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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부가 글을 쓴다는 것

이완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저는 전업농부이지만,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글짓기 노동도 합니다. 그 시작은 영농일지를 기록하며 하루하루의 날씨와 한 일을 글로 풀어낸 것에서 비롯합니다. 돌아보니 농사 일기를 블로그와 카페에 기록하면서, 수확한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직거래하기 시작했네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시장에 팔러 나가지 않고, 거의 100% 가까이 인터넷 판매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여전히 글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밀접한 사이가 된 농사와 글짓기의 상관 관계를 살펴봅니다.


   해가 지고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와도 일이 끝난 게 아닙니다. 집안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컴퓨터를 켜서 글을 써야 하루 일을 마감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름 주경야독(晝耕夜讀)합니다. 몸을 쓰고, 머리를 씁니다. 일과 글의 균형이 삶의 방식입니다.


   저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 홈페이지와 농정신문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것’, 농민신문 ‘청년D집다’ 등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SNS와 칼럼 기고 등은 글의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연습삼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마감일에 맞춰 원고를 보냅니다.


   어쩌면 글이 저를 바꾸도록 둡니다. 마치 키질하여 알곡만 남기고 검불이나 쭉정이를 날려 버리는 것처럼 제 삶을 까불리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로 온전히 속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 위치를 찾아내지요. 돌고 돌아 온전한 삶을 찾아 여기까지 왔구나 싶습니다.


   실로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농사를 짓다 보면 저절로 하고 싶은 일들이 연이어 생겨요. 꽃이 피면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고, 밭에 씨앗을 심다 보면 씨앗같은 동네 아이들을 불러 같이 심고 싶습니다. 벌레가 많아지면 해결사가 되어 이 원인을 규명하고 싶고, 수확기에는 요리사가 되어 신선한 농산물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이 무시로 느끼는 초록초록한 작물의 생명력과 흙먼지 풀풀 날리는 날것의 감성이 오롯이 담긴 글을 전하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글을 씁니다. 씨앗을 뿌리는 방법, 퇴비를 만드는 일, 서리가 내린 날을 기록할 뿐더러 따사로웠던 쨍한 햇볕과 눈이 부신 파란 하늘 아래 지저귀는 새소리, 놀라서 도망가는 노린재 방구 냄새,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과 꼬투리 안에서 달그락 거리는 동부콩알, 뽀얗게 분이 올라와 잘 익은 청호박 등에 대해 적어둡니다.


   오늘의 밭은 딱 오늘 뿐이죠. 수많은 생명체들이 꿈틀거리며 자라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밭은 매일매일 달라요. 변화무쌍합니다. 타오르는 생명력을 목격하는 자이기에 가능한 글쓰기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농사를 꼼꼼하게 새기는 일은 단순히 농사 비법을 남기거나 여유를 부리는 일이 아닙니다. 현존함을 다시금 음미하는 일이고, 내일은 어떨지 상상하는 일입니다. 이 기록이 나아가 수년 뒤에도 참고할 수 있는 땅의 이력이 되기도 하겠지요. 언젠가 제가 사는 곳의 후손이 지역의 역사를 찾다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항상 글을 쓰기 전에 진짜 쓰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농촌살이 15년차이므로 글 소재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독자를 떠올리며 기승전결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것이 쉽지 않네요. 또 제가 쓴 글이 부끄러울 때도 많습니다.


   아무쪼록 단 한 줄의 글이라도 교차하는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에게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공감과 연대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글을 읽고 외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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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박효정)


농사, 글, 밥 짓는 농부입니다.

어릴 때부터 뒷산을 오르며 자연과 교감하는 기운으로 살았어요.

죽을 때도 밭에서 일하다 흙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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