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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코치로서의
어른이 갖추어야 할 10가지 덕목

티칭(teaching)하지 말고 코칭(coaching)하라!

존경받는 코치로서의 어른이 갖추어야 할 10가지 덕목

티칭(teaching)하지 말고 코칭(coaching)하라!



“내 영혼이 오롯이 앉을 수 있는 오래되고 아늑한 의자 하나,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자리.”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에 출품된 작품에 쓴 글귀다.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자리가 바로 의자라니. 아마 대부분의 창작이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작곡하고 글을 쓰는 가운데 탄생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전환점이 시작되고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변곡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바로 진정한 어른을 만나 새로운 깨달음의 음악이 연주될 때, 아직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내면세계에 대한 새로운 탐구에서 시작된다. 내 영혼이 오롯이 앉을 수 있는 오래되고 아늑한 의자 하나가 바로 어른과 만나는 자리다. 이때 만나는 어른은 나의 잠자는 얼을 일깨워 또 다른 세계가 탄생하는 새로운 자리다.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은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어른의 전형을 보여주는 선순환이 반복되며 어제와 다른 반전이 거듭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과 동물이 구별되는 능력 중 하나가 어제와 다르게  ‘시작하는 능력’을 갖고 늘 새롭게 변신하는 '탄생성(natality)‘이라고 하였다. 아렌트에 의하면, 탄생성은 아이가 이 세계에 태어남으로써 얻는 대체불가능한 생명(life)을 얻는 제1의 탄생과, 누군가 만들어서 이미 존재하는 세계(world)라는 곳에 다시 이방인 혹은 ‘새로 오는 자’(newcomer)로서 거듭나는 제2의 탄생으로 구분된다. 어른은 언제나 어제와 다르게 시작하는 능력을 갖고 늘 새롭게 변신하는 탄생성을 자신의 생명성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신체적으로는 이미 태어났지만 정신적으로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사는 이유를 다시 깨닫는 각성사건을 경험할 때 사람은 언제나 이방인 또는 새로 오는 자로 다시 태어난다. 어른은 한 사람으로 하여금 각성사건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이제껏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나로 거듭날 수 있도록 탄생성을 새롭게 경험하게 만들어주는 인생의 멘토다.


탄생성은 다시 엄마의 도움을 받아 생물학적으로 태어나는 제1의 탄생과 말과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새로움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동체에 참여하는 제2의 탄생으로 구분된다. 제1의 탄생이 태어났다는 사실로서의 한 인간의 고유한 존재론적 특성을 강조하는 사실적 탄생이라면 제2의 탄생은 나의 새로움을 간직한 채 또 다른 새로움이 존재하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배우는 정치적 탄생이라고 볼 수 있다. 1차적 탄생이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데 반해 2차적 탄생은 한 생명이 살아있는 한 사멸되기까지 끊임없이 재탄생되는 연속적 사건이다. 한나 아렌트의 탄생성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다름을 지니지만, 살아가면서도 어느 누구의 삶과도 닮은 점이 없는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간다는 점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어 정체되는 특성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지속적 탄생을 무한 거듭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변화되어 가는 역동적 과정으로서의 특성이다. 이런 점에서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탄생성은 정체된 명사가 아니라 부단히 변신을 거듭하는 역동적 동사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 가지 활동(praxis)이나 실천을 통해 자신의 색다른 존재이유나 가치를 드러낸다고 한다. 그녀는 인간의 본질을 ‘정신’에서 찾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양식으로서의 활동에 대해 탐색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양태인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에서 찾고 있다. 



어제와 다른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생물학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동(labor)’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지상에서 무엇인가 영속적인 것을 남기기 위해 ‘작업(work)’을 해야 함은 물론 우리의 삶을 더 좋은 삶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는 ‘행위(action)’를 해야 한다. 아렌트에 의하면 노동(labor)은 인간의 ‘생명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신체적이고 생물학적인 활동으로서, 사적영역에 속한 활동이다. 노동은 인간의 생명성을 보존하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수행하는 지극히 기초적이고 필수적이며 개인적인 활동이다. 한 마디로 노동은 생존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의식적 작용이다. 노동은 노동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사회와의 연관성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자체에만 매몰될 때 자기 개인의 삶의 유지에만 집착함으로써 필요의 충족에만 사로 잡힐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한나 아렌트가 결과적으로 노동에만 집착하는 개인은 세계로부터 추방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이유다. 노동은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대상물을 생산하는 ‘생존’ 차원의 필수적인 일이다. 노동은 생물학적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명체가 살아있는 한 반복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노동의 태생적 한계는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지만 노동으로 생산되는 산물은 지속되지 못하고 찰나적이고 순간적이라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노동은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 반복되는 연속적인 과정이라서 살아있는 한 벗어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작업(work)은 먹고살기 위한 노동의 차원을 넘어서 세상에 의미 있는 무엇을 만드는 활동(making)을 통해 후세에 남겨두고 싶어서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확인받기 위해 제작하는 일이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고 생명의 유한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재료를 기반으로 뭔가를 만들어보려는 제작이나 창작 욕구를 기반으로 살아가려는 꿈이 있다. 작업은 생존에 필요한 수단을 쟁취하려는 노동과 달리 자신의 고유함을 세상에 드러내고 후세에 남기는 ‘생활’을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사용’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학문적 탐구나 예술적 창작활동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적인 영역에서만 이루어지는 노동과 달리 작업은 인공적인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음으써 나와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만날 수 있는 공적 세계를 열어가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작업이 먹고사는 노동의 한계를 넘어섰지만 제작활동 자체는 세계와 단절된 공간에서 뭔가 유용한 대상을 창작할 목적을 지닌 채 외롭게 이루어지는 장인의 고립된 활동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지닌다. 먹고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유용한 인공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세계와의 연계를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독립적인 노동이나 작업을 통해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역학이 만들어가는 관계망 속에서 움직인다. 한나 아렌트가 이 시점에서 고민한 화두는 인간이 평생 누리고 살아야 할 ‘좋은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인지를 근본적으로 물어보는 일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좋은 삶’이란 먹고사는 생존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독특성이나 탁월성을 자기만의 말과 행위를 통하여 타인에게 드러냄으로써 새로움과 새로움이 소통하며 서로 배우고 공존하는 것과 관계된 활동양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action)’란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자신의 독특한 차이와 고유한 개성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이 지닌 색다름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관계지향 활동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주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정치적인 활동이나 각종 시민단체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의미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실존적 활동이다. 한나 아렌트는 행위라는 개념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이루어지던 공동의 정치적 활동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적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노동이나 작업과 다르게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말과 행위는 다른 사람을 전제로 펼쳐지는 관계적 사건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을 하게 만들거나 자신이 왜 살아가는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개인차원의 작업 수준을 넘어서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관계지향적 공동체 건설에 함께 참여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코치다.


어른은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를 하고 단점을 지적, 꼬투리를 잡기보다 상대방의 강점이나 재능을 찾아 칭찬해 주면서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할 수 있는 마중물 질문을 던져 내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기여하고 공헌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진정한 어른 구체적인 방법을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 후배가 스스로 깨닫고 용기를 갖고 새로운 일에 시도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아주는 코칭의 대가다. 코치는 상대방이 하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욕망의 물줄기가 무엇인지를 찾아, 본래 지향하려던 방향으로 물꼬를 터줌으로써 같이 하면 그 가치가 배가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부단히 성찰하고 행동하면서 함께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위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사람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코나투스를 찾아 자기 본성이나 개성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욕망이 꿈틀거리게 만들어서 어제보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자극하는 사람, 함께 에너지를 나눔으로써 시너지를 창조하는 주인공이 바로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코치다. 코드가 통하는 사람이 함께 공동의 목적을 지향할 때 저마다 다른 코나투스가 모여 모자이크처럼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자랑하면서도 각자가 겪은 삶의 얼룩을 씨줄과 날줄로 직조해서 명랑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게 어른이 지녀야 할 가장 소중한 미션이다.



코나투스는 나에게 코드가 맞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갈 때 기쁨이나 행복의 정서가 흐르고 나에게 아픔이나 슬픔을 주는 정서는 가급적 거부하려는 움직임이다. 나하고 코드가 맞는 일이나 사람에게 코나투스 에너지가 증가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일이나 사람에게는 코나투스 에너지가 감소하거나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은 다른 사람의 코나투스와 비교하면서 비참하게 살지 말고 자기만의 고유한 코나투스가 지향하는 욕망을 따라 원본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깨우쳐주는 코치다. 그렇다면 왜 코치로서의 어른이 코나투스를 만나야 할까? 누구나 코나투스를 갖고 있지만 사람은 대체불가능한 저마다의 다른 코나투스를 갖고 있다. 코치로서의 어른은 다른 사람의 코나투스를 모방해서 따라가게 하는 벤치마킹 전략보다 저마다 고유한 개성적인 코나투스를 찾아 어제보다 명랑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코나투스 발견 도우미다. 어른으로서의 코치는 정답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라기보다 코칭을 받는 사람이 이미 답을 갖고 있지만 그걸 찾지 못할 때 마중물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찾아가는 도움닫기형 안내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자기다움의 코드를 찾아내도록 이끌어주는 도우미다.  


어른으로서의 코치는 상대방이 하면 재미있는 재능 코드가 자기만의 스타일로 구현되어서 때가 되면 꽃이 피어 가을의 정취를 알려주는 코스모스처럼 완벽한 자기만의 코러스를 창조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다. 궁극적으로 어른으로서의 코치는 상대방이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지를 탐색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컬러를 발견, 재능의 꽃을 피우면서 일생일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조력해 주는 꿈의 파수꾼이자 산파술의 귀재다. 저마다 고유한 코나투스가 꿈꾸는 세계를 향하는 욕망을 추구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능력을 개발할 때, 비로소 명랑하고 행복한 자기다움이 구현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기다움의 꽃을 피우는 다른 사람도 저마다의 코나투스로 꿈의 공동체를 이루어나갈 때, 꿈은 더 이상 한 개인이 이기적으로 품고 있는 성공에 대한 허망한 욕망을 넘어선다. 이때 꿈은 자기다움의 꽃을 피우기 위해 미지의 불확실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던져 과감한 도전을 통해 몸을 던져 실천하게 만드는 에너지이자 방향이다. 진정한 어른은 내가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를 찾는 길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북두칠성이나 나침반처럼 방향 설정을 함께 모색한다. 삶은 살아있게 만드는 에너지와 어디로 갈지 알려주는 방향이 쌍두마차처럼 끌고 가며 연주하는 이중주다.


아래 제시되는 내용은 수십 년간 대학 강단과 외부 강연 무대에서 많은 학생들과 청중을 만나면서 깨달은 경험적 노하우의 산물이다. 참견은 가급적 최소화시키고 참여는 가급적 극대화시켜 강의를 듣는 사람도 수동적 학습자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학습 참여자임을 각인시킬 때 어른의 전달력은 더욱 효과적인 자기 발견의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매김된다. 커뮤니케이션 관련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서 진정한 소통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실천과 행동을 유도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재미있고 의미 있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가장 울림을 주는 소통은 상대방의 잠재적 가능성을 마중물과 같은 질문을 던져 내면에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여정이다. 그 사이에 한 사람은 한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 안내되고, 그 속에서 어른으로서의 코치는 인생의 멘토가 되어 험난한 인생여정의 동반자로 거듭나게 된다.



❶진정한 어른은 상대의 마음을 ‘터치(touch)’하는 카운슬러(counselor)다.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면서 마치 나의 아픔인 것처럼 가슴으로 생각해 줄 때 마음과 마음은 아무런 꾸밈없이 만나 공감하고 공명의 장이 만들어진다. 그 위에서 어른은 상대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탑을 쌓아나갈 수 있다. 어른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와 같이 공감해 달라는 것이다. 진정한 어른일수록 공강력이 높아지는 이유는 공감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익힐 수 없는 신체적 겪어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공감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 어루만져주는 터치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어른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티치(teach) 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마음을 터치(touch)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가 어른이 갖춰야 할 가장 최우선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생각만 옳은 게 아니라 내 생각도 틀릴 수 있고,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상대에게 아픔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늘 역지사지로 되새겨볼 때 신중한 언행을 하게 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은 모두가 자기 입장에 비추어 주장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할 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진정성을 터치해 주는 담론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일깨우는 상담자다.



❷진정한 어른은 상대의 속마음을 ‘캐치(catch)’하는 귀명창이다. 성숙한 어른은 입담의 달인이 아니라 경청의 달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상대의 마음을 훔치는 사람이다. 긴 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와 함께 있다는 공존의 미덕을 심어주는 사람이다. 주로 꼰대는 말이 많다. 입력을 고장 났는데 출력만 강력해지는 어른 아이가 꼰대다. 꼰대는 자신이 말을 잘하는 입담의 달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성과 고정관념에 젖은 자기만의 스피치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어른의 미덕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포착해서 고뇌하는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데 있다. 즉 입담의 달인이 아닌 경청의 달인으로 귀담아 들어주는 어른은 사람들마다 말하지 않지만 속마음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포착해 주는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난 의도보다 의중에 무게중심을 두고 들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이며 안간힘을 쓰는 어른이야말로 세월의 무게가 만들어준 인간적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대의 어른은 모두가 자기 할 말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도 침묵 속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고 상대방의 속마음을 마음속 깊이 이해해 주는 귀명창이다.



❸진정한 어른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위치(位置)’를 파악하도록 도와주는 내비게이터다. 경지에 이른 어른은 무엇보다도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놓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게 만든다. 내가 서 있는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상대에게 지금 여기가 어딘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대답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유도해 준다. 자기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질문일수록 막혀가는 생각의 물꼬를 새롭게 트일 수 있는 대안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어른일수록 방황을 통해 방향을 잡아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곡선의 물음표를 던져 직선의 느낌표를 찾을 수 있도록 생각의 단서나 화두를 던져 스스로 고뇌하며 찾아가게 만들어준다. 이 시대의 어른은 길을 잃었을 때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화두를 던져 자신이 갈 길을 다시 찾아 나설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멘토다.



❹진정한 어른은 상대의 ‘가치(價値)’를 같이 높여주는 삶의 동반자이다. 진정한 어른은 사람마다 갖고 있는 고유한 존재의미와 가치를 드높여주는는 사람이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여기서 가치는 의사결정을 하거나 딜레마 상황에 빠졌을 때 참고하는 의사결정의 기준이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를 알려주는 판단기준이다. 한 마디로 길을 잃었을 때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이나 북두칠성처럼 내 삶의 소중한 행동규범이나 가치판단 기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핵심가치를 찾아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한 사람의 대체불가능한 자기만의 스토리가 탄생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은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보게 하고, 무슨 일을 할 때 열정적으로 몰입하는지를 물어보면서 그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핵심가치가 무엇인지를 같이 고민해 주고 그것을 중심으로 자기만의 인생역사(history)와 자기 방식(My Way)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의 파트너다. 삶의 동반자는 나이보다 핵심가치를 중심으로 이제껏 겪어본 경험적 교훈으로부터 같이 나눌 수 있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른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은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대체불가능한 역사로 기록될 수 있도록 그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자기만의 핵심가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고유한 스토리를 축적, 자기 방식으로 서사를 창조할 수 있도록 몸을 던져 함께 하는 삶의 동반자다.



❺진정한 어른은 생각의 ‘고치’에서 벗어나 그 ‘이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생각 망치다. 사람은 저마다의 생각의 ‘고치’ 안에 머물러 자신의 생각이 잘 못될 수도 있음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자각은 생각의 ‘고치’ 밖으로 생각의 ‘이치’를 깨달을 때 비로소 나에게로 다가온다. 어른은 생각의 ‘고치’에 머무른 고정관념과 타성에 물음표를 던져 자각하게 도와주고, 생각의 이치가 어떻게 내 생각을 지배하고 내 몸을 움직이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생각 망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생각 망치는 생각을 망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가치’를 드높이는 도구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의 깊이와 넓이를 심화시키거나 확산하지 않고 일정한 경계 안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틀 안에 갇힌 틀어박힌 생각을 거듭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지만 얼마나 자기 생각이 통념에 갇혀 있는지를 낯선 자극을 받아보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외부에서 입력되는 낯선 자극을 자주 받아야 생각 고치 안에서 안주하는 신념도 통념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진정한 어른은 틀어 박혀서 틀에 박힌 생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 발상인지를 몸소 깨닫게 생각망치로 지적 자극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생각 임신 촉진제다.



❻진정한 어른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매치(match)’시켜주는 코디다. 사람은 저마다 어울리는 일이 존재한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할 때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어울림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어른은 저마다의 욕망을 포착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충족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에게 어울리는 일을 매칭시켜 주는 코디다. 코디는 단순히 어울리는 옷과 칼라를 매칭시켜 주는 홰션(fashion) 도우미가 아니라 내가 열정적으로 몰입하면 어울리는 일을 찾아 주는 패션(passion) 도우미이자 매치 메이커(Match Maker)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다른 자리를 탐할 때 더러운 인간으로 전락한다. 어떤 사람이 어울리는 일을 찾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를 욕심으로 차지하려는 무모한 노력을 보일 때 존경받지 못한 어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은 어울리는 일을 찾아 세상을 향해 울림을 주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반응하게 만들어주는 어울림 코디다.



❼진정한 어른은 몇 마디 건네면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눈치’ 9단의 코치다. 어른일수록  누구보다도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친구가 진정으로 나에게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인지, 아니면 얼굴도장이나 찍으면서 뭔가 도움을 요청하려 온 사람인지를 기가 막히게 잘 포착하는 눈치 8단의 사람이다. 어른이 될수록 주어진 상황적 맥락에서 내가 주연인지 조연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을 적재적소에서 능수능란하게 느낌과 생각과 행동을 하나의 연줄로 엮어나갈 확률이 높다. 여기는 눈치는 잔머리 굴리면서 요리조리 계산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눈치를 잘 보는 어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말하고 싶은 바를 먼저 포착하는 사람이며, 하고 싶은 애기를 구구절절하지 않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의도를 포착, 원하는 바대로 화제를 이끌어가는 눈치 9단의 코치다. 그래서 코치로의 어른은 눈치코치를 잘 보며 상황 파악을 근간으로 분위기나 맥락에 맞는 화두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진정한 어른은 눈빛만 바라봐도 의중과 의도를 꿰뚫어 거기에 담긴 의미까지도 알아내는 진정한 코치다. 코치로서의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상대를 평소에 꾸준히 살펴보고 애정과 관심으로 보살펴주어야 한다.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살핌이 전제될 때 상대의 아픔이나 슬픔을 해소하는 보살핌이라는 해결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



❽진정한 어른은 스스로 영광의 ‘아치(arch)’를 쌓도록 도와주는 꿈의 파수꾼이다. 어른은 목적지를 일방적으로 제시하거나 꿈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어른은 꿈은 머리로 꾸는 게 아니라 몸으로 꾸는 치열한 여정임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다. 어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이야기하면서도 함께 걸어갈 미래의 꿈을  실천하는 여정에 적극적인 실천과 행동을 촉구하는 사람이다.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내면에 품고 있는 성공의 진정한 의미,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그리고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공감해 주고 거기 가는 여정에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이 어른이다. 어른은 이런 막연한 생각들을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아치를 만들어나가도록 도와주는 꿈의 파수꾼이다.



❾진정한 어른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을 ‘잔치’로 즐기도록 도와주는 산파(産婆)다. 어른의 존재이유는 정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대안을 찾아 지금 여기서 가장 잘 어울리는 현답이나 해답을 찾아보게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보다 자신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함께 모색해 보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가 상대편에게 질문을 던져 스스로 무지(無知)를 깨닫게 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올바른 개념에 도달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듯이, 진정한 어른도 자신의 지식을 전달해서 이해를 촉구하기보다 마중물 같은 질문을 던져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데 어른이 해야 될 책임과 역할이 있다. 이미 누군가 걸어간 길을 뒤따라가기보다 그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march)하며 삶의 매 순간을 잔치나 축제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꿈의 산파가 진정한 어른이다.



❿진정한 어른은 대화나 토론과정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긴장을 풀어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 ‘운치’를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숨은 조력자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성패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분위기와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속 깊은 얘기를 해도 되겠다는 판단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상황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한마디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여주는 어른의 적극적인 경청 자세, 그리고 맞장구 쳐주는 어른의 피드백은 모두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운치’ 있게 만들어주는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어른이 발휘해야 될 중요한 역할이자 과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수용될 것 같은 친밀한 분위기 조성은 함께 고민하며 해결대안을 모색하는 와중에 어른이 수행해야 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입장이 처지를 결정하기보다 처지가 입장을 결정한다. 나를 난처한 처지에 몰아넣지 않고 모든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여건이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핵심적인 촉발점이 되는 까닭이다.



어른은 자신의 경험적 지혜를 자기만의 언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어른은 낯선 질문을 품고 어제와 다른 방문을 겸손한 자세로 해석하는 경험을 축적, 자기만의 고유한 식견과 안목, 관점과 접근논리를 체계화시켜 정리하고 있다. 어른이 다른 어른 아이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어른 아이는 단속적인 체험을 계획적으로 반복하지만 그 체험에 관한 성찰을 통해 어제와 다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주로 체험은 다른 사람이 만든 정보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도파민을 자극하는 일시적인 감정적 흥분에 즉흥적으로 대처할 뿐이다. 반면에 경험은 일정 기간 차이를 반복하면서 겪는 우발적 경험을 기반으로 성찰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기반으로 어제와 다른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관점과 시각에 기반을 두고 대체 불가능한 자기만의 서사(narrative)를 창조한다. 벤야민은 경험과 체험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전통’과 ‘기억’을 든다. 그는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에서 “사실상 경험(Erfahrung)이라는 것은 집단생활이나 개인생활에서 모두 일종의 전통 문제이다. 경험은 기억(Erinnerung)속에 엄격히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Gedächtnis)의 산물”(182쪽)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경험은 하나의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단편적 추억의 파편이 아니라 이전에 겪었던 다양한 작은 기억들이 하나의 체계로 구조화되면서 이전의 경험적 전통에 비추어 지금 경험의 의미를 반복해서 재해석한다. 


그 결과 경험으로 축적되는 새로운 지혜는 기존 전통에 전승되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전통을 구축하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반면에 체험은 경험과는 다르게 이전 체험이 다음 체험으로 전승되거나 전통을 만드는 지혜의 기반으로 쓰이지 않는다. 파편화된 정보나 찰나적 이미지의 자극이 순간적으로 출몰하는 디지털 사회에서는 연속적인 경험보다 충동적이고 단편적인 체험을 순간적으로 느낄 뿐이다. 경험적 추억과 다르게 체험된 내용은 체험의 주체가 뭔가를 기억해야 되겠다는 의지로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창고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난반사로 갑자기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엄기호도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가 잘 못 산게 아니었어》에서 체험과 경험의 차이를 구분하고 있다. 체험은 찰나적이고 너무 개별적이어서 언어로 번역, 다른 사람에게 전달이 어렵지만 경험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경험은 개별적이지 않고 관계속에서 다시 지혜로 거듭나는 체험이다. 진정한 어른이란 자신이 경험하며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자기만의 언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과정에서 대접받고 존경받는 인물이다.



어른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나 경험한 사실을 권위적이고 수직적 위계 관계 속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명령을 통해 복종을 요구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이 지금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들에게 자신이 겪어본 경험으로 깨달은 지혜를 기반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빛이 나는 사람이다.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했어도 자신이 경험한 바를 적확한 언어로 번역, 나이 어린 사람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수긍하면서 소중한 삶의 교훈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노하우를 제대고 알지 못하면 어른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잘 못 산게 아니었어》를 쓴 엄기호에 따르면 “어른이란 후손들이 제대로 잘 경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고 지혜를 건네주는 사람이다”(105-106쪽). 어른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적 깨달음을 지혜의 언어로 번역해서 후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달하면서 삶의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결국 어른은 자신이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를 후손들에게 잘 전달하는 사람이다. 전달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명령하면서 복종을 요구할수록 어른은 어른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꼰대로 전락한다. 어른의 전달력은 어른을 어른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존재이유이자 살아가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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