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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

시시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비건의 시선

   1) 짓지 않는 건축, 비건축


   교수님께.

   교수님, 설계 하나에 썩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버려지는 것들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현실화 되지 않는 저의 설계를 위해. 이 친구들이 쓰이고 버려집니다. 건축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계속 사랑하고 싶습니다.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가면 얼마나 많은 자재들을 건축가의 삶에서 만들어 낼지 너무나 두렵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한 첫 해가 끝나갈 무렵, 컴퓨터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 후, 인수공통감염병의 전세계적 유행으로 학교를 한동안 못갔고, 날선 물음은 서서히 무뎌졌습니다. 마스크, 일회용 컵, 비닐 장갑. 썩지 않는 물건들의 최전성기에 휩쓸려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폴리스틸렌 자재들로 만든 건축 모델들이 한 층 한 층 쌓일 수록, 건축학도의 연차도 한 해 한 해 지나가고 있습니다. 위생과 편의라는 이름으로, 설계의 질을 향상이라는 이유로, 편지 속 마음의 저릿함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개발과 신기술들. 빠른 변화와 적용만이 유일한 길인 양 달려왔습니다. 건축에서도 역시나. 신도시 개발. 빠른 건설공법. 최대 용적률. 인간 서식지가 야생까지 삼키고 그 마지노 선을 넘었다는 것을 우리는 몇 년간의 바이러스와 전쟁으로 깨달았습니다. 언제부터 인간 외의 것들에 배타적인 경계,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격리시킨 이 서식지를 건축이라 부른걸까요.


   건축은 삶을 위한 안식처입니다.

   자연에서 살아가고자 발화한 문화이자 기술, 건축.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보이는 것을 다루는 예술, 건축.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 귀로 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 우리는 이런 공간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나요? 썩지 않는 욕망, 썩지 않는 집합체, 우리가 썩지 못하는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업보일까요? 현대의 건설 자재들은 쉬이 땅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쓰임을 다한 건물은 포크레인과 폭약으로 조각조각나 매립지에 던져집니다. 이 조각들은 모든 산업별 폐기물 전체 중 절반 가까이 차지합니다. (통계청, 2016) 건축물이 순환하지 못하는 행태는 지금 우리네 문명을 반추시킵니다. 자연의 고리가 무너진 인간들을요. 바로 이 지점에서 비거니즘이 건축으로 들어옵니다.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축. 확장하는 건축보다 비우는 건축. 짓지 않는 건축, 非건축


   2) 몸과 건축의 연결, 비건축


   본디 흙 한 줌에도 우주가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미생물들의 또 다른 세계. 우리와 함께 살지만 그들의 우주가 흙 한 줌에 존재합니다. 지구 상의 인간들의 수보다 훨씬 많은 미생물. 우리는 거대한 우주들을 없애며 서식지를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건축이 지어지는 순간, 거대한 기기를 들이대어 깊은 곳까지의 흙을 파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를 붓습니다.


   고개를 숙여 지금 있는 공간 주변의 흙을 만져보아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상상해보아요, 산 속의 흙을.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닌 흙은 버석버석히 생명력이 다해 먼지처럼 날아갑니다. 공사장의 분진처럼, 사막의 모래처럼요. 그에 반해 초록빛 아래의 흙은 다른 생명들을 풍부히 품어 촉촉하고 부드럽습니다. 이제 건축가는 이 촉촉함으로 인간을 돌려보낼 수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사람을 품는 공간의 설계자이듯, 공간과 생명이 자연 속에서 순환하도록 지어야 합니다.


   비거니즘 운동이 건축에서 필요한 이유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다시 느끼는 회복으로써요. 몸의 감각을 깨워, 자연을 우리의 공간과 이어야 합니다. 이는 몸으로 이뤄지는 단련입니다. 몸, 육체, 감각. 자연과 대화가 일어나는 장소이자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우하는 공간. ‘심장이 유기체 안에 있듯, 몸은 세계 안에 있다.’라고 누군가 이야기 하였듯.


   현재 인간의 주거에는 몸과 상상력, 그리고 자연 간의 연결이 희미합니다. 분리와 단절로 점철된 서식지 밖의 세상을 꿈꿔야합니다. 우리의 몸은 눈에 보이는 광경을 끊임없이 살아있게 하고, 그 광경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마음 속에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몸을 통해 세계가 지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공간에서 스스로를 경험하고, 공간은 우리 안에서 체화된 경험을 통해 존재합니다. 세계와 내 몸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서로를 있게 합니다. 우리는 건축 안에, 건축은 우리 안에 살아갑니다.


   시간을 초월한 건축은 체화되고 생명력 있는 자연의 은유를 피부로 스미게 합니다. 생명이 안녕히 세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우리는 건축을 통해 삶의 이미지와 생각들을 공간화하여, 세상을 지어냅니다. 몸과 세계를 잇는 행위, 흙 한 줌 속 우주와 우리네 우주를 잇고자 하는 ‘비건축’을 손끝으로 소리 높여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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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지구에 더 이상의 ‘짓기’보다는 ‘비우기’를 노래하는 청개구리 건축가

깊은 공간이 온몸에 퍼지는 감각을 사랑합니다.

모든 생명들이 온전히 피어날 수 있는 공간을 위한 건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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