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미미한 흑역사 회고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가정교육으로 예의범절이 출중하고 인성이 바르기로 저명했던 어린 시절의 나. 오죽하면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별명이 도덕교과서 내지는 바른생활이었달까나~ (별명이 맞는 걸까?)
스스로도 도덕적 잣대와 기준이 얼마나 엄격했던지 바보 멍청이 같은 가벼운 욕조차 용납할 수 없었고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줄을 설 때 새치기는 어림도 없었으며 친구끼리 싸우는 것도 절대 금지. 싸우거나 떠들면 선생님한테 일러바치는 초초초 밉상. 선생님이 시킨 건 무조건 다 듣고 따르고 수업시간에 안 떠들고 부모님께는 무조건 존댓말. 어른들이 보기엔 아 정말 완벽하고 아름다운 인성의 아이 었던 것이다 정말로.
그런데 아무리 완벽한 교육과 성격이 콜라보레이숀을 이루어 어른들의 찬사를 받던 그도 결국 유소년기 소년에 지나지 않았기에. 성장기 아동의 본능에 충실하고자 하는 불가항력과 나도 무언가 스릴을 즐기고 싶다는 일탈의 욕망이 마음속에서 조금이나마 꿈틀거리고는 있었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기만 하던 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당시 담임선생님은 나이가 조금 많은 히스테릭한 여자선생님이었다. 사람 자체가 악랄한 것은 아니고 당시 기준으로도 적당히 괜찮은 선생님이었지만 1999년 당시의 거칠고 야생적인 교육 분위기와 그분의 엄청나게 예민한 천성이 합쳐져 초등학교 1학년이 감당하기에는 꽤 버거운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 무한한 예쁨을 받던 나는 그런 히스테릭 선생님의 마음을 당연히 사로잡았더라. 그래서 반 전체가 혼나도 나는 덜 혼나고 매도 덜 맞고 징벌적 성격의 청소 당번도 언제나 면제였지.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일이었을까. 그날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를 지나가던 작은 악마가 너무나 착해서 선생님께 무한한 예쁨을 받는 아이를 보고 그 순수한 마음을 너무나도 타락을 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그날 나는 우유당번이었다.
(대부분의 으른들은 알지만 혹시라도 모를 수도 있는 영걸을 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90-00년대에는 학교에 우유급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우유 소비를 촉진시키는 동시에 학생들에게 영양가 있는 우유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매일마다 반에 우유가 배급? 되는 것이었다. 학교 건물 밖 창고 근처에 반 인원수에 맞춰 우유가 플라스틱 박스에 담겨 왔다. 그럼 반의 우유당번 둘은 아침에 그 박스를 들고 반에 가져다 놓는다. 아이들은 우유를 마시고 빈 곽은 그 박스에 다시 넣어놓는다. 우유당번은 수업이 끝나면 그 박스를 다시 원래 장소에 가져다 놓는다. 유당불내증 있는 아이들의 고통이나 흰 우유가 싫어서 제티를 타먹는 게 유행했다던지 등의 잡설은 생략.)
당시 우리 반은 우유당번은 마지막 교시가 끝나자마자 우유 박스를 가져다 놔야 했기 때문에 종례 면제라는 일종의 특혜 주어졌다. 당번이 로테이션이었기에 그런 기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였지만, 그 한 번, 종례를 건너뛰고 집에 일찍 갈 수 있다는 것이(그래봤자 교실에서 고작 10-20분 일찍 나오는 것이지만) 묘한 쾌감과 만족과 알 수 없는 일탈심이 느껴지게 했다. 그래봤자 다들 집 가는 시간인데. ‘우리 반’에서 당번 둘만 집에 휙 가버린다는 것이!
우유당번이었던 그날. 나는 당번 친구와 함께 우유박스를 가져다 놓은 뒤, 집으로 가려고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갑자기 500원이 있는 게 기억이 났다. 왜 500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학교 수업시간 준비물 사고 남은 돈이었겠지? 집에 나 혼자 일찍 간다는 그 짜릿함과 갑자기 생긴 500원. 나는 갑자기 문방구가 있는 학교 옆문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른생활 도덕교과서였던 나의 마음에 개구쟁이 악마의 속삭임이 닿았던 것이었겠지? 살면서 내 돈으로 스스로 사 먹어본 적 없는 학교 앞 문방구의 불량식품을 ‘내 손으로 직접’ 사 먹어보고 싶어졌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영양과 위생적으로도 문방구에서 파는 오만가지 간식들-사탕과 과자부터 육포, 빵, 아이스크림, 닭강정과 출처를 알 수 없는 꼬치류 등-은 사회 악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을 유혹시키고 타락시키는, 그리고 질병을 유발하는 악랄한 악마의 식품. 학교에서는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사 먹지 말라고 매일같이 가르쳤다. 프리한 집안의 아이들은 밥보다 불량식품을 많이 먹었다. 우리 부모님은 엄격과 수용이 공존하는 방침의 교육을 추구했기에 불량식품을 사 먹으라고 직접 허락하거나 용돈을 주신적은 없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먹는 것이기에 친구들이 사주는 것을 나눠먹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으며 혼내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바른생활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지 말라는 선생님의 방침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지만, 친구들이 나눠주는 것을 조금씩은 먹어본 적은 있었기에 그 달콤하고 짜릿한 길티플레져는 조금이나마 맛을 보았건 것이다. 내가 ‘직접 사 먹지만 않으면 되는 것’ 이니까!
하지만 그날의 오묘한 일탈심은 내가 직접 불량식품을 사 먹도록 순수하고 깨끗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마침 봄이 끝나가는 5월 언저리어서 햇빛이 후덥지근했으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때문에 일어나는 모래먼지와 늦봄의 황사가 모두 합쳐져 숨이 막히던 나는 시원함이 필요했고 갈증을 해소해야 했다. 문방구에서 파는 쮸쮸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졌다. 나에겐 500원이 있었기에 100원짜리도 200원짜리도 아닌 300원짜리로 플렉스까지 할 수 있었다. 갓 댐. 친구나 누나랑 나눠먹는 것이 아닌, 나 혼자서, 무려 문방구에서 제일 비싼 300원짜리 쮸쮸바를 먹을 수 있다니. 그 짜릿함이 고작 8살 나의 마음과 온몸을 찌르르 덮쳤다. 그래, 바로 오늘 이 순간이야.
작은 걸음은 나를 서둘러 학교 앞 문방구로 데려다 놓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학교 선생님처럼 생긴 사람들은커녕 어른 한 명 없었다. 타이밍까지 너무 완벽하다. 나는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먹고 싶은 300원짜리 쮸쮸바는 하늘색-파란색의 포장지였다. 무슨 맛이었는지는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쌓여있는 100원짜리 빈약한 아이스크림과 200원짜리 초코맛 쮸쮸바 위에 영롱하게 놓여있는 그 300원짜리 파란색 쮸쮸바의 자태는 실로 아름답고 영롱했지.
그런데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불량식품을 사 먹는 악행을 저지르는 그 기분은 참 처참했다. 세상 어느 8살짜리도 느껴본 적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없을 거대한 배덕감, 나 스스로의 결정으로 나를 타락시킨다는 그 처참함. 하지만 너무나도 쮸쮸바의 유혹을 이겨내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욕망. 무한한 순수한 마음과 고귀함을 지녔지만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가버려 선악과에 입을 대고 말아 버린 하와의 마음이 그런 심정이었을까?
그래. 그 쮸쮸바는 나에게 있어 선악과다. 손을 뻗어 그 쮸쮸바를 잡고 문방구 아저씨에게 500원을 내고 200원을 거슬러 받는 순간 나는 거대한 죄악에 빠져 하나님을 직접 등지고 그가 마련해 주신 지상낙원 에덴동산을 내 발로 직접 걸어 나와버리는 기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기엔, 아무리 바르고 올곧은 심정과 인성을 지닌 나였지만, 그래봤자 난 고작 8살 초등학교 1학년. 이 거대한 유혹과 탐욕을 어떻게 이기리. 내 손은 결국 쮸쮸바에 닿았다. 난 이렇게 무너진다. 난 지옥행 티켓을 내 손으로 끊은 것이야.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고음, 내 이름을 부르는 히스테릭한 샤우팅!!!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손에 잡은 쮸쮸바를 놓치고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학교는 어린 1학년은 안전하게 집에 갈 수 있도록 종례 후 온 반이 줄을 맞추어 선생님의 인솔을 따라 교문 앞까지 이동 후 해산하도록 했었다. 보통은 종례가 20분은 걸리기 때문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교문까지 나오려면 30분은 족히 걸리지만, 그날따라 왜!!! 하필 내가 우유당번이고, 일찍 교실에서 나와서, 아이스크림이라는(8년짜리 인생에서) 일생일대의 일탈을 하려는 그날. 종례가 그날따라 엄청 일찍 끝나서 우유당번인 내가 교문에 나와서 문방구에 도착하는 시간이랑 거의 비슷하게 온 반이 선생님의 인솔을 따라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으려는 그 순간을 담임선생님에게 적발당하고 만 것이다. 선생님의 샤우팅은 그 골목을 가득 매웠고 선생님의 인솔을 따라 나오던 우리 반 친구들의 시선은 일제히 아이스크림 냉동고 앞에서 쮸쮸바를 꺼내려던 나를 향했다. 이건 수치다. 내 인생의 수치. 오명은 아니다. 나 스스로 선택한 일탈이고 타락이고 범죄니까 오해 따위 없는 명명백백한 현장적발, 현행범 체포. 8년 인생 살면서 이런 수치를 느껴본 적이 없다. 고작 300원짜리 쮸쮸바를 먹겠다는 알량한 마음 때문에 나는 인생 최대의 수치심을 겪어버리고만 것이다. 난 쮸쮸바를 내려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골목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30여 명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과 내 고막을, 내 양심을 격하게 파고드는 선생님의 하이피치 극대노 샤우팅.
난 이제 더 이상 착한 아이일 수 없는 걸까? 그런데 엄연히 따지면 쮸쮸바를 사려는 시도만 한 거지 실제로 ‘불량식품을 사서 먹는’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니까. 나는 아직 착한 어린이가 맞지 않을까? 담임선생님은 사실은 내가 타락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교 주변에서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작은 악마의 기행을 미리 알아차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파견된 천사가 아닐까? 그리고 그 샤우팅을 함으로써 나를 타락으로부터 지켜내는 임무를 완수한 것이지 않을까?