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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끼는 양평에서, 농사의 깊은 맛

이승수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22년 1월 우프코리아에서 공지한 퍼머컬처 디자인과정 모집공고를 보고 15명의 청년이 모였습니다. 서울, 원주, 부산, 영주, 제주도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저는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서 식재료가 어떻게 자라는지, 토종작물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고자 참가했습니다. 채소의 맛이 재배방식이나 품종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단순한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퍼머컬처를 배우면서 자급자족 텃밭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저희의 퍼머컬처밭은 이른 아침엔 안개가 자욱한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에 있습니다. 식물을 키우기에는 기본적으로 햇빛, 땅, 물이 필요합니다. 당연하게도 이 세 가지는 어느 하나 덜 중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작물마다 필요한 빛의 양이 다르고, 흙의 산도와 흙 속의 질소, 인, 칼슘 같은 미네랄도 다르고 좋아하는 수분량도 다릅니다. 세세하게 들여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저희는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햇빛을 고려해서 작물 위치를 정하고 빗물을 모으는 공간을 만들고 땅은 짚으로 덮고 미생물을 배양해서 넣어주었습니다.


   프로는 비료와 관수시설, 하우스시설 등으로 최적의 조건에서 작물을 키우지만 저희는 아마추어기에 조금은 부족한 조건의 텃밭에서 농사지었습니다. 화학비료를 배제한 노지 상태의 밭은 사람이 갈 때만 관수를 해줄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번 봄 가뭄, 초여름 가뭄 때 상추를 재파종해야 했고 고구마순이 말랐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부족한 조건에서 자란 작물이 단맛도 강하고 향도 진했습니다. 혹독하게 살아남은 식물의 선물 같습니다.


   크기와 무게로 가격을 매기니 프로는 물과 비료를 넘치게 주고 크기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맛은 품종개발단계에서 고려하는 부분이지 재배하는 방법에서는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과 비료가 충분하면 식물은 뿌리를 뻗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얕은 뿌리위에 우람하게 자란 모습이 어찌보면 현대 사회의 모습 같아 보입니다. 저 식물처럼 위태위태하게 성장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제가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제철의 채소를 알게 되었고 뿌리깊은 채소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품종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시중의 채소보다 개성과 향이 진했습니다. 엽채류와 가지과의 경우 시중의 채소는 물 탄 느낌이라면 텃밭에서 난 채소는 조직이 단단하고 특유의 맛이 있었습니다. 가지를 익힐 때 물이 덜 나오고 익히고 나서도 맛이 진했습니다. 가혹한 환경에서 더 힘들게 뿌리를 뻗어가며 자란 채소와 풍족한 환경에서 편하게 자란 채소의 차이일 것입니다.


   퍼머컬처는 특별히 어떤 조치나 시설이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자연에서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밭 모양부터 형태와 관수 방법까지 처음 밭을 만들 때는 잘 디자인해야 했고 관행농보다 품이 더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밭을 만들고 나면 그 모양 그대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다음해는 품이 덜 든다고 합니다.


   자급자족 밭을 꾸민다면 다양한 작물을 심어야 할 것입니다. 한두 가지 작물만 먹을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작물을 재배하기는 힘들겠지만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많이 있다는 것은 도전할 것이 많다는 뜻 같습니다. 다양한 작물을 심고자 할 때 작물끼리의 조합과 재배주기에 따른 조합을 생각해서 밭을 디자인하고 재배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청년들이 모여 텃밭을 꾸미면서 자급자족을 하고자 할 때 현실적으로 힘든 점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밭을 꾸미기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땅값이 너무나 비싸고 왔다갔다하는데도 시간과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마 10년 뒤엔 한적한 지방의 텃밭이 있는 집에서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자급자족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올해 저는 밭 모양을 디자인하고 무엇을 심을지 고민하고 심고 관리하는 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이 과정은 몰입의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수행하며 결과가 어떻든 서로 공유하면서 미래의 각자의 텃밭을 어떻게 할지 가늠해보면서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 즐겁고 의미있는 한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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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28살에 코로나로 일을 쉬던 중 우프코리아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작년엔 토종작물, 올해는 퍼머컬처를 배웠습니다.

밭에서 나는 식재료에 관심이 있어 농사를 시작했는데요.

또래친구들과 흙장난 하면서 농부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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