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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전’ 씨라서 멍청해

롤라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너는 ‘전’ 씨라서 멍청해.” “머리가 나쁘니까 열심히 해야 돼.” 아빠가 초등학생인 나에게 했던 말이다. 어린 나는 아니라고 크게 소리 질렀지만, 아픈 말을 반복적으로 들었던 나는 속으로는 이런 말들을 믿고 있었다.

   특히 ‘전’ 씨라서 멍청하다는 말은 아빠가 자기 자신이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태어난 나도 머리가 나쁠 것이라는 뜻이었다. 사실, 나는 한 번도 아빠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봤던 아빠는 주변에 있는 그 누구보다 독서량이 많으셨고, 언어능력이 뛰어나셨고, 기억력이 좋으셨다. 그런 아빠가 미국이 아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남아공’에서 박사 공부를 하셔서 매일 후회한다고 하셨다. 매일같이 자기 비하를 하시면서 나를 ‘또 다른 당신’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전’ 씨 성을 가진 나에게 머리가 나쁘다고 하신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밤을 새워서 시험공부를 했는데, 열심히 한다고 칭찬은커녕 “지금 그렇게 공부하면 대학생 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라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나는 그 말을 듣고 나 같은 사람이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대학이 전부인 것처럼 얘기했으니까. 명문대를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성적이 안 좋아서 어쩌냐고 혼냈으니까. 나는 그냥 열심히 하고 있다고, 열심히 하니 잘 될 거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나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을 싫어한다. 하나를 보는데 어떻게 열을 안다는 말인가? 하나를 보면서 하나도 모를 수 있는 건데. 이 말로 어른들은 항상 나를 판단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험 하나를 망쳤는데, 아빠는 이 성적으로는 대학을 못 간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가 그린 그림을 아빠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화가가 된다고 했을 때도 아빠는 “이렇게 그려서 화가 못 돼. 그리고 화가는 돈 많이 못 버니까 하지 마.”라고 하셨다. 빈말이라도 좋으니 나는 그냥 잘 그렸다는 말 하나면 충분했다. 어떻게 시험 하나, 그림 하나로 나의 대학 진학 여부를, 나의 인생 전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어린 사람이니까 맘대로 판단해도 되는 것인가.

   내가 멍청하다는 말이, 머리가 나쁘다는 말이 전부 사실일까 봐 항상 불안했고, 선생님들께 항상 여쭤봤다. “선생님, 저는 머리가 나쁜가요?” 그러면 선생님들은 항상 똑똑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 말을 아빠에게 전달했고 아빠는 항상 선생님들은 원래 모든 학생들에게 칭찬하는 것이라고 그랬다. 그래서 어린 나는 “아, 사람들은 칭찬할 때는 가식이고 욕할 때는 진심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칭찬을 들으면 믿지 않고 비판을 당할 때는 상처받곤 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쭉 성적이 잘 나왔지만 그래도 항상 나 자신을 의심했다. 이 정도는 누구든 하지 않느냐고 왜 더 잘하지 못하냐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제는 그런 말들을 더 이상 신경쓰면 안 되는 것인데 나는 아직도 무엇이 안될 때마다 ‘역시 내가 머리가 나쁜 탓인가?’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 정도 했으면 잘 알아야 하는데 왜 아직도 이해를 못 하지? 내가 전 씨라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심리상담을 받고, 자존감 높이기에 대한 책과 글을 읽고, 좋은 영상을 찾아보아도, 나를 오랫동안 봐왔던, 가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가 나를 믿어주더라도, 나는 아직도 나의 능력에 대해 의심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아무리 같은 경험을 잘했다고 하더라도 계속 나에게 되묻는 질문이다. 어떤 기회를 보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왜 그것을 내가 못 하는지, 못할 수밖에 없는지 계속 곱씹는다. 하고 싶은 이유를 찾기보다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고 있다.


   이런 내가 나는 싫다. 나도 나를 믿어주고 싶다. 이제는 나를 믿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못하면 어때?’, ‘실패하면 어때?’, ‘왜 잘해야 해?’라고 질문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고 싶다. 못해도 괜찮다고, 그러면 뭐 어떠냐고 나 자신을 믿어주고 어루만져 주고 싶다.

   아빠는 7살의 내가 참 예뻤다고 하셨다. 예배 시간이 끝나고 아빠가 나가시는 성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내 차례가 왔을때 나는 항상 아빠에게 귓속말로 “아빠, 오늘 설교 잘했어.”라고 격려를 했다고 한다. 그런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에게 결코 멍청하지 않다고, 아빠는 똑똑하다고 자주 말한다. 그런 나에게도 말해줘야겠다. 사실, 너는 ‘전’ 씨라서 멍청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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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페미니스트.

분명히 존재하지만 세상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중요한 일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려고 힘씁니다.

새로운 도전에 겁을 내면서 용기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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