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쌜리의 법칙

로라 / 반려종의 시선 1장. 사랑과 돌봄에 대하여

   프롤로그


   2021년 9월 29일 새벽, 쌜리가 떠났다. 쌜리는 ‘호상’이었다.

   떠나기 전날, 지방에서 엄마께서 올라오셔서 우리는 경건한 시간을 가졌다.

   노래를 불러주고, 기도하고 “누나 아들로 와.” 외치며 보내주었다.

   강렬한 발작을 끝으로 쌜리는 지구별 여행을 종료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 “점심 뭐 먹을까?” 엄마께 내가 말했다.

   엄마는 “먹을 생각이 나냐?” 하셨는데 나는 났다. 일상은 돌아가야 하니까.


   집에 돌아와서 텅 빈 공간을 마주했다. 쌜리의 방석, 16살의 근육에 맞게 침대를 치운 거실, 인대와 관절을 돕기 위한 보조기구, 바닥의 미끄럼 방지 매트, 식기, 약, 기록 노트가 햇살을 받으며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고 쌜리가 없었다.


   “이건 꿈일 거야.”


   내 입에서 나온 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아직 집에 쌜리의 영혼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틀림이 없을 것이다. 49일 밥상을 매일 차리며 집에 햇살이 들어오면 ‘쌜리’라고 반가워했다. 집에 켜둔 홈카메라가 움직이면 ‘쌜리’라고 말하며 캡처해 두었다.


   내가 고집하던 많은 것이 의미 없어지고 오직 사랑과 그리움, 우리만 남은 귀한 순간이었다. 나는 잠시 현실감각을 상실한 채 내 안의 영성이 깨어나도록 허용해 주엇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래서 지금 쌜리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집중하면 좋은가’였다. 쌜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나로 존재하도록 이끌어 준 것이다.


   미드 SENSE 8, 드라마 49일, 애도 서적. 반려동물이 떠난 뒤 집사들이 볼 수 있는 많은 것을 몰아서 봤다. 실컷 울고 받아들이고 나니, ‘알리오 올리오’가 먹고 싶었다. 배달을 시켜서 먹었다. 갑자기 가계부를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올라와서 노트에 소비기록을 적었다. 그리고 2달 뒤 카톡으로 운영되는 가계부 모임, 미니멀 모임에 들어갔다.


   나중에 이 행동을 돌아보니 막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경험한 뒤 많은 것이 휘몰아쳐서 ‘이제 쓸데없는 것에 시간과 돈,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아닌, 소중한 곳에 사용하고 싶다고’ 다짐했던 게 아닐지 싶다. 그것을 위한 필수적 요소는 절약과 비움이었고, 혼자 하면 ‘작심삼일’로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환경 조성을 위해 루틴 모임에 들어간 것이다. 미니멀, 가계부를 이끌어 주시는 분의 진행은 나와 잘 맞았고 나는 주기적으로 루틴 모임에 나를 집어넣었다.


   쌜리를 반려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직장 퇴사를 결정했기에 나는 ‘백수’가 되었는데, 이제 쌜리가 없으니 집에 빨리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6개월만 버텨보자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길어져서 현재 2년 넘게 일이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쉬는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다시 ‘쌜리의 죽음’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나는 영혼의 강에서 쌜리를 찾다가 현실로 빠르게 돌아왔다. 애도 속도도 빨랐다. 더 괜찮아지자 이제 미끄럼방지 매트를 치워도 괜찮겠다 싶어서, 비글구조협회에 기부를 하러 지방에 방문했고 그 곳에서 보호받는 유기견들을 보았다. 수많은 개들이 짖는 소리. 강한 청각 자극이었다. 나는 압도됐다. 그 순간, ‘내가 둘째를 생각보다 빨리 입양하겠다’고 직감했다. 일주일 뒤 SNS에서 폴리의 사진과 임보자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폴리를 (당시의 이름은 ‘레오’) 데려온 뒤 입양했다. 현재 나는 3살 폴리와 살아가고 있다. (미끄럼 방지 매트는 다시 구입했다.)


   쌜리와의 시간을 기록하기로 나와 약속했다


   일상의 많은 일이 정리되고 풍요 속에서 하나에 몰입하는 자세로 우리의 시간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정신은 현재 일어나는 것들에 이리저리 치이고 있었고, 하나의 경험이 종료되면 또 다른 이벤트가 자신 좀 봐달라고 고개를 들었기 때문에, 쌜리가 떠난 지 2년이 되도록 글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쌜리가 떠나고 반려견을 입양했고, 입양한 반려견의 사회화 시기를 안정적으로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 변화가 몰려왔다.


   갑자기 강의 일이 늘어났고 관계의 진폭도 컸다. 눌러둔 욕구가 올라오기도, 감정이 바닥을 치기도 했다. 현실 속 우선순위를 분류하는 데 집중했고, 지친 만큼 에너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쌜리를 기록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러다가 영영 기록하지 않으면 어쩌지 불안했다. 게다가 쌜리가 떠난 지금의 집,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곳을 2달 뒤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급한 마음은 나에게 최고의 동력이었다.


   “과연 ‘현재’가 과거를 돌아보는 작업을 미룰 만큼 중요한 것인가?”


   질문을 하게 된 것은 매일 울리는 ‘사진 용량이 찼다’라는 휴대전화 알림 덕분이었다. 지금 나의 휴대폰 용량이 가득 찬 이유는 쌜리의 사진을 지우지 않아서다. 1,300개가 넘는 사진을 그대로 두고, 나는 현재의 사진을 지웠다. 남겨두고 싶은 순간은 계속 생기지만, 그 순간은 늘 쌜리에게 밀렸다. 나는 미니멀리스트였다. 중요하지 않은 사진은 빠르게 삭제했지만 용량은 늘 부족했다. 사진을 컴퓨터, USB에 옮겨두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나는 쌜리의 사진을 거의 보지 않았다. 사진을 보지 않으면서 남겨두는 나를 보고 나에게 필요한 건 ‘기록’이구나, 사진을 옮기지 않는 건 기록이 나에게 중요하니 잊지 않겠다는 나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쌜리와의 이야기를 우리 둘이 아닌, ‘함께 보는’ 에세이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바람을 확인했다.


   ‘꼭 기록해야 하나?’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나는 ‘의미’와 ‘기억’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쌜리가 가르쳐준 것, 함께 한 경험, 쌜리가 버틴 시간, 나의 변화, 쌜리 덕분에 세상과 연결된 에너지를 잊기 전에 남겨두고 싶었다. 나를 변화시킨 건 ‘사람’도 맞지만, 내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는 쌜리가 있었던 적이 많았으니 지금의 나를 만든 5할은 쌜리다.


   동물을 반려하는 사람 중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길을 걸으면 반려견의 똥을 줍기 위해 기꺼이 무릎을 굽히는 사람들을 매일 본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 사람 내면의 온기, 드러남 이면의 아름다움, 건강한 의존을 느낀다. 무엇보다 귀엽다. 무엇이 저들을 무릎 굽히게 할까?


   무조건적인 시선과 사랑, 나와 네가 주고 받은 에너지. 반응을 주고 받는 생명이 채워주는 안심되는 순간들은 우리를 더 결합하도록 이끈다. 나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의 눈망울을 보다 보면 어느새, 때때로, 나를 투영하기도 한다. 또 다른 나를 바라본다. 반려동물을 위해 행동을 할 때 우리는 나를 돌보는 것일지 모른다. 달라진 에너지는 삶으로 흐른다.


   우리는 무릎을 굽히는 것을 너머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기적이다. 이미 시작된 마음은 밖으로 흐른다. 그러니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세상을 이롭게 한다. 동물은 인간이 자신의 부드러움을 잊지 않도록 돕는다.


   나는 쌜리를 지키고 반려하고, 반려받으며 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해야 하는 것들을 단계적으로 경험했다고 믿는다. 이 책에 우리의 기록을 담으려고 한다.


   쌜리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보게 만들었고, 내가 타인에게 조금 더 부드러워지도록, 마음을 내도록 힘을 줬다. 덕분에 지금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선택할 수 있었고, 돌보고 헌신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도 알았다. (반려동물에게 한정) 함께 완전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쌜리가 나에게 왔을 때 나는 이름을 지어주며 ‘쌜리의 법칙’을 떠올렸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길 거야! 이름의 힘일까. 쌜리는 큰 병치레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선택한 집사와 밀착된 노년을 보냈다. 쌜리의 법칙이 우리를 감싸주었듯,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쌜리의 법칙’이 작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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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일상의 의미를 오롯이 담고 흘려보내는 작업을 사랑합니다.

반려견과 살아가며 조금 더 나와 연결되겠다는 마음을 내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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