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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

시시 / 2023 소소기록 희망의숲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교차하는 시선들

   #1. 방어기제


   ‘ㅂㄷㅂㄷ’ 떨릴 만한 글을 읽으면, 정신이 아득해지기 마련이다. 패드립부터, 온갖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언어의 악플이 쏟아질 수도 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못 알아들으면 다행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독은 아니지만, ‘알고 싶지 않다’가 될 것이다. ‘뇌’를 닫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악플일 것이다. 오독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니니까.


   글을 쓰지 않아 버릴 수도 있다. 아예 악플의 원천을 차단하는 것이다. 원인 인자가 없으면, 악플이 달릴 이유도 없다. 그렇게 된다면, 글을 쓰지 않아야 하는가? 어쨌거나,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은 쉽다. 글로 쓰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악플에 악플로 대처해서는, ‘키배’정도밖에 안 된다. 어쩌다 보니, 악플 대처법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많이 보면’ 달라질 것인가? 내성이 생기는가?


   ‘약’ 같은 걸로 치유될 만한 것일까? 맛있는 걸 먹거나 하면 조금은 좋아질 수도 있다. 그걸로 끝이면 다행이겠지. 잘 때 생각이나 안 나면 다행이겠지. 밥 먹을 때 생각 안 나면 다행이겠지. 악플과 같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악플을 쓰는 쪽에서는, 그냥 써 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그 악플을 남기는 플랫폼에는 반영구적으로 남는다. 계속 보면서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모 남자 아이돌 출신 멤버의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그러한 경우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사례가 종종 들려오고 있고, 유명하든지 아니든지, 온라인에서의 문제가 심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는,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개통된 이후로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이 직접적인 문제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 특성을 이용한 ‘글’을 보는 당사자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악플을 근절하기 위한 그런 것들.


   그래서, 난 어떻게 할까? 과거엔 어땠을까? 그렇게 되면, 글을 쓰지 않는다. 피할지도 모른다. 남길 여지도 주지 않게. 혹시나 쓰게 되면, 뒤돌아보지 않긴 했지. 혹시나 내가 유명해졌을 땐, 논란 정도일 까나. 모르겠다, 생각하지 않는 편이 역시나 편하다.


   #2. ‘활동가’로서의 악플에 대처하기


   나는 ‘활동가’는 아니지만, 활동가를 꽤 접하며 협업하기도 한다. 어쩌면 활동가와 비슷할 수도 있다. 하는 일이나 성향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목적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라면, 사회의 일들과 많은 접점을 갖게 된다. 따라서, 악플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내가 글을 쓰건, 활동을 하건 간에 나의 활동이 웹상에 노출이 되고, 영상에 얼굴이 나올 수도 있다. DM을 받을 수도 있다. 아직 받은 적은 없지만.


   그럴 땐, 어떻게 할 것인가?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가능하면 피해 다니고 싶긴 하다. 그것이 나의 방어기제인 것 같고, 나름의 악플과 무논리에 대처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주장하는 바나 가야 하는 길을 피해 가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많이 피하고 있다. 잘 알고 있다. 안 하는 것뿐.


   웹상에 남긴 글들은, 반영구적으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신중히 써야 할 것이다. 흑역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악플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는다. 두려움은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쓸데없는 요소들, 악플러들이 주로 꼬집는 사적인 단점들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쁜 것만 아니라면, 그대로 가고자 한다. 그러고 싶다.


   용기 있게, 가자.

   용감하게, 가자.

   용기가 없으니까,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항상 ‘비교’와, ‘남들’과 함께 살았는데, 최대한 이런 것들을 배제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은 잘 하지만 몹시 어렵다. 남한테 조언해 주기는 쉽다. 정작,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원고를 내일로 미루는 것도, 계획은 세워두지만 지키지 않는 것도.


   두려움이 항상 있다. 기록물에 대한, 매체에 대한.

   누가 보지도 않는데, 난 유명하지도 않은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누가 보면, 유명하다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못 쓴다.

   또.

   내 ‘용기’를 담는 ‘용기’는… 얼마만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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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활동가들을 공부합니다.

우리 활동가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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