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문장의 언어는 순간을 살아가는 정육점의 언어다
김혜순 시인이 “여성의 언어는 스스로의 살을 끊어 파는 정육점의 언어”라고 했듯이 짧은 문장의 언어는 스스로 살을 끊어 파는 정육점의 언어다. 그만큼 피눈물과 피땀 흘린 노고와 성실과 정성이 욹어낸 진액이 짧은 문장에 서슬 퍼런 깨달음의 행렬로 담긴다. 읽어도 읽어내도 다 이해할 수 없는 심연에서 용솟음치는 의미의 변주다. 짧은 문장은 찰나의 순간을 살아가는 바람의 스침이자 스며듬이다. 짧은 문장은 스쳐 지나가는 듯하지만 끝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스며들어 온몸을 순간적으로 뒤흔든다. 순간에도 순풍만 불지 않는다. 처마 끝에 매달리다 떨어지는 순간 허리뼈가 부러지기도 전에 온몸을 휘감는 추락의 희열을 가슴속에 파묻고 슬픈 장송곡을 부르며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고드름이 전하는 메시지가 짧은 문장에 담긴다. 짧은 문장에는 호숫가에 굴러 떨어지다 파문을 일으키며 익사하는 순간, 한 많은 세월의 유언을 남기기도 전에 물 속으로 젖어든 추억의 한 페이지에 임종직전의 돌멩이가 죽음을 알리는 하소연이 담겨 있다.
비바람에 부러지기 직전의 무심한 순간, 철새가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을 감지하기도 전에 가지가지 품은 꿈조차 이루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숨 가쁜 사이에 허공에 뿌리는 애도의 눈물을 받아쓰면 짧은 문장이 탄생한다. 나뭇가지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 그동안 품고 있던 영혼의 빛과 마지막 순간까지 매달린 상태에서 사투를 벌이다 나뭇잎이 유서조차 남기지 못하고 허공으로 날아가며 쓴 문장이 짧은 문장이다. 겨우내 얼어있다 햇빛을 받아 옷을 벗으려는 순간, 저녁 그림자가 몸을 가리기도 전에 졸린 어둠이 이불을 덮으며 피곤한 하루해를 삼키는 땅거미가 그림자로 가려져 있다. 밤새 흔들린 무게를 벗어던지려는 순간, 백척간두 진일보도 하기 전에 자기 무게를 견지지 못하고 기회를 엿보다 아침이슬이 산산이 흩어지며 내일을 기약하는 단호한 선언이 짧은 문장에 담겨 있다.
가슴을 부여잡고 자기 생명을 다하려는 순간, 세월 속에 쌓인 겹겹의 사연을 말하기도 전에 목련꽃이 순식간에 땅과 정면충돌 하며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며 남긴 유언이 짧은 문장에 담겨 있다. 작전모의를 하다 문장을 건축하려는 순간, 주어가 목적어를 찾아 동사에게 말을 걸기도 전에 목적어가 목적을 상실하고 다른 자리를 차지해 버리자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단어들이 짧은 문장의 행간을 연주하고 있다. 한쪽 페이지를 다 읽고 다음 장으로 넘기려는 순간, 긴 침묵 속에서 졸음을 쫓고 있던 문장이 밥벌이에 지친 손가락의 움직임을 몸으로 받아들이다 만난 땀의 얼룩이 짧은 문장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짧은 문장은 창공을 날아가다 몸무게를 가누지 못하는 순간, 깊은숨 몰아쉬면서 씨줄과 날줄로 엮인 비애의 그물이 하늘을 뒤덮고 나의 생애조차 기억하지 못하며 떠돌다 자신도 모르는 이름으로 한 줄기 빛이 되는 정처 없는 구름들이다.
짧은 문장은 창문 틈으로 밀려온 감미로운 봄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순간, 하얗게 웃는 꽃들의 눈물 숨긴 작별 인사에 봄기운은 눈치만 보다가 녹슨 문장 한 구절 남기고 내년을 기약하는 아랑곳없는 벚꽃들의 향연이 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농밀한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깊이를 모르고 뼛속 깊이 파고들며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엽서를 들고 입안 구석구석에 농염한 소식을 전하는 와인의 풍미가 짧은 문장에 스며들어 있다. 짧은 문장은 가까이서 물어봐도 대꾸조차 하지 않고 허공으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사투를 벌이다 자기도 모르게 부둥켜안고 영문도 모른 채 잊어버린 생각들에 휘말리다 끝을 모르고 쏟아지는 빗방울들의 아우성이다.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마침표를 찍으려는 순간, 반란과 폭동을 일으키며 기존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이 밤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설득을 해도 별일 없다는 듯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호기심의 물음표가 짧은 문장 곳곳에 숨어 있다.
불현듯 떠오른 한 구절의 시로 내 살을 베어 내려는 순간, 상처받은 마음이 우렁찬 침묵의 항변으로 어색한 자기주장을 펼치다 숨죽이며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는 한 많은 사연들이 짧은 문장을 서글프게 만든다. 파도에 실려 오는 하얀 거품의 비밀을 물어보려는 순간, 한 많은 세월을 바닷가 물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있다가 새까맣게 타들어간 가슴 아픈 사랑을 아로새기며 그동안 고백했던 사연의 뒤안길에서 힘겹게 서 있는 바위가 바로 짧은 문장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봄이 지나가려는 순간, 우두커니 봄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다 먼 산을 바라보며 낮은 곳에서 계절의 아픔을 붙잡아두려는 시인의 마음이 짧은 문장을 시로 만든다. 순탄한 순례길만 있는 게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 순풍이 부는 공간에도 좌우지간 인간은 여전히 숨어 있는 순리를 찾아 사투를 벌이는 시간을 보내다 새벽 물안개 걷히기 전에 힘겹게 만난 순교자의 순방이 짧은 문장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바람을 붙잡고 안부를 물어보고 질경이 잎사귀를 짓밟는 무거운 걸음소리를 엮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순간의 추억과 깨달음의 망치를 전해준다. 지금 막 귀향하는 먹구름이 품은 비소식으로 특집란을 편집, 짧은 문장이 품은 꿈의 파노라마를 푸른 하늘에 전해주고 지구로 내려가 골목길 모퉁이에서 저녁노을에게도 마감 일자를 알려주자. 매 순간 달라지는 소식을 짧은 문장에 담아 서둘러 떠나는 사람들에게 머뭇거릴 시간을 벌어주자. 짧은 문장이지만 의미는 심장에 넣고 짧은 순간이라도 멈춰 서서 심장에 꽂힌 의미를 곱씹어 되새김질을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