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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은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만드는 진정제

내가 만난 밤하늘의 역사, 사하라 사막의 밤하늘에서 생각해 보다


나에게 밤하늘은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만드는 진정제입니다


“내 마음을 채우고 내가 그것에 대해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늘 새로운 경외심과 존경심을 더해 주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 그리고 내 마음의 도덕법칙.” 칸트의 묘비명이다. 『실천이성비판』에 나오는 마지막 한 구절의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자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밤하늘은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을 거부하는 경이로운 경외(敬畏)의 대상이자 지적 호기심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도달할 수 없는 불가지의 세계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비해 내 마음의 도덕법칙은 옳고 그른 일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입니다.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가치판단 기준과 원칙이 서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도덕 법칙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사하라 사막에 간 이유 중의 하나는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하늘에 대한 동경심 때문입니다. 말로만 듣던 사막의 밤하늘은 내가 늘 보는 밤하늘과 어떻게 다를까. 그것도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두근거립니다.


차가운 밤하늘도 때로는 따듯한 온기로 다가옵니다


견딜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거나 참을 수 없는 눈물이 날 때 밤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주로 술기운에 방문하지만 어둠에 깔린 수도전기공고 교정의 실습동 앞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아로새겨줍니다. 밤늦게까지 용접을 하다가 기숙사 옥상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나의 암담한 미래가 펼쳐지는 세계와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댈 곳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애써 회피하기 위해 올려다본 하늘이었습니다. 하기 싫은 용접을 지금 내가 왜 하고 있는지를 밤하늘의 달과 별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물론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재미없이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를 잊고 잠시라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회색빛 청춘을 보냈던 수도전기공고 교정에서 맞이하는 밤하늘은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후배구타로 맞은 무기정학의 아픔을 모면하기 위해 밤이 되면 개포동 달밤을 벗 삼아 포장마차에서 마셨던 소주, 음주 후에 몰래 교정을 거닐면서 바라본 밤하늘은 암담하기만 했던 청춘의 추억을 아련하게 되살려줍니다.


공고를 졸업하고 한국전력 평택화력발전소에 만난 밤하늘은 유난히도 싸늘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발전소 맨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아파트 옥상처럼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곳이 있습니다. 저녁 근무를 들어가 인수인계를 받은 다음 현장을 점검하고 발전소 꼭대기에 올라가 맞이하는 밤하늘은 막막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당시의 현실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탈출구를 찾아야 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 아픈 청춘을 술로 달래는 날이 많아져서인지 술기운에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도 꽤나 많았습니다. 서늘한 밤바람과 함께 쳐다보는 밤하늘은 방황하는 청춘의 아픔을 더욱 아프게 할 뿐이었습니다. 끝을 모르는 방황을 하다 우연히 잡아든 책이 바로 공고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기가 들어 있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법과대학으로 가서 고시를 패스해야 되겠다는 일념이 생겼습니다. 그때 바라보는 밤하늘은 참으로 가슴 뛰는 뜨거운 밤하늘이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판사판으로 공부하다 바라본 밤하늘은 나에게 엄청난 위안이 되었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진정제가 쏟아지는 밤하늘이었습니다.



절망과 좌절의 밤하늘도 때로는 희망과 용기로 다가옵니다


어렵게 들어온 대학 캠퍼스에서 맞이했던 밤하늘은 불안과 우울의 바다로 시작되었습니다. 고시 공부하러 대학 들어왔지만 고시(考試)가 고시(苦試)였기 때문입니다. 방탕과 방황을 청산하고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방황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친구임에 틀림없었던 것 같습니다. 방황의 끝을 본 줄 알았는데 그 끝에서 또다시 방황이 시작되었던 대학 초반, 다시 방황의 끝에서 방향을 찾아 방황을 몸씨 심하게 하다 밤새워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5시 교회의 타종소리를 들을 때까지 책의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몰랐던 시적, 밤하늘은 도달할 수 없는 불가지의 세계였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멀게만 느껴지는 선각자들이 살아가는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또한 읽어도 읽을 게 많아지고 모르는 사실만 더 많아지는 좌절과 절망의 하늘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낮은 바다로 흘러들어 간 물이 뜨거운 태양빛의 힘으로 수증기로 변신, 가장 높은 곳으로 상승하듯이 가장 낮은 학문의 바다에서 유영(遊泳)하다가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 시대를 초월하여 빛나는 별이 된 학문적 구루들이 한없이 부러운 시절이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먼동이 터오는 새벽하늘에 내 꿈을 심었습니다.


하늘의 별이 된 구루들을 만나러 태평양이라는 학문의 바다를 건너 미국 플로리다로 가서 유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공부는 변함없이 이어졌습니다. 공부하다 새벽녘에 올려다본 미국 플로리다주의 밤하늘은 고향산천을 생각하고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밤하늘이었습니다.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매일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낮에는 공부에 매진하고 밤에는 알바를 통해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혹독한 유학시절이었습니다. 12시가 넘게 끝나는 알바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밤하늘에는 눈물이 고여 쏟아지는 한 여름의 소낙비처럼 서글픈 밤하늘이었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더 높이 들어 응시했던 밤하늘, 그때의 밤하늘은 복받치는 서러움을 참고 견디기 위해 가슴을 쓸어내렸던 서글픈 밤하늘이었습니다. 하지만 밤하늘도 절치부심 끝에 받아 쥔 박사학위와 함께 꿈과 희망의 바다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바다의 물도 들어오는 물과 수증기로 변신하는 물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신하듯이 밤하늘의 색깔도 절망과 좌절의 검은색에서 희망과 용기의 따뜻한 색으로 변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밤하늘의 별이 될 수 있다고 속삭여줍니다


유학 후에 삼성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다시 학문의 바다인 안동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밤하늘의 별들을 만나기 위해 새벽 5시까지 책을 읽고 또 읽어댔습니다. 더 많아진 밤하늘의 별들처럼 더 만나고 싶은 학문적 구루들이 내 마음속에서 별들의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밖에 나가 지칠 때까지 달리기도 했습니다. 운동장을 수십 바퀴씩 달리다 지치면 그대로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유난히도 반짝이는 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샤워를 하고 다시 연구실로 들어와 책 속의 별들의 만났습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학문적 구루들의 별, 그 들과 만나면서 무언의 지적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책 속의 별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에 입력하는 새벽녘의 글 쓰는 칠흑 같은 밤의 적막을 깨는 유일한 소음이었습니다. 머릿속에 담긴 생각과 가슴으로 느낀 흔적이 도망가기 전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독수리 타법, 따다닥 거리는 키보드소리만이 밤의 적막을 깨우는 유일한 지적 환희와 깨달음의 소리였습니다. 글을 쓰다 창밖을 바라봅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귓전을 스치면서 멀리 보이는 밤하늘의 별이 속삭입니다.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학문의 바다에 뛰어들어 신나게 유영하다 보면 너도 밤하늘의 별이 될 수 있다고.


안동대학교에서 2년 반을 지낸 다음 2001년도 9월 모교인 한양대로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84년에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에 입학한 학생이 17년 만에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돌아온 것입니다. 남다른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교수이기 이전에 선배로서 후배를 가르친다는 기대감과 함께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교수는 과연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았습니다. 학생시절보다 더 열심히 연구하고 그 결과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교수가 되자고 다짐했던 시절, 학자는 말발보다 글발로 승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빨은 썩지만 글발은 썩지 않습니다. ‘쓰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모토아래 ‘쓰면 쓰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매일 반복해서 글을 썼습니다. 늦은 밤 연구실을 나서면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참으로 숙연했고 때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리는 밤하늘이었습니다. 가슴 깊이 느끼면서 뿌듯한 보람으로 가득 찬 밤하늘이었습니다. 할 일이 많아지고 관심분야가 확산되면서 밤을 새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엄청난 일을 해내도 언제나 즐겁고 신나는 하루였습니다. 언제나 열정은 불타오르고 꾸준한 운동으로 단련하는 체력으로 에너지는 넘쳐흘렀습니다.



한 때 어린 왕자의 꿈과 현실을 담고 있는 밤하늘이 나에게도 다가옵니다


사실 그동안 줄기차게 달려오다 2007년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사선을 넘나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용기』라는 책을 2007년도에 출간하고 얼마 안 있다 나를 죽음의 직전까지 몰고 갔던 심각한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2007년 4월 11일, 자칭 411 사태라고 이름 지어준 이 교통사고로 지금까지 달려온 삶을 병실에서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달리다 심한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사실, 앞만 보고 달리다 죽을 수 있다는 사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막을 달리러 간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줄기차게 달려온 속도를 줄이고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를 넓히기 위해 사막으로 갔습니다. 속도가 높아지면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는 줄어듭니다. 사하라 사막은 달리러 간 사막이 아니라 멈추러 간 사막이었습니다. 30대 후반에 안동대학 교수를 거쳐 모교인 한양대학교로 옮긴 지도 이제 10년이 넘었습니다. 삼성에서 보낸 5년, 그리고 안동대학교를 거쳐 모교로 옮긴 2001년 2학기부터 더욱 바빠지기 시작,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처럼 전속력으로 앞만 보고 질주해 왔던 것입니다. 30대 달리다 40대 대형 교통사고가 난 이후 잠시 여유를 찾고 속도를 줄이다 50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사하라에 간 사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생 전반전을 뛰고 후반전을 준비하면서 생각해야 될 화두를 찾아 사막에서의 사색을 즐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광활한 사막 벌판 한가운데 나 홀로 떨어진 듯 하지만 내가 밟고 지나가는 한 줌의 모래, 한 방울의 땀, 한 모금의 물,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모두 나의 친구이며, 거대한 우주 생명 공동체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쌓인 생각의 때를 벗겨내고 마음의 군살을 제거하기 위해서 갔습니다. 속도경쟁은 평지에서 해도 충분합니다. 그것도 앞만 보고 자기 이익을 위해 달리지는 않습니다. 내가 가진 작은 재능으로 세상이 좀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더불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막 레이스에 도전하는 자세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더 소중한 것은 사막을 친구 삼아 나와 함께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사생결단으로 달리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은 때가 오면 맞이하면 됩니다. 사막은 달리는 주로가 아니라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하지만 꽤나 광활한 막막한 사막입니다. 레이스가 펼쳐지기 하루 전인 2012년 10월 27일 저녁, 사하라 사막에 도착, 하룻밤을 지낼 텐트를 찾아 간단히 짐 정리를 하고 한국에서 준비해 온 돼지불고기로 영양보충을 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짊어지고 갈 배낭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으면 레이스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급적 짐을 줄이느냐고 줄였지만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어둑한 사막 위에서 옹기종기 앉아 저녁을 먹고 나니 사막은 벌써 적막한 밤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광활한 사막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사막에는 별이 쏟아진다고, 참으로 별이 쏟아졌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하늘이 밤하늘의 별도 더 아름답게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사막에서 만난 어린 왕자도 이런 밤하늘을 벗 삼아 꿈꾸는 밤을 보냈을까요?



나에게 밤하늘은 서로에게 기운을 주는 버팀목이자 볕뉘입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이제껏 수많은 밤하늘을 만났지만 다 밤에 만나는 하늘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밤하늘입니다. 하지만 같은 밤하늘임에도 불구하고 밤바다 다른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눈물을 감추기 위해 올려다보았던 밤하늘,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해 바라보았던 밤하늘, 학문적 구루들의 족적을 찾아가면서 만났던 경이로운 밤하늘, 그리고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이 살아가시는 밤하늘, 언제나 밤하늘은 나의 안식처이자 서글픔을 삭여주는 진정제였고, 아픔을 완화시켜 주는 진통제였으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각성제였습니다. 특히 사하라 사막에서 맞이한 밤하늘은 그동안의 밤하늘과 또 달랐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되었던 삭막한 사막, 가도 가도 끝이 없이 펼쳐지는 막막한 사막,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막막한 사막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움막 같은 사막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사하라 사막은 무조건 건너야 될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생각되었습니다. 사막 레이스를 하는 줄곧 일찍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밤하늘에는 별만 있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막 레이스를 즐기는 동안 어머니와 함께 한 아름다운 동행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사하라 사막에 맞이했던 밤하늘은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똑같은 밤하늘이어도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지금 연구실 창밖으로 다가오는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어둠을 밝히는 불빛 때문에 밤하늘의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두워야 할 밤이 대낮처럼 밝아지면서 낮과 밤의 시간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조명은 우리에게 적막한 밤의 고독한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 간지 모래입니다. 머뭇거리거나 멈춰 서서 마주친 대상이나 사물의 의미를 생각해 볼 시간도 없이 흥분과 광란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정보는 시간을 점을 연결하는 시점(時點)으로 바꿔버리고 있습니다. 저녁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볼 시간은 물론 어둠의 장막 속에서 잉태되는 무수한 사색의 씨앗들을 가꾸는 사유의 텃밭도 이미 황폐화되었습니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무거운 어깨와 서글픈 등에 지워진 세월의 무게와 그림자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확신’과 ‘확실’ 사이에서 오늘도 ‘미신’과 ‘소신’은 절치부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배신’이나 ‘불신’의 씨앗을 품지 않고 ‘변신’이나 ‘혁신’을 꿈꾸어야 하는 이유가 오늘 이 순간의 삶이 가르쳐주는 삶의 지혜입니다. 먹구름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무지개의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넘을 수 없는 장막을 펼쳐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등대’가 될 수 있도록 희망의 종류를 바꾸는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빛, 그늘진 못에 미치는 조그만 햇빛의 기운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볕뉘’가 되어 힘든 상황을 이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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