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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국제 트레일 러닝
100Km에서 배운 교훈

속도보다 각도와 밀도가 중요하다

제주도 100Km  국제 트레일 러닝에서 배운 10가지 교훈


2012년 사하라 사막 250Km 마라톤 도전,

2014년 히말라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반과 제주도 국제 트레일 러닝 100km 마라톤 도전,

1025년 킬리만자로 정상 등반,

내 삶의 가장 멋진 도전의 역사적 기록이다.


도전은 결과에 관계없이 그 자체가 아름다운 체험이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호기심의 발로이자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며, 능력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내 삶의 ‘카니발’ , 그게 바로 도전이다. 한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전이다. 도전은 능력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도전을 멈추는 순간 성장도 멈춘다. 도전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을 비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틀에 갇혀 지내며 매너리즘에 빠져 살아가는 나를 구출하는 방법은, 지금 여기서 저기로 떠나는 도전이다. 제주도 100Km 마라톤을 뛰면서 깨달은 10가지 인생 교훈을 정리한 글을 공유한다.


1. ‘연배’가 높을수록 힘의 ‘안배’를 잘해야 ‘선배‘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마라톤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더욱이 기록 경쟁을 하는 선두권 선수가 아니라면 레이스 초반부터 후반까지 힘을 적절하게 조정하고 아끼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대부분 완주에 실패한다. 몸이 완전히 풀리기 직전 초반에는 들뜬 기분에 달려 나가는 선두권 주자들에 휩쓸려 같이 달리다가 완전히 기진맥진할 수도 있다. 연배가 높은 사람일수록 후배들에게 인생 마라톤의 교훈을 들려주려면 힘의 안배를 잘해야 한다. 힘의 안배에 실패하면 거의 레이스 종반부까지 가지도 못하고 초반에 레이스 완주 꿈을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연배가 높은 선배일수록 후배들에 비해 전반적인 체력은 물론 레이스를 펼치는 실력면에서도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어느 시절을 회상해서 지금도 그 시절에 살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힘을 젊을 사람처럼 쓰다가 쓰러진다. 



2. ‘발목’을 접질리면 ‘길목’을 돌을 수도 없고 ‘주목’ 받을 수도 없다.


장거리 경주의 아킬레스건은 참으로 많다. 개인적으로 마라톤을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발바닥에 잡히는 물집이다. 잡힌 물집은 달리면 달릴수록 쓸려서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이번 제주 국제 트레일 러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부분은 종종 발을 잘 못 디뎌서 접질리는 발목이었다. 다행히 크게 다 펴서 레이스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발목을 접질릴 때마다 아찔했다. 여기서 발목 잡혀 결국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장거리 레이스, 특히 한라산을 오르는 산악 레이스의 길목과 바다에 인접한 바윗돌 위를 달리는 레이스에는 언제나 발목을 잡는 위험 요소들이 도처에 숨어 있다. 



3. 정상에 가까이 살아가는 나무일수록 자세를 낮춘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나무를 비롯한 풀과 모든 식물들의 키가 작아진다. 바닥보다 더 심하게 부는 바람에 자신의 몸이 꺾이지 않기 위한 생명체의 신비한 환경 적응과정에서 탄생한 자세 낮추기 전략이다. 바닥이나 중턱의 나무처럼 곧게 하늘을 찌를 정도로 자라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절제하고 정상에 몰아치는 비바람이나 느닷없이 불어 닥치는 세찬 바람에 견뎌내기 위해서는 높이 자라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위로 성장하는 전략을 멈춰야 한다. 대신 정상에 근접하는 모든 식물들이나 나무들은 몰아치는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최대한 바람의 힘을 그대로 받지 않고 바람을 피하는 생존전략을 환경과 맞서 싸우면서 스스로 개발해낸 것이다.

 


4. 레이스의 ‘후미(後尾)’에서조차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목적지도 ‘희미’해진다.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하는 한 가지 방법은 가급적 제한된 시간 안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마지막 주자인 스위퍼Sweeper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히 후반부로 레이스가 넘어갈수록 힘은 떨어지고 의욕도 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심지어 포기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꿈틀거릴 때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후발대의 모습도 따라잡기에는 쉽지 않을 정도로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기력을 거의 상실하면서 마지막 남은 사력을 다해 사투를 벌이지만 마지막 후미 주자들을 따라가기에도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든다. 목적지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가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저 멀리서나마 보였던 후미의 선수들조차 눈앞에 보이지 않고 어딘가로 사라지면서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강렬한 열망도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 그래서 무조건 후미와 함께 연대를 이루어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지에 대한 희미해진 의식이 거의 혼미 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5. 앞사람을 따라가려다 오히려 뒷사람에게 따라 잡힌다.


중위권 이하 후미권에서 그룹을 이루어 달리는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사람을 자신의 경쟁자로 설정해놓고 힘닿는 데까지 그 사람을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바로 앞의 경쟁자를 따라가려고 무리한 승부욕을 부리다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발생한다. 앞서서 달려가는 사람들을 뒤에서 보기에 그렇게 빠르지 않은 속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큰 걸음으로 한꺼번에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서 꾸준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욕심을 내서 그런 사람의 뒤를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써서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 저만큼 멀리서 여전히 같은 속도로 앞으로 나간다. 그렇게 내 페이스를 잊고 남들처럼 하려다 남들처럼 되지도 않고 결과적으로 나의 속도를 잃어버린다. 어느새 나를 따라오던 사람이 나조차 따라잡고 또 저만큼 멀리서 앞으로 나아간다. 



6. 땀을 흘리면 때맞춰 바람도 불어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선 몸을 움직여 달리다 보면 근육운동 덕분에 몸이 더워지면서 땀이 흐른다. 땀이 흐르는 양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은 힘든 운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땀이 흐른다. 평지를 달리는 단순한 마라톤이 아니라 험준한 준령을 넘나들거나 가빠른 언덕길을 한 동안 올라가다 보면 평지보다 훨씬 많은 양의 땀이 흐른다. 그만큼 물을 보충해주면서 달려야 되는 이유다. 시원함을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때는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지나갈 때이다. 그때 비로소 땀 흘려 노동한 대가로 느끼는 시원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땀 흘리는 노동은 힘들고 불편한 일이지만 애쓰는 노고 없는 노동이나 그런 노동으로 얻어지는 성취는 관념의 산물이거나 걷어내야 되는 거품에 가까울 수 있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7. ‘내리막길’을 달리는 기술은 ‘오르막길’을 뛰어오르는 기술과 차원이 다르다.


흔히 등산보다 하산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 올라갈 때는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강한 집념과 의지로 올라가지만 정상을 정복한 후에 하산할 때는 올라갈 때처럼 강한 집념과 의지보다 성취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부담감 없이 힘 빼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등산할 때보다 하산할 때 주의력을 잃고 사고가 날 확률도 높다. 그래서 올라가는 기술만 연마하지 말고 내려가는 기술도 신경 써서 연마하지 않으면 무를 관절이 나가거나 발목에 통증을 수반하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올라가는 것만큼 내려가는 것도 중요하다. 잘 내려가지 못하면 다시 올라갈 수 없다. 거기서 레이스가 끝날 수도 있다. 



8. 달려가는 선두권의 눈에는 주변 풍경이 들어오지 않는다.


선두권을 다투는 선수들은 항상 자신과의 경쟁도 하지만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달린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도달해야 될 목적지와 지금 내 앞 뒤 그리고 옆에서 나와 함께 달리는 경쟁자들이다. 그런데 기록 경쟁과 기록 경신에 대한 관심보다 기념될만한 추억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두고 있는 중위권 이하 사람들은 레이스 자체의 여정을 즐기는데 관심이 있다. 달리다 걷고 걷다 멋진 풍광이 나타나면 그 풍광에 자신을 집어넣고 사진도 찍으면서 매 순간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선두권을 다투는 사람들은 경기가 끝나도 출발할 때 모습과 골인할 때 모습, 그리고 사진작가가 찍어주는 중간 달리는 장면 이외에는 남는 사진도 없지 않은가. 



9. 달려야 될 앞만 바라보다 목적지조차 멀어진다.


마라톤을 비롯한 장거리 경주는 달려도 달려도 목적지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주최 측이 전해주는 잔여거리는 그저 객관적인 거리일 뿐 나에게 다가오는 심리적인 거리는 왜 그리도 먼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묵적지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힘들어도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너무 멀리만 쳐다보다 눈이 멀어진다. 목적지는 처음부터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하루 달릴 거리가 40Km이면 간단하게 말해서 10Km를 네 번 달려야 하고, 5Km로 생각하면 8번을 왕복해야 한다. 장거리는 단거리로 잘라서 생각해보고, 먼 거리는 근거리로 당겨서 내 몸이 직접 움직여 우선 당장 앞으로 나가야 내 몸이 목적지에 다다른다. 



10. 두 발로 뛰지 않으면 생각의 발로(發露)도 거기서 멈춘다.


생각의 발로는 발로부터라는 말이 있다. 생각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다. 생각은 몸이 수반될 때 살아 숨 쉬는 생각으로 잉태되고 출산된다. 철학의 발전도 책을 읽고 산책하면서 생각의 씨앗을 발아시킨 결과다. 내 두발이 움직여 걸은 역사가 바로 이력서(履歷書)다. 내 삶의 족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력서가 바뀌려면 발걸음을 바꿔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간 역사적 기록이 나의 체험적 상상력의 역사가 되며, 내 생각의 발로를 새롭게 발전시키는 소중한 이정표(里程標)로 작용한다. 걷는 체험 없이 쌓이는 관념의 야적(野積)은 야생(野生)에서 구한 해법을 능가할 수 없다. 설득력 있는 생각, 감동을 주는 논리는 책상머리에서 잔머리 돌려가면서 가공하고 편집한 관념적 파편을 능가한다. 몸으로 터득한 체화된 앎이야말로 생각의 발로를 새롭게 자극하고 촉진하는 가장 효과적인 앎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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