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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너에게로

오병석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음악과 함께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매일 밤 우리 함께 했던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바이올린 솔로 협주곡 (Caprice No.24 for SOLO Violin in A Minor, Op.1 No.24)을 들으며 너와의 이야기를 하려 해. 너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 협주곡 도입부의 짜릿함과 같은… 마치 너라는 자석에 난 찰싹 달라 붙었어. 그 이후로 꼼짝달싹 못하는 철가루가 되어 버렸지. 파가니니의 현란한 연주에 젖어 부정맥으로 쓰러지던 200년전 유럽의 그녀들… 나 또한 쓰러져 버렸지. 너무 치명적인 매력이야.


   빠져나올 수 없어.


   너를 위해 난 일주일마다 특별한 선물을 건네. 그럼 넌 속마음을 숨기듯 시큰둥하지. 하지만 난 알아. 금세 뜨거워져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힌다는 것을… 그 선물은 머나먼 에티오피아, 케냐에서 온 그들. 경상남도 김해시 경원로 15 1층 커피진심에 도착하지. 그들은 우리에게 향긋함의 후각과 쌉쏘롬하고 시그러운 미각을 느끼게 해 주었어. 그 후 쓸모없다며 종량제 봉투에 담기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 했을거야. 너에게는 아주 아주 훌륭한 선물인데 말이야.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난 어김없이 너에게로 발걸음을 옮기게 돼 버리지. 하루종일 하염없이 넌 날 기다렸겠지. 기다려준 너를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를 시작해. 재료 준비에는 많은 정성이 필요해. 체하지 않도록 먹기 좋게 썰어 줄게. 넌 너무 예민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어. 물기가 많은 것을 싫어해. 물기는 꼭 짜내도록 할게. 싱겁게 먹는지 짠 것도 매운 것도…물로 깨끗이 씻어 줄게, 상해버린 것도… 가위로 자를 수 없는 뼈, 큰 생선 뼈, 곰팡이가 핀 것도…. 그리고 넌 산소를 가장 싫어하지. 싫어하면 싫어하는 만큼 내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기며 싫은 티를 팍팍 내버리지. 대답없는 널 바라보며 답답하고 막막했었지… 하지만 과일, 야채 껍질을 건네면 아주아주 달콤하고 은은히 시큼한 향기를 내는 너로 인해 나는 후각의 오르막길을 올라버렸어. 난 그 향기를 위해 매일 밤 널 찾는지도 몰라.


   시행착오 끝에 악취가 날 때 탄소질(톱밥,쌀겨 등등) 성분을 넣어주면 그 냄새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너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느껴.


   올해 무더운 여름 아주 많은 수박을 먹었지. 그리고 널 알게 된 것이 나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 예전이었다면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던 수박 껍질. 하지만 이번엔 달라. 넌 수박 껍질을 받아들였고 난 감사함에 보답하듯 수박의 빨간 부분만이 아닌 껍질을 뺀 모든 부분을 먹는 습관이 생겼어.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너와 함께하며 많은 기억이 있었지만 크게 두 가지가 생각이 나네. 기억하지? 액체 EM과 분말 EM 말이야. 유용미생물 EM. 내 삶은 EM을 만나기 전과, 만나고 난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야. 설거지를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세탁을 할 때도 그리고 너에게도.. 매일매일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야. 그렇다고 질투는 말아줘. EM은 우릴 이어주는 매개체잖아. 처음 액체 EM을 너에게 소개해줬을 때 반갑게 맞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너의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지. 그 알 수 없는 감정이 무엇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어. 액체 EM은 달콤시큼한 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액체 EM에 들어 있는 수분으로 인해 너는 부패하기 시작하였지. 망연자실 그걸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지. 그때를 회상하니 지금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미안한 마음만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어. 어떻게든 생각해야 했어. 무엇이든 찾아내야 했어. 내 머릿 속은 온통 너로 가득했어.


   그때 분말 EM을 알게 되었어. 골고루 구석구석 뿌려보았어. 다행히도 넌 다시 달콤 시큼한 향을 풍기며 날 맞아 주었지. 보카시 퇴비라는 방법도 찾게 되었어. 그로 인해 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떨쳐 버릴 수 있는 순간이었어.


   넌 정말 헌신적이고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주는 존재야. 보카시 퇴비에서 나온 액체는 보카시 티(TEA) 라고 하더군. 물에 아주 조금, 1000:1로 섞어서 식물에게 주면 훌륭한 영양제가 되었지. 보카시 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부엽토나 배양토와 섞어 한 달 정도 땅에 묻어 아주 훌륭한 토양으로 변한 너를 볼 때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어. 항상 고마워. 이런 내 마음을 많은 이들과 함께 느꼈으면 하지만 우리 사회는 깨끗함을 무엇보다도 강조, 강요하면서 왜 유독 너에게는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며 널 버려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지.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면 깨끗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가 원망스럽다. 너와 함께 한 일들을 다른 이들에게 말 할 때면 그들의 입은 날 대단하다 말하지만 눈으로는 ‘뭘 그렇게 까지 해야하냐’고 느낄 때가 있었어. 언제 내 것을 다른이에게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야.


   나도 모르게 푸념을 해 버렸네. 너에 대한 감정이 앞서 화가 나 버렸어. 우리 언제까지나 같이 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며 지냈으면 좋겠어.


   이만 너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해.


   이 말 한마디는 꼭 해주고 싶어. 우리 헤어질 결심이 생긴다면 그건 바로 발우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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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석


반려균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분리수거, 플라스틱 재활용, 조화로운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각자 도생의 시대, 최대한의 자급자족을 꿈꾸며 하루하루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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