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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으로 지시하지 말고
지혜로 지휘하라!

팩트(fact)에 임팩트(impact)가 실리면 

리스팩트(respect)가 생긴다!    

 

전국의 남녀노소 대상 강연을 하다 보면 

강연에 대한 반응이 지역적 특색에 따라

확연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어제는 대구광역시 초중고교 교장선생님 500여분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다시 생각해보는 공부의 6가지 의미〉라는 주제로

100분간 강연을 했다.     



이제껏 강연 경험에 비추어보면

가장 힘든 청중이 아닐 수 없다.

경상도 지역의 그것도 무거운 교장선생님,

가장 난감한 청중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말했다.

강연에 대한 지역적 특색 있는 반응으로

“충청도 분은 주무시고 

경상도 분은 나갑니다“라고.     



기선 제압 전략을 새롭게 짰다.

파란만장한 내 삶을 몇 가지 장표로 소개하고

관념적 지식인으로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나 역시 몸으로 체험하면서 깨닫는 공부를 해왔다는

팩트와 임팩트 있는 메시지로 

초기에 리스팩트를 끌어오는 전략을 구사했다.

(fact+impact=respect)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서서히 웃음꽃이 만발하기 시작했고

눈동자에 듣고 싶은 열정이 느껴졌으며

2층 좌석에 계시는 교장 선생님들도

초집중 모드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심장박동 소리,

내 이야기를 듣고 배우겠다는 자세,

그리고 강연을 통해 내 삶도 반추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겠다는 다짐과 각오의 숨소리가

연단에 있는 나에게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는 완전히 내 방식과 모드로

강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경상도 교장선생님이 폭소를 터뜨리며

뜨거운 열정으로 화답해주는 강연을 

100분 동안 쉬지 않고 쏟아냈다.    

 


강연은 삶을 이야기하는 공연이다.

사실적 메시지를 임팩트 있는 이미지와 융합,

인간적 신뢰감(에토스)

감성적 설득력(파토스)으로 청중에게 호소하고

논리적 구속력(로고스)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화룡점정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의 3요소는 만고불변이 진리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공부는 이전 공부와는 다르게 지식으로 지시하는 공부에서 지혜로 지휘하는 공부다. 지성으로 개발되는 지혜를 쌓기 위해서는 공부의 의미를 이전과 다른 의미로 재정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❶공부는 물음표로 시작하는 질문이다. 공부는 어제와 다른 호기심의 물음표를 던져 감동의 느낌표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다. 그래서 공부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관문을 열어가는 탐구 여정이다. 기계는 질문하지만 인간은 질문한다. 기계도 질문할 수 있지만 호기심으로 질문하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이제 정답을 찾는 모범생 육성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모험생 육성으로 교육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❷공부는 몸으로 깨닫는 육체노동이다. 공부는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이해하는 정신노동이라기보다 좌충우돌하며 몸으로 깨닫는 체험적 깨달음의 과정이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몸으로 체험하지 않고는 가슴으로 느낄 수 없다. 그래서 공부는 견디기 어려운 역경을 색다른 경력으로 만드는 고난 극복과정이다. 몸으로 깨달은 지혜는 직접 가르칠 수 없다. 오로지 당사자의 몸이 따르는 고통 체험을 통해서만이 체득될 수 있다.


❸공부는 낯선 마주침이다. 공부는 이전과 다른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켜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낯선 자극을 내면화시키는 과정이다. 공부를 통해 맞이하는 마주침에서 깨우침을 얻는 과정 속에서 각성과 통찰이 일어난다. 색다른 환경과 마주칠 때 새로운 깨우침이 일어나고 뉘우침을 얻으며 가르침을 줄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는 마주침에서 비롯된다.


❹공부는 가슴으로 느끼는 공감이다. 공감은 머리로 이해해서 생기는 능력이 아니라‘ 타자의 입장이 되어 직접 체험하는 과정에서 체득되는 미덕이다. 뭔가 잘못했을 때 두 손을 머리에 대고 반성하지 않고 가슴에 대고 반성한다. 진정한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진정한 공부도 타자의 아픔에 발 벗고 나서는 측은지심을 배우는 과정이다. 머리로 계산하면 분명 손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아픔을 사랑하는 공감능력의 육성이야말로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인간 지성의 몫이 아닐 수 없다.     


❺공부는 생각 너머를 생각하는 상상이다. 공부는 타자의 아픔에 공감한 후 그것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를 밤잠을 설쳐가며 다양한 상상을 연결시켜 나가는 이연연상(二連聯想)의 과정이다. 공부를 통해 배우는 상상은 공상이나 망상, 몽상이나 환상과는 다르게 일상에서 비상하는 과정에서 싹이 튼다. 상상력은 타자의 아픔을 사랑하는 가운데 발아된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생각을 이어가는 상상력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창조의 원동력이다. 


❻공부는 나를 발견하는 실존적 축제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나만의 색다름을 찾아 나다움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색달라지면 저절로 남달라 지지만 남달라 지면 색다름은 없어진다. 공부는 색다름으로 나다움에 이르는 자기 발견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과 비교하면서 남들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공부의 마지막 의미는 나만의 색다름을 찾아 나답게 살기 위한 자기 탐구의 과정이다.



김승희 시인의

‘신의 연습장 위에’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하나의 희미한 물음표,

어느 하늘, 덧없는 공책 위에,

신이 쓰다 버린 모호한 문장처럼

영원히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나는 하나의 물음표,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영원히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하나의 물음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의 물음표 하나를 품고

물음표가 물어보는 질문으로

새로운 관문을 열어가는 공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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