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를 통한 6가지 짧은 문장 건축법
1. 단어 뒤집기를 통한 역발상으로 짧은 문장 창조하기
단어를 뒤집어 생각의 물구나무를 서는 방식이다. “‘객관(客觀)’을 뒤집으면 ‘관객(觀客)’이 됩니다”(p.278). 신영복의 《담론》에 나오는 말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주관(主觀)’을 뒤집으면 ‘관주(觀主), 관점의 주인’이 된다. 객관과 주관의 차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문장보다 객관을 뒤집어서 관객으로 만든 다음 객관은 주인의 관점이 아니라 손님의 관점, 즉 관객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치명적인 약점이나 한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객관(客觀)’을 뒤집으면 ‘관객(觀客)’”으로 바뀌는 짧은 문장은 단순한 말장난이나 언어유희 수준을 넘어 객관적인 사람은 관점의 주인, 즉 주관적인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촌철살인의 문장이다. 같은 맥락에서 역경(逆境)을 뒤집으면 경력(經歷)이 된다. 색다른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의 한 가지 공통점은 숱한 시련과 역경을 겪어내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경력으로 재건축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문제를 새로운 생각의 계기로, 위기를 기회로 뒤집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매일매일 반복하는 평범한 보행(步行)을 축적, 비범한 행보(行步)로 탈바꿈시킨 역전의 명수들이다.
‘성실(誠實)’하지 않으면 ‘실성(失性)’하고 ‘지금’ 하지 않으면 ‘금지(禁止)’되며, ‘정지(靜止)’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면 ‘지정(指定)’해서 뭔가에 집중하기 어렵고, 주어진 ‘현실(現實)’을 정확히 꿰뚫지 모르면 꿈을 ‘실현(實現)’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지금 당장 ‘실행(實行)’하지 않으면 ‘행실(行實)’이 좋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 찍을 수도 있으며, ‘실상(實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상실(喪失)’의 아픔을 겪을 수 있다. ‘관습(慣習)’을 타파하지 않으면 나쁜 ‘습관(習慣)’에 얽매여 살게 되고, ‘사장(社長)’을 뒤집으면 사장의 본질인 ‘장사’를 잘하는 사람으로 밝혀지고, ‘전공(專攻)’을 잘 못 선택해서 파고들면 공전(空前)’의 히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작가(作家)’로서의 기질을 보여주지 않으면 ‘가작(佳作)’도 탄생시킬 수 없으며, 일생(一生)’을 목숨 걸고 살지 않으면 생일(生日)’조차 맞이할 수 없다. ‘교육(敎育)’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미래로 향하는 ‘육교(陸橋)’조차 건설할 수 없고, ‘가능(可能)’한 일을 찾아 도전하지 않으면 비교 대상을 ‘능가(凌駕)’하는 기록을 세울 수 없고, ‘세상(世上)’을 똑바로 살지 않으면 ‘상세(詳細)’하게 목표를 설정할 수 없으며, ‘사고(思考)’하지 않으면 ‘고사(枯死)’당하고, ‘등대(燈臺)’를 찾는 노력을 포기하면 ‘대등(對等)’한 입장에서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고, ‘성품(性品)’을 곱게 가꾸지 않으면 ‘품성(品性)’마저 망가진다.
‘학자(學者)’가 제대로 공부하며 심신을 단련하지 않으면 ‘자학(自虐)’하며 평생을 후회하며 살 수 있으며, ‘용기(勇氣)’내어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기용(起用)’되지 못한다. ‘기자(記者)’가 ‘자기(自己)’를 잘 알지 못하고, ‘기사(記事)’를 잘 못 쓰면 ‘사기(詐欺)’가 되고, ‘사설(社說)’을 잘 못 쓰면 ‘설사’가 될 수도 있다. ‘상식(常識)’이 뒤집혀 ‘식상(食傷)’해지기 전에 ‘동작(動作)’이 굼뜨기 시작하면 아예 ‘작동(作動)’조차 되지 않고 ‘성숙(成熟)’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숙성(熟成)’되지 않고, ‘수고(手鼓)’하지 않으면 ‘고수(高手)’가 될 수 없고, 전대미문의 ‘유일(唯一)’한 독특함을 보여주지 못하면 ‘일류(一流)’가 누리는 아름다운 경쟁력을 지닐 수 없으며, ‘변주(變奏)’하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면 ‘주변(周邊)’에서 영원히 서성거릴 수 있다. 한 ‘문장(文章)’을 쓰지 못하면, ‘장문(長文)’의 글을 쓸 수 없고, 독해(讀解)를 심혈을 기울여하지 않으면 해독(解毒)되지 않아 몸에 독소만 쌓이며, ‘계단(階段)’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단계(段階)’별로 천천히 올라가야 하고,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되는 ‘열정(熱情)’이 뒤집히면 폭발적으로 끓어올랐다 금방 식는 ‘정열(情熱)’이 된다.
2. 라임을 맞춰서 기억하기 쉽게 짧은 문장 건축하기
시작과 끝나는 말이 같은 단어로 운율을 만들어 짧은 문장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흔적이 축적되면 기적이 일어난다.” ‘적’으로 끝나는 단어를 흔적-축적-기적의 순서로 배치, 기적을 일으키는 쉬운 방법은 없다. 매일 꾸준히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지루한 반복이 반전을 일으킨다”는 메시지다. “루틴(routine)이 루트(root)를 만든다.” 지루하지만 꾸준히 반복하는 습관이 뿌리를 깊게 뻗는 전문성을 만든다는 말이다. “뿌리가 깊어지면 뿌리칠 수 있다.”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쉽게 걸려들어가는 이유는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이다.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용기는 ‘끈기’보다 ‘끊기’에서 나온다.” 뭔가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집요한 끈기보다 뭔가를 하지 않고 멈추거나 덜어내고 그만둘 과감한 끊기가 진정한 용기다. “지식으로 지시하지 말고 지혜로 지휘하라.” 지식으로 지시하는 시대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다. 인간지능으로 습득한 지식은 이미 인공지능이 더 많이 갖고 있다. 지혜는 경험적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몸으로 겪어본 산전수전의 경험이 지혜를 만든다. 인공지능은 몸이 없어서 자신이 겪어본 서사가 없다. 땀과 눈물과 피, 그리고 이들의 합작품인 피눈물과 피땀을 흘리지 못하는 인공지능의 지식은 100% 다른 사람이 개발한 걸 편집해서 생성한 지식이다. 그래서 감탄하지만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다.
“사로잡으면 서로 잡을 수 있다.” 서로 잡으려면 사로잡아야 한다. 잡는 건 마찬가지만 사로잡는 것과 서로 잡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사로잡는 사람은 마음을 훔치는 마음 사냥꾼이다. “마케팅은 카드를 긁게 만드는 마술이다.” 마케팅은 생각하는 뇌를 잠시 마비시켜 논리적으로 따져보지 못하게 막은 다음, 순간적으로 심장을 뜨겁게 달궈서 카드를 긁게 만드는 마술이다. 마케팅은 마술이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논리보다 감성,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움직이는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을 강조한 짧은 문장이다. 의미가 머리에 꽂히면 골 때리지만 심장에 꽂히면 의미심장해진다. 의미와 심장과 의미심장의 삼각관계를 논리적으로 연결, 의미심장함의 진정한 이유와 동인을 밝혀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비결을 말하는 짧은 문장이다. 의미심장한 사람은 감동받고 감동받은 사람은 행동한다. 즉 “감동하면 행동한다”는 또 하나의 라임이 맞는 짧은 문장이 탄생했다. 다른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방법은 의미를 심장에 꽂아 의미심장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감동을 주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설명하지 말고 내 이야기로 설득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설명하면 이해하지만 설득하면 감동받는다”는 논리를 끌어낼 수 있다. “설명은 머리를 공략하고 설득은 심장을 뒤흔든다.”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설명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설득해야 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밖으로 내버리면 쓰레기, 안으로 써버리면 글이 된다.” 쓰레기에서도 쓸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대상과 사물과 현상이 모두 시다. 시는 시인만 쓰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시답지 않은 인생을 시답게 바꾸는 시인이다. 시는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상담이 필요할 때 비로소 태어나는 계시다. 시는 임시와 잠시를 동일시하지 않고 지시와 넌지시 사이에 잠시 거주하다 사라지는 살포시다.
어느 날 ‘지시’라는 시인이 나타나 자신의 주특기를 직설법이나 직유법으로 직격탄을 날리는 데 있다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순간 곁에서 지켜보던 ‘넌지시’가 나타나 ‘지시’를 슬며시 우회적으로 공격하면서 자기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넌지시’에
따르면 세상은 자기주장을 정면으로 펼치며 직유법을 쓰는 사람보다 자기주장을 은유법으로 제시하면서 ‘살포시’ ‘암시’하는 사람이 이끌어간다고. ‘지시’하면 ‘경시’ 대상이 되고 심지어는 ‘무시’를 넘어 ‘멸시’나 ‘괄시’를 받을 수 있지만 ‘넌지시’ 전하면서 ‘과시’ 하지 않고도 ‘살며시’ ‘중시’된다는 입장이 ‘넌지시’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넌지시’의 이야기를 듣던 ‘지시’는 ‘살포시’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반격의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중요시’ 되거나 ‘우선시’ 되는 사안은 ‘프라이버시’를 강조하기보다 ‘문전성시’를 이룰 수 있도록 의중을 분명하게 ‘즉시’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시’의 입장이 무슨 의미인지를 ‘텔레파시’로 감지한 ‘넌지시’는 ‘당연시’ 되는 주장의 이면을 파고들어 ‘넌지시의 시심에는 설명할 수 없는 ’ 꼭두각시‘가 들어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넌지시’와 ‘지시’의 한 판 싸움을 ‘잠시’ 듣고 있던 ‘국가고시’가 나타나 모든 시인은 ‘반드시’ ‘실사구시’라는 시를 써야 한다는 뚱딴지같은 ‘꼭두각시’를 쓰고 있었다. ‘국가고시’의 틀에 박힌 주장은 ‘몹시’라는 시인의 감정을 건드려 ‘또다시’ ‘서사시’나 ‘서정시’의 중요성을 ‘도외시’ 했거나 ‘등한시’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평상시’나 ‘유사시’는 ‘근시’와 ‘원시’ 사이에서 ‘이십사 시’처럼 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일상에서 시심을 건져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다양한 ‘에이전시’를 통해 ‘한날한시’에 만나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계시’처럼 다가오는 섬세한 ‘삼행시’ 시인의 마음을 오늘도 이해하기 위해 ‘브러시’로 ‘당연시’되던 세계를 긁으면서 파헤치고 있다. ‘지시’와 ‘넌지시’는 ‘또다시’ 진정한 시는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우렁각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대시’ 하지 않고 ‘문제시’ 하지도 않았다. ‘수시’로 찾아드는 음악적 영감을 ‘신성시‘ 하던 ‘드뷔시’는 마침내 ‘그람시’의 철학적 통찰력보다 ‘무시무시’한 ‘교향시’를 창작하면서 ‘스쿼시’처럼 강력한 임팩트를 남기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등장한 모든 시인들은 내년 ‘연말연시’에 ‘다시’ 모여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훈시’하는 시를 쓰지 말고 ‘눈엣가시’로 작용하는 아픔을 치유하고 윤동주처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라임을 맞춰서 기억하기 쉽게 짧은 문장 건축하는 방법은 라임을 맞춰서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림’ 자로 끝나는 끌림, 쏠림, 꼴림, 홀림, 울림, 무림 등을 엮어 유혹의 단계를 식물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여 비슷한 종결 어미로 연결한 방식이다. 씨앗의 잉태부터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7단계의 단어로 구성한다. 뿌림 → 끌림 → 쏠림 → 꼴림 → 홀림 → 울림 →무림에 이르기까지 ‘-림’이라는 반복되는 소리를 통해 유혹이 점차 개인적인 몰입에서 사회적 확산으로 깊어지는 과정을 리드미컬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단어들이 사슬처럼 엮여 있어 독자가 다음 단계를 자연스럽게 예측하게 만들며, ‘무림(武林)’이라는 최종 단계에 도달했을 때의 쾌감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뿌려야 끌리고 끌려야 쏠린다. 쏠려야 꼴리고 홀릴 수 있으며 울림을 주어 마침내 무림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씨앗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열매를 맺고 무림지존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번에는 ‘-움’으로 끝나는 단어, 예를 들면 괴로움, 서러움, 어려움, 그리움, 아쉬움과 싸움하며 나다움 → 즐거움 → 놀라움 → 아름다움 → 고마움으로 변하는 과정과 같이 반복되는 어미를 사용하여 문장에 리듬감을 더한다. 즉 부정적인 감정의 ‘싸움’ 끝에 긍정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괴로움, 아쉬움, 어려움, 그리움, 서러움, 외로움 등 ‘-움’으로 끝나는 고통의 단어들을 왼쪽 하단에 배치한다. 고통스러운 싸움 끝에 비로 찾아가는 나다움 → 즐거움 → 놀라움 → 아름다움 → 고마움으로 이어지는 ‘-움’의 변주를 통해 감정의 승화를 표현한다. 동일한 어미(‘-움’)를 사용함으로써 고통과 환희가 결국 한 끗 차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한다.
3. 언어적 운율로 의미를 심장에 꽂는 짧은 문장 건축법
시작과 끝나는 말을 맞추서 언어적 라임을 형성하는 수준을 넘어 절묘한 언어적 뉘앙스의 차이로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도 쉽게 짧은 문장을 직조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지시’보다 ‘넌지시’가 전달력이 높다는 말을 보자. 지시는 단도직입적 명령의 의미를 함의하면서도 지시한 바를 이행하지 않으면 통제과정을 통해 엄격한 평가결과를 근간으로 모종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압적 의지를 표명하는 말이다. 이에 비해 넌지시는 청자가 미루어 짐작하거나 역지사지 입장에서 이해하고 주어진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 수 있도록 살짝 암시적으로 의미를 우회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인기’ 있는 사람보다 ‘인기척’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한 글자 차이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실용적인 짧은 문장 건축법이다. ‘폼’ 잡지 말고 ‘플랫폼’ 잡아라. 이 말도 개폼이 똥폼 잡으며 과시하지 말고 거대한 시대적 흐름인 플랫폼 경제에서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말이다. ‘다짐’이 많으면 ‘짐’이 된다. 왜 실천을 못하는지 설득하는 한 가지 방법은 실천하지 않고 준비하고 계획 세우며 ‘다짐’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짐’이 무거워서 출발도 시작도 못한다는 설명이다. ‘힘들어야’ ‘힘 들어간다’는 짧은 문장을 보자. 힘든 일에 직면해보지 못한 사람은 힘든 상황이 발생하면 쓸 힘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힘든 일을 많이 겪어본 사람은 웬만한 힘든 일이 발생해도 힘든 경험을 통해 생성된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단순한 아재 개그 수준을 넘어 전달하고 싶은 인생의 교훈을 기억하기 쉽게 임팩트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짧은 문장 건축법이다.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다 잡을’ 수 없다. 한글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붙이거나 띄어쓰기만 바꿔도 의미가 확연하게 달라지면서 전달력의 임팩트를 높이는 방법이다. 살피지 않으면 보살필 수 없다. 살피는 일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관찰하는 일이고, 보살피는 일은 살핀 결과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살핌과 보살핌은 한 글자 차이지만 살피지 않고 보살필 때 줄 수 있는 심리적 역기능과 불편함이 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개념들이다. ‘날’ 잡지 않으면 ‘날’ 잡을 수 없다. 앞에 있는 ‘날’은 날짜를 의미하고 뒤에 있는 ‘날’은 ‘나를’의 준말이다. 나와 지금 당장 약속을 잡지 않으면 쉽게 만나기 어렵다는 의미를 이렇게 언어적 운율로 짧은 문장을 만드는 사례다. ‘한계’는 ‘한 게’ 없는 사람의 ‘핑계’다. 한계를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한계와 발음이 비슷한 한 게, 시도한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말이다.
“이기적으로 살아야 기적을 일으킨다.” 왜 기적을 일으키려면 이기적으로 살아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면 철저한 자기 관리와 깊이 있는 자기 창조를 통해 일정한 경지에 올라서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철저하게 고독과 함께 자기 단련을 반복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무시하고 오로지 나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남에게 피래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완성을 위해 오로지 경지에 이르는 고독한 과정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물건을 파는 “가게는 마음이 가게 만드는 곳이다.” 고객을 움직이는 사람은 상품을 팔지 않고 상징적 의미를 판다. 사실은 그들은 팔지 않고 판다. 시장을 움직이는 고수들은 “남보다 잘하지 말고 전보다 잘 하자”를 삶의 철학으로 정립한 사람들이다. 남보다 잘하기 위해 “비교하면 비참해진다.” 전보다 잘하기 위해 “어제와 나와 비교하면 비전을 품고 비상할 수 있다.” 일상에서 비상하다 보면 꿈으로 향하는 여정이 만만치 않아서 때로는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다. “구부러져야 부러지지 않는다.” 부러지지 않으려면 외부 시련과 역경에 무조건 저항하려고만 들지 말고 가끔 나에게 다가오는 압력이나 거대한 물결을 받아들여 구부러져야 전체 몸은 부러지지 않는다.
팩트(fact)에 임팩트(impact)가 추가되면 리스펙트 respect)를 받을 수 있다. 영어로 ‘트’로 끝나는 라임을 맞춰서 만들어본 짧은 문장이다. ‘팩트’ 없는 ‘임팩트’는 ‘노트’에 불과하고, ‘임팩트’ 없는 ‘팩트’는 ‘힌트’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찾는 ‘자기’는 ‘갑자기’ 온다.” 그렇데 두 눈을 부릅뜨도 찾아봐도 주변에 없었던 내가 찾는 자기는 어느 순간 우연한 기회에 갑자기 찾아온다. 한 눈 팔다가 한눈에 반하는 경우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면 속수무책이다. 대책 없이 빠져든다. “흔들려봐야 뒤흔들 수 있다.” 세상을 뒤흔드는 사람은 이런저런 시련과 역경에 많이 흔들려본 사람이다. 흔들리며 피는 꽃들이 더 찬란한 꽃을 피우는 이유는 흔들리면서 뿌리까지 뽑히지 않으려고 뿌리를 더 깊이 내리기 때문이다. 흔들리며 대책을 찾는 사람은 “법대로 안 되면 방법을 개발한다.” 법대로 하는 사람은 아마추어 사업자나 직장인이지만 법대로 안 되면 방법을 개발하는 사람은 프로 사업가나 장인이다. 직장인은 월요일 아침에 다리가 떨리고 장인은 심장이 뛴다. 다리가 떨리는 일은 끊고 심장이 뛰는 일은 끈기의 대상이다. 끊지 않고 끈기를 발휘하면 인생 자체가 끊어지는 까닭이다. 직장인과 사업자에게는 걸림돌이지만 장인과 사업가에게는 걸림돌도 디딤돌이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같은 돌이다.” 그들은 무리하다 마무리를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리하면 마무리가 안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사실 직장인과 사업자는 하던 대로 하면서 변한 게 없지만 장인과 사업 가는 변함없이 노력해서 끊임없이 변한다. 당신은 변한 게 없습니까, 변함없습니까?
가치가 상승하는 여정을 펌 → 폼 → 품 → 핌 → 팜의 5단계로 표현하면 간단한 한 글자로 된 단어지만 이들이 맺는 구조적 관계를 발전과정에 비추어 도해하면 개별적 단어들이 다른 단어들과 맺는 관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도해를 근간으로 얼마든지 짧은 문장을 창조, 의미를 채굴하고 전달할 수 있다. 1단계는 남의 글이나 생각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는 초보적인 펌(Copy & Paste) 단계다. 유명 강사의 통찰력 있는 글을 자신의 SNS에 출처 없이 그대로 공유하여 마치 자기 생각인 양 올리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2단계는 실속보다는 겉모습에 치중하며 '보여주기'식 허장성세에 매몰된 폼(Show off) 잡는 단계다. 전문 지식은 부족하지만, 화려한 용어만 나열하거나 비싼 장비 사진을 올려 전문가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개폼'이나 '똥폼'의 상태다. 3단계는 내면의 실력을 쌓고 타인의 아픔을 '품어주는' 품격과 품위를 갖추는 품(Quality & Dignity) 단계다. 독자의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정성과 시간(발품, 성품)을 들여 깊이 있는 답변을 내놓는 숙련가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4단계는 나만의 고유한 빛깔인 ‘나다움'과 ’ 색다름‘이 만나 꽃을 피우는 ‘ (Blooming & Uniqueness)’ 단계다. 기존의 정보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와 관점이 담긴 작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상태다. 5단계는 억지로 팔려하지 않아도 고객의 사랑(love)과 존경(respect)을 한 몸에 받는 러브 마케팅의 정점, ‘팜’ (Selling with Love) 단계다. 애플이나 파타고니아처럼, 제품 그 이상의 철학을 소비자가 지지하게 되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하며 자발적인 팬덤이 형성되는 명품 브랜드의 단계다.
4. 한자 변주를 통해 의미상이 차이를 만드는 짧은 문장
같은 한글 소리를 가지되, 다른 한자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새롭게 변주하는 방식이다. 한글 발음은 같지만 한자 의미는 다른 동음이의어를 활용, 의미의 변주를 통해 짧은 문장을 창조하는 방식이다. “책(責) 잡히기 전에 책(冊)을 읽자.” 앞의 ‘책(責)’은 책임을 말하고 뒤의 ‘책(冊)’은 우리가 읽는 책이다. “사고(事故) 당하면 사고(思考)가 바뀐다.” 수동적으로 어제와 다른 사고를 당해야 어제와 다른 사고가 생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면 ‘생각지도(地圖)’도 바뀌고 생각을 이끄는 지도자(指導者)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사고(思考)는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바뀔 수도 있지만 밖에 나가서 어제와 다르게 시행착오도 경험해 보고 넘어지고 자빠지는 실패를 경험해야 비로소 바뀐다. “시행착오가 판단착오를 줄인다.” 판단착오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어제와 다르게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방법이다. 어제와 다른 시행착오, 어제와 다른 실패가 실력을 낳는 비결이다. “실력(實力)은 실행력(實行力)의 산물이다.” ‘실행력(實行力)’의 ‘행(行)’자를 빼면 ‘실력(實力)’이 된다. 실행은 머리로 하지 않고 몸으로 한다. 진정한 실력은 책상공부의 산물이 아니라 어제와 다르게 실행하는 사람들의 부산물이다. “산물 없이 부산물도 없다.” 산물은 철저한 준비와 계획의 결과지만 부산물은 뜻하지 않은 우연의 결과다. 때로는 산물보다 부산물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포스트잇처럼 강력한 접착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긴 부산물이 공전의 히트 상품으로 남는 경우다.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니다.” 앞의 정상은 산꼭대기나 가장 높은 경지를 지칭하지만 뒤의 정상은 보통의 평범함을 의미한다. 정상에 간 사람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가지 않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에 도전하는 사람은 정상에 가지 못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당연함을 부정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전을 반복하는 사람만이 정상이라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꿈꾸는 동안은 동안(童顏)이다.” 앞의 ‘동안’은 과정을 의미하고 뒤의 ‘동안(童顏)’은 나이 든 사람이 어린이 같은 얼굴이다. 꿈만 꾸면 동안이 어려워 최근에 이 말을 바꿨다. “운동하는 동안은 동안(童顏)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가장 강력한 비결은 밥먹듯이 운동하는 것이다. “행복은 허리둘레에 반비례하고 허벅지 두께에 정비례한다.” 유산소 운동으로 허리둘레를 줄이면 대사증후군 없어지고, 하체 운동으로 허벅지 두께를 늘려 근육량을 늘리면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좋아질 뿐만 아니라 특히 혈당수치를 대폭 떨어뜨리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세상에 가장 강력한 책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대책도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속수무책을 써서 독자들이 두 손들고 설득당하게 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공사다망(公私多忙)하면 다 망한다.” ‘공사다망(公私多忙)’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비틀어 바쁘게 많은 일을 처리하며 끌려다니는 사람은 ‘다 망한다’는 역설이다.
“용기(容器, container)를 깨뜨려야 용기(勇氣, courage)가 생긴다.” 진정한 용기는 끈기보다 끊기에서도 생기지만 자신의 그릇, 즉 용기(容器)를 깨는 과감한 결단이 또 다른 용기(勇氣)다. 파부침선(破釜沈船)이라는 사자성어에 어울리는 말이다.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혀 출진(出陣)에 앞서 살아 돌아가지 않고 크게 싸우겠다는 각오를 의미한다. 그만큼 결연한 각오와 백절불굴의 용기를 의미한다. “사색(思索)을 하지 않으면 사색(死色)이 된다.” 똑같은 ‘사색’이지만 얼굴이 죽을 상으로 바뀌는 사색(死色)은 생각을 깊이 파고드는 사색(思索)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같은 ‘사색’이지만 한자의 의미는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한국말로 눈이라는 말은 한자로 보는 눈(目)을 뜻하기도 하고, 겨울에 내리는 눈(雪), 나무에 트는 겨울 눈(芽)을 의미하기도 한다. 겨울 눈(芽)은 겨울에 눈(雪)이 와서 자신을 덮어버리면 다음 해 그걸 깨닫고 눈(雪)이 쌓이는 높이보다 더 높게 겨울눈(芽)을 만들어 새봄의 희망을 싹 틔우는 놀라운 눈(目)을 갖고 있다. 눈(芽)이 눈(雪)을 알아보는 눈(目)을 갖고 있다는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를 두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
5. 단어를 쪼개서 의미를 찾아가는 짧은 문장 쓰기
단어는 사유의 감옥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창문이다
단어를 쪼개어 그 속에 숨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주로 한자와 영어를 파자해서 의미를 창조, 짧은 문장을 구축하는 방법이다. 쌀(米) 한 톨이 생산되기 위해서 88번의 농부의 수고와 정성이 들어가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쌀 ‘미(米)’자를 분석해 보면 여덟 ‘팔’(八) 두 개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글자(八 + 八 = 米)라고 한다. 즉 한 톨의 쌀이 생산되기까지는 88가지의 농부의 정성스러운 노력과 수고스러운 땀이 투여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의미다. 밥 먹다 배부르면 남은 밥을 아무렇게 버리는 우리들에게 쌀 한 톨이 나의 입으로 다가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쌀밥에 담긴 사계절 자연의 기운과 농부의 지극정성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이런 분석으로 창조할 수 있는 짧은 문장은 “밥에는 우주의 기운이 담긴다”이다. 기운 기(氣) 안을 들여다보면 쌀(米)이 들어 있다. “기운을 차리는 원동력은 밥심이다.” 쌀은 하나의 곡식이 아니라 봄부터 가을까지 대자연의 섭리를 따라 우주의 기운을 머금은 경이로운 선물이다.
들을 ‘청(聽)’자를 보면 눈(目, ‘聽’이라는 한자에서는 옆으로 누워 있음)을 열 ‘십’(十) 자로 크게 뜨고 ‘귀’(耳) 밑으로 쭈우욱 늘어뜨리면 ‘왕’(王)이 된다는 의미다. 즉 ‘청(聽)’이라는 한자는 ‘目 + 十 + 耳 + 王’이 합쳐져서 생긴 절묘한 표의문자다. 결국 소통의 비밀열쇠는 말하는 화자(話者)가 갖고 있지 않고 듣는 청자(聽者)가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 잘하는 입담의 달인보다 귀담아 들어주는 귀명창이 많을수록 조직 내 소통은 막힘이 없다. 이런 분석을 통해서 만들 수 있는 짧은 문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귀(貴)’하게 대접받으려면 ‘귀(耳)’를 기울여야 한다.” 생각을 의미하는 한자 '사(思)'도 ‘밭田+마음心’의 합성어다. 밭을 의미하는 ‘전(田)’은 본래 인간의 숨골, 즉 ‘이성’을 의미한다. 감성(心)의 기초 위에 이성(田)이 작동되는 것이 생각 ‘사(思)’의 이치다. 특히 진짜 생각은 가슴이 하는 것이다. 뭔가 잘 못해서 반성할 때, 머리에 두 손을 대고 생각하지 않고 가슴에 두 손을 모아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소통이 원활하게 일어나려면 먼저 마음(心)이나 감성을 움직인 다음 이성을 논리적으로 작동하게 해야 된다. 마음이 움직이고 나서 논리가 따라가야 설득이 되고 소통이 이루어진다. “심장이 움직여야 의미심장해진다.” 감성 없는 이성은 와닿지 않고, 이성 없는 감성은 여운이 남지 않는다.
‘together’의 의미가 ‘to+get+her’의 의미라고 분석해 볼 수 있다. ‘그녀’를 얻기 위해 ‘그녀’와 함께한다는 의미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그녀’의 마음을 읽고 훔쳐야 한다. 여기서 ‘그녀’는 기업입장에서 보면 고객이다. 고객의 마음을 얻으려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와 측은지심이 삶의 미덕으로 실천해야 한다. 고객을 얻기 위해 고객과 함께하는 것이다. 심장을 뜻하는 영어 단어 ‘heart’는 그분(he)이 주신 예술품(art)이다. 똑 같이 인간에게 주어진 심장을 대체불가능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있는가면 대체가능한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사람도 있다. 작품은 철학과 신념이 들어가 향유하고 소장가치가 있는 명품으로 발전하지만, 상품은 소유했다가 소비해서 없어지는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하다. 당신은 지금 상품 개발에 한 눈 팔고 있습니까, 작품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단어는 사유의 감옥이 아니라, 쪼개고 흔들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창문”과도 같다.
6. 익숙한 개념의 낯선 조합으로 짧은 문장 건축하기
익숙한 개념들을 낯설게 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품은 짧은 문장을 창조한다. 예를 들면 체인지(體仁智) 개념과 Outsight의 만남이다. 한자 체(體)와 인(仁)과 지(智)를 합쳐, 영어 체인지(change)와 발음이 같게 만든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교육은 지덕체(智德體)를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데 목적을 두었지만, 현실적으로 덕(德)과 체(體)는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지를 편향적으로 강조한 결과 덕은 실종되고 몸은 망가지는 절름발이 교육이 아이들이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장본인 역할을 해왔다. 교육의 방향도 머리(head, 智)를 공략해서 가슴(heart, 仁)에 와닿기를 희망했고, 가슴으로 내려간 느낌이 손발(hand, 體)을 움직여 실천되기를 희망했지만 안타깝게 교육이 진행될수록 머리와 가슴과 손발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교육 패러다임은 가르쳐서 알게 해 주면 알고 있는 지식만큼 행동한다는 지행일치(知行一致) 패러다임을 따랐다. 많이 알수록 안만큼 행동하지 않는 것은 지행일치의 사상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로 배운 앎은 곧 함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전통적인 교육의 한계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체인지(體仁智) 교육관을 개발한 것이다.
체인지(體仁智) 교육관은 지행일치보다 지행합일 패러다임을 추구한다. 앎과 삶과 함은 따로 구분된 독립된 별개의 활동이 아니라 앎이 함이고 그 함이 삶 속에서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가운데 앎과 삶과 함은 하나로 통합된 유기적 활동인 셈이다. 특히 몸과 마음 또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심신이원론을 부정하고 몸을 움직여 깨닫는 가운데 느낌으로 감지하면 머리로만 깨달을 수 없는 실천적 지혜가 생긴다. 지혜는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야성적 경험의 산물이다. 어제와 다른 환경에서 낯선 경험적 마주침을 해보고, 나와 다른 사람과 부단히 접속하는 인간적 마주침, 전공 분야를 넘나들며 다른 이종분야와의 지적 마주침을 반복하다 보면 세 가지 낯선 마주침이 어제와 다른 깨우침을 준다. 여기서 마주침이 바로 아웃사이트(outsight)이고, 깨우침이 바로 인사이트(insight)다.
한 마디로 인사이트는 아웃사이트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의 인사이트는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오지 않는 인사이트, 즉 도파민을 일시적으로 폭등시키는 인스턴트(instant)에 불과할 뿐이다. 어제와 다른 인사이트는 어제와 다르게 밖으로(out) 나가 겪어본(sight) 마주침의 산물이다. “아웃사이트가 바뀌어야 인사이트도 바뀐다.” 어제와 다른 인사이트로 ‘체인지(change)’하고 싶으면 ‘체인지(體仁智)’로 ‘체인지(change)’ 해야 된다. 즉 세 가지 아웃사이트가 필요하다. 첫째, 낯선 곳에서 ‘체험적 마주침’(體), 둘째, 어제와 다른 사람과의 ‘인간적 마주침’(仁), 셋째, 경계를 넘나드는 다른 책과의 ‘지적 마주침’(智)을 바꾸면 세 가지 다른 깨우침(insight), 즉 ‘체인지(體仁智)’가 바뀌어야 내가 원하는 대로 ‘체인지(change)’된다. “마주침이 깨우침을 낳는다”는 짧은 문장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체인지(體仁智)’는 진선미(眞善美)와 맞닿아 있다. 진선미의 ‘진(眞)’은 이를테면 체인지의 ‘지(智)’에 해당된다. 무엇보다도 모르는 사실을 알고자 하는 열망과 갈망, 앎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 의해 진리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자 소외된 곳을 비추는 애정 어린 손길로 재탄생된다. ‘선(善)’은 체인지의 ‘체(體)’에 해당된다. 체(體)는 연습이자 단련이며, 체험이자 습관이다. 내 생각의 옳고 그름,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몸으로 경험해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딜레마 상황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할까 말까 망설이거나 모종의 보상을 머리로 계산해 보고 행동여부를 결정하곤 한다. 선(善)은 뭔가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의미 있고 반드시 해야 되기 때문에 행동에 옮기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윤리적 실천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률에 비추어 실천할 때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훌륭한 습관이 생긴다. 체험적 단련을 통해 딜레마 상황에서도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도덕적 판단력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선(善)의 영역이다.
‘미(美)’는 체인지의 ‘인(仁)’에 해당된다. ‘인(仁)’이라는 말은 공자 이전부터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철학적 의미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공자에 의해서였다. ‘인(仁)’이라는 한자를 보면 사람(人)이 둘(二)이 있음을 뜻한다. 즉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갖는 마음, 그것을 인(仁)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아픔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제될 때 비로소 온전히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인의 최고 단계는 살신성인(殺身成人)이다.
이성복 시인의 사진 에세이집, 《타오르는 물》에 진선미(眞善美)는 곧 진선미(進先未)라는 말이 나온다. 진선미(眞善美)의 한자를 다른 의미로 해석, 다른 한자로 또 다른 진선미(進先未)를 만들어 진선미(眞善美)의 진정한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다. “진실함眞은 진실함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나아가는進 과정이고, 올바름善은 주체가 앞장 서先 주인 역할을 하는 것이며, 아름다움美은 아직 오지 않은未 아름다움으로 존재한다”(238쪽). ‘진(眞)’을 나아가는 ‘진(進)으로, ’ 선(善)‘을 솔선수범을 실천하는 먼저 ‘선(先)’으로, ‘미(美)’는 아직 오지 않은 ‘미(未)’로 해석, 미완성의 희망을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 과정의 의미를 강조한다. 진선미(眞善美)는 정체된 명사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고 노력하며 변화하는 동사, 진선미(進先未)로 재해석하는 탁월한 상상력이다. “진선미(眞善美)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미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