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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이서빈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기후생태위기를 마주한 청소년의 시선

오늘도 저는 방에 들어온 이름 모를 벌레를 잡았습니다.

휴지 사이로 훔쳐보니

아직 숨이 붙은 채로 짧고, 얇은 다리를 휘적이고 있었습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아니,

내가 직접 행한 살생에도 이미 무감각해질 대로 무감각해진 것 같습니다.


거침없이 물건을 고르는 손, 늘 맛있는 음식을 향해 입맛을 다시는 입, 자극적인 영상으로 강한 도파민을 좇는 눈.


순간적으로 잡아버린 벌레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무언갈 그리 쉽게 혐오할 수 있을까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내 손에서 숨을 거둔 벌레에게 연민을, 내 입에 들어간 수많은 생명에게 연민을 표하다 보면, 어느새 연민의 대상은 나 자신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잘못됨을 알면서 행하는 것, 그 행위를 멈출 수 없는 것,

결국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것.


저는 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전.

따뜻하지만 차갑고, 아늑하지만 쓸쓸하고, 밝지만 어둡습니다.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 보면 오늘 하루도 끝나버리고,

내일의 아침이 밝아올 것입니다.


부디 오늘의 연민과 부끄러움을 내일의 내가 기억하기를.

내일의 복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 다자이 오사무의 책 <인간실격>(민음사)에서 모방

** 같은 책 13쪽


-

이서빈


호기심 많고, 자연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금은 예민한 성격에 가끔은 회의적이지만,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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