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생 후르츠(Life is Fruity)〉를 보고
2019년 최고의 인생친구, ‘꾸준히’와 ‘천천히’:
영화 〈인생 후르츠(Life is Fruity)〉를 보고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 못 하는 게 없는 슈퍼 할머니 ‘츠바타 히데코’,
둘이 합쳐 177살입니다.
혼자 산 날보다 함께 살아온 날이 더 긴 부부는
나무들로 둘러싸인 단층집에서 50년을 함께 살며
과일 50종과 채소 70종을 키우며 살아갑니다.
히데코 할머니는 자연에서 얻은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부부가 한가롭고 여유롭게 즐깁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계절의 순리를 따라
자연에서 얻어먹고 살며
자연을 돌보며 자연에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상영 중에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담론》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 메시지와 일맥상통합니다.
“석과불식은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중략)
첫 번째는 엽락(葉落)입니다.
잎사귀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잎사귀는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입니다.(중략)
다음이 체로(體露)입니다.
(중략)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구조와 뼈대를 직시하는 일입니다.(중략)
마지막으로 분본(糞本)입니다.
분본이란 뿌리를 거름하는 것입니다”(419쪽).
부부가 사는 정원에는 자연과 주고받는 대화처럼
따뜻한 인간적 정감이 흐르는 문구를 곳곳에 써 놓았습니다.
읽기만 부부의 자연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문패에는 부부의 이름과 함께
‘배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작은 새들의 옹달샘 – 와서 마셔요’라는 문구를 적어 놓고
목마른 새들이 와서 물을 마시고 가라고 합니다.
밭과 나무에도 웃음 짓게 만드는 푯말들이 보입니다.
‘죽순아, 안녕’, ‘프리뮬러 – 봄이 왔네요’,
‘작약 – 미인이려나’, ‘여름밀감 – 마멀레이드가 될 거야’,
‘능소화 – 붉은 꽃의 터널을 지나 보세요’.
부부에게는 사람에게 살아갈 자유를 주는
자연도 아낌없는 사랑과 존중을 대상인 셈입니다.
대학 졸업 후 일본 주택 공단에 들어가서
나고야의 ‘고조지 뉴타운 계획’을 맡습니다.
평소의 건축에 대한 신념과 철학대로
마을에 숲을 남겨두고 자연과 교감하는,
즉 숲과 도시가 어우러지는 건물을 만들기를 원했지만
경제 발전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정부 정책에 부딪쳐
그가 꿈꾸는 건축 세계는 꺾이고 맙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명언을
삶의 철학으로 섬기며 살아갔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집은 삶의 보석상자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건축 신념과 철학을 포기하지 않고
뉴타운에 991㎡(약 300평)의 땅을 매입해 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작은 숲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는 나아가 집집마다 작은 숲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도시 전체가 나중에는 커다란 숲에 들어가서 사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40년이 지난 후 그의 생각대로 도시에
새로운 녹색 저장고가 생겼습니다.
“모든 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멘트가
영화 마지막에 나옵니다.
슈이치 할아버지 역시 자신의 건축 철학을
자연에서 배워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의 깊은 진리를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깨우쳐 줍니다.
천천히,
차근차근,
계절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자연스러움,
그리고 꾸준히 계속하다 보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깨우침입니다.
알고 있지만 잊고 살아가는 자연의 지혜를
설날을 앞두고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짜 행복한 삶인지를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래 살수록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말이
영화 마지막을 장면을 장식하면서
자막으로 흐르며 영화는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