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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틈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전화기에서 언니가 비아냥거리며 한마디 내뱉는다. 평상시라면 “아니~~~ 그게 아니라~~~ 왜 그랬냐면…. ” 이렇게 시작했을텐데 이번엔 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어떤 상황인 줄 알고 함부로 말하는 거야? 뭘 알긴 알고 말하는 거야?”


   통화 1시간 전.


   이곳은 주말엔 전철 배차간격이 30분 내외인 곳. 그날 나는 식량안보라는 거창한 주제의 영상 촬영을 구상하며 에피소드 한 꼭지로 산나물 축제 단상을 핸드폰에 담아보려고 했었다. 산나물을 사고파는 현장으로 내가 생각한 축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후에 함께 된장을 만드는 사람들과 나눠 먹고 할머니 제사에 올릴 식혜도 준비할 겸 영상은 포기하고 두릅나물, 오가피나물, 취나물, 쑥, 산나물 튀김, 식혜 3병, 막걸리 3병을 샀다. ‘사람들과 나눠 먹고 함께 할 생각에 돈 쓰는 맛이란 이런 거지!’하는 뿌듯함도 느끼며…. 기분좋게 산나물 향기에 취했다.


   통화 5분 전.


   영상에 담을 것은 별로 없었지만, 축제현장을 둘러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걸어서 올라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헉- 헉-” 내뱉는 가쁜 숨소리는 주변 공기에 균열을 낸다. 반대편 사람들 시선이 느껴진다. 


   ‘아이쿠 저렇게 무겁게 뭘 저렇게 많이 샀나….’

   ‘저렇게 살 거면 캐리어라도 가지고 오지….’

   ‘비닐 찢어지겠는데….’


   안타까움과 의아한 시선이 교차하는 에스컬레이터 길. 10초 남짓의 되는 시간이 참 길고 길다.


   사람들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가방 깊숙하게 파묻힌 교통카드를 태연하게 찾는데 안 보인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가방을 헤집어서 살펴본다. 없다. ‘빠르게 타려고 이곳에 넣었는데 어디 갔지?’ 허둥대며 찾는데 도무지 안 보인다.


   비상벨을 눌렀다.


   “무슨 일이세요?”

   “전철이 곧 떠날 것 같은데 카드가 안 보여서요. 문 좀 열어주세요.”

   “……”


   다시 비상벨을 누른다.


   “저기요. 양수역에 내려서 카드 결제할게요. 전철 먼저 탈 수 있게 문 좀 먼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


   굳게 닫힌 철문 구멍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가 뭉쳐 들린다. 이렇게 애타는 사이 사람들 한 무리가 쏟아져 개찰구를 지나친다. 장애인 개찰구 앞 가방과 짐을 늘어놓고 자리를 차지한 나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쪽팔림도 잠시뿐이다.


   ‘어서 전철 출발하기 전에 타야 한다!’


   전광판 시간이 깜빡인다. 2분 전이다! 맘은 더 초조해졌다.


   출발 1분 전. 할머니 한 분이 왔다 갔다 하시더니 나에게 물었다.


   “산나물 축제하는 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귀가 어두우신 건지, 급한 마음 때문에 바닥에 앉은 채로 엉성하게 설명해서인지 할머니는 자꾸 묻는다. 결국 일어서서 답했다.


   “이쪽 방향으로 가셔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가시면 무대가 있고, 그 주변으로 산나물도 팔고 먹거리도 있고 공연도 있고 많아요~”

   “아니, 산나물 축제 ** 부스인가 뭔가로 오라는데 거기가 어디인 거여?”

   “아이고, 어르신. 그건 저도 몰라요. 내려가면 알려주는 곳 있어요.”


   이제 전철은 곧 떠날 태세. 역무원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문 좀 열어달라 말하는 나에게 왜냐고 물었다. 역무원은 전철 출발 전광판 올려보고 카드를 찾는 나를 갸우뚱하며 쳐다만 보고는 말이 없다.


   “……”

   “아… 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점멸하며 출발시간을 재촉하는 전광판. 그 사이 바뀐 새로운 전철 시간. 나는 분노와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삼키며 양수역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고 있었다. 늦었다고 말하면 어떤 말로 반응할지. 그래서 안 늦으려고 했는데. 기다리고 있었을 사람에게 되레 큰소리치며 방어한 시간들이 겹쳐진다.


   “너 어떻게 픽업해야 하는지, 누가 기다릴 것인지 말하고 있는데 늘 늦잖아, 너.”

   “그러면 이번에 재영이 대학 입학 선물로 30만 원 보낸 것도 알겠네? 생일 때 30만 원 보낸 것도 알겠고?”

   “아니,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언니가 나를 그렇게 잘 아는데, 그렇게 나를 잘 아는 사람이 그건 왜 몰라?”

   “그게 무슨 억지야?”

   “아니,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그건 왜 모르냐고.”

   “아침에 미정이도 허리 다쳐서 못 온다고 갑자기 말하고 식혜랑 튀김 사 온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는데 이렇게 늦게 도착한다고 이게 뭐야. 다른 사촌들은 다 왔는데, 우리 가족만 이게 뭐냐고.”

   “뭔 소리야. 할머니 제사 때 나만 혼자 가족대표로 참여했는데, 올해 언니는 형부랑 재영이랑 함께 가는데 뭐가 문제야?”

   “뭐가 늘 너 혼자만 갔다는 거야? 이번이 두 번째 제사인데.”



   이상하게 부아가 치밀었다. 전철 개찰구 앞.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다지 있지도 않을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서 감정을 억누르고 상황을 조곤조곤 감정 꾹꾹 눌러 담아 설명했을 텐데, 사람들 시선 아랑곳없이 전화기에 아우성치듯 큰 소리 내는 경우는 나도 흔치 않은 경우라 당황스러운데 서글픔마저 든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던 거 같은데, 그러게 나는 왜 늘 늦는 사람이 되었을까? 늦지 말아야지 하면서 부여잡았던 순간들, 뛰지 못하고 걷지 못해서 점멸하는 전철 시간이 야속했던 사람들도 겹쳐진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사람들과 나눠 먹으려고 두 손 무겁게 챙겨 온 마음.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 곁에 함께했었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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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space


일상의 틈, 공간의 틈.

틈나면 놀고 싶고 틈나는 대로 꼼지락거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틈이 주는 여유와 곁이 좋습니다.

Space. 우주적인 시공간의 순간을 일상에서 짓고 맺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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