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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1년, 생계와 재미 그 사이 어딘가

농곰이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추운 밤, 히터도 잘 안 나오는 1톤 트럭 안, 운전하시는 아빠 옆에 앉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조잘조잘 떠들던 7살 농곰이는 시골로 향하는 시간이 좋았다. 따라가면 양평으로 넘어가는 고개 즈음에 트럭에서 파는 바베큐 치킨 한마리를 먹을 수 있기에.


   아빠는 양평 동쪽 끝 작은 산골 농부의 장손으로 태어나셨는데 부득이 도시에서 살게 되면서 도시노동과 주말 농작업, 집안의 대소사를 다 챙기는 무거운 삶을 사셨고, 나는 K-장녀로서 그 삶을 따라 다녔다. 서울에 태어나 학교도 작년까지의 직장도 다 서울에 있었던 나는 서울, 수도권 거주의 도시쥐였지만, 자주 시골을 다니다보니 도시쥐도 아니고 시골쥐도 아니었다. (귀농 결심 전에 스스로 평가하는 데 도움되었던 베아트릭스 포터의 ‘도시쥐 조니 이야기’를 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복잡한 교통체증과 빽빽하고 일률적인 건물이 넘쳐나는 도시보다 시끄러운 사람이 없는 시골이 좋았다. 살랑이는 밭과 논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뿌듯할 수 없었다. 마치 만석꾼의 마음을 가진 듯. 부지런히 일하느라 고생이지만, 일머리의 키를 잡고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의 자유로움도 멋졌고, 직접 기른 생산물로 맛있는 요리를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할머니의 마음씨와 풍요로움도 멋있었다.


   그때쯤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성공해서 돈 많이 벌면 내려와서 농사짓고 즐겁게 살아야지.’는 내 마음 속의 노래였고, 종종 사람들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심지어 취업 면접에서도 10년 후 비전을 묻는 질문에 귀농하겠다고 떠들고, 농사는 단순 3D라고 생각하는 남자들 앞에서도 귀농이 꿈이라고 떠들던 20대의 여자는 스스로도 괴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표준적 정의의 ‘성공’을 하기엔 내가 너무 부족했다. 나는 판검사가 되어 돈을 왕창 벌어서 금의환향하듯 아빠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분수도 모르고 고시 공부하다가 잇단 실패로 정신만 황폐해졌고, 뒤늦게 취업을 준비했지만 목표의식도 없이 성에 안 차는 직장들을 다니다 그만두기도 했는데 직장을 꾸역꾸역 다니던 2018년 서른한 살의 나는 특히나 감정 노동 때문에 깊은 우울에 갇혀 있었다. 입사 때는 MBTI가 ENTJ였는데 INFJ로 바뀌었다가 퇴사 후 안정적(?)으로 INTJ로 바뀌었다. 겨우 2년 안에 이뤄졌다. MBTI는 환경에 따라 잘 바뀌는데 그만큼 환경과 감정의 고됨이 있었던 것 같다. 매일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땅만 보고 출근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안되겠다, 성공이고 뭐고는 틀려먹었으니 그냥 재밌는 걸 하자.’하고 마음 먹었다. 그게 귀농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각종 자기 계발과 꿈을 좇으라는 인플루언서의 강연과 책들을 보면서 용기를 내었고, 퇴사 후 2개월 후인 2019년 2월, 언니네텃밭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에 운 좋게 입사하게 되었고,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소농학교를 1년간 다니면서 방통대 농학과 3학년에 편입까지 해 공부했다. 평일에 이뤄지는 관 주도의 귀농교육도 찾아 들었다. 나는 저질 체력에 긴장을 잘 하는 유리멘탈이라 사람들 만나고, 농사 짓고, 회사 다니고, 공부하고…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재밌었다. 너무 재밌었다. 그래서 돈도 기반도 없지만 어디든 귀농을 얼른 하고 싶어 노래를 부르다가, 반대하던 아빠의 병이 발병해서 가족이 함께 양평으로 내려가 살아보자고 결정된 것은 작년이었다. 좋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양가감정이 격했던 2021년이었다.


   귀농 1년, 역시 직접 온전히 살아보지 않으면 논할 수 없는 것 같다. 생각했던 것과 같이 농촌의 삶은 로맨틱하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행정과 요즘 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할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적 언행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가부장적 행정을 예를 들어보면 농업경영체공동경영주등록은 ‘배우자’인 여성만 가능하고, 자녀나 다른 이는 올릴 수 없으며, 그 또한 동등한 입장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마지못해 작게 체크하는 수준이다. 여성농업인행복바우처사업은 1가구 1여성만 가능하고 그마저도 사업비가 적어 선착순에서 짤리기 십상이다. 또한 성별만으로 농작업수당이 2-3만원 정도 차이가 있으며, 무슨 행사가 있으면 여자들이 동원되어 먹을거리를 해 먹여야 하고, 남편의 폭행에 선글라스를 쓰고 일하는 분도 계시고, 남편과 소통이 안 되는 현실에 답답해 자해나 술로 꾸역꾸역 사시는 분들도 있다.


   또 내가 생각하는 ‘농촌의 삶’이 귀농 준비 때처럼 로맨틱하려면 ‘생계유지(돈)’가 보장되어야 함을 절절히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지속가능한 농사, 퍼머컬쳐, 유기농법, 자급자족, 토종 농사, 제로웨이스트’ 등의 키워드들은 생계유지라는 기본적인 틀이 작동할 때 수월하게 챙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위 키워드들의 농사방식은 자연을 안 해치고 거의 무투입으로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많은 생산을 기대하기 쉽지 않으며, 농산물을 생산한 것으로만 판매하여 온전한 생계유지비용을 만들기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초보 농꾼에겐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또한 우리집 농사를 진두지휘하는 선장은 아빠인데, 옛날부터 해 오신 일반 관행농의 관점을 갖고 계셔서 나와 달랐고, 귀농 초기에는 돈(집짓기, 토목, 전기, 지하수, 세금, 농자재 등)이 많이 들어갈 뿐, 나오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생계 농사 중심의 관행 농사로 가야 했다.


   처음에는 마음의 갈등이 컸는데 농사를 짓다보니 나중에는 관행을 죄악시만할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집은 소농이라서 원래부터도 고투입 농사는 못했고, 전통적인 농법과 가치관을 가진 아빠의 땅 관리와 작물 재배법은 내가 생각했던 순환농법과 결이 같거나 더 멋질 때도 있어서 감탄했었다. 예를 들어 뒷산에서 5~10m짜리 낙엽송을 통째로 가져다가 오이 지지대를 만들었다. 진짜 무겁다. (딸바보 아니, 딸천재 아빠는 딸보고 함께 들자고 했다.) 휘어지는 얇은 나무로 모종을 키울 수 있는 미니 하우스를 만들었으며, 산에서 낙엽이나 부엽토를 가져다가 땅에 넣기도 했다. 음식물이나 유기농자재 퇴비도 넣어 옛 순환적 농법을 익숙히 활용하셨다.


   몇 년이 걸리겠지만 나는 생계농사에 사용하는 농약도 서서히 천연농약으로 전환하고 싶다. 올해는 따로 연습해보겠다며 무농약-무제초제방식으로 미니단호박 200평 을 재배했고, 텃밭 토종 농사(10~20개 종의 작물)도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너무 잦고 길었던 장마에 둘다 그닥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특히 단호박은 물을 너무 먹어 게거품을 물고 거의 전사했다. 기후위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천연 농약과 미생물 활용법, 작물관리법을 더 꾸준히 공부하고 적용하면서 전환해갈 것이다.


   한편 우리집 생계 농사(부추, 고추, 옥수수, 콩, 깨 등)는 부모님의 생활비를 간신히 충당할 정도라, 또 현금을 벌러 다녀야 했다. 그래서 평일 알바를 하고 있다. 100% 농부로 살기가 어려운 귀농초기이다. 농사에, 알바에, 여성농민들과의 연대와 공부 과정에서도 부지런해야 하니 매일매일 해내야 하는 게 도시 살 때 보다 많다. 욕심이 많아서 벌린 것도 많고, 다품종 소량 생산의 농사는 상상으로만 행복하지 신경 쓸게 많아서 너무 힘들다. 농작업이 바쁠 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밤 9~10시까지도 쉼 없이 일해야 한다. 주말도 없다. 어쩌다 보니 힘들다고 투정되는 글로 마무리되는 것 같지만, 귀농 초기라 욕심에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깨달은 바를 토대로 내년엔 조정할 생각이다. 이것저것 해봐야 깨닫는 게 아닌가. 무모한 나를 스스로 볼 때도 ‘내팔내꼰(내 팔자 내가 꼰다)’이라고 생각해 웃음이 난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농촌에서 주체적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요즘이 도시 살 때보다 재미있다.


   생계와 재미 그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귀농한 지 1년, 이제 2년차 된 초보농꾼이다. 그 둘의 균형이 나한테 꼭 맞게 맞춰지는 날을 언젠가 마주하길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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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곰이


농사짓는 곰탱이. 귀농 2년차에 접어든 양평 청년농부.

토종씨앗 지키는 농사와 자급자족에 관심이 많고,

농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는 곰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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