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살의 접촉에 다가서기 위해 오늘도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느낌 앞에 절망을 반복하는 언어에게 술 한 잔 사주고 싶다
2012년에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적이 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을 뚫고 하루 40km를 제한된 시간 내에 완주하는 죽음의 레이스다. 하지만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는 이문재 시인처럼, 사막은 나에게 모래사막이라기보다 사유의 사막이었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쬐는 혹독한 폭염과 달아오른 사막이 내뿜는 모래 열기 사이에서 걷다가 뛰기를 반복하며 힘든 레이스를 펼치는 나는 왜 여기 와서 이런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 것일까? 흘러내리는 땀방울,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 짓눌린 어깨를 추스르고 나는 광활한 사막 위에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달리고 있는 것일까? 사막 레이스는 사투 끝에 스며드는 오르가슴이다. 혹독한 폭염, 달아오른 사막의 모래, 흘러내리는 땀방울,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 뼈와 살을 저미는 사막 레이스의 고통스러운 쾌감을 무슨 수로 설명하고 무슨 수로 맛보게 하랴!
몸으로 느낀 감각적 체험을 언어화시키는 순간 언어는 맥락적 특수성에서 멀어진다.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달궈진 모래 위를 걷거나 뛰면서 몸이 느끼는 열기, 열기를 참을 수 없어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으로 범벅된 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육중한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 없이 내가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다. 내 몸이 움직인 거리만큼 나는 목적지에 점점 근접한다. 6박 7일 동안 250Km에 도전하다 120Km 지점에서 탈진상태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사막 마라톤에서 몸으로 체험한 한계를 쓴 책이 바로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이다. 한계는 책상에서 머리로 알 수 없다. 한계는 오로지 한계에 도전하는 몸이 안다. 몸으로 아는 한계 역시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
감각적 깨달음 앞에서 고뇌하는 언어에게 할 말이 없다
몸으로 땀을 흘리면서 운동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근육이 긴장되어 떨릴 때 느끼는 희열감 역시 말로 다할 수 없다. 살에 각인되는 매 순간의 느낌은 언어적 표현 대상을 넘어선다. 100kg의 무게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데드 리프트, 숨을 최대한 들이마신 다음 아랫배에 힘을 주고 기립근에 긴장감을 주면서 무게를 들어 올린다. 숨을 참고 바벨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다시 들어 올리면 온몸에 전율감이 찾아오면서 마치 우주를 들었다 놨다 하는 기분이 든다. 데드 리프트 할 때 느끼는 척추 기립근에 가해지는 긴장감은 오로지 척추에 붙은 살만이 아는 느낌이다. 무게를 들면서 생기는 근육은 무게를 견디지 못해 근육에 상처가 생기면서 만든 결과다. 근육에 가해지는 힘으로 생긴 아픈 상처는 오로지 상처만이 기억하는 아픔의 흔적이다. 인간의 언어는 상처 언저리를 어루만져 줄 뿐, 상처가 생기는 과정에서 겪은 근육의 아픔을 대변해 줄 수는 없다. 마찬가지 무게로 스쾃 운동을 할 때도 호흡법과 힘을 주는 동작은 비슷하다. 다만 이번에는 무거운 바벨을 어깨에 둘러메고 허벅지가 땅과 수평이 될 때까지 내려갔다 다시 허리힘과 허벅지 힘으로 무게를 들고 일어서는 운동을 반복한다.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 그리고 기립근육이 긴장하면서 짊어진 무게가 내리누르는 힘을 역방향으로 다시 들어 올릴 때의 힘겨움은 강풍에 맞서 날아가는 새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온몸으로 느끼는 처절함과 비슷하다.
“여자 사랑하기를 좋아하는 내 바람둥이 친구는 “연애란 오직 살을 비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아, 저렇게 간단한 것을 몰라서 이토록 헤매었나는 말인가 싶었다. 살은 오직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작동한다. 나는 살의 아날로그를 자세히 쓸 힘이 없다. 그것은 아직도 내 언어의 힘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의 아날로그는 언어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언어의 반대말은 ‘살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276쪽).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에 나오는 말이다. ’살의 아날로그‘는 몸으로 느끼는 감촉이다. 대상에 대한 가장 정직한 느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기껏해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표현이 가능하다. 표현이 불가한 특정한 상황에서 직감적으로 다가온 느낌이나 찰나의 순간에 문득(聞得) 드는 생각,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았던 교훈이나 체험적 노하우를 고스란히 언어로 전환하거나 번역할 수 없다. 여전히 몸에 남아있는 깨달음의 흔적은 언어화를 거부한다.
지하철을 타면 빈자리가 있는지 확인한다. 만약 빈자리가 없으면 금방 내릴 거 같은 사람 앞에 서 있는다. 어떻게 금방 내릴지 아는가? 머리로 앎이 오기 전에 가슴으로 느낌이 온다. 느낌은 언제나 앎보다 먼저 온다. 그리고 느낌은 앎을 능가하는 정확성을 지닌다. 물론 느낌은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직감적으로 생긴다. 노선도를 확인한다든지, 가방을 싼다든지 아니면 기타 행동거지나 표정이 불안한 모습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다음 역에서 내릴 확률이 높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의 세계가 앎의 세계를 이끌어간다. 오늘 빈자리를 잡았던 노하우는 내일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한다고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내일의 상황은 오늘의 경험이 발생한 상황과 또 다른 맥락성과 구체성을 포함하고 있다. 맥락에서 따라 다른 판단과 적용의 반복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감적 통찰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직관적 혜안을 낳는다. 언어는 다만 이런 느낌과 생각이 융합되는 가운데에서 서성거리고 방황하다 간신히 지혜의 일부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다.
경기도 파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금고회사가 있다. 선일금고라는 회사다. 이 회사의 설립자이자 대표이사였던 김용호 회장님은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이 분은 어떤 금고를 갖다 줘도 다 열어버린다. 어떻게 금고를 그렇게 신기하게 다 여냐고 물어보면 “요렇게 조렇게, 이렇게 저렇게?” 연다고 하면서 손으로 금고를 열기 위해 돌리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김용호 회장은 금고 여는 노하우를 책상에서 머리로 배우지 않고 온몸으로 익힌 것이다. 금고 유형별 저마다 다른 원리를 무수한 실험과 모색 끝에 손에 와닿는 미묘한 감각으로 금고 여는 노하우를 익힌 것이다. 금고 여는 노하우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말로 가르칠 수 없다. 오로지 금고 여는 사람만이 아는 미묘한 감각의 차이를 몸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몸이 기억하는 체험적 느낌은 언어적 표현의 대상을 넘어선다.
신라호텔에 근무하다 독립해서 서울 청담동에 초밥집을 낸 안효주 대표, 그분은 초밥을 만들기 위해 손으로 밥을 잡으면 350개를 잡는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두 번째 손에 잡은 밥톨의 개수고 350개, 여러 번 반복을 해도 밥톨의 개수는 어김없이 350개다. 밥톨 350개 잡는 방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밥톨 350개 잡는 방법을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가르칠 수도 없다. 오로지 반복해서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다. 머리로 배울 수 없는 암묵적 노하우는 정성과 수고, 몰입과 집중을 통해 몸이 기억하도록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몸으로 깨달은 지혜는 오로지 타자의 몸을 통해서만이 익힐 수 있다. 언어는 몸으로 느낀 감각의 제국에서 노닐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방황하다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한을 머금은 채 조용히 포기한다. 언어는 느낌이 거주하는 몸에 아예 입주조차 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머물며 애쓰다 기꺼이 지금에 만족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언어의 한계 앞에 현실은 언제나 격동하며 격정 한다.
뼈저린 아픔이 언어를 만나지 못해 한숨짓고 있다
“우리 섬의 어른들은, 비록 오늬죽의 맛에 날카롭지는 못 했어도, 소금 그 자체의 맛에는 너나없이 귀신들이었다. 소금 한 알갱이를 입에 넣으면, 섬의 동쪽 염전 소금인지 서쪽 염전 소금인지, 초여름 소금인지 늦가을 소금인지, 어김없이 알아맞혔다”(251쪽).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에 나오는 말이다. 오랜 경험의 반복으로 혀가 감각을 기억하고 알아맞히는 현상을 동쪽 염전 소금과 서쪽 염전 소금의 차이를 언어적 표현의 차이로 분간해 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맛의 차이로 소금의 출처와 시기를 판별하는 능력은 논리적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체험적 각성의 과정이다. 소금 맛을 분간해 내는 어른들의 노하우는 어떤 지식이나 이론을 체계적으로 축적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저마다 다른 상황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몸으로 깨닫는 지혜에 가깝다. 역시 언어화시킬 수 없는 체화된 앎의 세계, 가르칠 수도 없고 일정한 틀을 갖춘 매뉴얼로도 문서화시킬 수 없는 앎이다.
“나는 몸이 입증하는 것들을 논리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 있을 만큼 명석하지 못하다”(141쪽). 김훈의 《자전거 여행 2》에 나오는 말이다. 몸이 입증하는 것은 살이 직접 접촉하면서 느끼는 감각적 체험의 흔적이다. 머리로 기억하는 경험이 아니라 몸이 직접 접촉하며 얻는 느낌을 논리의 이름으로 판별해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뭔가 느낌이 왔지만 그 느낌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던 경험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한눈에 반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느낌은 앎 이전에 오면서 앎을 능가하는 심오한 직관과 통찰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의 입증과 논리적 증명 간에는 간극이 너무 멀다. 몸은 이미 감각적 깨달음의 무늬를 몸에 아로새겨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논리적 언어로 가공되는 과정은 말할 수 없음이 다수 생략된다. 뼈저린 아픔이 언어를 만나지 못하고 한탄을 거듭하는 까닭이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앎의 본질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장자》에도 나온다.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당상(堂上)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목수 윤편(輪扁)이 당하(堂下)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당상을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말(을 쓴 책)입니까?” 환공이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 환공이 말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목수 따위가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신은 신의 일(목수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축軸 즉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줄 수가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자》(외편) 제13편, 천도(天道)에 나오는 말이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라는 윤편의 설명은 바로 몸으로 체득한 깨달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글로 남기지 못한다는 말은 몸으로 깨달은 진리일수록 언어로 전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나무에게 배운다》에 따르면 궁궐을 전문적으로 짓는 궁목수는 나뭇결만 보고도 그 나무가 어디서 자랐는지를 분별해 내는 지혜를 갖고 있다고 한다. 궁목수가 나뭇결을 손으로 만져본 감촉을 근간으로 나무의 태생배경을 알아맞추는 지혜 역시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이다. 나뭇결의 미세한 차이를 반복해서 감지한 손의 느낌이 나무의 성질을 알아차린다. 머리로 판단하는 앎이기 전에 손으로 다가오는 느낌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알아낸 경험지는 언어적 표현을 거부한다. 오로지 그런 느낌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만이 몸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몸으로 체득한 앎은 계량화를 거부한다. 눈대중으로 대강 알아맞히는 과정 같지만 오감각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단숨에 깨닫는 체화된 앎의 산물이다.
“나는 글을 몸으로 쓴다.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없으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연필을 쥔 손아귀와 손목과 어깨에 사유의 힘이 작동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몸과 사유를 연결시켜서 글로 옮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리듬이다. 나는 이 리듬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 리듬은 살아 있는 생명 속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이 리듬은 비논리적인 것이고 오직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작곡을 생각한다. 글은 몸속의 리듬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악보이다”(60쪽). 김훈의 《바다의 기별》에 나오는 말이다. “몸속의 리듬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악보”지만 과연 우리 몸속에서 울리는 리듬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악보는 어느 정도 될지가 관심사다. 아마 작가들의 평생 숙제가 바로 전율하는 몸의 감동이나 아픔 또는 슬픔이 주는 충격을 적확한 언어로 포착해 내는 글쓰기라고 생각된다. 오늘도 저마다의 분야에서 작가들은 몸으로 겪은 신체적 깨달음을 느낌이나 논리의 언어로 번역해 내기 위해 애간장을 태운다. 그래서 모든 글쓰기는 애쓰기다.
오늘도 언어는 패배를 반복하며 두 배 더 노력하고 있다
대공황을 맞은 탄광촌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탄광체험을 직접 해본 조지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광부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아마도 광부는 다른 누구보다 육체노동자의 전형일 것이다. 그것은 광부의 일이 더없이 끔찍하기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너무나 필요함에도 우리의 경험과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실제로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우리가 혈관에 피가 흐르는 것을 잊듯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49쪽). 실제로 땅 속 깊은 탄광에서 석탄을 캐내는 광부들의 비참한 노동현장을 목격한 조지 오웰도 실제로 광부로 노동자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그 세계를 더 철저히 탐구하고 싶다...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 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284쪽). 조지 오웰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정리하면서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광부들의 노동현장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처참할 정도로 힘겨운 생활을 견뎌내고 있는지를 관찰자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다.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노동현장을 보고 느낀 점은 탄진을 마셔가며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는 최악의 근무조건 속에서 석탄을 캐내는 광부들의 노동을 언어로 그려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삶에 깊은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은 본인이 직접 현장에서 체험한 깨달음에 있다. “염부들은 기다림의 구조 안으로 물을 끌어와서 펼쳐놓고, 그 기다림을 바닥을 훑어서 시간의 앙금을 거둔다. 폭양 아래서 염전 바닥을 훑는 염부들의 노동은 모든 일차 산업의 생산노동들 중에서 가장 단순한 원초성의 풍경을 이룬다”(111쪽). 김훈의 《자전거 여행 1》에 나오는 말이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땅속에서 노동하는 광부나 폭양 아래서 염전 바닥을 훑는 염부들의 노동은 당사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겪는 고역을 언어로 전달할 수 없다. 몸에 힘든 역사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몸으로 깨달은 삶의 지혜를 언어로 번역해 내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언어를 찾아 고된 여행을 반복하는 중이다.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한심한 한계다. 경험한 만큼만, 느껴본 만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자의든 타의든 타인의 고통에 가까이에 있어본 사람, 많은 고통을 함께 느껴본 사람이 언제 어디서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것이다”(202쪽).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있다. 공감하지만 내가 타자의 심장이 아닌 이상 나는 여전히 내 심장으로 타자의 심장이 느낀 아픔을 느낄 뿐이다. 고통을 겪는 사람 곁에서 언어로 번역된 고통을 듣거나 그 사람의 표정으로 그 사람이 겪은 고통을 온전히 내가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짐작과 상상력의 날개만 퍼득거릴 뿐 고통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가 고통을 겪는 사람과 동일한 감각으로 고통을 겪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경험의 공유를 그럼에도 언어는 포기하지 않고 고통의 한가운데로 탐침을 집어넣고 느낌으로 다가오는 아픔의 강도를 감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몸을 관통하고 남긴 흔적 속에 담긴 아픔의 의미를 해석해 내기 위해서다.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322쪽). 니코스 카잔 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말이다. 책상에 앉아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없다. 기껏해야 책상에서 공부만 한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는 연민의 정을 품고 그들의 힘든 생활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뿐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밑바닥 삶이 어떤 것인지를 기억해 낼 수 있는 과거의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경험을 언어로 표현한 들 여전히 다른 나라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번역되지 않는 경험 앞에서도 언어는 탐험을 계속한다
내가 살아온 삶만큼 글을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다. 내 삶을 능가하는 글은 읽을 수도 없고 쓸 수도 없다. 조르바가 환멸을 보내는 대상은 손발을 움직여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보지도 않고 그들의 삶을 관념적으로 판단하려는 책상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야생의 삶에서 몸으로 익힌 야성보다 책상머리에 관념적 논리로 재단하며 배운 지성이 삶의 무기다. 책상에서 지성을 연마한 사람들의 언어는 현장감이 없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의 언어에는 허위와 가식과 과장이 없다. 그들의 언어는 곧 그들이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논리적 설명력이 떨어지고 어눌한 말의 조합이지만 꾸밈이 없고 과장도 없다. 논리로 조합한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한 신체 언어라서 더욱 심장을 파고든다. 언어에는 관념의 거품이 안주할 자리가 없다. 온통 몸으로 겪으며 흘린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 화려한 수사와 난해한 개념어가 없어도 밑바닥 현장에서 겪은 고통의 흔적이 언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어가 품고 있는 문제의식은 문장에 그대로 담기면서 행간에서도 몰아쉬는 가쁜 숨소리가 들리고 뼈와 살이 안간힘을 쓰면서 한계를 통과하는 신음소리도 들린다.
“배고픔은 사람을 완전히 무척추, 무뇌 상태로 전락시키는데, 증상이 무엇보다도 독감 후유증과 비슷하다, 해파리로 변해버린 듯하고, 몸속 피가 모두 빠져나간 다음 미지근한 물로 채워져 버린 듯하기도 하다. 배고픔에 대한 주된 기억은 완전한 무기력이다”(50쪽).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저자는 책 제목처럼 파리와 런던의 최하층민들이 생각할 겨를 없이 하루 종일 밑바닥 생활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비참한 일상을 고발하고 공감하면서 작가적 문제의식을 배운다. 작가 스스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보면서 누군가의 언어로 미화되었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하층민들의 비루한 삶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무엇이 진실인지를 몸으로 확인한 것이다. 세상의 진리나 한 사람의 신념도 무리가 되거나 통념일 수 있음을 확인하는 한 가지 방법은 내 몸으로 겪어보는 경험을 쌓는 것이다. 내가 겪어본 경험의 깊이와 넓이만큼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상상력의 수준과 정도도 가늠할 수 있다.
“몸으로 체득했기에 그것이 밑바닥 진실이며 마지막 진실이다. 어떤 경우에나 세상의 변화를 꾀하게 하는 힘은 마지막 진실에서 온다”(200쪽).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에 나오는 말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굳이 언어적 표현을 쓰지 않고 한 두 마디로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에서 몸으로 배운 교훈을 느낌으로도 알아챈다. 오히려 이런 체험적 깨달음을 언어로 번역하는 순간, 당시에 온몸으로 버티고 견디면서 깨달은 신체적 각성은 휘발되거나 증발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몸으로 느끼고 사유하는 과정을 가급적 지금 현재 가용한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비록 몸으로 느끼는 체험의 현장 주변을 맴도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적확한 언어로 몸의 반응을 포착해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연습을 늘려갈수록 귀가 손을 능가한다. 나를 넘어서는 음악이 나를 유혹하고 그걸 낚아채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된다(p.89).” 글렌 커츠의 《다시, 연습이다》에 나오는 말이다. 발버둥 치는 몸을 머리로 이해하기 이전에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있는 그대로 잡아내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한 그 결과로 탄생하는 글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짙은 깨달음의 흔적을 남길 것이다. 여전히 언어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이 만나는 접촉감에 다가가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의 존재 자체를 인식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작가는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도 내 대신 누군가 경험하는 불편함 덕분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편리함이나 단순함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불편함이나 복잡함을 내 대신 경험해 준 덕분이다. 이것이 바로 컴퓨터 과학자 래리 테슬러가 말하는 복잡성 보존의 법칙(Conservation of Complexity)이다. 광부들의 노동의 대가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고상함이나 염부들의 폭염을 견뎌내며 사투를 벌이는 노동으로 소금을 얻을 수 있는 행복은 내 대신 누군가 힘들게 복잡함이나 불편함을 경험한 덕분에 누리는 혜택이다.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도 내가 먹고 있는 이 밥이 누구의 노동에 의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내가 먹을 수 있는 밥이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직접 광부나 염부로서 노동을 해볼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내가 지금 즐기고 있는 행복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사람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