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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려 인간, 유경

하경 / 반려종의 시선 1장. 사랑과 돌봄에 대하여

   2015년 흑석동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껌뻑거린다.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다. 음… 그냥 이대로 다시 잠들어 남은 하루를 지워버리고 내일 아침에 제대로 시작해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고 눈을 다시 감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다시 눈을 떠본다. 내 발가락 너머로는 빨래 건조대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이고 그 뒤로 땀 흘리는 유경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좁은 바닥에는 요가 매트가 깔려있고 책상 위에는 땅끄 부부의 운동 유튜브가 틀어져 있다. 나도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천장을 보는 채로 눈에서 눈물만 줄줄 나와 베개를 적신다.


   나와 내 동생 유경이의 초기 반려 생활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우리의 동거는 2015년 유경이가 나와 같은 대학에 입학해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고 학교 앞 원룸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2012년에 내가 먼저 서울로 이주하고 3년 만에 함께 살게 되었으니 유경이가 태어난 후로 내 인생에서 우리가 같이 살지 않은 시간은 그 3년이 전부이다. 하지만 2015년을 우리가 처음 함께 살게 된 것처럼 기억하는 것은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의 내 기억 속에 유경이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 내 머릿속은 오로지 학교와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학교 끝나고는 어디에서 뭘 하고 놀 거고, 이번 시험에서는 누가 일등이고, 곧 누가 생일이니까 어떤 깜짝 선물을 준비할 거고,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와 춤은 뭐고,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사귀고 헤어졌고 뭐 그런 것들. 그리고 그런 내 관심을 통제하고 내 친구들을 못마땅해하는 것 같은 엄마 아빠 정도? 유경이는 나의 관심 대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반면에 많은 동생들이 그렇듯, 어린 유경이는 나를 마치 완벽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정말 좋아했었다고 한다. 서울로 대학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나와 함께 살고 싶어서였을 정도였다고. 나는 모범적인 딸이자 언니로서 인정받고자 집에선 늘 나를 숨기려고 애쓰던 K-장녀였으니, 당시의 어린 유경이의 눈에 내가 그렇게 비쳤다는 것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부모로부터 떨어져 자유를 얻은 나는 마치 고삐가 풀린 것처럼 살았다. 1학년 때 입학 성적으로 받게 된 장학금은 1학기 성적이 기준에 못 미쳐 2학기분을 날렸다. 나는 대체로 밤새 술을 마시고 놀고 있거나, 숙취로 수업도 제때 못 가고 누워 있거나, 선배들의 워크숍 현장에서 스태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생활을 쉬지 않고 이어가던 내가 유경이와 동거를 시작할 3학년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번아웃과 우울증이 슬금슬금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성인이 된 우리의 갑작스러운 동거는, 어딘가 부끄럽고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반대로 유경이에게 나와의 동거는 완벽한 줄 알았던 언니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고 실망해 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안 싸워


   원래 어렸을 때부터도 참 다른 자매라고 생각하곤 했었지만, 성인이 되고 좁은 방 한 칸에서 함께 살다 보니 서로의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언제나 과거의 내가 벌여 놓은 일들로 인해 밖을 싸돌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고는 모든 에너지를 쪽 빨려서 집으로 돌아온 후 다시 우울 모드가 되어 누워 있는다. 하지만 어쨌든 깨어 있을 때는 누워있던 시간 동안 못 한 일들을 두 배로 할 것처럼 움직이곤 한다. 반면에 유경이는 집순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집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우쿨렐레를 연주하거나 일기를 쓰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그래서 집이라는 공간이 유경이에게는 특별히 더 소중한 것 같다. 유경이는 밖에서 뭘 사들이는 일도 잘 없다. 오히려 안 사서 문제일 정도다. 그러니 당연히 돈도 잘 모은다. 그럼에도 우리 집은 그런 내가 사들이고 어디서 받아오는 물건들로 범람하곤 했다. 나는 대책 없이 돈을 쓰는 바람에 예상치 못하게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어서 유경이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유경이는 생활 습관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모범적인 스타일이었다. 6시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일절 뭔가를 먹지 않고 11시 전에 잠드는 아침형 인간 유경이와, 밤이 되면 말똥해져서 엽떡이나 치킨 따위를 꼭 시켜 먹었던 저녁형 인간인 나. 우리 집의 전등은 꺼지는 순간이 없었고 자는 사람이 안대를 쓰고 자곤 했다. 유경이는 엉망으로 사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 그리고 내가 어질러놓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나로서도 성실한 유경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유경이는 휴학도 없이 학교에 다니며 학기마다 올 A+을 받았다. 졸업 영화를 준비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던 나는 유경이와 같은 해에 간신히 학교를 졸업했다. 유경이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들어가 그곳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유경이가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던 당시, 나 역시 졸업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나는 시나리오를 쓴다고 말하면서 잠으로 대부분을 보냈다. 나의 일과는 점차 엉망이 되었다. 분리가 전혀 되지 않는 원룸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견뎌야 했다. 나를 반영한 내 졸업 영화 속 주인공은 쓰레기와 물건들이 뒤덮인 집에서 살고, 심지어 그 원룸 안에서 담배도 피우는 캐릭터였다. 영화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안 그래도 내 물건들 때문에 더러웠던 우리 집에는 영화 소품을 위해 주워 모아온 쓰레기들까지 쌓여갔다. 심지어는 담배꽁초를 모은 통까지 구해다 집에 두었다. 멀쩡한 사람이라도 그 집에서 먹고 자면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유경이는 나 때문에 마치 폭탄을 맞은 듯한 집에서 먹고 자며 대학원 입시를 준비해야 했다.


   “자매끼리 같이 살면 자주 싸우지 않아?” 동생과 함께 산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자주 물어봤다. “우리는 안 싸워.” 싸운다는 것이 어디까지인지는 정하기 나름이겠지만 일단 우리는 둘 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는 성격이 아니다. 싸우지 않는 우리의 관계가 어딘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던 때도 있었다. 자매라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심한 말을 퍼부으며 싸워본 에피소드 몇 개 정도는 댈 수 있어야 진짜 자매다운 자매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왜 싸우지를 않는 거지? 그만큼 친하지 않다는 증거일까? 재미없는 자매인 걸까? 하지만 우리 나름의 냉전도 우리에게는 꽤나 아팠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예민하게 짜증을 내는 것으로 자신의 불만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인상을 찌푸린 얼굴로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 날들이 늘어 갔던 것 같다. 사실 각자가 너무 바빴기 때문에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거의 없었다.


   폭풍 같은 한 해가 지났다. 유경이는 대학원에 합격하고 나는 졸업 영화를 무사히 완성한 그다음 해 내 생일 때쯤이었나, 유경이에게 편지를 받았다.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대학원 입시 준비만으로도 너무 힘든데 내 촬영 때문에 집이 엉망이 되어서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였다. 말보다 글이 더 편한 유경이는 깨알 같은 글씨로 힘들었던 지난 시간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에 대해, 그리고 우울해하는 나를 지켜보며 느낀 안타까움과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은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유경이에게 대학원 입시 준비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큰일이었다는 사실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도 종종 유경이의 생일 편지엔 나와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한 따끔하고 아픈 말들이 적혀 있었다. 유경이 생일에 건네는 내 편지는 주로 사과의 편지가 되었다. 내가 나름대로 집안일을 한다고 최선을 다해도 유경이에겐 언제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를 참고 지켜보던 유경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할 때면, 편지가 아닌 말로 직접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유경이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아서 상기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요구사항을 말했다. 나는 힘들게 이야기를 꺼내는 유경이를 보며 미안함에 어쩔 줄 몰랐다. 그렇게 한 소리를 들은 나는 한동안 신경을 쓰는 듯했지만, 일이 바빠지면 또 금세 집안일은 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곤 했다.


   어느 날 유경이는 회의를 소집했다. 진행자는 유경이였고, 주요 안건은 집안일이었다. 우리는 ‘그날 먹고 쌓인 설거지들은 그날 자기 전까지 설거지하기,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청소기를 돌리고 방바닥을 닦기, 2주에 한 번은 화장실 청소하기, 일주일에 각자 두 번은 빨래를 돌리기, 분리수거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는 달마다 번갈아 담당하고 관리하기’ 등을 협의했다. 브리타 정수기를 씻고 필터를 교체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아이디어를 냈는데, 먼저 그 일을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원하는 집안일을 시킬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이 항목들을 100퍼센트 지키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내가 이 일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티를 자주 냈다.


   2023년 홍제동


   요즘 나는 전보다 집안일에 부지런한 인간이 되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기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무엇보다 유경이와 회의를 통해 만들어 온 규칙들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스스로와 약속한 일들은 끝없이 미루는 반면, 누군가와 약속하는 일들은 최대한 지키려고 애쓰는 인간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올해는 이런 적도 있었다. 연초에 일이 없어 한창 불안이 심해져 있던 내가 유경이에게 ‘나이만 먹었지 전혀 쌓인 게 없는 것 같다’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유경이는 아니라고 말했다. 언니의 집안일 능력은 과거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고. 그 말이 참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유경이는 이제 늦잠을 자는 나를 내버려 두는 법도, 깨우는 법도 익힌 것 같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인간을 일으키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깨워도 지랄, 안 깨워도 지랄이기 때문에. 내가 운동하는 유경이의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던 것만큼 유경이도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인간을 보며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이다. 유경이는 언제나 나를 깨워왔고, 그동안 수많은 일으킴의 실패들이 있었다. 이제 내가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자고 있으면 가끔 유경이는 스피커를 들고 다가와 음악을 튼다. 음악에 몸이 반응하는 나는 자다가 갑자기 들썩들썩 어깨를 움직이고 열창을 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은 악동뮤지션의 ‘밤 끝없는 밤’이었다.


   오 달콤한 잠

   시끄러운 바깥 소리도 내 자장가

   오 밤 끝없는 밤

   눈이 떠지지 않아

   Endless dream, good night


   우리는 코인노래방(일명 ‘코노’) 메이트로 발전하기도 했다. 유경이는 우쿨렐레를 연주하거나 혼자 코노를 다녀오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나도 노래방이라면 언제나 오케이인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둘은 종종 함께 코노에 갔다. 나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유경이가 그곳에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노래들을 열심히 부르는 모습이 신기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각자의 스트레스를 풀면서도 서로의 노래를 참 열심히 들어주었다. 함께 살면서도 말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헤아려 보는 시간 같기도 했다.


   유경이와의 반려 생활 9년 차. 이제 유경이는 나와 가장 가깝고 잘 맞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 재밌게 본 콘텐츠나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 열심히 영업하고 또 들어주는 관계이다.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궁금하고 가보고 싶은데 혼자 가긴 싫은 여러 토크 행사, 영화관, 공연장, 시위 현장(!) 등에 만만한(?) 유경이를 잘 끌고 다녔는데, 유경이는 내 영향을 많이 받고 잘 흡수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함께 페스코가 되기도 했다. 내가 책 <아무튼, 비건>을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아 책의 내용을 떠들어대고 소감과 다짐을 전파했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부끄러운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함께 사는 시간이 쌓이고 점점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맞춰가면서 이 반려 관계의 안정기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내 삶의 반려자


   일 년 전, 나에게 새 애인이 생긴 후로 나와 유경이의 관계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콜 포비아인 나는 거의 매일 밤마다 애인과 통화를 한 시간 이상 한다. 유경이와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에너지도 줄게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나오면 항상 유경이부터 꼬셨는데 이제는 애인과 유경이 반반씩 나눠서 본다. 요즘은 함께 밥을 먹는 일도 거의 없다. 각자의 냉동 도시락으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디폴트가 되었다. 게다가 유경이가 계속 서울에서 살 수 있을지, 아니면 전주에 있는 본가로 내려가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유경이가 준비하고 있는 취업 시험 합격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나는 유경이와 평생 둘이 함께 사는 삶을 자주 상상해 왔다. 유경이만큼 좋은 파트너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고 다니면 친구들은 언제나 유경이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유경이도 비슷한 마음일 것 같다고 내 맘대로 추측을 해왔었다. 유경이의 편지에는 아프고 따끔한 말들뿐만 아니라 나와 사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고마움의 말들도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둘 다 결혼에도 줄곧 관심이 없었다. 엄마, 아빠도 우리에게 결혼 생각을 가끔 떠보면서도, 자매가 함께 사는 것을 은근히 든든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떨어져 살게 된다면? 유경이가 전주에 내려가 버리게 된다면? 애인이 내게 동거를 제안한다면? 나와 유경이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옛날로 돌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내가 벌려 놓은 수많은 일들에 정신이 팔려서 살아가고 있을 텐데, 우리가 연락을 자주 할 수 있을까? 유경이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과 멀어지고 싶지 않은 두려운 마음이 함께 있는 듯하다. 내성적인 유경이가 집 앞에 코노도 없는 곳에서 외롭고 우울해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나랑도 떨어져서 혼자 살아봐야 새로운 관계들도 더 만들고 진짜 어른이 되지 않을까? - 이건 쓰고 보니 정말 괜한 걱정 같긴 하다.


   혼자 사는 일을 상상해 본다. 얼마나 편할까. 집안일도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애인이나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도 집에 자주 초대할 수도 있고. 얼마나 자유로울까.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일. 내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근데 그게 정말 더 괜찮은 삶일까.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것. 어려서부터 20대 중반까지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이었다. 엄마, 아빠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나이를 좀 더 먹으면, 나 한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돈을 벌게 되면, 괜찮은 직업을 가지면 그런 인간으로 홀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의존적인 인간이었고 언제나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인간이었다. 혼자서도 잘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내가 그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되었다.


   혼자 살면 일단 낭비하게 되는 것이 많다. 밥을 해 먹는 일만 해도 부담이 큰일이 된다. 지금의 기후위기 시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인간들이 점차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고립되는 것을 선택해 온 역사가 지구의 자원을 더 소비하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원래 함께 살고 공유하는 존재들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세상의 모든 존재는 원래 함께 사는 일이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물론 함께 살아가는 일은 참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고립된 인간들은 참 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다른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요즘은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잘 도움받는 인간이 되는 것. 잘 돕는 인간이 되는 것.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나는 요즘 유경이와 약간의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애인과의 새로운 반려 생활을 상상해 볼 때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유경이의 시험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글을 쓰면서 지금 내가 어떤 반려 생활을 하고 싶은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아직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유경이와 계속 같이 살든, 같이 살지 않게 되든 간에 서로의 삶을 반려하는 친구로서 더욱 잘 돌보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유경이가 내 편지에 적어줬던 말 중에 너무 좋았던 말이 있다. 장혜영 의원이 했던 말이라고 했는데, “모두가 ‘내 한 몸 돌보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을 돌보나’라고 말하지만, ‘남을 돌보지 않았기에 내 한 몸도 돌보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라는 말이었다. ‘반려자’라는 말은 주로 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곤 하지만, 나는 반려자가 꼭 한 명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유경이, 애인, 영화를 하는 친구들, 그렇지 않은 친구들까지. 오히려 가능한 다양한 이들과 반려자로서 서로의 삶을 함께 오래오래 돌보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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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


서울에서 영화를 만들고 영상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

언젠가 고양이들의 반려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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