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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에 뿌려진 기후 경고

가희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비건의 시선

   2020년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삶을 뒤덮었을 때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일까?’하는 질문을 자주 했다. 기존 삶의 형태와 세상을 유지하는 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이었던 팬데믹은 누구에게나 삶을 뒤돌아봄직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고민하고 고민하다 나는 이때부터 비건이 되었다. 지구를 착취하며 심각하게 환경이 파괴되고, 지나치게 많은 생명을 자본의 논리로 생산(!)하고 죽이는 현실을 직시하며 예전의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가장 먼저 할 수 있었던 건 채식이었다. 모든 교통수단을 합친 것보다 육식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생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공장식 축산 영상을 본 후 더 이상 동물은 나에게 먹는 대상이 아니었다. 바로 어제 내가 먹었던 음식들은 음식이 아니라 착취와 폭력, 환경파괴의 부산물이었다. 개인의 실천에서 매 끼니 채식으로 차려 먹는 일은 힘들거나 어렵지 않고(누군가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나에겐 생명과 지구를 덜 착취하는 즐거움이었다.


   채식 말고 또 다른 실천이 있었다. 바로 거리로 나와 환경파괴 주범인 국가와 기업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정당에 가입한 지 8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지역 정당 모임에 나가보지 않던 사람이 코로나로 인해 비건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동네 지역 모임에 나갔다. 2019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조사한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 기업 현황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지역구인 공덕동에 있는 에쓰오일은 매년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위 10위에 드는 기업이었다. 9월의 어느 날, 기후 행진 며칠 전 나는 지역 활동가들과 에쓰오일 앞에서 탄소 배출 감축, 온실가스 감축목표 시행, 2040 탄소중립 로드맵 즉각 제시 등 종이박스로 만든 팻말을 들고 목소리를 내며 연대했다.


   며칠 전 10월 14일, 자고 일어났더니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SNS 계정에서 핫한 영상 클립을 하나 봤다. 영국의 기후 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의 활동가 두 명이 내셔널 갤러리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던지는 퍼포먼스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은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가? 음식보다 정의보다 더? 생활 위기는 화석 연료로 몰아가고 수백만 명의 춥고 굶주린 가족은 일상생활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토마토 수프 한 통을 뜨겁게 할 여유조차 없다. 한편, 농작물은 망가지고 있고, 기후 위기로 인한 대형 산불과 끝없는 가뭄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석유와 가스를 살 여유가 없다. 즉시 행동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뒤돌아보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두 명의 기후 활동가는 영국 정부에 기후 위기를 유발하는 석유와 천연가스 프로젝트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일환으로 퍼포먼스를 했다. 이런 직접행동 덕분에 전 세계의 주목을 얻었고 많은 사람이 너무하다는 비난을 그들에게 쏟아냈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저스트 스톱 오일 활동가가 한 말이 콕 박혔다.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토마토 수프 한 통 뜨겁게 할 여유조차 없다.”는 말은 영국이나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 그대로일 것 같기 때문이었다.


   정작 작품엔 아무 지장이 없음에도 고흐의 해바라기가 테러당했다고 너무 폭력적이라며 원성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고흐는 단순히 팔레트 위에 물감을 붓으로 찍어 바르며 꽃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고흐가 일생동안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작품인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자. 그는 지하실 같은 컴컴한 탄광 마을의 탄광 노동자 가족 집에서 가족이 감자를 나누어 먹는 장면을 40회 차례 이상 그린 예술가였다. 또한 살아생전 농부들의 노동을 숭고하고 정직하게 그려낸 사람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한 땀 한 땀 사회운동의 일환처럼 그림으로 그려냈던 고흐를 떠올려 보면서, 자신의 그림에 토마토 수프가 얹혀서 불쾌했을까 혹은 기후 위기를 촉발하는 거대 산업과 국가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들에게 화가 났을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론에서 명시하는 1,210억 원짜리 그림이 테러당했다는, 정작 고흐 자신의 삶과 별개로 자본으로 치환된 자극적인 보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어제오늘 당장 기후 위기로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는데. NASA 기후학자인 피터 칼무스(Peter Kalmus)에 따르면 “명확한 과학적 증거와 최근 일어나는 기후재앙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여전히 비상사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들이 지구 생명체의 파괴보다 수프가 뿌려진 그림에 더 분노를 느낀다.”라고 일침했다.



   기후 위기랑 고흐의 작품이 무슨 상관이냐고, 혹은 이런 퍼포먼스를 보며 불필요하다고, 공격적이라고 욕부터 하는 누군가는 무심히 말할 테다. 한편, 불편함을 유발하는 부분도 있지만 직접행동 퍼포먼스로 인해 무엇인가 싶어 들여다보다가 생각이 바뀐 사람, 지금 직면한 위기에 비해 시스템은 너무나 더디게 움직여서 안타깝게도 자극적이지 않으면 누구도 봐주지 않는 작금의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끌어들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 고흐가 살아있더라면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더 공감할 것이다. 수프 하나 따뜻하게 할 여유조차 없는 기후 위기, 불평등 시대에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바꾸라고 요구하고 연대하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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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


쓰고 그리는 사람,

알고 있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삶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장래희망은 무해하고 웃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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