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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름답지 않아

우베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나는 아름답지 않다. 내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얼굴이 예쁘지 않고, 정상 체중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몸이 큰 여자아이는 놀림을 많이 받았다. 또래 아이들은 내 몸의 크기를 가지고 별명을 지어 불렀고, 몸이 큰 아이들을 엮어 가족을 만들어 놀렸고, 내가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먹을 것을 기대했고, 내가 먹는 생각만 할 것으로 생각했다. 음식을 많이 혹은 맛있게 먹으면 “역시 먹는 것을 좋아하는군.”, 또는 “저렇게 먹으니 살이 찌지.”라는 소리를 들었고, 적게 혹은 맛없게 먹으면 “의외로 적게 먹네.”, “저렇게 먹는데 왜 살이 찌지.”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 많은 외식 자리에서 아빠는 자주 “성호(남동생)야, 많이 먹어. 예지(나)는 말 안 해도 잘 먹지?”라고 말했다. 나에 비해 동생은 몸이 약하고 왜소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싱긋 웃곤 했지만, 그 순간 사람들도 나를 보고 같이 웃었다. 일종의 조롱 같았다. 엄마는 “우리 딸은 뚱뚱한 게 아니고 건강한 거야.”라고 자주 말했지만, 나를 위로하는 듯한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얼굴의 생김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살 먼저 빼고 볼 일이라고 생각했다. 10대의 학생들에게 어른들은 자주 “대학 가면 살 빠져. 지금은 공부에 신경 써.”라고 말했다. 19살까지는 공부에 신경 쓰는 학생인 척 의무(?)를 피할 수 있었지만, 수능을 보고 나니 더 이상 피할 수 없이 20살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20대의 살찐 대학생(‘여대생’)이 되는 일이 두려워졌다. 정상 체중 또는 표준체중을 구하는 여러 가지의 공식을 모두 적용해 보아도 내 몸무게는 늘 비정상이었기에, 내 체중감량의 목표는 다만 ‘정상’이 되는 것이었다. 비정상이라는, 잘못되었다는, 틀렸다는 감각은 늘 불쾌했기 때문에. ‘프리사이즈를 프리하게 입어 보자.’, ‘날씬하고 마르기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아. 정상만 되자.’


   감량하고자 하는 무게의 절반 정도를 덜어내었을 무렵, 목표 체중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바지를 사야 하는 일이 있었다. 여러 디자인의 바지를 입어 보아도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한 사이즈 더 큰 바지는 없냐고 묻자 점원은 “저희 브랜드는 29인치까지만 나와요.”라고 했다. 점원은 “죄송하지만 사이즈가 없어요.”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브랜드에서 큰 사이즈를 만들지 않는 것이 점원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나는 점원의 표정이 ‘우리가 만드는 사이즈에 네 몸이 안 맞는 걸 어쩌겠느냐. 몸이 큰 네가 잘못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것으로 읽혔다. 이 브랜드는 이 정도 크기의 범주에만 사람이 모여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이 범주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물건을 팔고 싶지 않은 걸까? 나는 기분이 나빴고 점원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엄마, 더 큰 건 안 판다잖아. 나가자.”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대학 입학 전까지 나는 목표체중에 가깝게 체중감량을 했다. 삼성역에서 프리사이즈 옷을 사 입고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강박 같은 것이 생겼다. 함께 모여 과자를 먹던 어느 늦은 밤에 나는 습관처럼 “아, 먹으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는데, 선배 한 명이 내 앞에서 그것을 듣고 “그럼 안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 과자를 먹다 말고 엉엉 울었다. 나는 그 선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럼 안 먹으면 되는데 넌 왜 그 간단한 걸 못 하고 있어? 미련하다.’


   감정조절이 안 될 만큼 강박적인 생각이 생겼지만, 동시에 음식에 대한 집착이 커졌다. 게다가 나는 대학생이 됨과 동시에 가난한 자취생이 되었기에, 남이 사주는 밥이면 될 수 있는 한 많이 먹었다. 몸은 다시 커졌다. 식단 조절을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체중을 줄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 말했다가는 조절하지 못하는 나를 미련하게 볼 것만 같았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유쾌하고 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많이 먹었다. 나는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통통하고, 나는 내가 통통한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었을 땐 식사 하나 제어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곤 했다.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내가 연애 감정을 가지고 좋아한 모든 이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짝사랑과 첫사랑을 구분하지 못했다. 모든 사랑이 짝사랑이었기에, 주고받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사랑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나는 내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20대 후반, 5년을 만난 연애 상대가 있었지만, 그는 나와의 스킨십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이 역시 내가 아름답지 않아서라고 생각해 그 이유조차 묻지 못했다. 30대 초중반, 제대로 된 연애 관계로 이어지지 못한 몇 번의 만남이 끝날 때도 내가 아름답지 않아서 이런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작년 여름, 나는 이직한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2년여의 우울증약 부작용으로 10킬로그램이 더 불어난 상태였다. 결국 이직 5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했고, 잘 버텨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몸과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지만 정신적 여유가 없어 여행도 떠나지 못하던 그때, 지금의 애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의 외모를 보자마자 나를 선택하게 되었고, 내 사진을 매일 보고 내 몸을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내가 자신 없어 할 때마다 “내가 너를 예뻐해.”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가 보기에 나는 일생 중 가장 최악인걸? 나는 그의 말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이건 연애 상대에게 기분 좋아지라고 던지는 말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그는 반복해서 정말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지금도 믿지 않고 다시 묻는다. 나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는지.


   나는 스스로를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가 그동안 주변에서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해 왔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내게 예쁘다고 해줬다면, 전에 만난 애인이 나를 예뻐했더라면, 주변에서 나의 외모를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고 놀리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내 모습을 지금과는 달리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정작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마음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말은 전혀 믿을 수 없는 말이고, 틀렸으며, 나는 분명히 아름답지 않다. ‘나는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타인으로 인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이 쌓여 나도 동의해 버린 건 아닐까. 마음에 깊게 깊게 새기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진리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그렇다면 아름답다는 건 뭘까. 어쨌든, 분명한 건, 나는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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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베


나아진다면, 달라진다면 뭐든 하는 국제개발협력활동가 입니다.

말과 글로 나음을 꿈꾸며, 당신의 활동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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