 맞아들일 수 있을까요?
 


세 시간째 한 문장도 못쓰고

정적이 감도는 백지위에서

주어를 찾아 헤매다가 목적어를 먼저 만났지만

아직도 동사를 찾아가는 고행을 끊지 못하고

언어 구름 속에서 끝없는 방황을 거듭하는

당신의 글짓기 여정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요?


준비 없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저녁도 다가오기 전에 깔리는 어둠 속을 헤매며

어제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육신에게 말을 걸지만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는

당신의 목적지는 언제나 알 수 있을까요?


힘겹게  쌓여 있는 책더미 속에서

한 권의 책이 탕진한 시간의 추억을 

읍소하며 한 많은 세월의 아픔을 호소하지만

녹아든 시 한 줄 붙잡고 

저무는 허공만 바라보는 

당신의 상상력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오늘따라 유난히 깊은 그리움에 젖은

하늘색 옷으로 갈아입고 춤추며 다가오는 파도가

편견의 가로등에 비추어 희석시킨 얻 한 문장 품고

밀려오는 어둠에 숨어 부서지는 마음을 바위에게 전하지만

오리무중으로 전개되는 소설 한 구절을 붙잡고

하소연을 끊지 못하고 바다를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에는

언제나 바다 같은 넓은 시간의 넓이가 생길까요?


뙤약볕에 농익은 갯벌의 토사를

바닷물에 식혀 차가워진 사이,

온몸으로 터널을 뚫으 밀고 나가는 갯지렁이는 

다 지어놓은 집을 끝없이 부숴버리는 

밀물의 훼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데

갯지렁이의 무모한 반복을

어떻게 번역할지 모르고 

저무는 노을만 끝없이 바라보는 당신의 시심은

언제쯤 농익은 언어로 세상에 나올까요?



때늦은 추위에 밤새 떨며 

한 방울의 영롱함으로 태어난 이슬이

눈이 부신 아침을 거부하고 

어둠 속에서 시간의 힘을 믿고 버티고 있지만

당신이 마신 물은 오늘 왜 나에게

눈물을 머금은 새벽안개의 끝없는 행렬로 이어지는지 

어떤 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천둥소리에 놀란 가슴 움켜쥐고

번개 치는 순간에는 아연 실색하던 눈빛은

쏟아지는 장대비 하나 멈추게 하지 못하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사유의 물결을 끊지 못하고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며 

마지막 언어를 찾아 나서는 당신의 문장건축은 

언제쯤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요?



안간힘을 쓰며 반쯤 들어 올린 바벨의 무게가

세월의 무게보다 무거운지 

더 이상 들어 올릴 수 없을 때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떨림의 땀방울이

근육이 흘리는 눈물로 온몸을 휘감는데

아직도 더 들어 올려야 하는 건 알겠지만

어쩔 수 없는 비통함에 넋이 나간 당신의 몸부림은 

누구를 향한 안간힘일까요?


우아한 옷을 입고 서 있는 마네킹보다

몸에 박힌 시침의 아픔을 시치미 떼듯 

묵언수행하는 마네킹의 뒷모습이

여름날의 폭우와 겨울날의 폭설에 갇혀 

고난을 헤치고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의 이면을 말해줄 때

남들이 포착하지 못한 사물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끝없이 반복되는 당신의 반란은 

어떤 발견자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요?



눈발이 허공을 나르며 춤을 주고

강물은 추위에 떨며 살얼음으로 온몸을 감쌀 때

철없는 바람에 흩날리던 눈송이가 

살얼음판을 덮어주는 한 장의 이불이 되는데

한낮의 괴로움을 끊지 못하고 뒤척이며

그리움의 다리를 건너는 한 줄의 추억은

누구의 가슴에 새기는 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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