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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하경 / 반려종의 시선 2장. 아픔과 돌봄에 대하여

   여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에 도착했다. 찬 바람이 매서웠다. 인상을 찌푸리며 패딩을 여미었다. 멀리서 누가 봐도 집에서 나온 차림새로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의 미간이 조금 풀어졌다. 남자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여자는 이 동네만 오면 마음이 편했다. 남자를 알기 전에는 롯데월드를 제외하면 와본 적도 없었던 동네였다. 여자는 이 번화가 동네를 좋아하게 된 스스로가 놀라웠다. 남자를 향해 걸으며 여자는 마치 롯데월드에 입장하듯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왜 심통이 났을까?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죽고 싶어.”

   “응. 그래 보여. 입술에 다 쓰여 있어.”


   여자의 심통 난 입술이 잠시 당겨졌다가 다시 불퉁하게 튀어나왔다. 여자는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에게 죽고 싶다는 말은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정말로 죽고 싶은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 지금 당장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여자는 현재의 불안이 조금은 잠재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말이 진심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자주 모든 것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자신도 세상도, 욕망으로 드글드글한 모든 것들이 징그러울 때면 여자는 살아가는 것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소멸하고 싶다. 아주 아주 작아져서…. 여자는 자신의 죽고 싶은 마음에 대해 더 말하고 싶었으나 속상한 듯 자신을 보는 남자의 표정을 보고 말을 삼켰다. 여자는 남자에게 팔짱을 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너무 추워. 빨리 들어가자.”

   “붕어빵 사 먹을까?”

   “아니.”

   “오늘 약 먹었어?”

   “응. 먹었지.”

   “이제 곧 생리할 때인가?”

   “그렇긴 하지.”


   두 사람은 식당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거리에는 얼큰하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 곳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차도로 비켜 걷다가, 속도를 늦추지 않는 배달 오토바이를 피해 다시 가게 쪽으로 붙어 걸었다. 횟집의 물살이 한 마리가 수조 위로 튀어 오르며 여자에게 물이 튀었다. 여자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가 울음이 나려는 것을 참고 남자의 팔에 더 가까이 붙어 걸었다.

   빌라 앞에 도착하자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배를 뒤집고 누웠다. 깜깜이였다. 여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깜깜이, 밥 먹으러 왔어? 잠깐만 기다려봐.”


   여자는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사료 봉지를 들고나왔다. 남자는 드러누운 깜깜이와 장난을 쳤다. 깜깜이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회색빛이 되었다. 깜깜이는 여자가 사료 그릇을 내려놓기 무섭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그작 아그작. 여자는 깜깜이의 야무지게 씹는 소리를 들으며 궁둥이를 토닥거리다 입을 열었다.


   “내가 인스타 보낸 거 봤어?”

   “응. 개XX새끼.”

   “그렇게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한테 화풀이하는 새끼들은 하나같이 다 남자들이야.”

   “미안….”


   20대 남성이 식당에 사는 고양이를 시멘트 벽에 내려쳐 죽인 사건에 대한 게시물이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이유였나. 여자에게는 이 사건이 시끄럽게 느껴졌다. 여자는 수년간 자신이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었다. 더 이상 매번 기사들을 카톡이나 SNS로 공유하고 분노하지도, 이불속에서 우느라 일상을 내팽개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한 번씩 죽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여자는 그렇게 삼킨 순간들이 자신의 몸속에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두 사람이 이 동네에서 깜깜이를 처음 만난 것은 6개월 전이었다. 이 동네 길냥이답지 않게 사람을 좋아하는 깜깜이는 두 사람에게 금세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물론 두 사람뿐 아니라 이 동네 여기저기에서 당당히 간식을 얻어먹고 다니는 듯했다. 깜깜이와 노는 시간은 두 사람의 데이트에 당연한 일과로 자리 잡았다. 남자는 아예 깜깜이를 위한 사료와 장난감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깜깜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다 얻었다는 듯이 울타리 뒤로 쌩 가버렸다. 받을 수 있는 사랑만 잔뜩 받고 요리조리 잘 도망가 버려. 여자가 속으로 말했다.


   남자의 집에는 올리브 오일 냄새가 가득했다. 식탁에는 굴과 깻잎을 넣은 감바스가 차려져 있었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살고 있는 여자를 위해 남자는 함께 있을 땐 육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 결과 두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해산물을 자주 먹게 되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여자는 좀 전에 횟집을 지날 때 튀어 올랐던 물살이를 떠올렸다. 바다에 사는 동물들이라고 해서 육지에 사는 동물들보다 나은 방식으로 인간들에게 잡아 먹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가 해산물을 먹고 있는 것은 단순히 선택지를 너무 제한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편의를 위한 선택이었다. 여자는 식사를 할 때마다 페스코를 계속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의심이 들었다. 동시에 그럼 인간이 모든 동물을 잡아먹지 않는 것이 답인지에 대해서도 의심이 들었다. 여자는 감바스를 한 입 맛봤다. 깻잎과 굴의 향이 더해져 어느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도 맛있었다. 남자는 노심초사하는 얼굴로 여자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어때? 짜거나 그렇지는 않아?”

   “굴은 어때? 다 익었나?”

   “깻잎은 많이 넣었는데 익으니까 별로 없어 보이네…. 좀 더 넣고 끓일까?”

   “바게트는 이 정도면 충분해? 더 가져올까?”


   두 사람은 밥을 먹으며 함께 볼 영화를 골랐다. 결정을 잘 못 하는 두 사람은 평소에 영화를 고르는 시간이 거의 영화 러닝타임만큼 걸리곤 했다. 영화 취향도 서로 너무 달랐다. 여자는 현실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인물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그려진 영화들을 좋아했다. 반면에 남자는 현실을 벗어나 상상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은근슬쩍 영업해 보았지만 상대방의 관심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예전부터 남자가 좋아한다고 얘기했던 마블 영화 중 한 편으로 금방 정해졌다. 여자는 요즘 남자가 좋아하는 판타지 영화들의 재미가 궁금해졌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자신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영화를 틀고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마블의 로고가 지나가고 우주를 배경으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제 막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데 남자가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심호흡을 했다. 여자가 곧바로 영화를 멈췄다.


   “괜찮아?”

   “응. 나 안아줘.”


   여자는 남자를 꼭 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이건 다음에 보자. 여자는 남자를 토닥였다. 여자는 남자가 이렇게 숨을 쉬기 어려워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함께 있을 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남자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며 심호흡을 계속했다.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었다. 갈비뼈가 움직이며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손을 힘껏 쥐었다가 펴보았다. 남자는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살아있는 것이 분명했다.


   “괜찮아? 약 있어? 약 먹을까?”

   “응. 지금 먹어야겠다.”


   남자는 죽음을 떠올리면 두려워졌다. 모태신앙이었던 남자는 죽은 이후에 천국에서 신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리라고 믿어 왔었다. 그러나 20대 초반 신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을 구원해 줄 천국도, 자신을 벌할 지옥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물 같았던 영원한 삶을 잃게 된 것이다. 영원한 삶, 그것은 여자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이었다. 여자는 자신이 어떻게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천국을 잃은 남자는 ‘나’라는 존재가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좋아하는 남자에게 이 죽음의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두 사람은 죽음을 코끼리라고 불렀다.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 생각이 더 나는 것처럼, 죽음을 코끼리라고 부른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방금은 왜 코끼리 생각이 났어?”

   “원래 우주 장면 볼 때도 잘 그래.”

   “아… 뭔가 스스로를 멀리서 보게 되는 느낌 때문인가?”

   “그렇지. 아, 나도 이 우주의 일부분이지, 나도 언젠가 죽겠구나, 사라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렇구나. 넌 나랑 진짜 반대다. 나는 딱 그 생각이 들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신기해.”

   “무서웠어?”

   “응.”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무의 상태겠지? 지금의 나는 절대 알 수도 없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거니까. 그래서 무서운 거야. 사실 무섭다기보다 답답한 것 같아. 모른다는 게….”

   “그렇구나….”

   “도대체 어떻게 죽는 게 무섭지 않을 수가 있어? 내가 없어진다는 게 무섭지 않아?”

   “그러게…. 근데 나는 사는 게 끝이 없다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아.”

   “사는 게 재미없어?”

   “아니, 재밌어. 근데 끝이 있으니까 재밌는 거 아닐까? 뭐든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싫은데. 여행도 언젠가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더 즐겁다고 느끼는 거잖아.”

   “하긴 나도 <맨 프롬 어스> 보고 영생이 답은 아니구나, 싶긴 했어.”

   “맞아. 그런 거야.”

   “근데, 우리 이 얘기 그만할까? 나 요즘 다시 자주 무서워지는 것 같아.”

   “그래, 그래. 다른 얘기 하자.”

   “고마워.”

   “그럼 우리… 명상해볼래?”


   여자가 남자에게 명상을 제안했을 때, 여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남자가 분명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자가 보기에 남자는 지나치게 합리적인 것, 이성적인 것, 과학적인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명상과 같은 영적인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자는 바로 그 이유로 남자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이해될 것이라는, 명확한 인과 관계로 들어맞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을 흔들어주고 싶었다.


   “그래. 혹시 누워서 해도 돼?”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니까?”


   두 사람은 베개에 기대 거의 누운 듯이 앉았다. 여자는 명상 영상을 찾아 틀고 불을 껐다.


   편안한 상태에서 호흡을 느껴보세요.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 폐 안에 공기가 가득 찹니다. 입으로 천천히 내뱉으면서, 갈비뼈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두 사람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나 잠들어 버렸어.”

   “나도. 너무 잘 잤어. 근데 괜찮아. 명상하면서 드는 잠은 좋은 잠이랬어.”

   “나 꿈꿨어. 얘기해줘도 돼?”

   “응. 얘기해줘.”

   “깜깜이가 우리 집에 들어와 있는 거야. 근데 여기 반려동물 금지거든. 집주인이 갑자기 집에 들어와서 ‘이게 뭐예요!’ 하는데 내가 사정사정해서 깜깜이만 살 수 있게 해 준 거지. 그래서 ‘휴, 다행이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깜깜이가 가족들을 막 데려오는 거야. 그래서 깜깜이 가족들이 막 집으로 밀려 들어오는데, 그중에 고양이가 아니라 막 다른 동물들도 하나둘 섞여서 들어와. 비둘기도 들어오고, 참새도 들어오고.”

   “너무 귀여운 꿈이잖아!”

   “그치? 근데 그다음은 까먹었어…. 우리 이제 진짜 잘 준비할까?”


   두 사람은 불을 끄고 함께 누웠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남자가 말했다.


   “신기한 거 알려줄까?”

   “응.”

   “우리가 이렇게 손을 잡고 있어도, 사실은 닿아 있는 것이 아니야.”

   “그게 뭔 말이야?”

   “왜냐면 원자의 대부분이 빈 공간이기 때문에, 우리도 대부분 텅 비어 있거든. 이렇게 손이 닿는 것은 사실 전자들이 밀어내고 있는 거야.”

   “전자…요?”

   “왜, 너무 T 같았어?”

   “응. 좀 킹 받았어.”

   “미안.”

   “근데, 그럼 닿아있는 이 느낌은 뭐야?”

   “우리는 우리가 다 막혀 있어서 통과되지 않고 닿는다고 느끼잖아. 근데 사실은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거여서 그 반발력을 느끼는 거야.”

   “그럼… 우리는 절대 닿지 못하는 건가?”

   “음…. 근데 아는 거랑 믿는 건 다른 것 같아. 머리로는 모든 것이 비어있고 우리는 닿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나한테는 너무 분명하게 느껴지거든.”


   여자는 남자를 세게 끌어안아 보았다. 남자의 따뜻한 체온이, 부드러운 잠옷 냄새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갈비뼈와 더운 숨이, 낮게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닿아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우리가 사실 대부분 비어 있는 존재라면, 그건 참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로 꽉 차있는 것이 아니라니 얼마나 다행이야. 비어 있다는 것은 여자에게 어떤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여자의 시끄러운 마음이 조금은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남자의 코골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며 여자도 스르륵 다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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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


서울에서 영화를 만들고 영상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

언젠가 고양이들의 반려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 이 글은 하경과 민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민수의 도움을 받아 함께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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