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힘들다고 하는데 왜 듣지도 않고 그냥 진행해요! 과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빡빡하게 진행하는지! 이번 탐방 총괄 책임자가 누구죠?”
총괄 책임자? 세희샘은 모르지 않으면서도 총괄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아… 제가 대표니, 제가 총괄 책임자죠. 선생님들! 잠깐만 멈춰서 얘기 좀 하고 가요.”
바로 옆에서 듣던 내가 일행을 멈춰 세웠다.
“우리가 마지막 코스만 둘러보면 되지만 힘들어하는 분이 계시니 이후 일정을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을지 이야기하고 가요.”
탐방 이틀째 오후, 문제 제기가 들어왔다. 우리는 지역에서 민주시민 교육에 뜻을 같이한 모임 회원으로 5.18을 앞두고 광주탐방을 왔다. 탐방 첫날인 어제 평균 2만 5천 보를 걸었다. 평소보다 많이 걸었고 고됐다. 우리끼리 사전답사 없이 진행하다 보니 코스가 꼬이기도 하고 들쑥날쑥하여 시간이 더 걸렸다. 세희샘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이제 마지막 장소만 갔다가 전철역으로 이동하면 된다 생각하고 세희샘이 힘들다고 말했을 때 잘 들어주지 못했다. 결국 세희샘이 더 큰 목소리로 말한 거다. 문제를 제기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데 이게 무슨 민주적이냐고도 했다. 이야기 나눠보자고 일행을 멈춰 세우면서 우리 안에서 탐방 코스를 짜고 탐방을 이끌어 준 상구샘에게 먼저 미안했다. 상구샘이 어차피 KTX 타러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를 곳이 있으니 그냥 가자고 했지만, 세희샘은 힘들어했다. 일행 일곱 명 중 네 명은 원래 가려던 장소를 들렀다 가고, 세 명은 근처에서 쉬었다가 KTX 타는 곳에서 만나기로 상황을 정리했다.
평소 상구샘과 함께하는 탐방이 길고 빡빡한 편이라 세희샘이 힘들다고 말한 부분도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대놓고 한 소리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혜미샘이 만약 계속 대표를 맡았다면 세희샘이 이렇게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누가 총괄 책임자냐고 세희샘이 소리쳤을 때 바로 옆에서 고개 숙인 혜미샘의 표정을 우연히 보았다. 피식 웃고 있었다. 이전에 혜미샘이 내부 총질이라 에둘러 말한 건 내가 문제 제기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혜미샘을 감싸고 지지하는 세희샘의 모습이 겹쳤다. 내 안의 감정이 마구 뒤섞여 올라왔다. 탐방 첫날 학생 독립운동 기념탑을 보았을 때 감동과 전남도청 총탄 자국을 직접 보았을 때 분노와 놀라움, 5.18 당시 광주시민들의 단결된 모습과 수많은 희생자들을 떠올릴 때의 뭉클함과 슬픔, 고통. 광주에서 마주친 청소년과 청년을 보면서 느꼈던 희망. 광주탐방 이틀 동안 들었던 올록볼록한 감정이 순간 밋밋해졌다.
두 팀으로 헤어진 후 상구샘을 따라 이동하면서 상구샘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다. 탐방을 위해 가장 많이 신경 쓴 사람이 상구샘이다. 내가 세희샘의 힘듦을 먼저 살피고 챙겼다면 이런 상황까지 안 왔을 텐데, 어제 저녁 식사 장소를 먼저 물색했더라면 식당 찾는다고 덜 헤매고 덜 고생했을 텐데. 가는 곳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해서 전체를 살피지 못한 건 아닌가, 모임 대표인 내 행동이 총괄 책임자로서 적절했나 돌아보며 자책했다. 좀 더 살피고 챙겨야 했는데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끼리 하는 탐방이라 서로 보완하며 이끄는 사람도 큰 부담 없이 진행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표는, 총괄 책임자는 전체를 살폈어야 했다. 무엇보다 세희샘에게 책잡히고 싶지 않았다. 서운함도 컸지만 좀 더 신경 쓰지 못한 나를 질책했다. 상구샘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린 왜 탐방을 왔을까, 이번 탐방에서 무엇이 남을까? 다음에 다시 탐방할 수 있을까? 내려올 때만 해도, 국립 5.18 민주 묘지를 다녀올 때만 해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곳을 들러야겠구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탐방 분위기가 휘청거렸다.
마지막 탐방 장소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장재성과 장매성 남매가 살았던 집터를 찾았다. 집터 주소를 잘못 알아 골목을 두세 번 돌면서 헤맸다. 따로 두 팀으로 나눠 이동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행히 집터를 제대로 찾아 둘러보고 마무리했다. KTX를 타는 광주송정역에는 상구샘과 내가 속한 팀이 먼저 도착했다.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와서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피곤한 표정도, 해소하지 못한 불편한 감정도 우린 숨기지 못했다. 표정만큼 분위기도 무거웠다. 기다리는 동안 영주샘에게 내 감정을 먼저 꺼냈다. 영주샘이 불편할 때 뭔가 바로잡으려고 이야기를 급히 꺼내기보다 시간을 두고 나중에 얘기해도 괜찮다고 했다. 영주샘과 이야기하면서 뻣뻣한 감정이 좀 누그러졌다.
세희샘이 속한 일행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늦게, 기차 시간이 다 돼서 도착했다. 그래서 우리가 있던 대기실 쪽으로 들르지 않고 바로 KTX로 이동한다고 했다. 우리도 승차할 KTX로 이동했다. 우리가 예약한 자리는 순방향과 역방향 의자가 서로 마주 보는 가운데, 양쪽 4인 좌석이다. 광주로 내려올 때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정적이 흘렀다.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양림동 탐방하면서 샀던 빵과 역에서 산 음료수를 나눠 먹었지만 싸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나와 상구샘이 앉은 쪽에서는 탐방하면서 만난 독립운동가와 음악가 정율성 이야기가 이어졌다.
“논문이라도 쓸 거냐?”
건너편 통로 쪽에 앉은 혜미샘이 같은 말을 두 번이나 툭 던졌다.
“무슨 얘길 하는 거냐?”
상구샘이 맞받았다. 그 이상 대화는 없었다. 서로 자제하는 중이었다.
‘탐방을 오래 같이 해왔던 두 사람이라 이 분위기에 저 정도 수위라도 괜찮겠지? 아니야, 내가 모르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내 상상은 더 나아가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광주에서 출발해서 바깥 풍경이 잘 보였다. 내장산을 지나고 동진강과 만경강으로 둘러싸여 지평선이 보인다는 김제평야를 지나고 이리역 폭발 사고로 역 이름이 바뀐 익산역도 지났다. 앉은 자리 양쪽 통유리 넘어 모내기가 끝난 논과 높이를 달리하며 스쳐 가는 산을 보니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맘에 여유가 생기니 이후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용산역에 도착했다.
“잠시만요, 헤어지기 전에 잠깐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버스와 전철로 각자 헤어지기 전에 빙 둘러섰다.
“이틀 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탐방 코스 짜고 진행해 준 상구샘, 표 예매와 이후 지출 정리해 줄 총무님 고맙습니다. 큰 사고 없이 무사히 1박 2일 일정을 마쳤지만, 일정 중에 조율이 필요할 때 대표로서 제때 조율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상구샘과 세희샘도 짧게 인사했다. 다음 달 모임 장소를 정하고 나니 맘에 부담이 줄었다. 우린 서로 작별 인사하고 헤어졌다. 짧은 작별 인사로 상처받은 감정이 쉬이 풀리진 않는다.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는 게 아직 서툴다. 곪은 감정이 한꺼번에 풀릴 리도 없고 풀려고 해도 바로 풀리진 않는다. 피곤한 상황에서 집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걸려 오늘 여기서 좀 더 얘기하고 풀고 가자는 말은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천천히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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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
걷고 읽고 쓰는 교육활동가. 시를 쓰면서 글 쓰는 재미를 알았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내 숨쉬기를 살피려고 멈춘다.
하늘과 먼 산을 보는 걸 좋아하고 빗소리와 바람 소리,
새소리 듣기, 은행잎 새순 돋아날 때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