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쩌다 마주한 젊은 노각

파슬리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늙어서 빛이 누렇게 된 오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노각의 사전적 정의이다. 도시 농부가 되어 오이를 키워 보기 전까지, 내 머리속엔 ‘노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나에게 오이란, ‘아주 진한 초록빛 또는 흰색과 연두색이 적절히 섞인 울퉁불퉁한 껍질을 뽐내는 다소 씻기 까다로운 채소’, 하지만 ‘아삭한 식감 때문에 무침 또는 소박이로 즐겨 먹는 요리의 재료’ 정도였다.


   이런 내가 어쩌다 노각을 마주하게 됐을까? 이 운명적인 만남의 시작은 유튜브의 한 영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이 기르는 방법입니다. 페트병 화분에서 오이가 펑펑 쏟아집니다.’라는 자극적인 섬네일이 무지한 나를 유혹했다. 첫째, 반을 툭 자른 페트병 화분에 ‘주렁주렁’이라는 품종(?)의 오이 씨앗을 심는다. 둘째, 철사를 원형으로 빙 둘러 오이 덩굴과 줄기를 유인한다. 이렇게만 하면 오이가 정말 주렁주렁 열린다는 다소 믿을 수 없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하지만 무지한 초보 도시 농부인 나는 이 영상을 보고 알 수 없는 희열과 자신감을 느꼈다. (역시 무식한 게 용감하다.) 비록 나는 페트병에 철사를 빙 둘러 오이를 심을 것도 아니고, ‘주렁주렁’이라는 품종의 오이를 심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이가 저런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라면, 그 어떤 오이라도 어떻게든 잘 키워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세 개의 오이 모종을 샀고, 그것이 노각을 만나게 된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100L 자리 화분에 오이 모종을 심기로 결정했다. 3개의 오이 모종 중 시들지 않은 두 개의 모종을 심고 그 사이에 대파 모종을 몇 개 심어 주었다. 경험이 없는 초보 도시 농부는 대파와 오이를 함께 심으면 서로의 생육에 도움을 준다는 어느 책의 설명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오이 모종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잎이 점점 커지고, 줄기도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팔이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덩굴손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오이의 줄기와 덩굴손이 감을 지주대를 세워줘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 봐도 나처럼 오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다이소에 가서 가장 길어 보이는 일자 지주대와 함께 격자 모양의 지주대도 하나 구입했다. 그새 오이의 덩굴손은 감고 올라갈 것이 없어서 옆 화분의 토마토 줄기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덩굴손끼리 서로 엉켜있기도 했다. 오이가 자라는 동안 폭염과 폭우가 반복됐다. 그래서 때론 한숨을 쉬기도 하고, 때론 하루하루가 다른 엄청난 성장 속도에 놀라기도 했다. 잎이 점점 커지고 줄기가 자라더니 노란 꽃이 피었고, 그리고 드디어 오이 열매가 달렸다. 그때 오이의 키는 나와 비슷하게 커져 있었다.


   숫자 3, 이것이 내게 찾아온 오이 열매의 최종 개수였다. 두 개의 오이 모종이 내 키만큼 자랐다. 거기에 달린 오이 열매는 고작 세 개였다. 유튜브 속 주렁주렁 오이는 대체 누구네 집에서 자라고 있는 것인가? 무언의 억울함이 느껴지던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꼭 주렁주렁 달려야만 잘 키운 오이인가? 절대 아니지! 누가 들으면 비웃을 수 있겠지만 이 세 개의 열매는 나에게 너무나 신기하고 소중한 존재였다. 비와 바람, 폭염 속에서 무지함에 전전긍긍하며 키운 이 귀중한 오이! 대체 어떻게 따서 먹는단 말인가? 이런 생각들과 동시에 나는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오이를 언제 따서 먹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매일 같이 오이 열매를 관찰했다. 손가락 만큼 가늘고 작았던 열매가, 어느새 손바닥 길이만큼 자라났다. 그리고 제법 굵기도 굵어졌다. 색도 점점 진해졌다. 세 개의 소중한 오이는 내가 마트에서 봤던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었다. 일상에 쫓긴 나는 오이 세 개의 존재를 아주 잠시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마주한 오이 열매는 초록빛과 연둣빛이 아닌 황금빛을 뽐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된장!’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오이를 처음 마주한 나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고작 세 개밖에 안 열린 이 소중한 열매를 노랗게 만들어 버리다니. 이제 먹지도 못하는 게 아닌가? 오이를 제때 따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오이가 늙었네. 노각이야. 껍질 다 벗기고 소금에 절이고 물을 꼭 짜서 고추장에 무쳐 먹어라.’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나는 서둘러 오이를 따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라준 오이에게 고맙고 미안하단 인사를 한 다음 ‘뚝!’ 오이를 땄다. 그리고 소중히 품에 안고 집에 들어왔다. 컴퓨터를 켜서 ‘노각’을 검색해 봤다. ‘엥? 아닌데?’ 우리 집 오이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노각 사진에 비하면 아주 젊은 노란 오이였다. 수분이 가득 차 잔뜩 배가 부른 모습도 아니고, 껍질에 거미줄처럼 자글자글한 줄도 별로 없었다. 백과사전 속 노각의 정의는 이러했다. ‘늙은 오이라는 뜻으로, 오이를 따지 않고 30일 정도 두면 노각이 된다. 조선 오이 계통으로 보통 오이보다 서너 배 굵고 무게가 700g 이상이 되었을 때 수확한다.’ 나의 소중한 세 개의 오이가 조선 오이 계통인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전이 말하는 노각의 상태가 되기 전에 수확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난 오이도 아닌, 노각도 아닌 ‘젊은 노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젊은 노각으로 만든 노각 무침은 아주 맛이 좋았다. ‘실패없는 노각 무침’이라는 포스팅을 보고 요리를 시작했다. 껍질을 벗겨 얇게 썬 젊은 노각에 소금을 탁탁 뿌려 한 30분 절여 놓았다. 물에 대충 헹군 후 면 주머니에 넣어 물기를 꽉 짰다. 그리고 마늘, 고추장, 설탕, 참기름과 함께 무쳐 깨를 솔솔 뿌렸다. 냉장고에 넣어 시원해진 노각 무침을 가득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하고 매콤하고 시원한 그 맛!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오이 요리였다.


   무지함과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시작된 오이 키우기는 나에게 ‘노각’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오이도 아닌, 노각도 아닌 젊은 노각 무침은 나를 새로운 미식의 세계로 인도했다. 도시 농부가 되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귀중한 것은 완벽히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성장의 과정, 그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이와 노각의 그 사이, 내가 이 존재를 키우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었던 그 순간의 오이. 뜨거웠던 어느 여름 날, 어쩌다 마주한 젊은 노각이 벌써 그립다.


-


파슬리


농사는 모르지만 농부가 되고 싶은 욕심쟁이예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먹거리의 관계, 그리고 건강한 요리에 관심이 많아요.

정성껏 차린 한 그릇의 음식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삶을 꿈꿔요.

작가의 이전글 나는 몰랐어, 너희가 모두 발아할 줄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