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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졸다가 직면한
411 사태의 아픈 진실

2007년 4월 11일 제가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깜빡 졸다가 직면한 411 사태의 아픈 진실

2007년 4월 11일 제가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11일에 일어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 가지 사태가 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항공기가 충돌한 911 사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의 규모인 9.0의 지진이 발생한 311 사태, 그리고 2007년 4월 11일 밤 12시 50분 분당 수서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유영만 교수의 차량 전복 사고인 411 사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연구실에 늦게까지 연구에 몰두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다 분당 수서 고속도로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납니다.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U턴을 하기 위해 큰길에서 나가다 나는 깜빡 조는 사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습니다. 차는 순식간에 전복되었고 천만다행으로 누군가 119에 급히 연락해서 내 몸은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사고(事故)를 당하면 사고(思考)가 바뀝니다


한 참을 후에야 의식을 회복하고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나는 누구지?” 그렇게 정신이 나갔다 돌아오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몸은 이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양쪽 갈비뼈가 거의 다 부러졌지만 천만다행으로 내장 기관은 온전했습니다. 왼쪽 팔은 부러져 심한 통증이 엄습하고 있었고, 목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미동조차 힘든 상황에서 눈을 깜빡였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내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지만 고통은 온몸을 파고들면서 갑자기 촘촘하게 계획된 앞날의 일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 멈춰 섰습니다. 달리던 야생마가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멈춰 선 모습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날이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머릿속을 스캔하듯 지나갔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질문 없이 질주한 결과가 바로 411 사태입니다. 목표가 유혹하는 또 하나의 개념이 바로 효율입니다. 보다 빠른 시간에 보다 많이 달성하려는 능률 복음이 바로 효율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목표와 효율은 끝이 없습니다. 달성하면 달성할수록 더 높은 목표를 더 빨리 달성하려는 효율적인 사고방식이 한 사람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속도를 높여 달리다 각도가 좁아지면서 세상을 다르게 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자초한 대형사고입니다. 사고(事故)를 당하면서 인생에 관한 사고(思考)가 바뀌었습니다. 사람과 삶, 사람이 만들어가는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참으로 묘하게도 주행 속도에 따라 점차 주님에게 다가가는 찬송가가 있더라고요. 60Km일 때는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80km일 때는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100km일 때는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120Km가 되면 드디어 ‘주여 나 이제 갑니다’라는 노래와 함께 주님을 영접한다는 논리는 묘하게 와 닿습니다. 하늘나라로 빨리 가는 비결은 주행속도를 높이면 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속도와 빈도보다 각도와 밀도가 중요합니다. 각도가 넓어져야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속도가 빨랐지만 그만큼 각도는 좁아지고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여유가 없어집니다. 목표 달성을 위한 목적지만 눈에 보입니다. 속도가 빨랐지만 삶의 매 순간 느끼는 충만감이나 행복감, 즉 밀도도 약해집니다. 


2014년 2월 14일부터 일주일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오르기 전 약 3700m 고지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앞산을 바라보니 일몰 장관이 펼쳐지면서 바위가 불타는 듯 붉게 물들어 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순간 스마트폰으로 그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그 순간에 느낀 감동을 글귀로 잡아두었습니다. 매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로 만들어라(Make Moment Memorable). 일명 3M 법칙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내가 보내는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입니다.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말입니다. 목표 달성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목적지만 의미 있는 게 아닙니다. 목표를 달성하면서 목적지에 이른 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곡선이 직선으로 바뀌면서 우리는 불행해졌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과 달려왔던 과거를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상 궤도에서 이탈해보니 내가 달려온 길이 비정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몸이었지만 압축과 절제미의 보고인 시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 몸안에 시가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고두현 시인의 ‘늦게 온 소포’를 읽으며 그렁그렁 고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시를 읽고 에세이를 감상하며 하루하루 나를 감싸고도는 시간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고난에 처했을 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사람,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기꺼이 멘토가 되어주신 분들과 보낸 소중한 시간 덕분에 아픈 몸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가장 따뜻하면서도 강력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직선의 대한민국 속에서 나도 모르게 질주했던 지난날의 광풍 같은 삶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곡선이 직선으로 바뀌면서, 곡선의 물음표 없이 직선의 느낌표를 찾아 달려가는 삶이 지배하면서 우리는 불행한 세상을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직선의 질주 속에서 내가 당한 사고 덕분에 곡선의 여유와 포용의 미덕을 배웠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준 고두현 시인 덕분에 곡선의 미학도 함께 공부하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같이 공고를 다닌 특이한 인연 덕분에 사회에서 만나 절친이 되었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기울어져가는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울분을 토하고 때로는 다 덮어주고 인정해주는 중년의 뒤늦은 여유도 즐겨봅니다. 411 사태가 준 깨달음과 성찰 덕분에 고두현 시인과 같이 쓴 책이 바로 《곡선으로 승부하라》입니다. 



411 사태도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래도 매년 4월 11일 아침이 되면 아픈 추억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찾아옵니다. 4월 11일이 저에게는 두 번째 생일인 셈입니다. 태어난 날과 더불어 오늘이 바로 저의 두 번째 생일입니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지금부터는 더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더 근원적으로 알아내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앓고 난 사람의 마음을 사랑해야 앓음다운 사람이 됩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나와 더불어 세상을 밝혀가는 사람과의 연대를 사랑할 때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나만의 칼라와 스타일로 아름다움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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