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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우울 극복하기

문주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농부의 시선

   9월 마지막 낮, 아직도 더운 바깥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


   놀란 슬기(고2때 부터 베스트 프렌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페에서 큰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분명 2달 전만 해도 아이를 4명이나 낳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던지라, 그 변화에 놀란 눈치였다.


   “왜~에??”

   “요즘 산불에 대한 뉴스도 그렇고, 기후위기로 인한 강력한 태풍과 허리케인까지.... 내 아이가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 살게 하기 무섭다…”


   최근 환경교육사 자격증을 따고, 환경교육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하다. 서울의 물난리, 늘어난 산불, 9월에도 30도가 넘는 날씨, 점점 강해지고 있는 태풍, 기온 상승과 더불어 농작물 가격도 오르는 등, 확실히 10년 전보다 뉴스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문제가 많이 늘어났다는 것을 매일매일 실감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것도, 10년 뒤에는 이러한 환경 문제가 더 심해져서, 아이들이 자연재해 때문에 목숨이 위험한 날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안전한 먹거리를 먹을 수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내 불안을 더 증폭시켰다.


   “요즘 힐링 브이로그 보면, 작은 텃밭을 아파트에 만들어서 자기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 같아. 그런 아기자기하고 초록초록한 감성, 너랑 어울린다. 그러니까, 한번 해보는거 어때?”


   기후 우울로 투덜투덜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터놓는 나를 보고 친구는 나에게 힐링 치료 요법을 전수했다.


   “그래…한번 해볼까…?”


   그렇게 시작된 아파트 베란다 텃밭. 햇볕이 많이 들어오리라 믿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산에서 가지고 온 영양분 가득한 흙을 스티로폼에 넣었다. 너무나 작은 화분이었지만, 욕심이 많은 나는 모종을 27가닥이나 사왔다. 방울토마토, 파, 가지, 파프리카, 고추 등등… 하나씩 흙에 모종을 심은 나는, 모종을 보면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벌써 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면, 방울토마토, 파프리카가 햇살을 가득 머금으며 ‘안녕’ 하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아침부터 기분은 좋아졌고, 눈에 띄게 쑥쑥 자라는 아이들을 보니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느낌도 들었다. 초록색의 작은 풀이 어느새 청소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긍정적인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꽃을 맺을 때면 하얗고 노란 꽃 색깔이 너무 예뻐, 아기 사진을 찍는 엄마의 마음으로 사진 셔터를 마구마구 누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바빠서 물을 주는 것을 까먹을 때면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꽤나 많이 자란 꽃들이 열매로 변하지 못하고 말라비틀어 질 때는 너무 속상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여러가지 감정을 0.3평 정도 되는 작은 텃밭에서 느끼면서, ‘살아있는 식물을 키우는 것에 이렇게 많은 감정을 느끼는데, 내가 직접 낳은 아이에게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아마,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겠지…? 소중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속이 타고, 안타깝고 등등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오랜만에 슬기를 만나, 작은 텃밭에서 나온 열매를 하나 선물로 주었다. 사실 너무 아까워서 주기 싫었지만, 친구의 조언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귀하고 귀한 손톱만큼 작은 방울토마토를 주었다.


   “이게 뭐야, 코딱지 만하구먼~!”

   “아파트라 그런지, 꽃만 많이 열고 열매도 못 맺었지만, 그래도 한 줄기에 4개 정도 열매를 맺었어. 그 소중한 방울토마토 하나를 너한테 주는거야. 고맙지?”

   “그 소중한 걸 나한테 준다니. 그나저나 텃밭 키우는 건 어때? 재미있어?”

   “너무 재미있는데, 영양분이 없어서인지 햇빛을 잘 못 받아서인지 코딱지 만한 열매를 맺으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컸어. 그런데 엄청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 이렇게 작은 것도 초록 색깔에서 빨간 색깔로 변하는 게. 성장하는 것을 뿌듯하게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랄까?”

   “그려~ 뭐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야! 우린 아직 젊으니까 좀 더 생각해봐 문주야.”


   확실히, 나는 아직도 아이를 낳을 마음이 없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작은 식물들을 키울 때 느끼는 감정이 아이를 키울때는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생각된다. 친구에게 아이를 낳지 않겠다 선언했던 9월의 마지막 날은 아이 낳기 가능성 0% 였다면, 작은 텃밭을 기르기 시작한지 몇달이 지난 지금은 37%나 증가했다고 하면 오버일까?


   호언장담하듯이 많은 사람에게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덜컥 4명이나 낳아서 아이 자랑을 하는 상상도 한번 해본다. 기후위기의 두려움을 극복하진 못했지만, 뭐든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슬기의 말이 계속 머리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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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


농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도시 여자.

아스팔트와 시멘트에 둘러싸인 삶에서 벗어나, 흙과 풀을 마주하는 삶을 이상적인 미래라고 생각하는 20대.

부모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나만의 텃밭을 만들어 처음으로 모종을 심어본 햇병아리 농부, 문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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