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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랐어, 너희가 모두 발아할 줄은

별사람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매년 여름이면 손발톱에 들이고 있는 봉숭아꽃물. 화려한 큐빅과 색깔들로 자신만의 손톱을 예쁘게 꾸미는 요즘이지만 나에겐 신비롭고 자연의 색 그대로인 봉숭아꽃물이 제일의 네일아트다. 다이소에 가면 편하게 천냥에 사서 물들일 수도 있지만 화학성분이 첨가되어 있고, 수입산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매년 하는 거 직접 키운 꽃으로 물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곤 했는데 더이상 미루지 않고 올해는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봉숭아꽃 씨를 어디서 구하지?’


   “길가에 걸어다니면 보이는 게 봉숭아꽃이야”


   순천으로 귀촌한 친구로부터 귀한 봉숭아꽃 씨앗을 선물받았다. 한 톨이라도 잃을 새라 돌돌 쌓아놓은 키친타올을 풀자 모습을 드러낸 씨앗들. 그저 동글동글한 형체 처럼 느껴지는 씨앗들을 보며 이 중에 몇 개나 발아할까? 튼튼한 녀석들만 발아하겠지? 일단 여러 개 시도해보자! 하며 호기롭게 30개 가량의 씨앗을 물에 적신 키친타올에 올려두었다.


   싹이 트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싹이 트는 신비로움도 잠시,

   큰일이 났다.

   씨앗이 모두 발아하기 시작했다.

   나는 몰랐어, 너희가 모두 발아할 줄은.


   정말 살아있는걸까? 싶은 마음으로 딱딱하고 까만 씨앗을 바라보았던 것이 괜스레 미안해졌다. 힘차게 자라나고 있는 이 소중한 생명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지인 중 우연히 나팔꽃 씨앗 판매부터 시작해서 생일마다 꾸준히 기부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분이 있다. 참 좋은 생각인 듯 하여 나도 언젠가는 기부 이벤트를 해보겠노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이 그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배출 하는 날 사람들이 버린 스티로폼과 일회용 컵들을 주워 왔다. 깨끗하게 씻고 송곳으로 하나하나 구멍을 뽕뽕 뚫어 화분 제작 완성. 주문한 흙이 도착한 날 배양토와 자갈 흙을 7:3 비율에 맞춰 기반을 다진 후 새싹을 하나하나 심기 시작했다. 들판에서 자라는 꽃들처럼 직접적인 햇빛을 듬뿍 받지 못함에도 베란다에서 잘 자라준 나의 봉숭아들. 8월쯤 꽃을 피운다고 들었는데 날이 더워서일까, 9박 10일의 긴 휴가를 다녀오니 5월 말에 벌써 꽃이 모두 피어있었다.


   꽃이 피기 전에 판매해서 사람들이 직접 꽃잎을 따서 꽃물 들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고 그 수익금은 기부하려 했는데 이미 피어버린 꽃을 누가 사겠냐고들 했다. 실망. 시무룩한 마음을 달래며 일단 내 손톱에나 물들이자 하며 꽃잎을 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직접 꽃잎을 사용해서 물들일 때 꽤 많은 양이 필요한 걸 알게 되었다. 모든 꽃잎은 내 손톱과 엄지발톱 위에 백반과 함께 버무려져 올라왔고 고운 빛깔을 선물해주었다. 그 뒤로도 꽃은 계속 피어올랐고, 하나하나 따서 내년을 기약하며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씨앗 수확할 때 큰 그릇이 필요할 거야.”


   씨앗을 수확할 때 여기저기 팡팡 튀어서 감당 안될거라는 친구의 말. 도대체 무슨말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봉오리를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누르자 ‘팡’ 하고 씨앗들이 탈출해 나왔다. 꺄하항- 웃음이 나왔다. 그제서야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렇게 팡팡 터지는 씨앗 수확 파티를 끝으로 봉숭아와 작별 인사를 했다.


   씨앗 하나 심었을 뿐인데, 여러 개의 꽃송이를 피우고 씨앗도 몇 배로 돌려주고 떠난 봉숭아. 이런 게 진정 복리효과로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봉숭아 꽃도 다 똑같은 꽃이 아니라 토종이 있고 개량종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 씨앗이 토종이라니 더 소중히 잘 간직하고 키워야겠다.


   비록 하고자 했던 기부이벤트는 실패했지만 씨앗 발아부터 발화, 수확까지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을 봉숭아꽃으로부터 이벤트를 받은 느낌이다. 시작은 서툴렀지만 이렇게 도시농부 꿈나무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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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람


유형이든 무형이든 내가 살아가는 지구환경에 유익함이 더해지도록

몸과 마음으로 환경감수성을 전하는 삶을 살다가는 것이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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