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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마트, 텃밭

농곰이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대파 3,000원어치 여기 있습니다.”

   “네, 사장님. 많이 파세요~~”


   종종 가족들과 함께 텃밭에서 작물을 수확할 때면 콩트를 시도한다. 위와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건 도시에서 사 먹던 것을 직접 길러내어 먹게 된 게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텃밭을 ‘우리집 마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귀농 2년 차에 막 접어든 현재에도 텃밭에서 얻은 식재료들을 보면 자동으로 가격이 떠오른다. ‘감자 한 소쿠리에 3,000원. 애호박 2개에 2,000원.’ 그리고 실제 마트에 가서도 진열된 농산물의 가격을 유심히 보게 된다. ‘토마토 한 상자에 얼마니 나는 그만큼 돈이 굳었구나.’하고 속으로 혼자만의 행복한 승리(?)와 풍요로움에 씨익 웃게 된다.


   작년에 양평으로 내려와 올해 새로이 봄을 맞이할 때까지도 나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아빠와 나만 노동이 가능했고 친환경은 많이 공부하고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만한 수확량을 생산해내기 굉장히 어려운 농법이기 때문에 귀농 초기에 시도하기엔 무모했다. 실제로도 이런 고민이 많은 귀농 준비자들에게 귀농 선배님들은 처음에는 관행농부터 시작해도 괜찮다고 조언해주신다. 마음만 굴뚝같고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나는 텃밭만큼이라도 내가 짓고 싶은 방식으로 짓기로 했다. 그래서 가족과 합의를 통해 작지만 나만의 도화지인 텃밭을 얻어내 무제초제-무농약 방식으로 재배하게 되었다. 퇴비는 유기농 자재인 유박과 잘 발효된 축분 퇴비를 사용했다.


   나는 내 도화지인 텃밭에 심고 싶은 것들을 많이 심었다. 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된 작물들도 있었지만, 수세미, 사과참외, 쥐이빨옥수수, 피마자, 긴호박, 개이빨콩, 어금니동부, 파란팥, 붉은팥, 흰수수, 조선오이, 개파리동부, 보리밭콩 등 토종씨앗도 많이 심었다. 관리를 못해서 못 건진 것도 있지만 누군가의 선의로 나눔 받은 씨앗으로 재배해 배로 수확하는 기쁨은 매우 컸다. 나도 몇 번만 재배하고 채종하다 보면 불려서 다른 이에게 나눌 기회가 생길 테니 말이다. 내가 토종씨앗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은 이름만큼이나 모양과 특성이 개성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입맛과 타산에 맞는 ‘수확량과 품질적 특성’이 적더라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존재들이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들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내 작은 텃밭에서라도 그 믿음을 지켜나가고 싶다.


   이러한 우리집 마트, 텃밭의 주 고객은 4명인데, 부모님, 나, 그리고 결혼해 따로 사는 동생이다. 애호박은 아빠 담당이다. 아침에 일어나시면 텃밭 한 바퀴 돌면서 애호박을 한 바구니씩 따다 부엌에 갖다 놓으신다. 반찬을 만들거나 찌개를 끓일 때 무난하게 쓰이는 애호박을 아침부터 수확해놓는 건 엄마에 대한 애정이라고 억지로 끼워맞춰 생각해본다. 엄마는 다른 작물에는 크게 관심 없으시지만 유독 상추를 좋아하신다. 나를 가졌을 때도 상추만 드셨다고 하는 상추 사랑꾼이시라, 다양하게 심은 상추 덕에 텃밭을 즐겁게 오가셨다.


   “동생아, 나는 싫어해도 네가 좋아하기 때문에 심기로 했어.”

   “아니, 말을 왜 그렇게 해?! 얼마나 맛있는데!”


   정말이니까. 내가 싫어해도 동생이 좋아하는 건 바로 고구마다. 나는 고구마에 크게 흥미가 없다. 퍽퍽한 데다가 달달하니깐 기분이 좋지 않다. (고백한다. 나는 소금 찍어 먹는 감자파다.) 고구마 말랭이 정도는 손이 가지만 찐 고구마는 잘 안 먹는다. 그런데도 결혼해 따로 사는 동생 생각에 심어야겠다 마음먹었다. 텃밭을 쓰윽 둘러보다가 고구마를 발견할 때면, 동생이 생각나서 괜히 안부 연락을 하기도 한다.


   “단호박 조금 살아남았는데 먹는다면 가져가고 아님 말고~“

   “오, 그래? 그럼 가지러 가야지.”


   고구마와 비슷한 결의 농산물로 또 동생을 유인해서 얼굴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같이 살 땐 감흥 없었는데 따로 사니까 몇 달에 한 번은 얼굴이 보고 싶다. 이런 언니가 어딨는가. 이런 게 조부모님이 농사를 쉽게 놓지 못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정성껏 기른 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마음, 또 농산물을 매개로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우리에게 때마다 나오는 제철 농산물을 가지고 가라며 자주 연락하셨다.


   한편 나의 텃밭 최애는 쥐이빨옥수수이다. 토종이고, 쥐이빨처럼 알이 작다고 쥐이빨옥수수. 튀기, 팝콘용 옥수수이다. 몇 년 전, 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소금 조금 뿌려 팝콘을 만들어 먹은 다음부턴 영화관 팝콘이 맛없어졌다. 그래서 3년째 심어오고 있다. GMO옥수수가 몸에 좋고 나쁘고의 문제를 뒤로 한다고 쳐도, 맛에서부터도 레벨이 다르다. GMO옥수수팝콘은 뭔가 심심하다. 그런데 쥐이빨옥수수는 좀더 입에 딱딱 붙는 고소함, 아니 꼬소함이 있다. 마트를 가려면 차로 15분인 산골에서 초간단 안주로는 쥐이빨옥수수팝콘이 최고다. (살 찌는 데도 최고다!)


   고객의 니즈와 건강을 생각하는(?) 우리집 마트, 텃밭! 고객만족도 200%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짓는 농사는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내가 먹고 싶어서 짓는 농사는 풍요로운 마음을 갖게 한다. 소비자에게 갈 농산물을 농사지을 때도 텃밭농사의 마음으로 지었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제철먹거리 생산에 힘쓰는 농부가 되고 싶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우리집 마트, 텃밭은 상시 운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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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곰이


농사짓는 곰탱이. 귀농 2년차에 접어든 양평 청년농부.

토종 씨앗을 지키는 농사와 자급자족에 관심이 많고,

농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는 곰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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