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속물

물총새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경제력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어떨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씩 줌으로 만나는 심리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근에 발견한 나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증권사 직원들과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청바지를 입고 거울을 보다가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H라인 스커트에 검정 스타킹, 날렵한 검정 단화.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는 걸어 다니는 업무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치마나 구두를 착용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나는 불편을 무릅쓰고 차려입기를 선택했다. 이러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잠깐 생각해 보니, 처음이 아니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연봉 높은 사무직 남성들과 마주칠 일이 많다)에 처음 출근한 뒤부터 줄곧 이랬다.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는 글로벌 IT기업의 직원들을 만나러 갔을 때도 치마를 입고 부츠를 꺼내 신었다. 그 자리에서 내 또래의 남자 직원과 일부러 눈을 자주 마주치고,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속 바라보기도 했다. 또 매주 정신과 남의사 선생님에게 진료받으러 가는 날마다 옷을 특히 신경 써서 고른다는 사실도 기억해 냈다.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이려 신경을 쓰고, 그들과 가까워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저런 사람들과 짝이 될 수 있을까? 원하지도 않으면서 재보던 순간들. 속물적인 나의 모습.


   나는 평소에 사람들을 대할 때 판단과 평가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가 물질적인 조건보다는 가치관이 맞는 이에게 끌리는, 그런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나는 소득이 높고 사회에서 알아주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혹하고 있었다. 생각과 행동이 딴판이라니.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나의 지난 인연들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가장 깊은 연결감을 느꼈던 사람은 ㄱ이다. 그는 영상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이자 환경 단체에서 미디어를 담당하는 활동가였다. 또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ㄱ과 나는 동갑내기인 데다 비슷한 점이 많았다. 성격과 가치관, 심지어 취향까지 잘 맞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즐겁고 편안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금세 빠져들었다. 그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 내가 떠오른다고 했다. ㄱ을 생각할 때면 가슴 안쪽에서 따뜻하고 촉촉한 초콜릿 분수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이런 게 사랑이구나!’ 살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약속한 적이 없었다. ㄱ은 자유로운 만큼 정착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향한 자신의 감정에 자주 압도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에게서 숨어버렸다. 나는 그를 잃을까 두려워서 그가 피할수록 더 꽉 쥐려 했다. 그를 좋아하는 만큼 혼란도 깊었다. 그토록 강렬한 감정을 감당하기에는, 우리 둘 다 서툴렀다.


   실질적인 제약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었고, 그를 만나려면 태평양을 건너야 했다. 보고 싶다고 무작정 찾아갈 수도 없었다. 각자 계약직으로, 프리랜서로 불안정 노동에 묶여있는 현실은 우리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장거리를 이겨내고 만나려 할 때마다 각자의 계약 기간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만사 제쳐두고 사랑을 찾아 떠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었다.


   결국 그와는 연락이 끊겨 버렸다. 우리는 연인도, 친구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ㄱ을 좋아하는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마치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를 떠올릴 때면 가슴에 천천히 칼을 찔러넣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나와 가장 오래 관계를 유지했던 ㄴ은 나보다 스물세 살 많은 남자였다. ㄴ과의 관계에서는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는 언제나 먼저 연락했고, 내가 멀리 있어도 나를 보러 왔다. 우리가 만날 때 발생하는 비용은 전부 그가 부담했다(사실 그의 소득은 전혀 높지 않았다). 나중에는 심지어 그의 신용카드와 월수입 일부를 주기까지 했다. 함께 살게 되었을 때 둘의 아침밥을 차리는 일도 그가 도맡아 했다.


   ㄴ과의 관계는 내가 해봤던 연애 중에 가장 쉬웠다. ‘아저씨’인 그 앞에서는 외모를 꾸미지 않아도 되었다. 같이 살면서 매일 얼굴을 보니까 연락 때문에 불안해질 일도 없었다. 만나면서 돈 생각을 전혀 안 해도 된다는 점 역시 크나큰 가뿐함을 선사해 주었다. 관심사나 취향이나 뭐 하나 겹치는 게 없는 우리였지만 큰 갈등도 없었다. ㄴ과 함께 사는 동안 나는 마음이 무척 안정되고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지낼 수 있었다.


   ㄴ은 분명히 남성이었지만, 나는 그가 엄마 같다고 자주 생각했다. 갱년기를 지난 그에게서는 거칠고 공격적인 면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그의 헌신 때문이었을까? 뭐든 다 해주고 받아줄 듯한 엄마 같은 느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ㄴ을 지나치게 편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말았다. 그가 베푸는 경제적 호의가 어느 새인가부터 당연해졌다.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들어와서는 그에게 퉁명스럽게 대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나에 대한 ㄴ의 마음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데이트하러 함께 집을 나서는 일이 뜸해졌다. 그는 툭하면 일 핑계를 대며 외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자리도 갖지 않게 되었다. ㄴ은 내가 너무 어려서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ㄴ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미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덤덤하게 지낸 지 1년쯤 되었을 때, 그가 ‘이제 홀로 설 때가 되었다’며 그의 집에서 나가기를 격려했다. 나도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끝을 맺게 되었다.


   내가 진심으로 연결되었다 느끼고 애착을 품었던 사람은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예술적인 성향이 있는 ㄱ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사람은 나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가부장적인 ㄴ이었다. 지나간 다른 관계들을 돌아봐도 비슷했다. 나와 여러모로 잘 맞았던 또래 남성들과는 조기에 관계가 깨진 적이 많았고, 나와 비슷한 점이 별로 없고 나이도 많지만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게 해주는 남성들과는 관계가 오래 유지되었다.


   이 패턴을 깨닫자, 마음이 무척 불편해졌다. 껄끄러운 상상이 뒤따랐다. 경제력에 이끌려 결혼이라도 해 버렸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서로가 잘 맞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뒤늦게 진정으로 원하는 걸 찾게 되면 어쩌나? 불안했다. 마치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나 자신이 하찮고 경멸스러웠다. 나는 조건 따위는 따지지 않는 줄 알았는데, 실은 상대방의 경제력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속물인 걸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께서 화면 너머로 대답하셨다.


   “경제력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어떨 것 같아요?”

   “음…. 우선 저부터가 경제력이 별로 없잖아요. 둘 다 능력이 없으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쪼들리다 보면 점점 사이가 나빠질 거예요. 결국 헤어져서 비참하게 혼자가 되면 어떡해요?”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들이 돋아났다.


   일하러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새벽까지 뜬눈으로 버텼던 어린 나, 우리 집에 앉을 곳이 없어 당황하던 초등학교 친구들의 표정, 교복을 사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중학교 입학식 전날 저녁,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후 얹혀살게 된 큰아버지 댁에서 “쟤네 이혼했잖아!”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진상을 알게 된 어느 명절날…. 기억에 남아 있는 줄도 몰랐던 순간들이었다.


   “선생님, 지금 생각해 보니까요.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가 저희를 떠난 이유가 돈 때문이었어요. 아빠가 번 돈을 엄마가 몰래 다 써버려서 집이 망했거든요. 두 분은 이혼하시고, 엄마는 집에서 떠났어요. 제가 열두 살 정도 됐을 때였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를 본 적이 없다.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어쩌면 엄마 같은 사람을 찾는 건지도 몰라요. 엄마처럼 다 사주고, 다 해주고, 다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엄마는 집안 사정이 어떻든 우리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시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거든요.”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신기했다. 내가 나에 대해 말할수록 더 많은 단서가 드러나고 서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엄마의 소비 내용이 발각된 뒤 우리 가족은 당장 길에 나앉을 처지가 되었다. 엄마는 곧바로 집을 나가버리고, 처음에는 큰아버지 댁에 얹혀살았다. 그러다 나중에는 고모네가 있는 지역에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고모 댁 식구들에게 돌봄을 받기도 했다. 아빠는 사라진 돈을 메꾸려고 일만 하느라 거의 집에 없었다. 나와 동생은 부모 아닌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컸다. 나는 침울하고 위축된 채로 청소년기를 통과했다.


   가난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된 사건은 어렸던 나의 삶에 막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그리고 누구도 그 체험을 감당하고 소화하도록 도와주지 못했다. 가족이 망가진 여파를 완충재 없이 겪으면서, 나는 정신적으로 상처 입고 뒤틀린 사람으로 자랐다.


   “그때부터 ‘가난은 관계를 파괴한다’는 생각이 형성됐군요.”


   나는 가난이 관계를, 공동체를, 사랑을 파괴한다는 믿음을 기르게 되었다. 그 믿음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사람과의 관계는 쉽게 깨질 것’이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과는 안정감 있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른 믿음을 만들었다. 이 믿음은 경제력에 대한 집착을 낳았다. 최근의 내 행동은 이미 있었던 집착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움직이는 동기가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


   “당신이 ‘속물’ 같다고 생각하는 그 성향은 우리 모두에게 있답니다. 근원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연민과 공감으로 대해보는 게 어떨까요?”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성공한 남자들의 관심을 갈구해도 괜찮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당신의 선택이에요. 중요한 건 당신의 내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고, 이해하고, 때마다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렇다. 나는 이제 내 행동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다. 받아들이기 어렵던 내 행동 뒤에는 그저 안전하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이, 변치 않는 사랑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나 자신에게서 느끼던 위화감도 가벼워졌다.’


   “경제적 안정감에 대한 당신의 욕구는 타당해요. 하지만 진정한 경제적 안정은 돈을 많이 가지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을 잘 관리하는 데 있어요.”

   “…….”

   “그리고 ‘성공’의 의미를 질문해 볼 필요도 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인가요? 성공했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성공의 정의도, 성공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양할 거예요.”

   “…….”


   나는 무어라고 말을 지어내서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있어 성공이란 무엇인지’ 탐구하기를 숙제로 내주셨다.


   이제 상담을 마칠 시간이다.


-

물총새


아침마다 찬물을 뒤집어쓰는 사람.

달고 축축한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

달릴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

시민단체 직원으로 일하면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매일 궁금해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어떤 곳에서 활동했지만,

기운이 있었다 없었다 하는 바람에 지금은 잠시 멈추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고장 난 블랙박스를 쓰다듬으며 웃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