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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실천 사이

아랑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아!” 급히 가던 길을 멈췄다. ‘어쩜 이렇게 새까맣게 까먹었지.’ 아침에 카톡방에, 오늘 저녁 8시에 줌으로 5월 모임이 있다는 공지를 내 손으로 올리고도 잊어버렸다. 공지 이후에 저녁에 회의가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다른 모임 사람들과 함께 보기로 한 연극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집을 나서 전철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래도 전철을 타기 전에 생각나서 다행이다. 연극은 내가 안 보면 되지만 회의는 내가 진행해야 한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우선 연극을 같이 볼 일행 중 한 사람에게 급한 일이 생겨 못 간다고 알렸다. 연극 표는 어떡하지? 예매 일정을 다른 날로 조정할 수 있었다. 수첩에 일정만 써놓았어도 겹친다는 걸 금방 알았을 텐데. 연극 보는 건 써놓고 회의는 따로 써놓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 한 달 동안 매주 회의 일정을 카톡방에 공지하면서 두 일정이 겹친다는 걸 몰랐다니 나 자신에게 놀랐다.


   문제는 낮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거다. 어제 급히 오늘 참여하기로 한 프로그램 시간을 다른 날로 조정했다. 수첩을 보니 조정한 날 일정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조정한 날에 중요한 일이 아침부터 있었는데 이 역시 적어놓지 않았다. 아침에 새로 만들어진 카톡방에 초대받으면서 그날 중요한 일정이 종일 있다는 걸 알았다. 어제 일정을 조정했는데 연달아 바꾸려니 담당자 볼 면목이 없었다. 고맙게도 프로그램 담당자가 확인차 먼저 전화를 주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고는 다시 다른 날로 참여 일정을 옮겼다.


   단순히 수첩에 제때 적어놓지 않은 게 문제였나? 내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졌나? 예전에 데이케어센터에 사회복지사 실습 나갔을 때 했던 걱정이 떠올랐다. 어르신 중에 했던 말을 또 하거나 금방 잊어버리는 분이 있었다. 나이 들면 기억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한 행동이 어떤 행동인지도 모르고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아무 행동이나 하면 어쩌나?


   작년부터 오른쪽 팔과 엉덩이 쪽에 무리가 왔다. 예전에 중학교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과 이어진다. 앞사람이 무릎을 짚고 숙이고 있으면 등을 짚어 연달아 넘는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선생님이 갑자기 “그만!” 하면서 호루라기를 불었다. 내 앞에 있던 친구는 그 순간 일어나고 난 뛰어넘으려다가 친구 등이 아니라 땅을 짚었다. 그때 오른쪽 팔꿈치 부분이 약간 비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 불편함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았고 그렇게 잊고 지냈다. 작년부터 오른쪽 팔에 무리가 나타나니 체육 시간이 떠올랐다. 오른쪽 엉덩이도 욱신거렸다. 평소 비스듬히 맨 가방 무게를 오른쪽 엉덩이가 지탱한 탓일까? 무거운 걸 많이 들고 다닌 것도 한몫했을 거다. 평소 내 가방이 무겁다는 걸 알면서도 집을 나설 때면 혹시나 하면서 물건을 빼놓지 못한다. 시장이라도 들러 집에 갈 때면 양어깨에 보따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간다.


   욕실 거울을 보고 있을 때면 팔을 쭉 뻗어 흔들거려 본다. 팔뚝 살이 흔들린다. 몸을 흔들면 그 부분 살이 조금이라도 빠질 것 같아서다. 3년 전부터 훅 찐 살이 빠지지 않았다. 두 다리를 모으면 허벅지와 엉덩이 살이 닿는다. 몸이 둔해진 느낌이다. 예전에 입던 바지 중에 못 입는 바지가 많아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걸 바라며 옷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접히는 뱃살은 감출 수가 없다.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를 코로나 걸렸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식욕이 떨어져 하루 두 끼 먹고, 먹는 양도 줄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몸무게가 달라졌다. 2kg이나 빠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많이 걷지만 먹고 싶을 때 참지 않고 먹으니 한 번 찐 살이 쉬이 빠지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소식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해야 한다고 생각만 한다. 뱃살은 빠질 줄 모르고 손에 든 핸드폰을 찾거나 일이 겹쳐도 모르는 일이 반복되니 어이쿠 싶다. 몸을 돌봐야지 하면서 걱정만 하는 건 아닌지,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해 보인다. 하루 만 보를 걷는 것만으로도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더 시도해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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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


걷고 읽고 쓰는 교육활동가. 시를 쓰면서 글 쓰는 재미를 알았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내 숨쉬기를 살피려고 멈춘다.

하늘과 먼 산을 보는 걸 좋아하고 빗소리와 바람 소리,

새소리 듣기, 은행잎 새순 돋아날 때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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